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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입니다.

무인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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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
작품등록일 :
2021.02.16 23:20
최근연재일 :
2021.08.19 23:07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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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5
추천수 :
449
글자수 :
116,372

작성
21.03.0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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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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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10쪽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5)

DUMMY

황량하고 척박하다. 말발굽이 땅에 부딪힐 때마다 붉은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루니샤는 안장에서 미끄러지다시피 몸을 내렸다.


“걷는 게 좋겠습니다, 투코 보안관님. 가뜩이나 보안관을 적대하는 장소로 말을 타고 갔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너무 쫄아있는 거 아냐? 나도 몇 번 들려봐서 아는데, 저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라고. 염병할 카우보이 놈들처럼 다짜고짜 총을 쏴대지는 않아.”


“...그렇습니까.”


그녀는 대강 고개를 주억거리고 말의 고삐를 붙잡았다. 직접 보호구역에 들어가봤다는 투코가 자신하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보호구역 위로는 몇 줄기의 연기가 뭉실거리고 있었다. 인가에서 연기가 나는 일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으나, 오늘만큼은 썩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벌써 소를 도축한 모양입니다.”


“말짱히 돌려받을거라 기대하는 게 병신이지. 그래도 하루만에 모조리 잡을만한 수는 아니니까, 적어도 절반 정도는 남았을걸.”


연기의 근원지에 가까이 갈수록 독특한 형태의 구조물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왔다. 나무 장대를 엮어 만든 골조에다가 가죽을 덮어놓은 텐트. 흔히들 티피라 부르는 물건이었다.


경비조차 서지 않는 것일까. 루니샤는 무심코 그런 의문을 떠올렸지만 곧 생각을 고쳤다. 경비를 설 필요가 없다. 황무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부족이 유일하다.


“¿Que?”


말발굽 소리를 들었는지 티피 중 하나에서 소녀가 눈을 비비적거리며 걸어나왔다. 순간 당황한 루니샤는 권총을 뽑아들 뻔 했으나, 가까스로 평정을 되찾고선 뒤로 몇발짝 물러섰다.


열 살은 됐을까 한 소녀다. 이마에는 새끼 손가락만한 뿔이 돋아있고 피부는 모카색이다. 외지인을 보고 호기심을 품기라도 한 것인지, 아이가 종종걸음로 루니샤를 향해 걸어왔다.


“¿Que voda? ¡El meno cuero mosco!”


“무슨 뜻입니까, 보안관님? 이 부족의 언어는 알고 계십니까?”


“누구냐고 묻는 것 같은데. 뒤에는 뭐가 크다는 거 이외엔 모르겠어. ¿Quo vadio adulto, meno?”


아이의 발음에 비하면 엉성한 감이 없잖아 있는 문장이었으나, 소녀는 투코의 말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티피 안으로 도로 달려가 무언가를 종알대더니 늙수그레한 노인 한 명을 데려왔다.


“Bienvido, señor. Mena sheriffo-”


“Bienvido는 환영하는 사람이 쓴다.”


투코와 루니샤를 멀거니 바라보던 노인이 말했다. 손짓까지 동원해가며 열성적으로 단어들을 내뱉던 투코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어색하지만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는 서부공용어였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Sheriffo. Esmeralda에게 배웠다?”


“...Si.”


“Bene. 마을에 온 이유를 안다. Deputia도 온다.”


노인이 절뚝거리며 연기가 피어오르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투코가 둘 사이의 대화를 듣고 있던 루니샤에게 끄덕여보이더니 그를 뒤따라갔다.


보호구역의 안으로 들어가자 미묘한 냄새가 느껴졌다. 구워지는 육류 특유의 향이다. 탄화된 쇠고기의 냄새를 맡은 루니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도난품을 더 잃기 전에 가축의 행방을 묻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투코 보안관님. 그 편이 이곳 사람들에게도 목장주에게도 좋을거라 생각합니다.”


“나도 동감이지만, 묻는다고 곧이곧이 말해줄 것 같지는 않은데. 틀림없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시치미 뗄걸.”


“¡Hugo! Señor sheriffo et señorita deputia. Traera pita et calla Diego.”


앞서 걷던 노인이 소년 한 명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소년 역시 투코의 복장과 루니샤의 뿔을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관찰하더니, 어딘가에서 꼬치에 꿴 소고기를 손 가득히 들고왔다.


“먹다, Sheriffo와 Deputia.”


“...”


별다른 향신료 없이 불에 바로 구운 소고기 꼬치였다. 루니샤는 잠시 건네받은 꼬치 몇 개를 노려보다가 노인에게 그것을 돌려주었다.


“고기는 먹지 않는다고 말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Da señorita neit comero pita.”


“Si. Comero 할 수 없다, pita neit 먹다면. 그럼 Sheriffo가 먹는다. 괜찮다?”


노인의 대답을 들은 투코가 난처하게 웃어보이고는 꼬치를 받아들었다. 그는 다발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잔뜩 안겨진 음식들을 부담스럽게 보더니, 마지못해 그것들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카우보이들한테 나도 먹었다고 꼰지르지는 말아줘. 그쪽처럼 아예 고기를 안 먹는다면 모를까, 여기서 음식을 거절하는 건 꽤 큰 실례거든. Bene pita, señor. Graciasa.”


“좋은 고기인 건 사실이지만 엄한 데다가 감사하지는 마시지, 보안관님. 그쪽 목장에서 키운 소니까.”


등 뒷쪽에서 유창한 서부공용어가 들렸다. 머리에 독수리 깃털을 꽂고 군데군데 기하학적인 문신을 한 중년 남성이 서있었다.


“디에고 추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에스메랄다가 떠난 이후로 처음 보는군. 보아하니 새로운 짝을 찾으셨나봐.”


투코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보아하니 카우보이들과 똑같은 오해를 하는 낌새였다.


“아니요, 여기 있는 이 분은-”


“보안관보겠지. 내가 ‘짝’이라 한 건 남녀간의 의미가 아니었네. 어쨌건 그쪽한테 과분해보이기는 하지만.”


“...연방 보안관보 루니샤 웨스트입니다.”


디에고가 속내를 알기 힘든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보호구역 안에서 가장 높고 화려하게 치장된 티피의 문을 걷어올리고선 둘을 불러들였다.


내부는 루니샤가 예상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중앙에는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그 주위를 침대나 탁자등의 가구가 둘러싼다.


루니샤는 얼마간 어디에 앉아야 할지 고민하다, 디에고가 바닥에 주저앉는 모습을 보고 마찬가지로 바닥에 앉았다.


“소는 마흔다섯 마리 중에서 열 마리를 잡았네. 한 마리를 훔치는 도중 잃어버려서 열한 마리인 셈이지.”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기를 숨길 생각도 없이 당당하게 조리하던 것을 고려하면 그리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 부족이 조직적으로 이 일을 저지른 건 아니야. 내 선조들과 나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지.”


“그런 것치고는 망설이시지도 않고 가축을 잡더군요.”


디에고가 루니샤의 말을 듣고선 자리에서 느릿하게 일어섰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재킷 안의 권총에 손을 얹었으나, 그의 동작에서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티피의 귀퉁이에 놓여져 있던 상자를 뒤적거리더니 묵직해보이는 자루 하나를 꺼냈다.


“정확히 10만 알텐이야. 금화와 은화가 섞여있긴 하지만 금액은 보증하네.”


차르륵. 바닥에 쏟아진 동전들을 본 투코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배상이라니, 기대조차 하지 않은 일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네. 이 정도의 돈이라니, 도축우만 산다고 치면 백 마리 가까이 살 금액이니까. 그렇지 않나?”


“그 말대로 이 정도 돈이 있으면 뭣하러 소 떼나 훔친겁니까, 추장님? 여기 황무지로 따지자면 땅도 몇 에이커씩 살만한 거금 아닙니까.”


거금을 보아 흥분했는지, 투코 페르난데스가 들뜬 얼굴로 열변을 토해냈다. 그러나 디에고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고향에서 쫓겨날 때 받은 돈이야. 이제 우리에겐 쓸모없네.”


“예?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루니샤는 말없이 디에고의 모습을 훑었다. 진한 갈색의 피부에 머리에 달린 주먹 크기의 뿔. 수인하면 떠오를듯한 부족의 전통 의상까지. 서부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힌 수인의 이미지를 그대로 뽑아놓았다 말해도 좋을 정도다.


“상품을 팔지 않는군요.”


디에고가 잠시 침묵하고서는 고개를 저었다.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이 척박한 땅에서는 작물이 자라지 않는다. 천운이 따라주어 뿌리내린 식물도 돌풍이 지나가고 나면 사정없이 뽑혀나가고, 가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의지할 식료품은 동쪽의 마을에서 생산하는 것과 목장의 가축 뿐. 사실상 식량 공급을 남의 손에 맡긴 꼴이다.


“목장에서는 소 한 마리당 만 알텐을 요구했네. 암소나 종우가 아니라, 거세한 도축우에다가.”


“...악질도 이런 악질이 없는데.”


그제서야 사정을 깨달은 투코가 중얼거렸다. 정도를 넘어선 폭리다. 더군다나, 한번 거래에 응한다면 앞으로도 이런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를 것이 분명했다.


디에고는 무뚝뚝하게 바닥에 흐뜨려놓은 금화를 주섬주섬 자루에 담더니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야, 보안관. 자네가 목장의 운영에 간섭할 힘이 없는 건 알고 있네. 다만 이번 일을 저지른 못난 놈들을 용서해줬으면 하네.”


그가 투코를 향해 머리를 푹 숙였다. 뿔 옆에 꽂혀있던 독수리 깃털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투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추장이 고개를 숙였다. 수인들에게는 굴욕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티피 안에 있는 사람이 셋뿐이어서 다행이지, 다른 부족원이 보았다면 길길이 날뛰겠지.


“불가능합니다.”


오랜 침묵 끝에 정작 입을 연 사람은 루니샤였다.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앉아있는 디에고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복부를 짚었다.


“저와 투코 페르난데스 보안관은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은 차차하고, 특수 상해는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처벌됩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가 고개를 치켜들며 물었다.


“카우보이 각각에게 2만 알텐 정도를, 또 6만 알텐을 가축의 배상에 소요한다면 처벌은 막을 수 있습니다. 다만 빅 빌에게 입힌 상해의 경우-”


“¡Neit! 그걸 물은 게 아니야! 특수 상해라니, 누가 다치기라도 한건가?!”


루니샤는 침묵하고서 디에고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가식없는 당황만이 묻어나오는 표정이다.


일이 복잡하게 됐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우무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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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Almost Haven (2) +11 21.05.04 104 12 20쪽
16 Almost Haven (1) +11 21.03.30 169 16 11쪽
15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8) +12 21.03.15 195 19 8쪽
14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7) +5 21.03.12 163 21 17쪽
13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6) +11 21.03.08 165 20 7쪽
»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5) +2 21.03.04 161 20 10쪽
11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4) +4 21.03.04 157 23 9쪽
10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3) +9 21.02.28 191 24 11쪽
9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2) +6 21.02.26 256 20 11쪽
8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1) +8 21.02.24 205 25 9쪽
7 What Maketh a Good Man? (7) +9 21.02.22 235 32 9쪽
6 What Maketh a Good Man? (6) +7 21.02.21 203 26 11쪽
5 What Maketh a Good Man? (5) +7 21.02.20 232 26 9쪽
4 What Maketh a Good Man? (4) +9 21.02.19 271 25 10쪽
3 What Maketh a Good Man? (3) +4 21.02.18 294 28 10쪽
2 What Maketh a Good Man? (2) +4 21.02.16 423 3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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