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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멀고도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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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9.20 16:37
최근연재일 :
2021.01.19 20:0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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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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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4,498

작성
20.12.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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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18.

DUMMY

노트북의 화면이 채윤의 얼굴을 밝게 비추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가만히 고정돼 있는 걸 보니, 다 읽은 듯싶었다.


“어, 어때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별로에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묻는다. 긍정했을 때, 감당할 자신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녀의 표정이 무척이나 불안하게 일렁였다. 나쁜 표현을 어떻게 돌려 말할까를 고심하는 얼굴이었다.

꿀꺽.

나는 마른 침 대신,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들이킨다.


“괜찮지 않아?”


나는 깜짝 놀라 그대로 입에 머금은 것을 뱉어낼 뻔했다.


“네, 네? 이상한 거 아니고요?”

“으응? 아니, 아니. 전혀? 괜찮은데?”


내가 보았던 표정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녀는 기분 좋은 미소와 웃음기를 품은 채로 말한다.


“왜? 자신 없었어?”


그녀가 물었다.


“그게, 사장님 엄청 뜸들이셨잖아요.”


내 대답에 그녀는 알겠다는 소리를 내며 말을 이어간다.


“판타지가 아니면 이런 느낌이구나~ 싶어서. 네가 얼마나 걜 좋아하고 있는지도 다 보이고.”

“·········걔요?”

“응. 별이.”


별이?


“말 놓았어요?”

“에이~”


채윤이 눈을 장난스럽게 찡그린다.


“아마추어처럼 왜 그래? 없으니까 그냥 그렇게 부르는 거지. 너랑 동갑이면 나보다 한참 어린데 말이야.”


아니, 그것보다.


“이 소설에·········, 아니지, 아니야.”


고개를 빠르게 가로저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보인다고요, 그게?”


채윤이 고개를 끄덕이기 전에 눈을 깜빡였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너무도 잘 알아서 괜히 얼굴이 붉어진다.

그것까지 확인한 채윤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보통 네가 주인공으로 삼는 애들은 너무 좋아서 못 죽이는 애들이잖아? 근데 이건 장르가 다르니까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했는데······. 으음. 그렇구나?”

“그럼 이상하진 않다는 거죠?”

“응. 근데 그렇다고 좋지도 않아.”

“왜요?”


그녀가 잠시 뜸을 들인다. 그때의 표정이 잠시 내가 보았었던 불안한 얼굴로 변한다.


“너무 리얼해서?”



* * * *


원고지가 팔락이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개인 노트북이 생기기 전에 나도 항상 원고지를 이용했다. 사각대는 샤프심이 빤들빤들한 원고지의 사각 틀 안을 채우며 깎이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내가 정말 특별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때문에 원고지에 작성하던 글은 항상 중요한 메시지를 담으려 애썼다. 나의 깊은 고민을 담은 그 메시지를 암호화하고 수신호로 바꾸는 작업을 즐겼다. 그리고 그걸 누군가 알아들어줄 때, 나는 가장 큰 행복을 느꼈었다.

일단 이건 내 얘기고 지금 이 사각대는 소리와 펄럭이는 원고지 소리는 그녀. 별의 손에 의해서 들리는 소리다.

그녀가 작문을 하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것과 벌써 그녀와 음악회를 보고 온지 일주일이 지났다는 것까지 알 수 있다. 물론 그 사이의 시간 동안 그녀를 계속 만났다. 하지만 나는 전혀 글의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리얼해서?”


순간 채윤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정체된 부분은 그때부터다.

그 뒤의 내용이 더 있지만, 나는 서둘러 머리를 휘휘 저었다. 그 뒤의 대화는 지금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왜 그래?”


내가 이상 행동을 보이자 별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변함없이 하얀 얼굴과 맑은 눈동자가 어두침침한 조명을 받고도 눈부셨다.


“아직도 오전 9시인가 해서요···.”


내심 그녀의 계획표를 이용한 개그였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나보다.


“설마.”


대답이 곧 다가올 겨울의 한파보다 더 차가웠다.

내가 어색하게 미소를 짓자 그녀는 조금 표정을 풀고 턱을 괸다.


“아침에 도통 글을 쓰고 싶지가 않아서.”

“어디 아프신 거 아니죠?”


이젠 그녀의 계획과 행동이 익숙해진 지라 조금만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나는 그녀의 건강 상태부터 확인하게 됐다.


“날 자꾸 웃기고 싶은 거야?”

“네?”


아니라고는 말 못한다.

그래도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


“설마요···.”

“그래?”


어쩐지 그녀는 아쉬워하는 한숨을 뱉어낸다.


“사실 요즘 통 글이 안 써지거든.”

“창작의 고통?”

“그런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크게 막힌 기분이야.”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격하게 공감하고 있었다.

나도. 아니 나 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니까.


“지금 어느 부분인데요?”


다른 건 도움을 전혀 주지 못해도, 이 분야만큼은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거의 결말. 왜?”


그녀가 손을 뻗어 아메리카노가 담긴 컵의 빨대를 붙잡아 휘휘 저었다.


“도와주게?”


턱은 괸 채로, 웃음 짓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이나 나긋했다. 나도 몰래 내 심장 소리가 밖으로 튀어나온다.

두근대는 소리가 나에게만 들리는 거라면, 좋겠다.


“왜 아무 말이 없어?”


별의 말에 나는 한참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닫고 서둘러 입을 뗀다.


“아, 그. 그래도 제가 글을 쓰니까.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요······.”


잔망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하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하긴. 그렇기는 해.”

“그렇죠?”

“응. 도움 받아 볼래.”


그녀가 턱을 괸 손을 풀고 원고지와 그 위에 샤프심을 한쪽으로 치운다. 양손을 깍지 껴 앞에 모은 그녀는 마치 상담소에 들어온 사람처럼 긴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도 노트북을 덥고 그녀와 데칼코마니처럼 손을 깍지 껴 앞에 모아 올렸다.


“그럼, 우선 무슨 내용인지 읽어 볼까요?”


내가 손을 내밀었다.


“응?”


그녀가 내 손을 바라보더니 눈썹 끝을 눈에 띄지 않게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 눈을 빠르게 깜빡이다 입술 안 쪽을 가볍게 깨물었다.

당황한 것이다.


“당황하지 말고 보여주세요. 봐야 뭘 알죠.”

“아니, 그···. 보여주는 건 좀·········.”


그녀가 시선을 회피한다. 깍지 낀 손이 불안하게 풀렸다가 다시 모였다.


“처음엔 다 그래요. 그래도 누가 봐줘야 글이죠.”

“그건 맞는데···.”


우물쭈물, 입술이 일그러진다.


“그래도 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건가?


“줘 봐요.”


그녀의 표정이 점점 알 수 없게 바뀌고 있었지만, 나는 무척이나 집요했다. 한참 원고지를 아래에 두고 그녀와 내 손이 실랑이를 벌인다. 마치 팬더가 나오는 쿵푸 애니메이션의 만두를 차지하기 위한 주인공과 스승의 대련과 비슷했다.


“보여주지 않으면 제가 조언을 해줄 수가 없잖아요!”


손을 뻗어 그녀의 원고지를 붙잡으려했다. 하지만 찰나, 그녀의 손이 내 손을 붙잡았다.


“좀 기다려.”


그녀가 사납게 노려본다.

그건 내가 그녀와 맨 조건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 보았던 눈빛이었다.


“아, 네.”


나는 차마 그녀의 눈을 제대로, 아니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창피하게도 화장실에 가고 싶어질 것 같아서였다.


“너도 알거 아니야. 무슨 기분인지.”

“죄송합니다.”

“마음에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긴, 다짜고짜 완성되지도 않은 이야기를 읽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선뜻 원고지를 내밀 사람은 없다. 그것도 자신이 처음으로 쓴 작품을 말이다.

그걸 누구보다 더 많이 알고 있고, 먼저 겪어봤던 나였다.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속을 무겁게 짓눌렸다.


“그럼 말로 설명해 주실래요?”


그나마 내가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응?”

“어차피 제가 별씨의 글을 평가하려는 건 아니니까요. 그럴 깜냥도 없고. 별 씨의 고민도 그쪽이 아니잖아요. 내용이 막혀서 문제라면, 말로 대충 설명해주세요. 흐름을 알면 되니까. 그건 괜찮죠?”

“그, 그래도 돼?”


차가운 표정이 녹아간다. 눈썹은 부드럽게, 입술도 파르르. 눈동자는 수면에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튀어 오르듯 깜빡인다.

그 표정에 뭐라 답할 수 있을까. 그저 웃음을 지어주는 게 전부였지만, 그거라도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 하나로 나는 용서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웃지 말고 들어줘.”


그녀가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며 말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도 저랬다고.

그리고 그때의 나도 이렇게 사랑스러웠을까, 하고.



* * * *



이야기는 “잠깐 기다려 봐.” 라는 말로 시작됐다. 그녀는 옆으로 밀어놨던 원고지를 끌고 와 뒤적였다. 나는 그녀가 부끄러움을 원고지 뒤로 감추기 위해 괜히 끌어 왔다는 걸 알았다. 몇 백 번이고 보았고, 수 십 번을 탈고했으며, 쉴 틈 없이 생각했을 내용들이 갑자기 머리에서 사라질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원고지를 이리저리 뒤적이기만 할 뿐, 눈만은 내 표정 변화에 고정된 채로 말을 이어갔다.


“우주가 배경이거든?”

“네네.”

“근데 내가 상상한 우주라 네가 생각하는 그런 우주 개념이랑은 조금 달라.”

“알겠어요.”

“우주에 아주 큰 별 두 개가 있었어.”

“별이요?”


내 질문에 그녀는 귀엽게 다문 입으로 “응응.”하고 말을 잇는다.


“이름은 일단 알파랑 오메가야.”

“괜찮네요.”

“그래?”


다행이다, 라는 말이 생략된 기쁨이었다.


“처음에 두 별은 서로를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었어. 그런데 어느 날, 어디선가 돌

파편이 날아와. 그 파편은 불행하게도 오메가의 몸에 박히게 돼.”


알파가 던진 줄 알겠구나.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적중했다.


“그래서 오메가는 알파를 알게 되고 서로 엄청나게 싸우게 돼. 알파는 억울했고, 오메가는 답답한 감정이 뒤섞이는 거지.”

“근데 원래 별들은 서로 관심이 없는 건가요?”

“아니, 아니. 너무 멀어서 관심을 둘래야 둘 수가 없어. 서로가 고독하게 자기 생활만 할 뿐이야.”

“아하.”


제법 디테일했다. 물론 그렇다면 둘은 어떻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냐는 궁금증이 남지만, 그건 눈감아 줄 사안이었다.


“그래서요?”

“한참을 싸우던 두 별은, 어느 날 갑자기 자기들 사이에 커다란 젠가 하나가 떠다니는 걸 발견해.”


특이했다.

그녀가 좋아해서라기보다, 내가 젠가를 하면서 느낀 감정 때문임이 더 컸다.


“처음 발견했을 땐 바닥면만 존재했지만, 둘이 그 젠가에 대해 궁금해 하며 대화를 나눌수록 차곡차곡 쌓여갔어. 대화 내용이 깊고 단단할수록 젠가의 블록 또한 단단하고 알맞게 쌓여.”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그녀의 말을 떠올려본다. 어두컴컴한 우주. 소금처럼 뿌려진 별들. 그들 중 유독 커다랗게 클로즈업 된 두 별. 얼굴이랑 눈. 코를 마음대로 그려 넣고 둘 사이에 덩그러니 젠가를 놓아본다. 둥둥 떠 있는 젠가는 두 별들의 깊은 대화를 통해 차곡차곡 성장해 간다.

상상을 마치고보니, 어느새 나는 카페가 아닌 그 별 사이와 우주 공간 안에 있었다. 두 별들.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별과 그 사이 젠가를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었다.


“두 별은 신기했어. 대화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멀었던 둘은 완전히 가까워져 있었거든.”


여기서 눈감아 줬던 사안이 해결됐다.


“그리고 젠가가 성장하는 건, 심심했던 참에 아주 좋은 오락거리였거든? 그러던 어느 날에 그 두 별은 젠가 블록 안에 그들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돼.”

“어떤 식으로요?”

“젠가 블록을 뽑는 거야. 뽑아서 들여다보면 그때 무슨 대화를 나눴고, 어떤 감정이었고,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 지 알 수 있게 돼.”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네요?”

“맞아.”


그녀가 웃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깊게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둘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돼. 서로를 이해하게 된 거지. 그리고 그 블록은 아주 특별해서 버리거나, 다시 쌓아올리는 걸 선택할 수 있었어. 블록 안의 기억이 너무 소중했던 알파가 발견한 거였지.”

“처음 몇 개는 버려졌겠네요?”

“응. 그걸 무척이나 아쉬워하던 오메가가 블록을 꺼내지 말자고 말했는데, 알파는 도리어 새로 쌓아 올리는 걸 발견한 거지.”

“상대의 마음은 항상 궁금하니까요.”


나는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생물체도 아닌 두 별에 충분히 감정이입을 하며 몰입해 있었다.


“이후에 어떻게 돼요?”


내가 재촉했다.


“잠시만.”


그녀는 이 부분 부터는 최근에 쓰기 시작했는지, 얼른 옆에 치워놓았던 원고지를 들어 훑어 보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과 같은 “응응.”이라는 말로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시간은 한참 흐르고, 둘의 젠가는 무척이나 크게 쌓아올려져.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게 우주를 비행하던 중인 인간에게 보이고 말아.”

“불행한 건가요?”

“응. 인간은 애초에 반짝이는 별들이 살아있다는 걸 알지 못해. 우주의 모든 것들이 살아 숨 쉬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무리들이라는 게 내 소설 설정이야.”

“그럼 덩그러니 놓인 젠가에만 흥미가 있었겠네요.”

“맞아. 그 젠가 블록 하나,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무엇을 담고 있는지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해. 그래서 아무렇게나 뽑아버려.”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 다달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들었을 때는 전혀 막힐 부분이 보이질 않는다. 자연스럽게 끝낸다면, 젠가는 결국 인간의 손에 무너지고 두 별은 원래의 위치를 깨닫고 멀어질 것이다.

당연한 수순의 새드 엔딩.


“알파와 오메가가 모았던 젠가 블록들은 멋대로 기억이 갱신돼 쌓아 올려지고, 버려져. 심지어는 연구를 한다고 가져가기도 하고······.”


그녀의 표정이 무척이나 우울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내심 짐작이 갔다. 첫 소설. 깊은 내용. 무엇을 담고 있는지가 말하지 않아도 와 닿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녀가 뜬금없이 이야기를 거기서 스톱시켰다.


“근데, 여기서 막혔어.”

“네?”


너무 몰입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낸다.


“왜? 내가 막힌 부분이야. 여기가.”

“아니, 이상하잖아요. 여기서 막힐 이유가 전혀 없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내 말에 그녀도 조금 격양된 목소리도 받아쳤다.


“나는 그래! 막혔어, 확실하게. 여기 이후로는 전혀 써지질 않아.”

“뭐가 문제에요. 당연히 젠가가 무너지고 알파랑 오메가는 거기서·········!”


순간 나는 아차 싶어 입을 막는다.

아주 잠깐이지만,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처음 보는 표정을 보았다.

분노? 경멸? 아니다. 그것과는 조금 다른 유형의 감정. 그 표정을 기억하려고 애써보지만, 결국 실패한다.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함부로 넘겨짚고 있었을까. 그리고 함부로 그 생각을 확정 지어 버린 걸까.

미안하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는 지금 그녀의 소설에 나오는 인간과 똑같았다.


“싫었어.”


그래도 다행히. 그녀 쪽에서 먼저 표정을 풀었고, 입을 열어주었다.


“그렇게 결말내고 싶지 않았어.”


그 몇 마디가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잠시 억지로라도 이 이야기에서 벗어나 그녀에게 사과를 건넬 수 있었다.


“죄송해요.”

“뭐가?”

“무슨 이야기인지 제대로 보지도 않았는데, 넘겨짚어서요. 도움 드리고 싶었는데··· 엉뚱한 짓만 했네요.”

“아냐. 어떻게 보면, 정확히 봤지. 그래서 기분이 좀 나빴어. 너도 알겠지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니까.”


보통은 그러니까.

나도 그랬고.


“······네.”


고개를 푹 숙인채로, 더듬더듬 말을 이어본다.


“그래도 일단 별씨의 글. 굉장히 재밌어요. 제가 다른 걸 신경 쓰지도 않을 정도로 푹 빠져서 들었거든요.”

“그래?”


별의 얼굴이 조금 붉어진다.


“부끄럽네.”

“글로 본 게 아니라서 이 부분은 자신이 없지만, 너무 감정이 한 쪽으로 치우쳐 있지도 않고 스토리 전개도 좋고. 결과적으로는 무척이나 흥미로워서 계속 듣게 돼요."

“고···맙다고 해야 해?”

“아뇨. 그냥 제 감상인데요, 뭘.”


그녀가 내 말에 빙글 웃으며 표정을 풀었다. 나도 그제야 고개를 들고 웃어볼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아까 말한 거 제외하고.”

“결말이요?”

“응.”


그녀와 나는 동시에 각자의 아메리카노 빨대를 부여잡았다.

그녀가 먼저 아메리카노를 빨아 마셨다.


“난 되도록 해피엔딩이면 싶어.”

“조금 더 내용이 길어져도 상관없죠?”

“응. 어디에 내고 그러는 건 아니니까.”


이번엔 내가 아메리카노를 빨아 마신다. 신기하게도 내려놓는 건 동싱였다.


“그렇다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다시 쌓으면 되지 않을까요?”

“젠가를?”

“네."

“둘은 변함없을 테니까요. 멋대로 뽑아가고 젠가를 망친 건 인간일 뿐이지 알파와 오메가는 아니잖아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시간을 준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서로가 돌아설 이유가 없죠. 오히려 또 다시 쌓으면 쌓았지. 제 생각엔 그렇게 즐거워했었으니까. 분명 그 둘이라면 과거가 소중한 만큼, 앞으로도 소중할 거예요. 그러니까 무너져도 계속해서 젠가를 다시 쌓아 올릴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이번에 실수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물론 이야기는 길어지겠지만 이렇게 하면 확실히 해피엔딩이죠?”


그녀가 입술을 깨문다. 부드러운 미소를 품은 채로.


“응. 완벽한 엔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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