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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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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9.20 16:37
최근연재일 :
2021.01.19 20: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854
추천수 :
0
글자수 :
204,498

작성
20.10.27 20:00
조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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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15.

DUMMY

“집 도착. 못한 토익 끝내고 잘 예정.”


별에게 온 문자에 답장을 작성한다.


“저는 아버지 만났어요.”

“밖에서?”


그녀에게서 곧바로 답장이 날아왔다.


“네. 근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왜?”


순간 손이 멈칫했다.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던 엄지 두 개가 서로에게 대답을 떠넘기듯 맞닿았다. 서로 위, 아래의 위치를 열심히 바꾸거나 손톱을 비비거나를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엄지는 결심한 듯 동시에 자판을 두드렸다.


“그런 느낌이에요.”


한참 동안 답장이 오지 않았다.


“여친이니?”


대신 앞에 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먼저 날아왔다.

핸드폰 화면. 그녀에게 고정돼 있던 시야가 그 물음에 확 트였다.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서로의 안부와 쓸데없는 소리가 주고받아진다. 누군가의 배를 채우기 위해 억지로 자신의 배가 채워진 치킨의 사지는, 또 그러한 자들에게 게걸스럽게 뜯겼다

.온갖 소음과 눈에 담기 어려운 것들이 모여 있는 동네 치킨집의 풍경이 오늘도 내 시력을 갉아먹어 가고 있다.

물론 아버지도 포함해서이다.


“에이~ 설마요.”


애먼 소리를 들을까 나는 거짓말을 했다.


“한창 바쁠 때인데요.”

“그렇지?”


아버지는 안심된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셨다.


“공부가 힘들거나 그렇지는 않니?”


아버지가 물었다. 나에게는 그저 답답해 보이는 검은 양복이 매일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담배와 업무 냄새를 풍기며 나에게 치킨 다리를 건넨다.

나는 애써 그걸 사양했다.


“저는 날개를 더 좋아해요.”

“그래?”


그러고 나는 날개를 집어서 입에 넣었다. 방금 전까지 치킨과 그걸 먹는 사람들에 대해 떠올렸던 생각들을 함께 바삭한 껍질을 씹어댄다.


“공부는 잘돼 가지?”

“그럼요.”

“휴학했다며?”

“더 공부하고 싶어서요.”

“그래?”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속에 있는 말을 망설이고 계셨다.

내가 들으면 화낼 말.

나에게 해서는 안 될 말.

자신도 알고 있는 그 말을 마치 말하지 못하게 하는 내가 잘못된 거라도 된다는 듯, 티 나게 망설이고 있다.

그리고 그걸 말하기 위해서.


“우리 회사에서 요번에 너희 학생들 많이 뽑았더라.”

“아, 정말요?”


차곡차곡 성을 쌓아올린다. 내가 대화에서 도망가지 못하게, 반드시 그 말을 듣게 하려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성에 갇혀 이야기를 듣거나, 쌓이기 전에 빠져나와 먼저 묻는 것뿐.


“무슨 할 말이 있으세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성이 쌓이기 전에 공격을 당한 아버지는 당황해하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결국에 아버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다.


“아직도 글 쓰고 있니?”


그래서 난 그런 아버지가 무척이나 싫다.



* * * *



예전에 나는 화폐가 왜 단단한 금속에서 시작됐는지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단순한 물물교환, 잉여생산 따위가 아닌 조금 더 상상력을 부가한 사고였다.

그러한 생각에 잠겨서 반 개월 정도는 시간을 죽였던 거 같다. 그때가 아마 수능을 앞두고 대학 원서를 작성할 때였을 거다.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는 곳.”


나에겐 그게 대학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원하는 단 한 곳에만 지원서를 제출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아버지가 득달같이 달려오셨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보는 우리 가족의 싸움이었다.


“애가 하고 싶은 걸 배우러 간다잖아!”


엄마가 외쳤다.

어찌나 소리가 컸던지, 듣는 귀가 아팠다.


“근데 왜 그게 한 곳이냐고! 애 거기 떨어지면 네가 책임 질래?”


아버지가 외쳤다.

귀가 먹먹했다.


“거기가 아니면 대학을 안 가겠대. 나도 내 아들이 원하지 않는 대학 가서 개같이 살 바에는 안 가고 지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맞다고 봐. 솔직히.”

“솔직히? 솔직이라 그랬냐? 대학 안 나오면 얼마나 개무시를 하는데! 회사에 이력서 낼 때, 그 빈칸만 보고도 쓰레기통이야, 쓰레기통! 알아?”


그래서 아버지는 내가 쓰레기통에 버려지지 않게 설득하셨다.


“잘 생각해 봐, 성운아. 너라는 거대한 탑을 쌓아가는 초석이야.”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수능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나는 오히려 더욱 완고해졌고, 아버지는 결국 이성을 잃으셨다.

그때 느꼈다.


“아버지의 돈으로 큰 자식이······!”


그 말이.


“네 돈으로 벌어 먹고살려면······!”


아··· 이래서 돈은 금속재질로 만들어졌구나. 무엇이든 되기 위해서.


“처자식을 벌어 먹이려면!”


검도, 활도 돼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고 휙, 휙.

마침내 쇠사슬도, 커다란 우리도 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날 떠올린 돈에 대한 결론은 아직 내 마음에서 바뀌지 않는 불변의 진리로 여겨진다.


“글, 아직도 쓰고 있니?”


순간, 한동안 잊어왔던 돈으로 만들어진 쇠사슬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목 주변을 긁적인다.


“그럼요.”

“글 쓰려면 많이 배워야 해. 아빠 지인이 글 쓰는데, 여행 많이 가라더라. 휴학한 김에 여행이라도 다녀오지?”


덥석.

저걸 받는 순간, 아버지의 돈으로 만들어진 여행이라는 또 다른 쇠고랑이 내 몸에 휘감길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고하게 거절하면 크게 싸울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아버지가 납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향으로 적당히 맞춰준다.


“국내로 한 번 가보려고요.”


세월이 흐르며, 나이를 먹으며 내가 아버지에게 배운 건 오로지 아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서였다.


“돈은?”

“모아둔 게 있어요.”

“용돈은 안 부족하니?”

“용돈 안 주셔도 된다니까요?”


순간 아버지의 표정이 굳는다.

내가 조심스럽게 웃음을 보여준다.


“정말이에요. 글 써서 어느 정도 벌고 있으니까요. 알바보다 나아요.”

“딱 그 정도인 건 아니고?”


뜨끔했다.

벌어들이는 돈이라고 해봐야 사주는 사람이 있어야 들어오는 거니까 말이다.


“지금은 뭐, 아직 시작하는 중이니까요.”


서둘러 닭 날개를 집어 입에 쑤셔 넣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입에서 욕이든 울음이든 무엇 하나는 토해질 것만 같았다.

다행히 아버지는 내 대답에 만족하셨는지, 기분 좋게 닭 다리를 뜯으셨다.


“역시 우리 아들이야.”


동시에 핸드폰이 울렸다.

속으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토익 곧 끝나. 넌?”


별이었다.


“아까 그 친구?”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바짝 들었다. 어느새 아버지와 나눴던 대화는 머리에서 사라진 후였다.


“네? 네.”

“약속 잡혀 있었어?”


대답을 망설이고 있던 찰나에 별에게 다시 한 번 문자가 왔다.


“끝나면 말해.”


내 손이 핸드폰을 꼭 쥐었다.


“저 이만 가 볼게요.”

“응? 왜?”


아버지가 눈동자를 불안하게 흔들며 물었다.

아쉽다는 의미와 더 있으라는 강압이 뒤섞인 눈빛이 흔들리는 눈에서 잔뜩 섞여간다.


“치킨은 다 먹고 가지?”

“약속··· 있었어요. 이렇게 늦을 줄 몰라서, 친구 기다리고 있대요.”

“아······.”


탄식에 가까웠다. 아무래도 나와의 대화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던 탓일 것이다.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지 못한 입장에서 쉽게 붙잡고 있는 줄을 놓아주고 싶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내가 뿌리치는 수밖에 없다.


“가볼게요.”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자 아버지도 엉거주춤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서둘러 달려가 계산하려는 나를 제치고 카드를 내밀어 먼저 계산한다. 그걸 바라보며 나는 한층 더 목줄이 단단해짐을 느낀다.


“들어가세요.”


내가 꾸벅 인사했다.


“아버지도 이제 일 할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아들 하고 싶은 거 열심히 해 봐. 아버지가 퇴직하기 전까지는 팍! 팍! 지원해 줄 테니까!”


절그럭.

보인다. 그가 붙잡고 있는 것과 내가 붙잡힌 게.

내 주먹이 꽉 쥐어졌다.

아버지가 멀어져갔고, 나는 그에게 등을 돌려 걸어간다.

감사하고 고맙지만, 그것과는 별개인 감정. 갑갑함에 나는 크게 한숨을 토해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나는 재미가 아닌 성과를 내야 한다. 아버지가 인정할 만큼. 이 목줄을 끊어낼 수 있을 만큼의 작품을 써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를 만나야 한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별에게 문자를 보낸다.


“이제 끝났어요.”


그녀에게서 곧바로 답장이 왔다.


“그래? 이제 집으로 가?”

“그렇죠?”


서둘러 “왜요?”라는 물음을 붙였다.


“우리 집 앞으로 올래?”


그리고 서둘러 “편맥 어때?” 라는 물음이 따라붙었다.


“저 술은··· 별로 안 좋아해요.”

“그럼 넌 편콜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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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 21.01.04 18 0 15쪽
24 24. 20.12.30 18 0 14쪽
23 23. 20.12.29 19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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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 20.12.22 18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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