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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입니다.

무인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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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
작품등록일 :
2021.02.16 23:20
최근연재일 :
2021.08.19 23:07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4,972
추천수 :
449
글자수 :
116,372

작성
21.03.12 07:00
조회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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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7)

DUMMY

마치 후드를 잡아당기기라도 하듯 몸이 뒤로 쏠린다. 사정없이 불어대는 바람에 실린 모래는 피부를 벗겨낼 것처럼 몸에 부딪히고, 말은 지레 겁먹은 채 쉬이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위치도 모르는 상황에서 지도는 무용지물이었다. 귓가에서 웅웅대는 잡음이 단순한 바람소리인지, 혹은 투코가 악을 쓰면서 무언가를 말하려는 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루니샤는 안장에서 몸을 내렸다. 졸지에 기수를 잃은 말이 투레질을 했지만, 그것은 더 이상 그녀의 소관이 아니었다. 말을 버리고 구보로 이동하는 편이 빠르다.


“걸어서 이동하겠습니다, 보안관님! 시야가 확보되는 대로 목장에서 합류하도록 하겠습니다!”


투코가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머릿속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쉴 새 없이 떠오르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필요한 것이라고는 총과 탄환, 그리고 방아쇠를 당길 담력이 전부다.


목장에는 그러기 위한 도구들이 충분하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는 누군가 앞에서는, 아무리 소심한 인간이라도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다.

“젠장...!”


예고없이 불어닥친 강풍에 코트가 벗겨져 날아갔다. 몇 번이고 기워붙인 형편없는 옷이었지만 먼지폭풍에서는 유용한 차폐막이었다. 루니샤는 팔뚝으로 얼굴을 가리고서 발걸음을 내딛었다.


산 채로 박피당하는 기분이다. 조금이라도 입을 벌렸다가는 안으로 모래가 쏟아지고, 게슴츠레 실눈을 떠야만 몇 피트 앞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폭풍이 멈췄다. 루니샤는 숨을 가다듬으며 자신의 몸을 살폈다.


홀스터는 멀쩡하다. 안에 모래가 조금 들어갔을지도 모르지만, 닫혀있었으니 고장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바지의 주머니 역시 납탄들의 무게로 묵직하다.


그녀는 신발과 옷의 주름마다 들어찬 흙먼지를 털어내고 주변을 살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발길 닿는 대로 걸어왔으나, 다행히도 크게 헤메지는 않았다. 목장 인근이다.


방금 전까지 불어대던 폭풍이 거짓말같이 멈추자, 다시 사방이 조용해졌다. 루니샤는 권총을 손에 쥐고서 목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축사에는 여전히 열댓마리 남짓한 소가 남아있다. 빗장 역시 잠긴 채다. 아직 수인들이 도착하기 전이다. 투코와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돌풍을 뚫고 온 가치가 있다.


“연방 보안관보 루니샤 웨스트입니다! 당장 문을 여십시오!”


나무 문을 몇 번이고 두드렸지만 응답은 없었다. 그녀는 권총을 하늘을 향해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굉음이 울리기가 무섭게 문이 열린다. 복부에 붕대를 칭칭 감은 빅 빌이 문턱에 서있었다.


“배때지에 구멍이 난 채로 걷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다짜고짜 총부터 쏘면 어쩌자는거야!”


“당장 이곳에서 빠져나갈겁니다. 총과 탄환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뭐?”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가만히 서있는 빅 빌을 두고서, 루니샤는 목장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블론디를 찾아야한다.


적어도 말 서너마리 정도는 이곳에 있을 터다. 무장이 끝나고 그를 찾는 대로 이곳을 뜬다. 그리고 블론디를 강간죄로 잡아넣고, 마야를 체포한다. 차례로 끝내면 되는 일이다.


“잠깐! 그게 무슨 말인데! 설명은 해주고-”


루니샤는 당황스럽게 소리치는 빅 빌의 말을 무시하고 문을 닥치는 대로 열어젖혔다. 몰 소가 없으니 이 안 어딘가에 블론디가 있을 것은 틀림없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숙소로 보이는 방 안에서 술에 취한 채 잠들어있었다. 윗옷은 아예 벗어던지고 10피트 밖에서도 맥주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다. 총성이 들렸을 텐데도 자빠져있다니, 놀라울 지경이다.


“...블론디. 이동해야 합니다.”


구역질이 난다. 시큼한 땀냄새와 묵은 알코올의 냄새뿐만 아니라, 강간범을 보호해야 한다는 상황 그 자체가 역겹다.


그러나 처벌은 법의 영역이다. 어떤 죄인도 재판없이 벌할 수는 없다. 루니샤는 이를 악물고서 다시 소리쳤다.


“당장 움직여야 합니다! 일어나십시오!”


침대에 누워 뒤척거리던 블론디가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그는 발치에 서있는 루니샤를 보더니, 황급히 손을 바짓주머니에 올렸다. 그녀는 권총을 블론디의 미간에 겨누며 말을 이었다.


“시답잖은 개짓거리 할 시간 없습니다. 당장이라도 습격이 시작될겁니다.”


“이, 이봐! 갑자기 남의 사유지에 쳐들어와서 뭐하는 짓이야?!”


“제가 주머니에서 손 떼라는 말까지 해드려야겠습니까.”


딸깍. 공이치기가 당겨지는 소리를 들은 블론디의 눈동자가 졸아든다. 그가 마른 침을 삼키더니 양손을 들어올렸다.


루니샤는 한숨을 쉬고선 다시 노리쇠를 눌러 집어넣었다. 실랑이를 벌일 시간도 아깝다.


“준비가 갖춰지는 대로 마을로 떠납니다. 바깥에서 빅 빌과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투코에게 메시지를 남겨야한다. 연락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빈 목장을 본다면 수인들이 선수를 친 것이라 해석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채로 있는 블론디를 두고서 방에서 빠져나왔다.


총기 역시 챙겨야 한다. 개활지에서 승마한 상태로는 권총의 명중률을 장담할 수 없다. 적어도 라이플은 갖춰야 한다.


그러나 루니샤는 걸어가다 말고 제자리에서 멈춰섰다. 허름한 목조 건물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


둔중하다. 성인 남성의 발걸음이다. 그리고 입구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그녀는 목장의 문을 향해 총구를 조준하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쳤다.


옆에서 허겁지겁 짐을 챙기고 있던 빅 빌이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끼고선 얼어붙었다. 열리는 순간 발포할 준비를 하며 루니샤는 검지를 긴장시켰다.


그리고, 문 너머에 서있던 자가 문짝을 두드렸다.


“어이, 카우보이 개자식들! 술 깨고 빨랑빨랑 일어나시지!”


투코 페르난데스다. 그녀는 폐 안에 붙들고 있던 숨을 내뱉으며 다시 권총을 수납했다. 하루에 몇 번씩 뽑아들었다 넣는 걸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홀스터가 닳아없어질 지경이다.


빗장을 풀자 그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가까스로 나무 문짝과 얼굴이 충돌하는 것을 피한 루니샤가 투코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굳이 걷어차시고 들어올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아, 먼저 와 있었구만.”


“제대로 오셔서 다행입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출발하라고 전달했습니다.”


그는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둘을 지켜보던 빅 빌을 검지로 가리켰다.


“어이. 화살 맞은 데는 좀 괜찮나?”


“...곪지는 않았어. 그럴래야 그럴 수가 없긴 하지. 그 독한 술을 상처에 쏟아부었는데.”


“바깥에서 산 개쩌는 술이거든. 다음에 배로 갚으라고.”


와중에 농짓거리를 할 여유가 있는지 투코가 킬킬거렸다. 빅 빌은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더니, 곧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루니샤는 순간 스쳐지나간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수치심이다.


“그보다, 너랑 보안관보님이 여기 있다는 건 안다는 말이구만.”


“그래. 이것도 다 업보라면 업보야. 알아?”


단호한 대답에 빅 빌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목장의 창 쪽으로 눈을 돌렸다.


“...난 아무 짓도 안했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시는군요.”


루니샤는 시선을 피하는 빅 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몇 번 강박적으로 쓸어내리더니, 이내 양손으로 눈을 덮어버렸다.


“잘한 일은 절대 아니지. 하지만 난 최대한 말려보려고 했다고. 매번 블론디가 그 짓거리를 하는 게 싫어서 보안관을 목장에 부르려고도 했어.”


“그런데 안 그랬잖아. 내가 지난번에 왔을 때는 총까지 겨누더니, 이제는 선량한 시민이시다?”


“빌어먹을, 목장주나 블론디나 보안관이라면 온갖 지랄을 다 떤단 말이야! 특히나 블론디 그 새끼는 너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졌는지 이름만 나와도 기겁한다고!”


“변명은 나중에 듣겠습니다. 출발할 채비는 끝났습니까?”


그녀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악을 쓰는 빅 빌을 무시하고서 물었다. 마침 블론디가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선 방에서 걸어나왔다. 한 손에는 산탄총을, 다른 한 손에는 가죽 모자를 든 채다.


얇은 나무 벽을 뚫고서 대화가 들렸는지 그는 눈을 계속 피하고 있었다. 루니샤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혐오감을 애써 억누르며 블론디에게 말했다.


“그건 내려놓으십시오. 경호는 저와 투코 페르난데스 보안관이 하겠습니다.”


“헛소리 마셔. 남의 총을 맘대로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해? 서부에는 자유란 게 있다고. 너같은 짐승연놈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는 ‘보안관 앞에서 좆대로 굴다가 머리통에 구멍이 나지 않을 자유’같은 건 없었는데, 블론디?”


“투코 페르난데스.”


블론디가 이를 악물고선 중얼거렸다. 투코가 그를 노려보았으나 블론디는 끝끝내 산탄총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다들 진정 좀 하라고. 그리고 블론디, 너는 말하는 싸가지 좀 고쳐. 난 빚진 게 있으니까.”


옆에서 창백한 안색으로 둘을 지켜보던 빅 빌이 말했다. 투코 페르난데스는 얼마간 블론디를 위아래로 훑어보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농담으로라도 우리가 목숨을 맡길 사이는 아니니까, 시내로 가는 길의 절반 정도까지는 각자도생하기로 하자고. 대신 그 뒤로는 총 내려놓으시지.”


“그 정도면 나도 불만없어.”


“나도 화살에 고슴도치 꼴이 되고싶지는 않으니까, 이제 출발하자고.”


그 제안에 동의하지 않는 듯, 블론디가 손을 들어올렸다. 루니샤 역시 홀스터의 덮개를 열고 리볼버의 그립 위에 오른손을 올렸다. 더 이상 헛짓거리를 들어줄 시간은 없다.


“잠깐. 1분이면 되니까, 금고에서 중요한 것들만 챙겨가게 해줘.”


“그렇게 죽고 싶으시다면 뜯어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블론디. 하지만 잡혀서 산채로 토막나는 것보다는 그 산탄총을 아가리에 집어넣고 쏴버리는 편이 덜 고통스러울겁니다.”


“씨발, 내 급료 계약서가 저 안에 들어있다고...!”


“잘됐군요. 뒷면에는 유언도 적어두시지 그럽니까.”


그가 잠시 루니샤를 째려보고선 거실 한 구석에 있는 금고로 달려갔다. 잠시 잠금장치가 째깍이는 소리를 내더니 금속 덮개가 열린다. 안에는 알텐 금화들과 장신구 몇 개, 그리고 서류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금화나 서류라면 몰라도 카우보이 둘만이 있는 장소에 장신구라니. 출처가 어딘지는 불을 보듯 분명했다. 루니샤는 가까스로 리볼버를 쥐는 것을 참고 투코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증거품을 챙기는 걸 추천하겠습니다, 보안관님. 재판에 써야합니다.”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투코 페르난데스의 눈은 금고의 내용물에 못박혀있었다.


“보안관님.”


“...”


“투코 보안관님?”


“에스메랄다.”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척수를 타고 불길한 직감이 흘러내린다. 루니샤는 본능적으로 권총을 뽑아들었다.


“움직이지마. 개좆같은 새끼야.”


투코 페르난데스가 허리춤에서 리볼버를 빼들어 겨눈다. 빅 빌은 쥐고 있던 가방을 떨어뜨리고 블론디는 금고 앞에 상체를 숙인 자세 그대로 멈춘다.


“설명을 잘하는 게 좋을거다. 지금 몇 발 박아넣고 시작할지 고민하는 중이니까.”


“...”


“설명해봐.”


금고를 향해 뒤돌아선 탓에 블론디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거친 숨소리에 맞춰 등이 오르내릴 뿐.


탕. 총성이 울렸다. 날갯죽지 근처에 납탄이 박힌 블론디가 고꾸라지며 고함을 질렀다.


“설명하라고 이 갈아죽여도 시원찮을 새끼야! 대체 뭘 한거고 저 반지는 어디서 난 거냐고!”


루니샤는 블론디의 미간을 겨냥한 총구를 치우지 않은 채 금고를 노려보았다.


기시감이 드는 반지가 들어있다. 투코의 약지에 끼워진 것과 똑같다.


“...진정하십시오, 보안관님. 체포 이후에 심문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래, 페르난데스! 갑자기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투코의 리볼버가 빅 빌을 조준했다. 그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빅 빌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뒤로 쓰러졌다. 루니샤 역시 탁자 뒤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블론디가 손을 꿈틀거린다. 산탄총이 들려있다.


연달아 화약이 격발되는 소리가 들린다. 귓가에 이명이 울린다. 투코의 내용물이 뺨에 튄다. 뜨겁다.


루니샤는 방아쇠를 당겼다. 두 번째로, 어쩌면 세 번째로 쏘아진 탄환이 블론디의 미간에 쳐박혔으나, 그녀는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텅 빈 실린더가 째깍이는 소리를 낼 때까지.


“...”


그녀는 옆에 쓰러진 투코를 확인했다. 눈은 뜨여있지만 숨은 쉬지 않는다. 반지가 복부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번들거렸다. 두 구의 시체를 중심으로 바닥이 젖는다.


“알고 있었습니까, 빅 빌.”


등 뒤의 탁자 너머로 밭은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폐렴 환자처럼 한참을 콜록이던 빅 빌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블론디가 하던 일, 아니면, 페르난데스 아내 이야기?”


“아직 보안관님의 아내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시발, 몸에서 피가 빠지니까, 거짓말도 못하겠어.”


기침은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그는 폐에 남은 마지막 한 줌의 공기까지 토해내더니 가쁘게 헉헉대기 시작했다.


“죽을 것 같아. 숨이 안 쉬어져. 죽고 싶지 않아.”


가슴에 총격을 당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루니샤는 여전히 자세를 낮춘 채로 죽어 있는 블론디의 발목을 끌었다. 육중한 몸뚱아리가 바닥에 질질 끌리며 지저분한 얼룩을 남긴다.


“총은 들고 있습니까, 빅 빌.”


“어. 아니, 아니. 아까 전에 떨어뜨렸어. 없어.”


“당신을 시내로 호송할 겁니다. 엄폐를 풀고 나갈 테니 쓸모없는 짓을 할 생각은 마십시오.”


“알았어. 지난번에 말했던 대로, 안 쏴.”


루니샤는 시체를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몇 파운드나 나갈지 모르는 고깃덩이를 들어올리게 된 근육이 찢어질듯한 통증을 호소했으나, 그녀는 강제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가겠습니다.”


탁자의 사각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블론디의 사체에 총탄이 틀어박혔다. 연이어 납탄이 파고들 때마다 늘어진 팔다리가 흔들린다.


“이게, 뭐.”


그녀는 몸뚱아리를 그대로 던져버렸다. 거대한 고깃덩이에 깔린 빅 빌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탁. 그의 손에서 피스톨이 미끄러졌다. 루니샤는 그것을 주워들고서 묵묵히 안에 든 탄환을 빼내었다. 수십 파운드의 무게에 짓눌리는 것이 어지간히 고통스러운지, 빅 빌에게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왜 그랬습니까.”


빅 빌이 컥컥댄다. 루니샤는 그를 짓누르고 있던 블론디의 몸을 걷어내고 다시 질문했다.


“왜 그랬습니까?”


“어느, 거. 총? 거짓말? 방관?”


“어느 것이든.”


그가 울컥거리며 검붉은 액체가 쏟아져나오는 가슴을 붙들었다. 간헐적으로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혈액이 새어나온다. 루니샤는 빅 빌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블론디와 당신은 친분이 있었습니다. 말 몇 마디면 충분했습니다.”


빅 빌이 눈을 감았다. 루니샤는 심장 박동에 맞추어 빨갛게 물들어가는 그의 옷을 보았다.


“그래. 그랬어야, 했는데.”


“만약에 그가 뿔이나 귀가 달리지 않은 사람을 강간하려고 했다면, 당신은 블론디를 만류했을겁니까?”


그는 잠깐 침묵하더니 끄덕였다. 그 이상의 동작이나 변명은 없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루니샤는 점차 호흡이 느려지는 빅 빌을 바라보며 말했다.


“단순히 당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그렇게 취급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아니잖아.”


빅 빌이 눈꺼풀을 들어올리고서는 중얼거렸다. 그의 가슴이 크게 들썩거리더니 이내 마지막 숨결을 내뱉었다.


“너희는, 사람이 아니잖아...”


“...”


초점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동공이 풀린다. 그녀는 빅 빌의 맥을 짚은 뒤, 일어서서 투코를 향해 걸어갔다. 충격에 균형을 잃고 쓰러졌는지 태아처럼 몸을 말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주먹을 쥔 손으로 헤집어진 복부를 붙들고 있었다. 루니샤는 말에 시체를 싣기 위해 몸뚱아리를 들어올리다가 동작을 멈추었다. 주먹에서 반지가 떨어졌다. 약지에서 빠진 게 아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보안관님.”


그렇다면 모르겠다. 사람이란 것이 무엇인지.


저들이 인간인지, 그녀가 인간인지. 이 빌어먹을 땅에 사람이 남아있기나 한지.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우무문어입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정말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사랑해주시고 있습니다. 과분하다는 말은 감히 꺼내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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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Almost Haven (5) +8 21.05.18 59 10 11쪽
19 Almost Haven (4) +9 21.05.13 60 10 11쪽
18 Almost Haven (3) +6 21.05.06 87 7 8쪽
17 Almost Haven (2) +11 21.05.04 104 12 20쪽
16 Almost Haven (1) +11 21.03.30 170 16 11쪽
15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8) +12 21.03.15 195 19 8쪽
»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7) +5 21.03.12 164 21 17쪽
13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6) +11 21.03.08 165 20 7쪽
12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5) +2 21.03.04 161 20 10쪽
11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4) +4 21.03.04 157 23 9쪽
10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3) +9 21.02.28 192 24 11쪽
9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2) +6 21.02.26 256 20 11쪽
8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1) +8 21.02.24 205 25 9쪽
7 What Maketh a Good Man? (7) +9 21.02.22 235 32 9쪽
6 What Maketh a Good Man? (6) +7 21.02.21 203 26 11쪽
5 What Maketh a Good Man? (5) +7 21.02.20 232 26 9쪽
4 What Maketh a Good Man? (4) +9 21.02.19 272 25 10쪽
3 What Maketh a Good Man? (3) +4 21.02.18 294 28 10쪽
2 What Maketh a Good Man? (2) +4 21.02.16 423 30 14쪽
1 What Maketh a Good Man? (1) +14 21.02.16 1,098 3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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