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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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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9.20 16:37
최근연재일 :
2021.01.19 20: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934
추천수 :
0
글자수 :
204,498

작성
20.10.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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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2.

DUMMY

날씨는 적당히 쌀쌀했다. 방금 말려 따뜻한 머리카락이 1분 정도면 원래의 온도를 찾을 정도였다. 바람은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간신히 몇 미리 움직일 정도였고, 구름들은 햇살을 피해 흩어지는 무척이나 맑은 날이었다.

그런 날씨의 아래에서 자주 입지 않던 코트를 꺼내 멋을 부린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어색하다. 어떤 자세를 잡고 있어도 멋 부린 티가 나는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 진짜. 괜히 입고 나왔나?”


뒷목이 달싹 거리는 걸 잠재우기 위해서 손바닥으로 괜히 달래본다.

나의 앞으로 대학생 무리들이 우르르 지나갔다. 그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하는 것 같아서, 좀처럼 안정이 되질 않는다.


“어?”


그때, 그 무리 중 하나가 나의 시선을 확 잡아당기며 다가왔다.


“너 뭐야?”


처음에 그가 다가오는 만큼 뒷걸음질 칠 정도로 어리둥절하던 내가, 그에 대해 알아차리자 저도 모르게 얼굴을 굳혔다.


“휴학한 거 아녔어?”


얼굴을 제대로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시선을 회피했다. 대충 녀석의 얼굴에 ‘과 동기’라는 글자를 때려 박는 것으로 간신히 그의 작디작은 눈과 마주할 수 있었다.


“학교에 올 수도 있지.”

“그건 그래도. 음, 괜찮나 싶어서.”


그의 “음”이라는 한 템포의 휴식이 오히려 나를 자극했다.

그의 얼굴이 곧바로 ‘개자식’이란 글자로 뒤바뀌었다.


“무슨 의미야?”

“아니, 뭐. 딱히?”


그러다 그가 뒤를 돌아 자신이 속해 있던 무리를 돌아본다. 자기가 만든 무리에서 아직도 혼자 눈치보고 있다는 게 우스웠다.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곧 있으면 들을 수 있는 수업 전부 없어질 텐데 괜찮아? 빨리 복학해서 들을 수 있는 수업이라도 들어야지. 너 동기도 없이 다닐 수나 있냐?”

“······.”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저 녀석을 노려볼 뿐이다.

저 작디작은 눈이 저렇게 비열해 보일 수 있을까?

유일하게 봐줄만한 저 오똑한 코가 어쩜 저렇게 간사해 보일까. 햇빛에 그을린 피부와 잦은 흡연으로 퇴색된 입술은 또 어떤가.

헛구역질이 절로 난다.

녀석이 분위기 파악이 됐는지 조금 당황한 얼굴이 돼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무섭게 왜 그래? 너 아직도······.”


뭔가 혼자 알아냈다는 듯, 한심하다는 헛웃음을 뱉는 녀석. 아까까지 파악해 놨던 분위기는 코 푼 휴지가 돼 바닥에 내동댕이쳤나보다.


“야, 야. 그건 어쩔 수 없었던 거라니까? 정신 좀 차려. 땡깡 부릴 나이는 아니지 않냐? 과 통합이 무슨······”

“야! 빨리 와, 새꺄!”


누군가 말로 녀석의 뒷덜미를 부여잡았다.


“가, 갈께!”


그는 그렇게 외치며, 오리 새끼처럼 무리를 서둘러 따라갔다.

순간, 내가 왜 여기에 서있는 지 까먹을 정도로 몸에 피가 돌았다. 괜히 화끈거리던 얼굴은 이제 분노로 뜨거워졌다. 그 앞으로 대학생들이 웃고 떠들며 지나갔다.


“멍청한 놈들.”


아까까지 마주하지 못했던 그들에 나는 똑바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주머니에 담긴 핸드폰이 부르르 떨어 나를 꼬집기 전까지, 나는 그렇게 주변에 무례한 시선을 계속해서 던지고 있었다.


“출발.”


별에게 온 보고 문자였다.

금요일 12시 40분. 칼 같이 1시간에 도착하리라는 의지가 엿보였다.


“저도 출발했어요.”


선의의 거짓말을 기분 좋게 보낸다.


“거짓말.”


그녀의 답장이었다.


“??”


자판에 새겨진 물음표보다 더 크게 눈이 떠진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서둘러 자판을 두드렸다.


“나도 거짓말이었거든.”


막 문자를 전송하려던 찰나, 별의 목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나도 모르게 소리에 반응한 고개가 들렸다.

날씨가 너무 좋았던 탓일 거다.

그녀의 긴 생머리가 유독 아름다운 검정색으로 보인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날씨가 너무 좋았던 탓일 거다.

유난히 피부가 하얘 보이는 것도, 인위적으로는 낼 수 없는 색으로 볼과 입술이 반짝이고 있는 것도, 천천히 깜빡 거리는 눈동자를 3초 이상 바라 볼 수 없는 것도, 전부.

전부 날씨가 너무 좋았던 탓이다.


“어, 아? 아니. 그니까.”


화들짝 놀란 것 보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기 위해 나는 필사적이었다.


“놀랐어?”


나는 말하는 법을 잊었다. 내가 할 줄 아는 말은 “그.”, “어.”, “아.” 정도의 옹알이 뿐이었다.


“엄청 놀랐나 보네?”


그녀가 웃는다.

검은 항공 잠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좋은 날씨를 입고, 부드러운 바람에 담긴 소리들이 나의 심장을 울렸다. 다행히 내 부끄러운 울림는 재잘거리는 대학생들에게 묻혔다.


“아니 갑자기 오시니까 놀랐잖아요.”


나는 간신히 정신을 추스르고 말했다.


“그래? 약속이 한 시였잖아?”

“아직 한 시가 아니니까요.”

“어? 그러네?”


그녀는 핸드폰 시간을 확인하더니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투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딱 맞춰 온 줄 알았는데.”


그녀가 조금 지나칠 정도로 심각하게 표정을 굳혔다.

나는 서둘러 말을 꺼냈다.


“그럴 수도 있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과연 그녀가 그럴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을 연신 삼켜야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전혀 부정적이지 않다는 거다.

손을 뻗는다. 그리고 붙잡는 내 손과 붙잡힌 그녀의 손이 맞물린다.


“어서 갈까요?”


손을 붙잡힌 그녀가 놀란 눈이 됐다가, 나의 물음에 사르르 녹는다.

나는 그런 그녀의 미소를 평생 간직하기 위해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그녀에게 고정된 채로, 그녀와 함께 걸을 뿐이었다.


“모자 쓰고 올 걸 그랬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왼쪽 대각선 아래로 30여 초를 머물고 다시 올라와 대상을 바라보길 2초. 이번엔 반대쪽으로 사선을 그으며 떨구는 눈동자. 그때 그녀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나는 그제야 내가 너무 그녀를 바라봤다는 걸 깨달았다.

서둘러 시선을 뿌리친다.


“원래 음악회 같은 건 자주 가?”


그녀가 내 옆을 따라오며 물었다.


“저도 처음이에요. 별 씨는요?”

“나도 처음이야. 직접 뭘 하러 간 일은 없거든.”


의외였다.


“가보셨을 줄 알았어요.”

“왜?”


내 투박한 검정 운동화가 발소리를 한 번 울리면, 그녀의 깨끗한 흰색 운동화가 네 번의 발소리를 울리며 따라붙었다.


“매주 음악 감상하시잖아요.”

“그건 집이지.”


그렇게 답하고, 그녀는 내 물음의 의미를 깨닫는다. 고개를 돌려 내 쪽으로 얼굴을 올려다보며 묻는다.


“아아, 그래서 음악 듣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어?”

“싫어하세요?”

“아니.”


그 사이에 나뭇가지나, 떨어진 낙엽이 밟히는 소리가 별처럼 귀에 띄었다.

대화가 멈춰도, 내 발소리에 느긋한 공백이 있어도 충분하게 채워주는 그녀의 소리가 있었다.


“놀리는 거죠?”

“응. 근데 또 틀린 말은 아니야.”

“이것도 저 놀리는 거예요?”


내가 그녀를 바라보며 묻자, 그녀는 내가 잘 볼 수 있도록 고개를 저어주었다.


“음악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 그냥 듣는 거야. 시간표를 짤 때 빈 시간이 있었고,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음악을 감상하는 누군가였고, 그 이후로 변하지 않았을 뿐이야.”


그녀가 걸음 수를 배로 늘려 나란했던 선을 넘어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저만치 달려가 솜사탕을 둘둘 말아주는 아저씨에게 웃으며 돈을 건넨다.

나는 그녀의 말에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서둘러 걷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걸어와 주거나, 내가 천천히 그녀에게 도달할 때까지 걸음을 재촉하진 않았다.


“들어가서 먹어도 되려나?”


그녀가 아저씨에게서 커다란 솜사탕 두 개를 받아들고 달려오며 물었다.

하나는 하늘처럼 파랗고, 다른 하나는 벚꽃처럼 연한 색이었다.


“아마 안 될 걸요?”


내 말에 그녀는 파란색 솜사탕을 내밀었다.


“그럼 일찍 오길 잘했다.”

“그러게요.”


솜사탕을 받아들었다.

그녀는 솜사탕에 물든 벚꽃색을 입 한가득 훔쳐온다.


“단 거 좋아해요?”

“으응~ 아니. 솜사탕을 좋아하는 거야.”

“왜요?”


나도 솜사탕을 한 입 베어 물며 물었다.

모든 게 궁금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 그녀가 사랑하는 것. 그녀가 관심을 갖는 것, 전부

그녀의 솜사탕은 어느새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글쎄······. 색이 예뻐서? 모양이 예뻐서?”


솜사탕을 베어 먹느라 시선만 살짝 내게 옮겨 말하는 그녀가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이제 어느 정도 그녀의 말에서 놀리는 게 무엇인지, 즐거워하는 게 무엇인지, 진심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는?”


나는 딱히 없는 이유를 붙여본다.


“저는 많이 먹을 수 있어서요.”


그녀가 내 말에 갑자기 나무젓가락에 꽂혀 있던 솜사탕을 뽑아 두 손으로 꽉꽉 압축시키기 시작했다. 내가 말리거나 그러한 투의 말을 뱉기도 이미 늦은 상태였다.

당연하게 솜사탕은 엄청나게 작은 크기. 원래의 설탕 덩어리로 변해갔다.

한입에 다 먹을 수도 없었던 솜사탕이 그녀의 손바닥보다 더 작아진 모습으로 둥글게 말려 내 앞에 내밀어졌다.


“이제는?”


그녀가 묻는다.


“네?”

“이제는 어때?”


그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진지하다는 건 알았다.

진지한 표정의 화제가 내가 잠깐 생각해 뱉은 말이라는 게 미안해져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서 난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목덜미를 주무르며, 어색하게.

어떻게 해도 멋 부린 티가 나는 온갖 포즈를 고치며 말한다.


“솜사탕인 건 변함없잖아요. 맛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색도 더 진해져서 예쁘네요, 뭘.”

“많이는 못 먹어. 엄청 작아.”


그녀는 어째서인지 조금 기뻐보였다.


“배에 들어오는 양은 똑같으니까, 상관없지 않을까요? 사실 그렇게 깊게 생각해서 한 말이 아니라서······. 그게 뭘 좋아한다고 하면, 보통 하나만 보고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생각해도 두서없는 대답에 그녀는 기뻐 보이던 얼굴을 폈다. 무엇에 놀란 것처럼. 아니지, 이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것 같았다.


“너는 행복을 전염시켜.”


그리고 사르르 녹는다. 그녀의 얼굴은 편안하게 미소 지었다.


“그만 갈까?”


그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둥글게 뭉친 솜사탕을 내 입에 강제로 쑤셔 넣었다. 나는 그걸 억지로 받아먹었고 그녀는 내가 들고 있던 솜사탕을 뺏어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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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 21.01.13 22 0 18쪽
29 29. 21.01.12 18 0 20쪽
28 28. 21.01.11 24 0 15쪽
27 27. 21.01.06 16 0 19쪽
26 26. 21.01.05 20 0 20쪽
25 25. 21.01.04 23 0 15쪽
24 24. 20.12.30 21 0 14쪽
23 23. 20.12.29 2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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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 20.12.23 19 0 14쪽
20 20. 20.12.22 22 0 19쪽
19 19. 20.12.11 22 0 18쪽
18 18. 20.12.09 18 0 18쪽
17 17. 20.12.07 24 0 16쪽
16 16. 20.10.28 18 0 8쪽
15 15. 20.10.27 26 0 9쪽
14 14. 20.10.27 21 0 14쪽
13 13. 20.10.21 36 0 8쪽
» 12. 20.10.20 22 0 11쪽
11 11. 20.10.19 25 0 8쪽
10 10. 20.10.14 23 0 8쪽
9 9. 20.10.13 33 0 13쪽
8 8. 20.10.12 28 0 21쪽
7 7. 20.10.07 22 0 14쪽
6 6. 20.10.06 20 0 7쪽
5 5. 20.10.05 28 0 11쪽
4 4. 20.10.01 33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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