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남녘의 서재입니다.

멀고도 가까운.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9.20 16:37
최근연재일 :
2021.01.19 20: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850
추천수 :
0
글자수 :
204,498

작성
20.10.21 20:00
조회
33
추천
0
글자
8쪽

13.

DUMMY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넓은 음악회의 홀은 사람들의 말소리로 가득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으로 무대의 전경을 찍는 자들도 있었고, 꽃다발을 들고 자신의 지인이 얼마나 잘 연주할지를 걱정하는 이도 있었다.

별은 그들의 분위기에 섞여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기 바빴다. 골판지를 닮은 벽을 틈새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훑어보고, 관객들의 머리 모양을 일일이 눈에 새겨가는 것은 물론, 뜬구름 같은 대화에도 한없이 집중했다. 다섯 칸 너머의 사람이 무대의 사진을 찍자, 벌떡 일어나 따라서 무대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나는 그녀의 행동을 조금 제지할까 싶다가도, 크게 반짝이고 있는 눈을 보고 관두었다.


“이따 사진 찍어줄까요?”

“정말?”


내 물음에 그녀는 함박웃음을 보이며 되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럼 무대 앞에 서 있는 모습으로 찍어줘.”


그녀와 함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저래 대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무대 위로 연주자들이 우르르 악기를 들고 올라섰다. 어수선한 사람의 소리들이 하나, 둘 악기 소리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연주자들은 악기 조율을 대화의 매개로 삼아 서로 안부를 묻는 것 같았다. 몇몇은 공통된 대화 주제를 떠들 때처럼 다 함께 ‘솔’이나 ‘라’음을 켜기 시작했고, 누구는 혼잣말하듯 조용히 바이올린 줄을 퉁기곤 했다.

주변의 대화와 행동이 신기하고 궁금해했던 나와 별처럼, 모든 이들이 연주자들의 대화와 행동들에 집중했다.

연주자들의 신기한 대화들은 지휘자가 올라오자 또 다른 관객이 돼, 쥐죽은 듯 입을 다물고 지휘자를 바라보았다.

관중들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악기인 손뼉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나와 별도 힘차게 박수를 보냈다. 그러자 지휘자는 뒤를 돌아 가볍게 인사를 올리고 자연스럽게 지휘봉을 들었다.


“시작하려나 봐.”


별이 속삭였다.


“나 저 노래 알아.”


별이 가리킨 골판지를 닮은 벽에 커다란 화면에서 읽기 어려운 영어가 나타난다. 아무래도 악보 제목과 작곡가 이름일 터였다.


“쇼팽 콘체르토. 1번 1악장.”


별은 그 어려운 단어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기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지휘자의 손이 가볍게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것과 동시에 현악기를 쥔 채들이 같이 올라갔다. 그리고 지휘자의 손이 내려오는 것과 동시에 웅장한 음악은 단숨에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오늘을 위해 쏟아낸 열정을 그대로 담은 음악이 온몸을 채웠다. 처음 듣는 음악. 전혀 모르는 지식을 무시하고 직접적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선율은 거리낌도 없이 마음에 불을 붙였다.

당장에라도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몸을 지배했다. 웅장하게 떨어지는 낙차의 소리가 펜촉을 들라고 재촉하는 듯했고, 길게 늘어나는 음들은 글을 쓰지 않고 있는 나의 창자를 길게 잡아당기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손바닥에 땀이 차고 있었다. 커다란 감동이 아니라, 초조함 때문이었다. 당장 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 아무런 글이나 휘갈기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감정을 두 시간이나 견뎌야 하다니!

연주회는 나에게 어쩌면 고문에 가까웠다. 매서운 채찍이었고, 쓴 잔소리였다.

지휘자가 땀으로 흠뻑 젖은 기다란 머리카락을 흔들며 마지막 지휘를 알리는 동작을 끝으로 음악이 마무리됐다. 그건 완벽한 끝맺음이었고, 딴지를 걸 공간 없이 빈틈없는 엔딩이었다.

설정의 오류도 맞춤법도 전개 방식까지도 완벽한 하나의 소설을 완독한 기분. 같은 창작자의 열정을 들끓게 만드는 소설. 나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브라보!”


주변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연주자, 지휘자가 관중과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관중의 박수가 만들어낸 하모니를 이제 연주자와 지휘자가 감상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일어나 그런 우리들에게 그들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오히려 머리를 박고 인사를 올려할 건 우리일 텐데.

자기 스스로에게 박수를 올리는 고고한 모습을 향해, 아름다운 연주를 해준 그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박수를 치는 것으로 모자라 휘파람을 부는 자들. 감격을 견디지 못하고 “브라보!”를 외치는 자들. 몸을 일으키는 자들과 지인의 실력에 감동해 우는 자들도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지인분들께서는 자유롭게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뜨거운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무대에 없는 사회자의 목소리에 눈물을 보이는 자들은 하나같이 손에 들고 있는 꽃다발을 들고 달려 내려갔다.

별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고개를 든다.


“사진.”


그녀가 말한 건, 연주가 시작하기 전의 약속이었다.


“아아, 무대 앞에서요?”


두렵다.

저들의 뜨거운 열정에 가까이 다가갔다간 그대로 녹아버릴 것 같았다. 되도록 멀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별은 나의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


“응. 찍어준다 했잖아.”


나는 이끌리듯 그녀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 위에 나타난 초록색 화살표 표시가 점점 빨라져간다. 무대에 가까워질수록 끔찍하게 불안하다.

가족들과 연주에 관해 대화하고, 꽃다발을 주고받고, 서로 껴안고 지휘자에게 인사하고······. 그들이 쏟아낸 열정이 아직도 뜨겁게 남아있는 공간에 나는 던져졌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


별은 강아지에게 말하듯,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연주자들에게 달려갔다. 그녀가 뭐라 뭐라 얘기하자 모든 이들이 좋아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별은 이내 다시 돌아와 나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쥐여주었다.


“이제 찍어줘. 잘 찍어줄 수 있지?”

“그럼요.”


나는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핸드폰을 꼭 쥐었다.

그녀가 다시 멀어진다. 그리고 열정 속에 뒤섞였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모여든다. 그녀를 가운데로 삼아 모여들었다.

내가 저기 섞일 수 있을까.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작은 카메라 렌즈로 그들을 담아낸다. 열정까지는 담아내지 못하는 사각형의 화면이 그들의 순간만을 담아낸다.

촬영 버튼으로 향하는 내 엄지손가락이 덜덜 떨린다.


“자, 찍을게요.”


내가 말했다.


“사진 찍는데 왜 긴장하고 그래?”


그녀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웃는다.

기분이 묘했다.

내 주변으로 연주자와 지휘자의 지인들이 카메라를 들고 모인다. 그들도 이참에 모두가 모인 사진을 찍고 싶어서였다.

두 가지 무리가 있다. 열정을 내뿜고 있는 이들과 그걸 담아내는 이들.

하지만 나는 뭐지?

턱선을 따라 한 줄기 땀이 흐른다. 순간 이 많은 이들이 전부 없어지고 혼자 남은 느낌이었다. 소음과 같았던 웅성거림이 지워지고 그녀 옆에 서 있는 이들과 내 주변에 서 있는 이들이 하나, 둘 지워졌다.


“글을 쓴다고?”


어디선가 그런 물음이 들려온다.


“그런 배고픈 직업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너무 불안하지 않아? 뭐 해놓은 게 있긴 하니?”


듣기 싫은. 물음표가 아닌 마침표로 찍힌 질문들.


“연재한다고? 어디서? 인터넷? 아······, 그렇구나? 몇 명이나 보니?”

“그렇게 쓰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니? 괜찮겠어?”


걱정 없는 걱정을 뱉는 입들. 내 말을 듣지 않는 귀들. 나를 바라보지 않는 눈들. 모두 닫혔으면 싶지만, 절대 그럴 리는 없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이들처럼 그들의 시선은 떨어질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게.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촬영 버튼을 가까스로 눌렀을 때 화면에는 그들 모두가 담긴다. 심지어 면면에 드러낸 열정까지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멀고도 가까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 공지 20.11.06 29 0 -
32 후기. 21.01.19 26 0 2쪽
31 31. 21.01.18 27 0 19쪽
30 30. 21.01.13 17 0 18쪽
29 29. 21.01.12 17 0 20쪽
28 28. 21.01.11 22 0 15쪽
27 27. 21.01.06 15 0 19쪽
26 26. 21.01.05 16 0 20쪽
25 25. 21.01.04 18 0 15쪽
24 24. 20.12.30 18 0 14쪽
23 23. 20.12.29 19 0 14쪽
22 22. 20.12.28 17 0 20쪽
21 21. 20.12.23 17 0 14쪽
20 20. 20.12.22 18 0 19쪽
19 19. 20.12.11 17 0 18쪽
18 18. 20.12.09 17 0 18쪽
17 17. 20.12.07 23 0 16쪽
16 16. 20.10.28 16 0 8쪽
15 15. 20.10.27 19 0 9쪽
14 14. 20.10.27 17 0 14쪽
» 13. 20.10.21 34 0 8쪽
12 12. 20.10.20 20 0 11쪽
11 11. 20.10.19 20 0 8쪽
10 10. 20.10.14 20 0 8쪽
9 9. 20.10.13 33 0 13쪽
8 8. 20.10.12 25 0 21쪽
7 7. 20.10.07 21 0 14쪽
6 6. 20.10.06 19 0 7쪽
5 5. 20.10.05 27 0 11쪽
4 4. 20.10.01 30 0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