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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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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9.20 16:37
최근연재일 :
2021.01.19 20:0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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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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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4,498

작성
20.12.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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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19.

DUMMY

“네 글도 읽게 해줘.”


핸드폰에 그녀의 메시지가 헤어질 때의 발걸음처럼 사뿐히 날아와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요.”

“지금.”


답장은 곧바로 왔다.


“안 돼요. 아직은.”


이라고 보내려던 손을 붙잡듯, 그녀의 메시지가 곧장 날아온다.


“지금.”


알 수 없는 낯간지러움이 얼굴을 덮쳤다.

보내?

아님 말어.

그래. 조금 더 버텨보자.


“안 돼요. 이유라도 알려주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나도 안 됐는데 보여줬어.”

“결국 안 보여줬잖아요.”


그녀라면 분명 모든 준비를 갖추고 한 말일 게 뻔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도 빠르게 수긍한다.


“칫.”


낯간지러웠던 얼굴에 미소가 덧칠해진다.


“별 씨도 아시잖아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구요. 이건.”

“알지.”


무엇인가 공유되는 기분을 느꼈다.


“기회가 되면 반드시 보내드릴게요.”


잠시 그녀가 생각에 잠겼는지 답이 없다. 나의 엄지손가락들이 갈피를 못 잡고 허공을 만지작거린다.


“이유가 있으면 돼?”


그 질문에 손가락은 달팽이의 눈처럼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네?”

“이유가 있으면 되냐고.”


그게 무슨 ‘이유’일지 궁금해졌다. 그녀가 나에게 딜을 제시한 거다. 그것도 무척이나 매력적인 딜을.

나는 결국 참아내지 못하고 묻는다.


“뭔데요?”


곧바로.


“나도 널 이해하고 싶어서 그래.”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막으려 애썼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너무 큰 나의 웃음소리를 숨기기 위해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이불 속으로 숨어야 했다.

꼭꼭 숨어서 나는 철렁이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주소 하나를 보낸다.



* * * *



차가운 음료인데도 아메리카노는 향기를 듬뿍 간직하고 있다. 빨대에 입을 데기 위해서 얼굴을 가까이하면 항상 들이 마시게 되는 그 진한 향기와 목에 넘길수록 갈증이 이어지는 신비함이 무척이나 특별하다.

다른 음료들을 제치고 항상 똑같이 이 검은 물을 시키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마치 내 상황을 환기시키는 것 같은 묘한 기분.


“요즘 많이 변한 거 알아?”


빨대의 구부러지는 부분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나에게 채윤이 다가와 물었다.


“그런가요?”

“이젠 지정석에 안 앉잖아.”


그녀의 말대로 나는 지금 특별하기만 했던 내 지정석에서 떨어져 나와 있었다. 어느덧 그녀가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맞이하는 바라운지 형태의 카운터 책상이 내 새로운 자리가 돼 있었다.

뒤를 돌아 과거의 특별했던 공간을 돌아보았다. 내가 없음에도 그 자리는 여전했다. 금방이라도 저 자리에 앉는다면 똑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별과 함께하지 않는 이상, 저 자리에 앉지 않는다.


“요즘은 혼자일 땐 여기가 더 좋은 것 같아요.”

“혼자일 때는?”

“네. 이제 저 자리는 혼자 못 앉겠어요.”


그런 기분이다.


“하긴. 너는 그런 애니까. 예전부터 그랬어. 집은 쉬는 곳. 가게는 글 쓰는 곳. 학교는 공부하는 곳.”

“집에서는 밥. 밖에서는 밀가루.”

“음료는 아메리카노. 빵은 소라빵.”

“아이스크림은 더위사냥. 과자는 오징어집.”

“맞아, 맞아.”


그녀가 박수를 치며 웃었다. 변함없이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


“그땐 참 쉬웠는데.”

“제가요?”

“응.”


눈웃음이 남아 있는 대답에 나도 모르게 그녀를 따라 웃는다.


“거의 내 손바닥 안이었지.”

“참내.”


킥킥대고 웃는 그녀는 언제나 그렇지만, 밉지가 않다.

그녀가 나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카운터 책상에 팔꿈치를 올려 턱을 괸 그녀의 깨끗한 얼굴이 너무 가까워졌다고 느낄 때쯤에 내 몸이 저절로 물러난다.


“근데 지금은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입고리가 올라갔지만, 눈은 웃지 않고 있다.

황급히 눈을 피한다. 그리고 정신없이 떠오르는 단어들을 뒤져 말했다.


“아, 안다고 해도 사주신적 없잖아요.”

“응? 뭘?”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아이스크림··· 빵······. 뭐 그런 거···.”

“뭐?!”


그녀가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가게를 듬성듬성 채우고 있던 손님들이 그녀의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최대한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시선을 회피해본다.


“오늘 좀 이상해요. 무슨 일 있으세요?”

“글쎄? 이제 좀 관심이 생겨?”

“관심은 원래 많았어요.”

“소설 히로인으로 쓸 정도로?”


윽.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게 엄청난 긍정의 의미를 담았다는 걸 알지만, 이미 그녀의 손바닥 안에 있는 나는 그나마 남아있는 저항 수단이었다.


“근데 이젠 늦었겠지, 아무래도?”

“무슨 말이에요?”


오늘따라 그녀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녀가 도통 나를 모르겠다는 말처럼. 나도 지금의 그녀를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녀가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몸을 물려 멀리 떨어졌다. 머리끈으로 묶인 머리카락이 그녀의 고갯짓과 반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으아~ 일이나 해볼까!”

“무슨 말이냐니까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며 몸을 일으킨다. 내가 몸을 맡기고 있던 의자가 듣기 싫은 소리를 내뱉으며 뒤로 밀렸다.

다급한 내 표정이 음료가 담기고, 담기지 않은 글라스마다 미쳐 보인다. 그것들과 다르게 그녀는 지금까지와 달리 무척이나 편안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엑스트라는 이제 빠지겠다는 소리지.”


그때, 누군가의 입장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문이 밀리는 속도와 그 움직임을 담은 바람이 종소리에 맞춰 가벼운 발걸음을 들여보낸다.


“안녕하세요.”


별이었다.



* * * *



“사장님이랑 무슨 말을 나눴길래 표정이 그래?”


주문을 마치고 옛 내 지정석에 앉자마자 별이 물었다.


“변했대요.”

“변해?”

“네. 제가 글 쓸 때부터 봐왔으니까 벌써 5년? 6년 정도 됐네요.”

“엄청 오래네? 아, 잠시만.”


그녀가 몸을 떨고 있는 진동벨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카운터 쪽으로 걸어가 주문한 음료를 받아왔다.


“얼음 다섯 개 맞죠?”

“네. 감사합니다.”


둘은 서로 미소를 주고받고 헤어진다.


“아, 혹시 말 틀래?”


채윤이 과감히 그렇게 물었다. 순간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뻔했다.

별이 잠시 음료를 손에 쥔 채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어요. 쟤의 유일한 친구 분이잖아요?”

“그런 것까지는 아니고 거의 동생이지.”

“아, 뭐. 어쨌든 상관은 없어요.”

“좋아, 그러면 혹시 같이 스키장이나 갈래?”

“스키장이요?”

“응. 요번 겨울에는 스키장이나 갈까해서.”


채윤이 슬쩍 그녀 뒤로 나를 바라본다.


“쟤도 갈 거야.”

“진짜요?”

“응. 갈 거지?”


참내.


“어차피 할 거 없잖아?”

“가는 건 좋은데, 너무 갑작스럽지 않아요?”

“그게 재밌는 거지.”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그녀가 생글생글 웃어 보인다.

나는 채윤에게서 시선을 돌려 별을 바라봤다.


“저는 상관없는데, 별 씨는요?”

“나?”


별이 즉흥적인 이 상황에 어울리지 못하다가 갑작기 끌려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네. 별 씨한테 물은 거잖아요.”

“아, 그. 나도 상관없어.”

“그러면 가요.”


채윤이 웃음을 터트렸다.


“너 진짜 재밌다. 좋아, 좋아. 그럼 내가 아는 애 한 명 더 데리고 가도 돼?”


안 물어봐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별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덤덤히 고개를 끄덕인다.


“상관없어요. 돈을 제가 내는 건 아니니까.”

“좋아. 그럼 내가 일정 잡히면 연락줄게.”

“한 달 전에 연락 주셔야 해요.”

“한 달 전?”

“네.”


채윤의 표정이 어리둥절하다. 그러다 현의 이야기를 떠올려 알겠다는 의미로 손가락을 흔들어 보인다.


“아아, 알겠어. 그럼 한 달 전에 미리 연락줄게.”

“감사해요.”


채윤과 어지러운 계약을 성사한 별이 생각보다 뿌듯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는 자리에 앉으며 태연하게 물었다.


“그렇게 됐어. 너는?”

“또 물어보는 거예요?”

“응. 내가 물어본 게 아니니까.”


그게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여줬다.


“저야 좋죠.”

“그럼 됐네.”


그녀가 음료를 마신다. 거기에 동동 떠있는 다섯 개의 얼음이 눈에 들어온다.


“왜 하필 다섯 개에요?”


내가 물었다.


“얼음?”

“네.”

“그냥. 너무 과하잖아. 음료보다 얼음이 많으면 사실상 손해거든. 그리고 그 얼음 다 녹으면 밍밍해.”

“근데 애초에 커피에 얼음을 넣는 순간 녹잖아요.”

“딱히 차갑게 먹고 싶은 건 아니니까. 굳이 따지면 미지근하게 먹는 셈이지.”


특별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특이하긴 했다.


“특이해요.”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나는 네가 더.”

“그래요? 왜요?”

“음, 글쎄.”


할 말이 뚝 끊겼다. 보통은 이런 상황이 오면, 각자 할 일을 하면 될 일이었다. 근데, 오늘 그녀가 아무것도 들고 오질 않았다.

그걸 발견하자 자연스럽게 노트북을 꺼내려던 내 손이 자동으로 멈춰섰다.


“오늘······ 아무것도 없네요?”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응.”


생각보다 멀쩡한 대답에 오히려 내가 당황스럽다.

하지만 뒤따라 달려오는 말이 나를 더 흔들어 놓는다.


“오늘은 너랑 젠가를 둘 거야.”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젠가를 꺼내 온다.


“4시간 동안요······?”

“아니. 하루 종일.”

“네?!”


제정신이냐는 말이 튀어·········.


“오늘은 그러고 싶어.”


···나오지 못했다.


“그러고 싶어.”


그녀의 이름만큼 반짝이는 별처럼. 그녀가 쓴 소설에 등장하는 별처럼. 그렇게 반짝이는 저 눈동자를 본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건, 어쩌면 중력에 이끌려 떨어지는 사과처럼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됐다.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내 소설 속 주인공에게 더 없이 걸맞은 표정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젠가를 가져왔다.



* * * *



그렇게 그녀와 나는 젠가를 쌓아 올리기 시작한다.


“이젠 쉽게 안 쓰러질걸?”


시작하기 전 당당하게 말했던 그녀의 말이 무색하게 젠가는 금방 쓰러졌다. 서둘러 “다시, 다시”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게임은 순식간에 10번째 판을 맞이했다.

그래도 이번엔 꽤 가네.

그녀와 새로운 방식으로 젠가를 하고 있다 보니 예전에는 이 간단한 보드게임을 어떻게 즐겼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네가 쓴 소설 재미있더라.”


그녀가 블록 하나를 뽑으며 말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올려놓는 모습이 예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져 있었다.


“벌써 다 읽어 보셨어요?”

“응.”


엄청 빠르네.


“그래서······.”

“어떠냐고?”

“네.”


이왕 보여준 거 제대로 피드백을 받아낼 생각이다. 채윤 이외의 독자의 의견이니까 말이다.

나는 검지를 이용해 블록을 톡톡 쳐보며 그녀의 답을 기다린다.


“음··· 좀 쓰던데? 멋지다고 생각했어.”


스트라이크! 아니, 아니. 이건 거의 데드볼이다.

돌직구가 그대로 내 두 광대를 때렸다. 미소가 올라가는 걸 보여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젠가 뒤로 얼굴을 숨기고 아까 건드리던 블록을 붙잡아 당긴다.


“그리고요?”

“그리고······.”


블록이 조심스럽게 젠가의 틈에서 빠져나온다. 젠가에는 내가 뽑은 블록의 자리에 작은 창을 만들어냈다. 네모난 창에 정확히 들어가는 내 눈. 그 너머를 통해 나는 그녀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지 않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상태로, 그녀는 말했다.


“조금 질투 나던데······.”

“질······투요?”


천천히 그녀의 시선을 따라 작은 창에서 벗어나본다. 젠가의 밖으로 나의 시선이 이동하자, 그녀의 눈이 채윤에게 고정돼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예?”


설마.


“너무 티 나더라.”


설마설마설마설마설마, 설마!


“그래서 분발······”


그녀가 거기서 고개를 다시 돌렸다. 그러다 나와 눈이 딱 마주친다. 순간 얼굴이 불에 덴 듯 뜨거워졌다. 유화로 덧바른 붉은색 물감이 마르지 않고 서로의 얼굴에 계속해서 번져가고 있었다.


“······하려고.”


고개가 숙여지고 잠시 말이 없다.

몇 초나 가려나. 그것보다 그녀에게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심장이 무척이나 뛰기 시작했다.

심장 소리에 맞춰 속으로 바둑 기사처럼 초세기에 들어간다. 젠가가 한순간에 피 말리는 바둑이나 장기가 된 기분이었다.

흐르는 초시계를 멈춘 건, 여느 때와 같이 그녀였다.


“내, 내 차례지?”

“네······.”


같은 박자. 같은 높이로 그녀와 나는 말을 주고받는다. 말이 겹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적절한 상황에서 그녀는 젠가를 무너트리고 말았다. 블록을 꼭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은 무척이나 떨리고 있었다.


“다시 쌓을게요!”

“응!”


서둘렀다. 그래야만 해야 할 것 같아서.

순식간에 젠가는 쌓아 올리고 게임은 재개됐다.


“다른 건요?”


말을 돌려본다.


“다른 거?”

“네. 원래 보려던 이유. 그건 찾았어요?”


그나마 이런 쪽의 얘기가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고 7살짜리 애들처럼 얼굴에 묻힌 붉은 물감을 씻어낼 방법이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턱이 깍지 낀 손 위에 올려졌다. 그 위에서 턱은 이리저리 오뚝이처럼 굴렀다. 시선과 고개가 반대로 향하며 잠시 “으음···.”이란 소리도 낸다. 아마도 어제 읽었던 내 소설을 떠올려 보는 듯싶다.

그러다 자신의 차례라는 걸 깨닫고 그 자세 그대로, 무릎을 맞대고 사람 인(人)자로 벌어진 꼬지 않은 다리를 조금 더 틀면서 한쪽 손을 뻗어 블록 하나를 뽑아낸다.


“아!”


무엇인가 떠올랐는지 블록을 내려놓는 눈이 커진다.


“네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알았어.”


젠가가 아슬아슬하게 흔들린다. 그리고 천천히 젠가는 스스로 중심을 잡아간다.


“그리고.”


그게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블록을 빼고, 젠가가 흔들리고, 그녀의 입술이 벌어지고, 단어들이 나열되는 게 천천히 보였다.


“그리고 네가 얼마나 나와 반대되는 지도.”

“안 좋은 건가요······?”

“아직은 좋아. 지금도 좋아.”


그녀가 젠가를 올려놓는다. 짓궂을 정도로 블록이 이상하게 세워진다.

내 차례.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가 놓은 젠가를 피해 뽑을 만한 블록을 찾아본다. 돌다리라도 건너듯.


“나는 네가 좋아, 성운아.”


흔들.

손에 든 젠가 블록이 바닥을 향해 추락한다.


“네?”


젠가는 흔들렸지만, 다시 중심을 잡는다. 미어켓처럼 고개를 바짝 올린 나에게 그녀는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걸 버티네?”

“?”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건 정말 저 특수부호 하나였다.


“동요했어? 설렜어?”

“뭐, 뭐뭐뭐요? 아니거든요?”

“젠가처럼 흔들렸어?”


그녀의 눈과 입, 코.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몰라 서둘러 바닥에 떨어진 블록을 바라본다. 주어야 하는데, 계속 시선을 고정시키면 되는데·········. 자꾸자꾸 그녀에게 시선이 간다.


“참나······!”


나의 눈이 힐끗. 힐끗.

그녀의 얼굴이 부분, 부분.

모자이크처럼 보이는 그녀의 단편들이 쓸데없이 정확히 그녀의 표정을 맞춰버렸다.


“그렇게 이기고 싶으셨어요?”

“당연하지. 오늘은 꼭 이길 거니까.”


장난기를 한가득 얼굴에 품고 그녀가 말했다.


“애초에 별 씨가 저한테 이길 리가 없어요. 두는 방법이 전혀 안 고쳐졌잖아요.”

“난 내 방식대로 할 거야. 네 소설을 보고 깨달았거든.”


그녀는 내가 눈을 마주치는 걸 기다렸다는 듯, 정확히 미소 짓는다.

나는 다시 한 번 크게 동요했다.


“그럼 저어어어얼대 못 이길 걸요?”

“이기면 어쩔래?”


이러면 당연히 내기 쪽으로 대화가 이어질 텐데······.


“괜찮겠어요?”

“뭐가?”

“내기 걸어도.”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녀의 눈이 가늘어진다.

오늘따라 그녀의 미소가 다양하다.


“내기하고 싶었어? 계속 이기니까 막, 뭐 시키고 싶었어? 나를 너무 호구로 보고 있던 거 아냐?”


말은 험하지만, 전혀 화가 나지 않은 얼굴. 오히려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가 끌려오는 걸 바라보는 얼굴이다.

탐욕스럽긴!

대화의 주도권을 완전히 잡혀버렸다. 이 상태에서 내기를 제안받는다면 꼼짝없이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조건도 제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걸 거절할 방도도 없다.

나는 모든 걸 인정한다는 한숨을 뱉고 물었다.


“그래서 뭘 거실 건데요?”

“반말 써. 내가 이기면.”

“······그걸로 되겠어요?”

“응. 네 성격상, 이런 거 아니면 말 안 놓을 것 같아서.”


이 사람이 얼마나 나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언제나 저 또렷한 눈동자로 나를 곧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실로 놀라웠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나는.


“그래서 너는?”

“저도 말해요?”


빙긋. 그녀가 웃었다.


“말할 수 있으면.”


칫.


“됐어요.”

“좋아. 그럼 지금부터 시작이다?”

“네, 네.”


내가 떨어진 블록을 다시 주워 올리는 것. 그리고 그녀가 깍지를 낀 손을 머리 위로 쭉 펴 보는 것. 이어서 준비 운동을 하는 것을 끝으로, 그녀와의 젠가 내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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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 21.01.06 15 0 19쪽
26 26. 21.01.05 16 0 20쪽
25 25. 21.01.04 18 0 15쪽
24 24. 20.12.30 18 0 14쪽
23 23. 20.12.29 19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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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 20.12.23 17 0 14쪽
20 20. 20.12.22 18 0 19쪽
» 19. 20.12.11 18 0 18쪽
18 18. 20.12.09 17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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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 20.10.07 21 0 14쪽
6 6. 20.10.06 19 0 7쪽
5 5. 20.10.05 27 0 11쪽
4 4. 20.10.01 30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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