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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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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9.20 16:37
최근연재일 :
2021.01.19 20: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851
추천수 :
0
글자수 :
204,498

작성
20.10.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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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0.

DUMMY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채윤의 카페에 문을 열고 들어간 것은 오후 1시가 됐을 때다.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양손에 달랑달랑 들고 한쪽 어깨로 문을 밀면서 들어갔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별이 보낸 보고 문자를 받는다. 입에 베어 문 편의점 샌드위치가 생각보다 괜찮아 놀란다. 그리고 별다를 것 없이 노트북을 켠다.


“우선 고백 장면은 사용하기로 했으니까, 이렇게 넘어가고.”


다음 내용 써내려간다.

채윤이 중간에 장난을 치기 위해 다가왔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녀와 어울릴 시간이 없다. 서둘러 쓸 수 있는 만큼의 분량을 써내려간 후에, 5시가 되기 직전에 일어나야 하는 게 오늘의 계획이기 때문이다.


“벌써 가?”


5시가 되자마자 일어난 내게 채윤이 물었다.


“오늘 갈 데가 있어서요.”

“그래?”


그녀가 목을 긁던 작은 손을 펼쳐 작별 인사한다. 나도 손바닥을 펴 흔들어 오늘따라 무엇인가 어색한 인사를 남기고 떠난다.


“대충 여긴가?”


나는 건널목에 멈춰 섰다.

신호등은 초록 불로 깜빡이고, 나를 제외한 주변의 사람들이 신호가 바뀔까 바쁘게 건너기 시작했다. 재잘거리는 사람도 하얀 줄만 밟고 건너는 사람도 바쁘게 뛰어가지만, 나는 건너지 않고 건널목의 반대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로 얼마 만이지?

새삼스럽게 휴학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허락도 없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렇게 긴 시간은 되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젠장.”


나도 모르게 낮게 입술을 깨문다.

모두가 건너간 횡단보도에는 아무도 없이 휑했고, 한 걸음 내디디면 쏜살같이 달려오는 몰상식한 차량에 그대로 몸을 받힐 것만 같았다. 그런 사지로 신호등의 초록 불은 연신 깜빡이며 나를 유혹했다.

갑자기 입술이 떨린다. 기분 나쁜 역함에 나는 초록 불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신호등은 그런 나를 실패자라고 말하듯,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그때 핸드폰이 부르르 떨리며 별에게서 문자가 온다.


“수업 끝.”


근데 그게 놀랍게도 음성과 함께였다.


“으악!”


나도 모르게 귓가에 울리는 별의 목소리에 소리를 질렀다. 어찌나 놀랐는지, 들고 있던 핸드폰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별은 망설임 없이 몸을 숙여 내 핸드폰을 주워 희미한 미소와 함께 건네준다. 그녀의 노란색 맨투맨이 멜빵바지의 줄로 삼등분 돼 있는 게 사랑스럽다.


“뭘 그렇게 놀라?”

“갑자기 그렇게, 문자랑, 예? 그렇게 막 하시면 심장이! 아니, 아니. 사람이 놀라죠!”

“그래?”


그녀가 고개를 기울여 이리저리 방황하는 내 시선을 따라온다.


“근데 왜 여기 있어?”


그녀가 물었다.


“우, 우연이죠,”


나는 아직도 놀란 심장을 부여잡은 채 답했다.


“자. 네 핸드폰.”

“고마워요.”

“근데, 정말 우연이야?”

“그, 그럼요!”


벙거지 모자의 챙에 가려진 눈이 내 핸드폰을 건네주는 순간, 희미해진 미소가 살며시 웃음 짓는다.


“거짓말.”

“진짜거든요?”

“아닌 거 같은데~”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콧바람을 불며 앞서 걸어간다. 나는 그런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런 나를 그녀는 흘끗흘끗 돌아보며 떠다니는 민들레 꽃씨와 같이 미소를 던져준다.


“이게 계획이야?”


그녀의 두 손이 뒷짐을 쥐었다.

이미 다 들켰구나. 어쩌면 내가 계획표를 보낸 순간부터 그녀는 눈치를 채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방해는 안 할게요.”

“그렇게나 같이 있고 싶었어?”


거침없는 돌직구에 손이고 발이고 남아나질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웃긴 건, 오징어처럼 오그라드는 게 손이나 발뿐만이 아니라는 거다.

심장이다, 심장!

나는 가슴 쪽에 손을 올려 옷을 붙잡았다.


“글쎄요.”

“글쎄요? 그게 뭐야. 엄청난 묘책이 있던 게 아니란 말이야?”


나도 모르겠다.

기가 막혔던 생각이 막상 그녀 앞에 서자 방향을 잃고 헤맨다. 최근 들어 그녀와의 보고형 문자에도 계속 이 상태였다.

깜짝깜짝 놀라고, 생각이나 감정이 도저히 정리되질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완전히 난장판이다.


“묘책 아니에요.”

“흐흐.”


그녀가 이상한 소리로 웃었다.

아무리 급변해도 적어도 결이라는 것과 납득이 될 요소가 있는 법인데, 이 사람은 도대체가 좀 잡을 수가 없다. 그리고 반려동물처럼 뭣에 놀라서,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사방으로 튀는 나란 녀석도 잠재울 길이 없다.


“그래서?”


그녀가 갑작스럽게 울리는 경적 소리처럼 물어왔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처음으로 그녀와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시선을 주고받는다.

그녀의 눈이 한참 동안 내 눈과 교차하더니, 사선으로 그리고 수직으로. 다시 한가운데로 이동한다. 그런 후에야, 그녀는 조금 붉은 얼굴로 다시 입을 뗐다.


“그래서 언제까지 따라오려고?”


이왕 이렇게 된 거, 후진은 없다.


“계획대로요.”


그녀가 조금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차도에 차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헤드라이트가 그녀를 지워냈다가 다시 그려낸다.


“혹시, 스토커?”

“아니거든요!”


차의 헤드라이트가 그녀의 모습을 훔쳤다 다시 돌려놨을 때, 그녀는 앞으로 한 걸음 멀어졌다.


“기분 나쁜 건 아니죠?”


나는 그녀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붙으며 물었다.


“아직 모르겠어. 이런 적은 없으니까.”

“그냥 평소대로 지내면 돼요. 저는 그냥 있다가 간다는 느낌?”

“그건 알지.”


그녀가 짧은 한숨을 토해낸다. 그건 결심을 위한 숨 고르기와 같았다.


“알았어.”


좋았어!

그 말에 나는 흡족했다. 그거면 된다. 딱 그런 기분이다.


“뭐 먹을까요?”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거.”

“무슨 메뉴를 그렇게 정해요?”

“너 때문에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녀가 핸드폰을 들어 보여준다.


“앞으로 삼십 분. 삼십 분 안에 못 먹으면 날 방해하는 거야.”


꿀꺽.

그 말에 마른 침을 삼킨다.

괜찮아, 괜찮아. 그럴 줄 알고 보아 둔 가게가 있으니까.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 * * *



멍하니 걷고 있는 와중에 나는 그를 발견했다. 몇 달 후면 못 입을 무릎이 드러난 청바지에 파란색도 검정색도 아닌 애매한 색상의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후드티의 한가운데에는 무엇을 그렇게 막고 싶은지, 커다랗게 “STOP IT!”이라고 쓰여 있다.

구려.

구리긴 해도, 싫거나 밉지는 않다. 오히려 저 구린 티셔츠를 이용해 마음껏 골려주고 싶을 뿐이다.


“어?”


그와 잠시 눈을 마주쳤나 싶었는데, 곧바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더니 주인이 놓아버린 반려견처럼 떨기 시작한다.

그런 그의 불안한 모습이 덜컥 나를 겁나게 한다.

신호등이 닦달하듯, 나의 두근대는 마음을 초록빛으로 연신 때려댄다. 그가 걸어올 수 있었지만 나는 참지 못하고 서둘러 걸음을 내디뎠다.

사뿐히. 그와 나를 연결해 놓은 새하얀 징검다리를 건넌다.

목소리는 괜찮나?

머리는?

옷은?

몇 번의 폴짝임에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며, 단번에 그와의 거리를 좁혀간다. 알아차릴 새도 없이 삽시간에 그의 그림자와 내가 포개어진다.

코앞에 있는데도,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

나를 알아채지 못하는 그에게 문자 하나를 보낸다. 그리고 우물쭈물 망설이다, 그가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에 말한다.


“수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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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 21.01.18 27 0 19쪽
30 30. 21.01.13 17 0 18쪽
29 29. 21.01.12 17 0 20쪽
28 28. 21.01.11 22 0 15쪽
27 27. 21.01.06 15 0 19쪽
26 26. 21.01.05 16 0 20쪽
25 25. 21.01.04 18 0 15쪽
24 24. 20.12.30 18 0 14쪽
23 23. 20.12.29 19 0 14쪽
22 22. 20.12.28 17 0 20쪽
21 21. 20.12.23 17 0 14쪽
20 20. 20.12.22 18 0 19쪽
19 19. 20.12.11 17 0 18쪽
18 18. 20.12.09 17 0 18쪽
17 17. 20.12.07 23 0 16쪽
16 16. 20.10.28 16 0 8쪽
15 15. 20.10.27 19 0 9쪽
14 14. 20.10.27 17 0 14쪽
13 13. 20.10.21 34 0 8쪽
12 12. 20.10.20 20 0 11쪽
11 11. 20.10.19 20 0 8쪽
» 10. 20.10.14 21 0 8쪽
9 9. 20.10.13 33 0 13쪽
8 8. 20.10.12 25 0 21쪽
7 7. 20.10.07 21 0 14쪽
6 6. 20.10.06 19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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