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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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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9.20 16:37
최근연재일 :
2021.01.19 20: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848
추천수 :
0
글자수 :
204,498

작성
20.10.28 20:00
조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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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8쪽

16.

DUMMY

바짝 기울어진 언덕을 헉헉거리며 오르자 작은 25시 편의점 하나가 나왔다.

밖에 마련된 주류와 음료 광고가 커다랗게 새겨진 둥근 플라스틱 테이블 위에 벌집핏자 하나를 까먹고 있는 별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기!”

“지금 나와도 되는 거예요?”

“자는 시간이긴 한데, 똑같이 일어나면 상관은 없지.”


계획에 딱딱 맞게 생활하던 그녀와는 너무 달라 당황스러웠다.

무슨 일이 있나 싶었다.


“사실 내일 일정이 전부 취소됐거든.”


역시나.

그녀가 자신의 앞에 앉는 나에게 이미 딴 캔 콜라 하나를 건네면서 말했다.

나는 그걸 한 모금 들이키며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어때?”


하지만 그녀는 전혀 다른 질문을 했다.

입에 물린 콜라가 나의 “뭐가요?”라는 질문을 방해한다.


“으으음?”

“그거 내가 기다리면서 조금 먹었어.”


뭐?

나도 모르게 꿀꺽하고 삼켜버리고 만다. 탄산이 내 목을 흠씬 두들기기 시작한다. 하도 맞은 내 몸은 그렇게 벌겋게 달아오른다.


“켁, 켁!”


내가 방금까지 입을 뎄던 음료수 캔의 입구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이건 이거대로 무척이나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었다.

그녀는 나의 반응에 배를 잡고 웃는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그녀는 웃느라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기까지 했다.


“아니, 당연한 거 아녜요?”

“왜?”

“왜냐뇨···.”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좋아하잖아. 우리.”


꿀꺽, 하고 침이 삼켜졌다. 콜라의 단맛을 품은 침은 달달했다.

그녀가 맥주를 들이켰다. 소리가 들릴 정도로 몇 번 벌컥이는 게 아마도 3분 1 정도는 넘어간 것 같다.


“너는 내가 언제부터 좋았어?”

“네?”


답할 수 없는 물음에 나는 표정관리를 할 수 없어 고개를 숙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사실대로 말할 거라면, 지금이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부끄러워? 그런 거야?”


그녀가 검지로 나를 쿡쿡 찌르며 물어 온다.


“그럼 날 처음 본 곳은 어디야?”


그녀는 내가 대답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다는 얼굴을 내 앞에 들이밀었다. 그 말인즉슨, 내가 계속해서 침묵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에 제한이 걸려있다는 뜻이었다.

시선이 저절로 그녀가 아닌 주변으로 굴러간다. 거짓말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녀와 헤어질 수는 없다.

내가 진실을 밝힌다면 그녀는 실망할 거고, 고백도, 좋아하려는 내 마음도, 실제로 좋아하고 있는 감정도 모두 끝나겠지.


“······그때 거기요.”

“거기?”


멋대로 넘겨짚은 생각은 건너서는 안 될 강을 건너버린다.


“고, 고백했던 곳이요······. 예전에 거기서 처음 별씨를 봤고, 그때부터 좋아했어요.”


그녀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녀의 얼굴이 멀어져간다. 그리고 과자를 부여잡고 입에 집어넣었다.


“그럼 2년 전이구나?”


버석거리는 소리에 심장이 두근댄다.

힐끗 내 쪽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무척이나 맑았다.


“기억하세요?”


내가 물었다.


“그럼. 왜냐면 2년 전에도 나, 그 정자에 똑같은 감정이랑 똑같은 상황 속에 있었거든.”

“그건 몰랐네요.”

“응. 지금도 모르지? 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줘?”


네.


“듣고 싶어?”


네!

어느새 내 머릿속은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감이 사라지고, 그녀가 부풀린 궁금증만으로 가득했다.


“다음에.”


궁금증은 그 말에 바람이 빠져버린다. 바늘에 구멍이 뚫린 풍선처럼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별은 그런 내 상태를 알고 있는 것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새로운 주제를 꺼낸다.

오늘따라 그녀가 많이 웃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사실 나 내일 부모님 만나러 가.”


그녀가 턱을 괴었다. 그녀의 옆모습이 어두운 밤과 밝은 편의점 빛에 섞였다.

나는 단번에 그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불편하신가 봐요.”

“응. 무척이나.”


그녀가 다시 맥주를 들이켰다. 무게감이 느껴졌던 캔이 이젠 가볍게 그녀 손에서 빙글빙글 흔들어진다.


“괜히 답답하거든.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부담된다고 해야 하나? 처음에는 그저 잘 보이고 싶었던 거였어. 그래야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시켜줬거든. 공부 한 시간에 컴퓨터 한 시간. 숙제 끝내는 조건으로 용돈 보너스. 성적 상승에는 그림 학원 등록. 뭐 그런 거.”


맥주 캔이 홀짝 넘어간다.


“앞에는 조건이고 뒤에는 목표인 셈이지.”


그녀가 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튼다.


“근데 난 이제 없거든. 조건으로 내세울게. 그러다 보니까 이젠 목표도 잃은 거 같아. 결승점이 보이지 않아. 똑바로 갈 이유도. 신중하게 뽑아도 결국 둘 곳을 못 찾겠다는 거야.”


마치 젠가 처럼.

그녀의 마음에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해버린다.


“결국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건 말이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계획해서 반복하는 것뿐이야. 남이 보기에 견고해 보이게. 문제없어 보이게. 믿음직스럽게.”


나는 그녀의 목에 걸려있는 나와 똑같은 줄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내 목을 어루만진다. 그녀가 나와 같다는 게 손끝에서 느껴진다.

그녀는 맥주 캔에 담긴 방울 하나까지 목구멍 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러자 그녀의 목을 감은 쇠사슬이 조금 느슨해진 느낌이다.


“근데 부모님을 만나면 조건을 보여줘야 하거든. 결승점도 없는 조건을 보여줘야 하니까 좀 그래.”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무척이나 공감했다. 하지만 그게. 그걸 받아들이는 게. 단지, 소재로 쓰기 좋겠다, 라는 생각으로 결론지어지는 게 역겹다.

손끝에 느껴지는 그 역겨운 감촉이 너무 선명하다. 울렁이는 속을 달래보려고 ‘목에 걸린 쇠사슬을 끊어내는 게 더 급해’라는 변명을 해보지만, 콜라 한 모금으로 답답함을 뚫어내는 것보다 못했다.


“별 씨는 절 왜 좋아하세요? 고백······ 왜 받아들이셨어요?”


이렇게 역겨운 사람을.

하지만 그녀는 나의 속마음을 읽을 수도, 알 수도 없다. 그저 전혀 모르는 얼굴과 눈으로 알딸딸하게 변한 볼을 붉히며 나에게 자기 생각을 말할 뿐이다.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무엇을요?”

“목표. 남까지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견고한 목표. 다와 다른 점. 그래서 멋진 점.”

“잘 모르겠어요.”

“내가 아니까 됐어.”


나는 콜라를 목에 털어 넣었다. 그런데도 역함이 해소되질 않았다.

그녀는 다 먹은 과자 봉지를 찌그러트려 주먹에 쥐었다.


“그래서! 내일은 날 못 볼 거야. 오늘 그 말해 주고 싶어서 불렀어, 사실.”

“괜찮아요.”


그러면서 나는 핸드폰을 들어 보여준다.


“연락할 거잖아요?”

“그렇지. 보고는 꼬박꼬박 할 거야.”

“그럼 됐어요.”


그녀가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쓰레기통이 된 빈 기름통에 쓰레기로 변한 움켜쥔 과자 봉지와 맥주 캔을 던져 넣었다.

그걸 한동안 바라보고나서 뒷걸음질을 치며 돌아온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다음에 또 젠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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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 21.01.18 27 0 19쪽
30 30. 21.01.13 17 0 18쪽
29 29. 21.01.12 17 0 20쪽
28 28. 21.01.11 22 0 15쪽
27 27. 21.01.06 15 0 19쪽
26 26. 21.01.05 16 0 20쪽
25 25. 21.01.04 18 0 15쪽
24 24. 20.12.30 18 0 14쪽
23 23. 20.12.29 19 0 14쪽
22 22. 20.12.28 17 0 20쪽
21 21. 20.12.23 17 0 14쪽
20 20. 20.12.22 18 0 19쪽
19 19. 20.12.11 17 0 18쪽
18 18. 20.12.09 17 0 18쪽
17 17. 20.12.07 23 0 16쪽
» 16. 20.10.28 16 0 8쪽
15 15. 20.10.27 19 0 9쪽
14 14. 20.10.27 17 0 14쪽
13 13. 20.10.21 33 0 8쪽
12 12. 20.10.20 20 0 11쪽
11 11. 20.10.19 20 0 8쪽
10 10. 20.10.14 20 0 8쪽
9 9. 20.10.13 33 0 13쪽
8 8. 20.10.12 25 0 21쪽
7 7. 20.10.07 21 0 14쪽
6 6. 20.10.06 19 0 7쪽
5 5. 20.10.05 27 0 11쪽
4 4. 20.10.01 30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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