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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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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
작품등록일 :
2021.02.16 23:20
최근연재일 :
2021.08.19 23:07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4,948
추천수 :
449
글자수 :
116,372

작성
21.03.15 20:38
조회
194
추천
19
글자
8쪽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8)

DUMMY

어두웠다. 루니샤는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티피의 내부를 말없이 살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객이 없었던 탓에 군데군데 모래먼지가 내려앉아 있다.


마야는 교수대에 매달렸다. 동정을 구할 배심원도 판사를 설득할 변호인도 없었으니 당연한 수순이다.


그녀는 투코의 장례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루니샤는 만나본 적이 없었던 동료가 많았기에 루니샤는 황무지에서 위스키를 마셨다. 두 마을 중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터였다.


광야를 헤메었다. 때로는 길을 잃었다. 무엇이든 찾아내기 위해 꽤나 오랫동안 떠돌았지만 소득은 없었다.


루니샤는 쇠가죽으로 만든 침상을 손 끝으로 쓸었다. 검지에 고운 가루가 묻어나온다.


“바깥에 있는 것, 알고 있습니다.”


티피의 입구가 흔들린다. 몇 번 가죽이 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녀보다 조금 더 작은 소녀가 걸어나왔다.


루니샤는 시선을 주지 않고 침대의 밑을 살폈다. 골판지 상자가 놓여져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꺼내들고서 침상에 올려두었다.


“언니 거야.”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소녀는 주춤주춤 루니샤를 향해 걸어오더니 상자의 뚜껑에 손을 올렸다.


“열지 마.”


어리다. 열 살을 간신히 넘겼을까. 짓는 표정이나 바라보는 방식이 마야를 판에 박은 듯이 똑같다.


“가져가는 게 아닙니다. 안에 있는 걸 확인할 뿐입니다.‘


”그것도 하지 마. 언니 거야.“


루니샤는 덮개를 열려던 손을 멈추었다. 아이가 상자를 감싸듯이 뚜껑을 꾹 누른다. 이래서야 내용물을 볼 수 없다.


사건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이곳을 살펴보아야 했다. 목장 안에 있던 증거품들은 사무국으로 옮겨놓은 지 오래였다. 마야의 거처만 조사하면 끝난다.


”그러면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 대답은 안 해줄 거야.“


소녀가 쏘아붙혔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루니샤를 싫어하면 싫어했지 좋아할 이유는 전혀 없는 아이다.


”...제가 누군지 알고 있습니까?“


”Añthropos deputia. 뿔이 있지만 Añthrop라고 디에고가 말했어.“


그런가. 루니샤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여기서는 뿔 달린 인간 취급을 받는 모양이었다.


”미안합니다.“


아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아예 상자 위에 앉은 채로 다리를 흔들거리더니, 루니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일일이 나열하기에는 지나치게 많다. 루니샤는 잠깐 생각하다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마야와 친한 사이였나 봅니다.“


”Si. 마야 언니는 Añthropos 글자도 읽을 줄 알아서 책도 읽어.“


”대단하군요.“


”그치? 이제 마을에서 글자 읽는 사람은 마야하고 디에고밖에 없어. Granpa, ma도 글 쓸 줄 알았는데.“


”...“


”다들 떠나올 때 사라졌어.“


말이 이어질수록 소녀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갈 정도로 작아진다. 티피 안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으나, 울상인 것만은 분명했다. 루니샤는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손을 들어올렸다.


이럴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녀는 쉽게 부숴지거나 깨져버리는 물건을 다루듯이 아이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타인의 손길에 놀란 소녀가 몸을 바르르 떤다.


”...이젠 마야도 없어졌어. 어릴 때 있던 곳으로 가고 싶어.“


목소리에 가는 울음이 섞여나온다. 루니샤는 가만히 아이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인간이 죽으면 천칭 앞에 선다. 천칭은 거대해서 한 인간의 업을 달기에 충분하다.


의인에게는 구원을, 악인에게는 파멸을. 천칭은 영점을 맞출 필요도 없이 공정하다. 오직 무게에 따라 정직하게 기울 뿐이다.


”Meno deseo returnera home.“


그러나 루니샤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생의 영역은 그렇지 못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과 인정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의인이 죽는다. 선이 악을 벌한다는 말은 어디로 갔는지, 다만 식은 몸만이 남을 뿐이다.


고향에서 추방당한 이들을 변두리로 몰아넣고서 자신의 손으로 그들을 매달아야 한다. 최소한의 권리마저 빼앗겨 법의 바깥으로 벗어난 이를 교수대에 올려야만 한다.


그렇기에 루니샤는 아이의 몸을 상자와 떨어뜨렸다. 먼지 쌓인 침대 위에 소녀가 걸터앉아 훌쩍인다.


”형이 집행되기 전에, 마야가 제게 물었습니다. 이것이 옳은 일이라 믿냐고.“


원칙은 루니샤의 선線이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측정하고 구분하기 위한 유일한 척도다.


동시에 그녀의 선善이다. 총을 쥐고 방아쇠를 당긴다. 범법자를 억누르고 흘릴 피를 받는다. 그릇되지 않았다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가치다.


”믿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나는 사람을 해한 사람을 체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당신을 상처입힌 사람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골판지 상자의 덮개를 열자, 안에 담긴 잡동사니들이 보인다. 직접 그린 동화책과 조약돌을 꿰어 만든 목걸이. 그리고 손때 묻은 두꺼운 공책 한 권.


”당신들을 이곳에 가두는 것이 그릇되었음을 압니다. 이웃을 기만하는 것이 그릇되었음을 압니다. 다만 잘못을 고치기 위해 또 다른 죄를 범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믿을 뿐입니다.“


소녀는 용케도 울음을 참았는지, 히끅대며 자신의 눈을 비비적거렸다. 루니샤는 아이의 머리를 토닥였다. 아이가 품에 얼굴을 파묻는다.


그녀는 소녀를 밀어내지 않았다. 루니샤에게도, 어떤 어른에게도 그럴 권리는 없을 터였다. 간헐적으로 떨리던 작은 몸뚱아리가 이내 규칙적인 호흡을 내뱉는다.


”미안합니다.“


루니샤는 잠든 아이를 끌어안고서 공책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읽을 수 없는 단어가 적혀 있다. 마야의 이름인 것이 분명했다.


다음 장에는 서부 공용어로 줄글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저급 잉크로 쓴 탓에 곳곳이 번져있지만 읽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잘못된 철자는 드물고 문장은 줄을 맞추어 정돈되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읽어내리던 루니샤는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


일기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일종의 에세이에 가까웠다. 남이 읽을 것을 상정하고 쓴 에세이.


독자가 글에 익숙치 않을 거라 가정하고 집필했는지 어려운 단어는 나오지 않고, 문장 구조는 동화책보다 살짝 더 복잡한 수준이다. 가능한 읽기 쉽게 쓴 글이다.


루니샤는 무심코 이를 악물었다. 문제는 공책의 내용이다.


[동족이 박해받는 이유는 없다. 변명은 다양하지만, 어느 것도 그들이 우리를 다루는 방법을 옳게 하지 않는다.]


[동족에게 한줌의 자유라도 주어지는 곳은 이 척박한 땅뿐이다. 조금이라도 이곳에서 벗어난다면 목줄이 채워지고, 채찍이 날아들며 인간보다는 가축에 가까운 대우를 받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개처럼 고개 숙이고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이 메마른 땅에 그들의 마지막 피가 흐를 때까지 우리는-]


이름의 필체와 내용을 쓴 글씨가 다르다 했더니, 마야가 적은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전달한 프로파간다다.


인간들은 자신을 타지로 추방했고, 이곳의 사정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고자 한다. 동생은 목장의 쓰레기들에게 강간당했다.


그런 때에 이런 내용의 서적까지 읽게 된다면 어떠한 생각을 가질까. 빅 빌을 살해하지 않은 것이 용하다.


루니샤는 한숨을 내쉬었다. 책의 저자는 정의감과 사명감에 불타 이 글을 썼겠지만, 간접적으로 몇을 죽게 만들었는지는 모를 것이다. 이래서 펜을 가볍게 놀리는 족속들이 싫다.


혹여나 다른 누군가도 이 책을 읽었는지 디에고에게 물어야 한다. 그녀는 품속에서 쌕쌕거리는 아이를 침대에 뉘였다. 무릎에 얹어져 있던 공책이 바닥에 툭 떨어진다.


무두질 된 뒷표지가 넘겨지며 책의 마지막 장이 드러난다.


”...가관이군.“


역삼각형 송곳니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캐닌’이라는 단어와 함께.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우무문어입니다...!


근 며칠 사이에 정말 많으신 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시고 있습니다! 감사함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새우겉절이 님께서 보내주신 루니샤의 팬아트 한 번씩 보고 가세요!!!


(모바일로 봐주시는 독자님들은 팬아트 공지란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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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Taking Pleasure in a Man's Pain (1) +4 21.08.14 50 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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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Almost Haven (5) +8 21.05.18 58 10 11쪽
19 Almost Haven (4) +9 21.05.13 59 10 11쪽
18 Almost Haven (3) +6 21.05.06 86 7 8쪽
17 Almost Haven (2) +11 21.05.04 103 12 20쪽
16 Almost Haven (1) +11 21.03.30 169 16 11쪽
»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8) +12 21.03.15 195 19 8쪽
14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7) +5 21.03.12 163 21 17쪽
13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6) +11 21.03.08 164 20 7쪽
12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5) +2 21.03.04 160 20 10쪽
11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4) +4 21.03.04 157 23 9쪽
10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3) +9 21.02.28 190 24 11쪽
9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2) +6 21.02.26 255 20 11쪽
8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1) +8 21.02.24 204 25 9쪽
7 What Maketh a Good Man? (7) +9 21.02.22 234 32 9쪽
6 What Maketh a Good Man? (6) +7 21.02.21 203 26 11쪽
5 What Maketh a Good Man? (5) +7 21.02.20 231 26 9쪽
4 What Maketh a Good Man? (4) +9 21.02.19 271 25 10쪽
3 What Maketh a Good Man? (3) +4 21.02.18 293 28 10쪽
2 What Maketh a Good Man? (2) +4 21.02.16 422 30 14쪽
1 What Maketh a Good Man? (1) +14 21.02.16 1,094 3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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