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남녘의 서재입니다.

멀고도 가까운.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9.20 16:37
최근연재일 :
2021.01.19 20: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840
추천수 :
0
글자수 :
204,498

작성
20.10.06 20:00
조회
18
추천
0
글자
7쪽

6.

DUMMY

내 얘기를 들은 채윤은 배를 부여잡고 까르르 웃었다. 그게 너무도 진심이어서 잠시 가게 안에는 그녀의 웃음소리만 가득 부풀어 찼다.


“그만 웃어요.”

“아니, 아니! 진심이냐고. 미친 거 아냐?”


다시 한 번, 눈물을 맺으며 자지러진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터지는 웃음을 참으면서까지 서둘러 뒷내용이 듣고 싶은 듯 보였다.


“그래서 사귀게 됐어요.”

“뭐?!”

“아니 왜 이렇게 놀라요?”


웃었다가, 놀랐다가 참 다양한 사람이다.


“아, 아니, 아니. 그 미친 사람 같은 고백을 받아줬다고?”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내 얼굴이 뚫어져라 바라봤다.


“오늘 올 거예요. 약속 잡았으니까요. 3시에 잡은 약속이니까 슬슬 저도 준비해야겠네요. 화장실 좀 써도 되죠?”

“어, 어어. 응. 당연하지.”


벙찐 얼굴로 그녀가 답했다. 영혼이라도 빠져나간 얼굴은 또 처음 본다.


“갔다 와서 뒷얘기 더 들려줄 수 있니?”

“그냥 지금 해주고 갈게요, 그럼.”


안 해주면 죽기라도 할 것 같아서 나는 마지못해 일어나려던 몸을 다시 바로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물음에 답할 겨를이 없다.

왜, 왜 못 봤지? 아니 그보다 이걸 어떻게 하지?

동아줄처럼 우산의 손잡이를 계속해서 다잡아본다. 하지만 계속해서 미끄러지는 걸 보니, 썩은 동아줄이 분명하다.

뭐라고 대답이라도 해야 할 텐데, 뭐라고 해야 하지?

나도 모르게 촉촉이 젖은 앞머리를 헝클어트린다. 축축한 머리칼이 마를 정도로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비를 맞아서 감기에 걸린 걸까, 머리가 아팠다.


“부끄러워서 그래?”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무척이나 단단하다고 느꼈다. 마치 주변, 그리고 뒤는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굳셌다. 그녀는 기둥에서 빠져나와 나의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정자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했음으로, 무릎을 구부리고 주저앉은 그녀의 시선이 정확히 내 눈과 마주했다.

그녀는 왼손으로 정강이를 휘감아 오른쪽 어깨를 붙잡고 넘어지지 않게 자세를 유지했다. 그건 그녀만의 작은 바운더리 같았다.

넘어서는 안 될 선.


“응?”


그녀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대답을 재촉한다. 어깨에 걸친 노란색 우산에 감싸인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무척이나 다채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대답이 없자, 나의 손 모양을 따라 한 오른손을 이리저리 흔들더니 조심스럽게 자신의 새하얀 운동화 쪽으로 끌고 와 앞코를 톡, 톡 친다. 그제야 그녀의 볼이 조금 붉어진 것을 나는 보았다.


“······그······.”


쌍꺼풀이 없이 찢어진 갈색의 눈동자가 잠깐 나를 바라본다. 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뭐라고 말이라도 해!”


그러나 입은 바늘로 꿰매기라도 한 듯 벌려지질 않는다. 그런 내 태도에 그녀의 시선이 다시 자신의 운동화로 도망쳤다. 그럼에도 지금 그녀는 도망가거나 화를 내지 않고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백한 사람의 부끄러움에 대한 그녀의 너그러운 배려였다. 그 배려에서 그녀가 내 고백을 긍정적으로 생각 중인 것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면 진즉에 뺨을 맞았겠지.

아무튼, 시간이 얼마 없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하하, 사실은 새로운 소설을 쓰기 위해 연습 중이었습니다.” 라고 말할 수도 없잖아!

앞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려본다. 하지만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밖에 없었다.


“······이······”

“이?”

“······이상하죠···? 이런 이상한 사람이 이상한 고백 하면 기분 나쁘죠? 죄송해요.”


빠르게 고개를 90도로 꺾었다. 그리고 뒷걸음질을 조금 친다.


“제가. 제가 너무 성급했어요!”


무르기. 혹은 거절당하기. 상대방의 올라간 호감도를 급격하게 떨어트리는 전략이다.

고백하는 사람이 사과하고 거절하는 것만큼 비호감인 건 없지.

나는 기도를 올리는 심정으로 혼신의 연기를 했다. 비겁하다는 것도, 쓰레기 같다는 것도 알고 있으나 도저히 진실을 말할 용기는 없었다.


“거절하셔도 돼요.”


거절해줘. 제발.


“괜찮아요. 저는······.”

“으음······.”


그녀는 고민한다는 의미를 입 밖으로 내뱉는 것으로 나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가만히 꼬옥 쥐고 있던 우산을 빙글 돌린다.


“어떻게 할까?”


우산에 달려있던 빗방울들이 퍼져 날아간다. 우산에 부딪혀 부서지고 타고 내려와 빙글빙글 흩어지는 빗방울의 위로, 난데없이 날이 밝아지면서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노란색은 더욱 노랗게. 투명한 것은 더욱 반짝거리게. 아름다운 것은 더욱 아름답게.

단순히 쪼그려 앉아 있을 뿐인데, 고백했던 탓인지 나의 심장은 시끄럽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웃기게도 나는 점점 거절당하는 게 싫어지고 있었다.

왜 이러지?

나는 조용히 침을 삼킨다.

그녀가 들었을까.

갑자기 그녀의 눈이 위로 치켜떠지더니, 조용히 어깨에 걸친 우산을 접는다. 그녀가 몸을 일으켜 계단을 내려온다.


“어, 어······.”


나는 조금씩 그녀의 걸음에 맞춰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어느새 그녀는 나의 앞으로 사뿐히 다가서 있었다.

언제 이렇게 가까이 왔지?

내 어깨선 정도에 그녀의 머리끝이 위치했다.

반 보 정도 뒷걸음을 치는 나에게 그녀가 맑은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난 좋아.”

“네?”


나는 당황해서 한 번 더 뒷걸음질 친다. 그러자 그녀가 오히려 나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난 좋다고.”

“아니, 그···.”


거절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근데 조건이 있어.”


조건?

그 말에 머릿속에서 아우성치던 마지막 남은 거절 기회는 깡그리 잊혔다.


“오늘은 시간이 다 돼서 좀 그렇고, 내일 오후 4시. 어디서 볼래?”

“어, 어······.”


어쩌다보니 이 흐름을 빠져나갈 수가 없다.

이럴 때 하필 충격이 없다는 채윤이 떠오른다. 그리고 내 소설이 떠오른다. 지금 상황과 그 두 가지가 묘하게 뒤섞인다.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른다. 채윤이 말했던, 연애다운 연애를 할 수 있는 기회. 그게 지금 나의 입을 억지로 움직인다.


“혹시 지하카페 아세요?”


그렇게 난 그녀와 첫 번째 약속을 잡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멀고도 가까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 공지 20.11.06 29 0 -
32 후기. 21.01.19 25 0 2쪽
31 31. 21.01.18 27 0 19쪽
30 30. 21.01.13 17 0 18쪽
29 29. 21.01.12 16 0 20쪽
28 28. 21.01.11 22 0 15쪽
27 27. 21.01.06 15 0 19쪽
26 26. 21.01.05 15 0 20쪽
25 25. 21.01.04 18 0 15쪽
24 24. 20.12.30 18 0 14쪽
23 23. 20.12.29 18 0 14쪽
22 22. 20.12.28 17 0 20쪽
21 21. 20.12.23 17 0 14쪽
20 20. 20.12.22 17 0 19쪽
19 19. 20.12.11 17 0 18쪽
18 18. 20.12.09 16 0 18쪽
17 17. 20.12.07 23 0 16쪽
16 16. 20.10.28 15 0 8쪽
15 15. 20.10.27 19 0 9쪽
14 14. 20.10.27 17 0 14쪽
13 13. 20.10.21 33 0 8쪽
12 12. 20.10.20 20 0 11쪽
11 11. 20.10.19 20 0 8쪽
10 10. 20.10.14 20 0 8쪽
9 9. 20.10.13 32 0 13쪽
8 8. 20.10.12 25 0 21쪽
7 7. 20.10.07 20 0 14쪽
» 6. 20.10.06 19 0 7쪽
5 5. 20.10.05 27 0 11쪽
4 4. 20.10.01 30 0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