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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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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
작품등록일 :
2021.02.16 23:20
최근연재일 :
2021.08.19 23:07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4,971
추천수 :
449
글자수 :
116,372

작성
21.05.1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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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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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Almost Haven (4)

DUMMY

동이 튼다. 실루엣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주변이 밝아오자 마부가 채찍을 휘둘렀다. 애꿎은 말이 연신 울음을 터뜨리며 뜀박질했으나, 부족하다. 여전히 느리다.


“이 잡것아! 누구 머릿가죽 벗겨지는 꼴 보고 싶어서 작정했나, 빨리 움직여!”


루니샤는 마차의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린다. 모래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눈살을 찌푸린 채 지평선 부근을 노려보자, 자그마한 점들 수어개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보쇼, 쓸모없는 거 있으면 당장 마차 밖에다 내다버리쇼! 뒈진 놈 짐짝도 던지고!”


“아예 뒈진 분을 던져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걸요.”


“거 부정타는 소리나 할 바에는 입 좀 다물어! 장의사가 그따구로 굴면 안되지!”


“제 고객님들은 한번도 불평하신 적이 없는데요?”


짐에서 권총을 꺼내는 루퍼트와 쉴새없이 채찍을 휘둘러대는 마부를 무시하고, 루니샤는 눈을 더 가늘게 떴다. 실루엣이 선명해진다. 말에 올라탄 자들이 스물 가량. 활이 아니라 총을 들고 있다.


사람 한 명만 태운 말을 짐마차가 따돌릴 수는 없다. 짐짝을 얼마나 던져버리든, 마차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따라잡힌다. 그 사실은 분명했다.


“선제 사격 허가 요청하겠습니다. 라이플 쓸 수 있겠습니까?”


“자네 앞에서 이런 말 하기는 뭣하다만, 수인 상대로는 그런 거 일일이 요청할 필요 없네. 그냥 쏘고 보는거지.”


“잘됐군요.”


턱. 루니샤는 하인리히가 집어던진 장총을 붙잡았다. 길다란 총신에 칠해진 기름이 손 바닥에 묻어나온다.


노리쇠를 몇 번 당기고 방아쇠를 딸깍여 라이플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한 뒤, 그녀는 탄환 한 발을 약실에 밀어넣었다. 경쾌한 금속음과 함께 약실 덮개가 닫힌다.


“미치겠네...! 거기 뒤에 보안관 양반이 어떻게 좀 해보쇼!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고 자빠졌구만!”


“저쪽이나 이쪽이나 총알이 안 닿는 거리일세, 젊은이. 탄환 낭비나 할 바에는 가만히 있는 편이 도움이 될걸.”


지형은 험하고 마차에 완충 장치 따위는 달려있지 않다. 명중률은 장담할 수 없으나, 저들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말에 매달려 총을 겨누는 것보다는 사정이 낫다.


그녀는 창 밖으로 보이는 검은 점들을 향해 조준했다. 얼마나 지났다고 거리가 꽤나 좁혀졌다.


“그럼 저 여자는 왜-”


“발포합니다.”


타앙. 총성이 꼬리를 길게 늘이며 울려퍼진다. 한 박자 늦게 발포음을 들은 무리가 산개하고, 뒤이어 수많은 총소리가 마차의 뒤를 쫓는다.


“흩어지기까지 3초 걸렸습니다.”


“반 마일 정도로군. 제대로 맞추려면 더 기다려야겠어.”


하인리히가 소총 총알을 건네며 말했다. 저들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최대한 수를 줄여놓아야 한다.


가벼운 금속음과 함께 라이플의 약실에서 황동 탄피가 튀어나온다. 루니샤는 높은 금속음과 함께 사출된 탄피를 마차 한 구석으로 치워버리고 소총을 장전했다.


“못 맞춰도 괜찮으니 탄환 아끼지 말게. 옆에서 엄호하지. 자네는 뭐 없나?”


구식 권총에 총알을 하나하나 끼워넣고 있던 루퍼트가 고개를 든다. 장전하는 손놀림은 퍽 능숙해 보였으나, 기름칠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지 실린더가 회전할 때마다 끽끽거리는 마찰음이 들렸다.


“쏴보기야 하겠지만 기대하진 마세요. 탄환도 얼마 없고 총은 오랜만이니까.”


“그거면 충분하네. 명줄을 통째로 루니샤 양한테 맡기기는 뭣하잖나.”


겨냥한 지점을 고친다. 총구를 내리고 가늠쇠를 실루엣 아래에 겨눈다.


“발포합니다.”


화약이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개머리판이 어깨를 때린다.


기수를 노리는 것이 아니다. 마음같아서는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놓고 싶지만 추격을 따돌리는 일이 급선무다.


방아쇠를 당기고 몇 초 뒤, 수인 중 한 명이 올라탄 말이 앞발을 치켜든다. 갑작스러운 난동에 기수가 땅에서 떨어져 다른 말의 발굽에 채인다.


멀리서 보기에도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육중한 짐승의 발이 꼬여 넘어지고 낙마한 수인이 깔아뭉개진다.


그렇게 쓰러진 말은 또 다른 말의 발을 걸고, 더 많은 추격자가 바닥에 나뒹굴고, 바닥에서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아비규환이로군. 언제 봐도 그 솜씨는 기가 막힌단 말이지.”


“수가 너무 많습니다. 작정하고 달려든다면 소총 탄약이 먼저 바닥날겁니다.”


“괜찮네. 나머지는 가까이서 해결하면 되니.”


앞자리에서 맥머피의 시체에 대한 처우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던 보레알리스가 돌아보았다. 그는 지평선 근처에서 나뒹굴고 있는 무리와 루니샤를 힐끗 바라보더니, 이내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방금 전에 0.5 마일은 떨어져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랬지.”


“그런데, 제가 보기에 저 자빠진 말은 총을 맞은 걸로 보이는데요.”


루니샤는 말없이 약실을 비웠다. 매캐한 화약 연기가 총구 끝에서 스며나온다.


잡담을 떠는 와중에도 마차와 추격자들 사이의 거리는 착실하게 좁혀지고 있다. 숫자가 줄었다지만 여전히 상대하기에는 버거운 머리수다.


더군다나 곧 저들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갈 터. 그때는 지금처럼 안전하게 사격할 수도 없다.


“방해할 바에는 마부석으로 가십시오. 우연히 총탄이 여기까지 날아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매정하네요. 칭찬이었는데.”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탄약을 재워넣었다. 다시 한 번 총성이 울리지만, 이번에는 그 누구도 쓰러지지 않는다. 조준이 흔들렸다.


“저들에게 잡히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셨습니까?”


“죽겠죠?”


따각. 마차 바로 옆에서 돌조각이 튀어오른다. 좋지 않은 징조다. 슬슬 엄폐물이 필요하다.


“어떻게 죽을지는 알고 계십니까.”


“죽는 방법이야 늘 비슷비슷하지 않나요. 총 맞고 죽겠죠. 운이 나쁘면 그 이전에 좀 얻어맞을 수도 있고.”


“머릿가죽이 벗겨질 겁니다.”


루니샤는 고개를 마차의 창 밖으로 슬쩍 뺀 채로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의 방향만 대강 잡을 뿐 제대로 겨냥하지는 않는다. 머리에 납탄이 박히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조준 사격을 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저 치들도 알고 있는지, 이제는 총성이 들려도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산 채로. 사람의 피부에서 그나마 쓸 수 있는 부위가 머리 부분이라고 하더군요.”


루퍼트가 잠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녀는 다시 화약 연기가 피어오르는 약실을 비워냈다.


“농담이죠? 역겹다는 건 둘째 치고, 뭐하러 그런 짓을 하겠어요.”


“사람이 역겨운 짓을 하는 데에는 큰 이유가 필요없네, 루퍼트. 뱃지 달고 구르면서 배운 교훈 중 하나지.”


루니샤에게 탄환을 건네던 하인리히 보안관이 말했다. 다급한 목소리에 은근한 짜증이 섞여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이네만, 루니샤 양을 혼자 두는 편이 좋을 것 같군. 자네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내 두개골이 가죽으로 덮힌 편을 선호하거든.”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러면 내 보안관보를 좀 가만 두지 않겠나? 우리 중 라이플을 가장 잘 다루는 건 루니샤 양 같은데, 그렇게 계속 말을 걸면 저 족속들에게만 좋은 일 아닌가.”


“일리가 있는 말이에요, 하인리히 선생님.”


보레알리스가 조잡한 마차 문짝을 열어젖힌다. 반응할 틈도 없이 그는 권총을 연거푸 쏘아대더니,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총에서 탄피를 빼냈다.


눈 먼 탄환에 적중당했는지 말 한 마리가 고꾸라진다. 패거리 중 하나가 당하는 모습을 본 수인들이 무작정 방아쇠를 당겨댄다.


“이건 잘했다고 말할 수 밖에 없겠군. 잘했네, 루퍼트.”


“별 말씀을요. 권총탄이 닿는 걸 보면 이쪽이나 저쪽이나 총 맞아 죽기 딱 좋은 거리인데, 계속 쏘실 건가요?”


딱. 그 말이 나오기 무섭게 마차의 벽에서 둔탁한 충격이 전해진다. 납 덩어리가 나무 벽에 꽂히는 소리다.


“이런 빌어쳐먹을! 진짜로 대가리에 바람구녕 나게 생겼구만!”


마부석에서 마부가 채찍을 휘둘러대며 소리친다. 말들은 더 빠르게 달릴 수 없을 정도로 질주하고 있었기에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낼 뿐이다.


루니샤는 라이플을 마차 바닥에 내려놓고 리볼버를 들었다. 확실히, 이제는 소총탄이나 권총탄이나 비슷히 치명적이다.


마차 밖을 내다보았다가는 머리통이 날라갈 수 있으니 고개를 내밀지는 않았으나, 총성 사이사이로 들리는 말발굽 소리는 거의 귓가에서 울리는 것 같다.


쾅. 또 요란한 굉음이 벽을 때린다. 화들짝 놀란 말이 비틀거리는 탓에 온 마차가 휘청인다.


“산탄총이군. 원 참, 저런 건 또 어디서 났는지.”


“조심하십시오. 슬슬 벽이 관통당할 수도 있습니다.”


“걱정 고맙네, 루니샤 양.”


반 할렌 보안관이 리볼버를 빼들며 말했다. 그가 총부리를 마차 벽에다 가져대고선 화약을 터뜨린다.


하인리히가 새로 생겨난 벽의 구멍에 눈을 가져다 붙이는 모습을 본 루니샤는 바닥에서 소총을 주워들었다. 라이플을 건네받은 보안관이 고개를 가볍게 까딱인다.


“자네는 이야기가 빨라서 좋다니까. 아무튼 간에, 오히려 바라는 바일세.”


퉁. 발사의 반동에 소총이 한 차례 들썩이고, 목제 벽 너머로 말의 단말마가 들린다.


육중한 몸뚱이가 땅을 구르는 소리. 거기에 깔린 수인이 지르는 비명. 마차 안에서 탄환이 발사될 것이라고는 상상치 못했는지 밖에서 난장판이 벌어진다.


“기발하네요.”


“고맙네, 루퍼트. 그나저나 이런 얕은 수에 당할 정도면 습격을 빈번히 벌이는 놈들은 아닌 것 같은데.”


“아마추어라 부르기에는 무장 상태가 지나치게 높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야. 우리야 여기엔 처음이니까 알 도리가 없지. 젊은이, 저 부족에 관해서는 뭔가 아는 게 있나?”


하인리히 보안관이 마부석을 향해 말했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이상함을 느낀 그가 자리에서 주춤주춤 일어서 마부가 있어야 할 자리를 바라보았다.


“큰일이군.”


“무슨 일입니까, 하인리히 보안관님.”


그가 조용히 핏자국만이 남은 텅 빈 마부석과, 제 주인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질주 중인 말들을 가리켰다.


루니샤는 벽면의 천공穿孔을 통해 마차의 뒤편을 바라보았다.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관절이란 관절은 모조리 꺾인 마부가 바퀴자국 옆에 쳐박혀 있다.


“...”


그녀는 말없이 리볼버의 약실에 탄환을 장전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우무문어입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정말 송구스럽지만, 연재 지연에 관해 변명을 한마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글을 격주로 시행되는 온라인 클래스 시간에 쓰고 있습니다. 등교하지 않을 때는 대개 시간이 널널한 편이라 글을 마음껏 쓸 수 있지만, 직접 학교에 가야할 때는 짬을 내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번 주와 다음 주는 온라인 주간이라 글을 맘편히 쓸 수 있습니다. 반드시 꾸준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감사하고, 좋은 하루 되세요. 김우무문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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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Almost Haven (5) +8 21.05.18 59 10 11쪽
» Almost Haven (4) +9 21.05.13 60 10 11쪽
18 Almost Haven (3) +6 21.05.06 87 7 8쪽
17 Almost Haven (2) +11 21.05.04 104 12 20쪽
16 Almost Haven (1) +11 21.03.30 170 16 11쪽
15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8) +12 21.03.15 195 19 8쪽
14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7) +5 21.03.12 163 21 17쪽
13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6) +11 21.03.08 165 20 7쪽
12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5) +2 21.03.04 161 20 10쪽
11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4) +4 21.03.04 157 23 9쪽
10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3) +9 21.02.28 192 24 11쪽
9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2) +6 21.02.26 256 20 11쪽
8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1) +8 21.02.24 205 25 9쪽
7 What Maketh a Good Man? (7) +9 21.02.22 235 32 9쪽
6 What Maketh a Good Man? (6) +7 21.02.21 203 26 11쪽
5 What Maketh a Good Man? (5) +7 21.02.20 232 26 9쪽
4 What Maketh a Good Man? (4) +9 21.02.19 272 25 10쪽
3 What Maketh a Good Man? (3) +4 21.02.18 294 28 10쪽
2 What Maketh a Good Man? (2) +4 21.02.16 423 30 14쪽
1 What Maketh a Good Man? (1) +14 21.02.16 1,098 3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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