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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입니다.

무인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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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
작품등록일 :
2021.02.16 23:20
최근연재일 :
2021.08.19 23:07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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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4
추천수 :
449
글자수 :
116,372

작성
21.02.21 23:49
조회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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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What Maketh a Good Man? (6)

DUMMY

머리가 아팠다. 누군가가 벽돌로 강하게 찍어버린 것 마냥 두개골 안쪽에서 뇌가 욱신거린다. 뇌진탕은 아니었다. 숙취였지.


루니샤는 비틀거리며 싸구려 매트리스에서 몸을 일으켰다. 윗몸이 흔들릴 때마다 뇌수가 출렁이면서 머리의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 간신히 뿔을 벽에 박지 않도록 몸을 가누며 일어서자, 이번에는 명치 위가 말썽이었다. 속이 쓰리다.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어제는 사무국에 돌아오자마자 그 작자를 구치소에 집어넣었고, 펍Pub을 찾았다. 술을 마셨고, 그리고... 술을 마셨다. 길바닥에 쓰러져 밤을 보내지 않은 게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녀는 어렵사리 숙소 한 구석에 떠다놓은 물을 들이켰다. 알코올이 섞이지 않은 액체를 마시니 그제야 사고가 제대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루니샤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옷차림을 살폈다.


꼴이 말이 아니다. 돌아와서 갈아입지도 않았는지 흙먼지가 온몸에 묻어있었고, 청바지는 고드름이 박혔던 탓에 오른 정강이 부분이 길게 찢어졌다. 부랑아라 해도 놀랍지 않을 판이다.


“...하아.”


그나마 환복할 옷 정도는 쟁여놓아서 다행이다. 루니샤는 입고 있던 것들을 숙소 구석에 던져버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셔츠, 청바지, 멜빵, 코트, 그리고 뱃지. 출근할 시간이다.


가능한 뿔이 가려지도록 모자를 푹 눌러쓰고 숙소를 나서자, 그나마 번잡한 편인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절뚝거리며 보안 사무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루종일 다리를 절며 다닐 수는 없으니 지팡이라도 빌리던가 해야겠다.


사무국에 도착할 때 즈음에는 9시였다. 결국 출근 시간보다는 30분 가량 늦은 시각이었지만 평소에는 아무도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는다. 보안 사무국에 제 시간에 출근해봤자, 할 일이라고는 끓인 모래 맛이 나는 커피나 마시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의 일이다. 그때는 어떠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어설프게 이동하거나 판단하면 돌아오는 것은 감봉 따위가 아니다. 되려 꼬박꼬박 출근하는 사람이 책상물림이라 비웃음을 사는 장소가 이곳이다.


적어도 평소에는 그랬단 이야기다. 총성이 들리거나 시체가 실려오기 전까지 대기하던 평소에는.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늦었네, 루니샤 양.”


“죄송합니다.”


하인리히 보안관이 사무국의 로비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루니샤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으나, 하인리히는 타박하는 대신 옅은 한숨을 뱉어낼 뿐이었다.


“마차라도 타고 다니게. 왜 늦었는지는 이해하니까.”


“다리 때문이 아닙니다. 어제 과음했습니다.”


“나도 알고 있네. 그러니까 적당히 마셔, 이 사람아.”


그가 자신의 사무실로 걸어가며 말했다. 사무국 안은 허름하고 삭막했다. 늘 그랬듯이.


이곳은 제 13 보안 사무국. 서부에 위치한 보안 사무국 중에서도 가장 낙후되고 고립된 장소다. 사법 기관이라고는 가끔씩 들리는 순회 판사가 전부지만, 무법자들은 언제나 넘쳐난다.


결국 이곳에서 하는 일은 최소한의 행정이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범법자들 중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은 자만이라도 체포하는 것. 그것이 제 13 보안 사무국의 업무다.


“천칭교 사제가 오셨더군. 그 놈을 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멀쩡한 상태로 고쳐놓으셨어. 자네와 면식이 있는 것 같던데?”


“...아는 분입니다.”


루니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근방에서 제대로 된 사제는 얼마 없었으니까,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잘됐네.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덜겠어.”


하인리히가 자신의 책상에서 잡다한 도구들을 주섬주섬 챙기더니 취조실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녀 역시 필요한 물건들을 코트에 집어넣고 그를 뒤따라 걸었다.


취조실의 문은 철제였다. 용의자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자물쇠가 바깥에서 걸려 있었고, 안에서 나는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솜 방석이 붙어있었다.


“나는 들어가지 않을 걸세. 이번 취조는 자네 혼자서 하는 편이 낫겠어.”



당연하게도,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깥에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하인리히가 루니샤를 쳐다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제 분께서 실력이 좋으시더군.”


“...”


문을 열자 취조실 내부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사슬에 단단히 묶인 채로 의자에 구속되어 있었다. 입에는 만일을 대비하여 채워놓은 재갈이 물려져있고, 안대와 수갑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남자의 안대를 풀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취조실의 전등을 눈에 비추자 그가 눈살을 한껏 찌푸렸다.


험상궂은 인상에 흉터가 가득한 얼굴. 곱게 자라온 상과는 거리가 멀다. 루니샤는 챙겨온 도구 중에서 ‘기초 용의자 심문법 500선‘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을 꺼냈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제가 묻습니다.”


사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으나, 그녀는 그의 질문을 무시하고 책의 초장을 펼쳤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당장 이걸 풀어라. 적어도 사람에게 질문을 하려면-”


말이 끝나기 전에 그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 예고없이 가해진 육중한 충격에 남자가 멍하게 입을 벌렸다. 터진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거의 4 파운드에 달하는 책이 얼굴을 강타했는데 정신을 차릴 수 있을 리가. 루니샤는 다시 책을 펼치고 물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요나스 콜론.”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보다 몇십배는 더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녀는 페이지를 넘긴 뒤 말을 이어갔다.


“말렌 형제의 황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


답변은 없었다. 그닥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묵비권이야 개나소나 행사하는 것 아니던가.


이번에는 루니샤가 책을 내려놓았다. 육중한 서적이 취조실의 철제 책상에 떨어지는 소리에 요나스가 몸을 섬칫 떨었으나, 그녀는 들고 왔던 작은 상자 하나를 들어올릴 뿐이었다.


“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말할 생각 없다.”


6인치 남짓한 상자 속에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도구가 들어있었다. 한 쪽 끝에는 집게와 손잡이가, 다른 한 쪽 끝에는 스프링이 달려있는 철제 물체. 루니샤는 그것을 꺼내어 요나스에게 보였다.


“코르크 따개입니다. 손잡이 부분을 강하게 누르면 스프링이 회전합니다. 샴페인이나 와인을 개봉할 때 쓰는 도구입니다.”


“...이걸 왜 보여주는 거냐?”


“저는 그런 것들을 마셔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코르크 따개는 가끔 사용하는 편입니다. 도구를 쓰면 뒤처리가 간편하거든요.”


시범삼아 핸들을 누르자 날카로운 스크류가 느릿하게 돌아간다. 본능적으로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은 요나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당신은 보안관 살해를 포함한 12 건의 살인 행위로 체포된 상태입니다. 사람들은 교수대에 매달릴 사형수가 귀가 멀었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정신 나간 배신자년! 동족한테 이따위 짓을 저지르고도 마음 편히 잘 수 있는 거냐?”


“동족. 동족. 그놈의 동족. 피가 섞였다고 모두 수인은 아니고, 말을 한다고 모두가 인간이 아닙니다. 당신이 무고한 사람을 죽였을 때부터 인간 취급을 받을 생각은 그만뒀어야 했습니다.”


루니샤가 발버둥치는 요나스의 오른쪽 귀로 스크류를 가져다대며 말했다. 날카롭게 갈린 첨단尖端이 개의 그것을 닮은 귓구멍에 닿자, 그의 숨결이 가빠졌다.


“말할 겁니까, 말 겁니까?”


대답은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핸들을 눌렀다.


느리지만 착실한 속도로 스크류가 회전한다. 너저분한 회색 털로 덮힌 귓속으로 코르크 따개가 파고든다. 손 끝에서 미약한 저항감이 느껴졌으나 루니샤가 핸들을 놓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요나스가 비명에 가깝게 외쳤다.


“사이! 리치몬드와 듀데일 사이에 묻어놓았다!”


끼릭. 금속성 소음을 내며 코르크 따개가 동작을 멈춘다.


“정확한 위치.”


“바위...! 선인장이 양 옆에 있는 바위였다! 리치몬드보다는 듀데일에 가까웠어!”


짚히는 곳이 있었다. 루니샤는 거칠게 장치를 잡아뽑고선 바닥에 내던졌다. 피가 몇 방울 튀고 요나스가 고통에 사지를 뒤틀었으나, 그녀는 큰 관심을 주지 않고 그의 앞에 지도를 놓았다.


“제가 손을 움직일 겁니다. 당신은 제 손이 금에 접근하면 알릴 거고요.”


루니샤는 ’Richmond’라는 단어가 적힌 지점에 검지를 짚고 천천히 ‘Dewdale’을 향해 이동했다. 요나스가 의자 위에서 헐떡이며 다리를 떨었으나 눈은 지도 위에 못박힌 상태였다.


“혹시 몰라 말하는 거지만.”


그의 전신이 흠칫 떨렸다. 루니샤가 통보에 가까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요나스에게 말했다.


“말하신 자리에 물건이 없다면, 다음에는 필담으로 심문해야 할 겁니다.”

“그 자리에 있다! 거짓말하는 게 아니야!”


“그렇다고 믿겠습니다.”


다시 그녀의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듀데일과 리치몬드 사이의 2/3 지점을 지나고 있을 때, 그가 손을 들어올렸다.


“거기... 적어도 그 근처에 묻어뒀다. 선인장 두 개 사이에 있는 바위 밑에, 4 피트 정도 되는 깊이로. 가죽 자루에 담아뒀어.”


자세하다 못해 친절하기까지 한 설명이었다. 루니샤는 짚고 있던 곳을 흑연으로 문지른 뒤, 그가 말한 내용을 받아적었다.


“여기가 맞습니까?”


요나스가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서 대기하던 하인리히가 지도를 받아들고는 취조실에서 걸어나갔다. 요나스는 탈진이라도 했는지 의자에 기대어 흐느끼고 있었다.


루니샤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코르크 따개의 끝을 옷자락으로 문질렀다. 갈색 보안관복이 얼룩졌다.


“형은 한 달 이내로 선고되고, 집행될겁니다. 어쩌면 더 빠를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안관이 죽은 게 3년 가까이 된 일이니까요.”


“나는... 나는...”


그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뭉개진 발음으로 웅얼거렸다. 루니샤는 굳이 그 말을 알아들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죽고 싶지 않다. 때로는 변명이 붙기도, 때로는 그렇지 않기도 했지만, 결국은 언제나 똑같은 이야기였다.


루니샤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붉게 변색된 옷자락으로 요나스의 눈가를 닦았다.


그렇게 그가 한참 동안을 흐느꼈다. 끝에는 눈물조차 제대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루니샤는 코르크 따개를 그의 눈에 겨눴다.


“다음 질문입니다. 말렌 형제에 대해 어떻게 알았습니까?”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우무문어입니다.


+++++
2021.03.12 지적해주신 맞춤법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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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Taking Pleasure in a Man's Pain (1) +4 21.08.14 51 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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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Almost Haven (5) +8 21.05.18 59 10 11쪽
19 Almost Haven (4) +9 21.05.13 60 10 11쪽
18 Almost Haven (3) +6 21.05.06 87 7 8쪽
17 Almost Haven (2) +11 21.05.04 104 12 20쪽
16 Almost Haven (1) +11 21.03.30 170 16 11쪽
15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8) +12 21.03.15 195 19 8쪽
14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7) +5 21.03.12 164 21 17쪽
13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6) +11 21.03.08 165 20 7쪽
12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5) +2 21.03.04 161 20 10쪽
11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4) +4 21.03.04 157 23 9쪽
10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3) +9 21.02.28 192 24 11쪽
9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2) +6 21.02.26 256 20 11쪽
8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1) +8 21.02.24 205 25 9쪽
7 What Maketh a Good Man? (7) +9 21.02.22 235 32 9쪽
» What Maketh a Good Man? (6) +7 21.02.21 205 26 11쪽
5 What Maketh a Good Man? (5) +7 21.02.20 232 26 9쪽
4 What Maketh a Good Man? (4) +9 21.02.19 272 25 10쪽
3 What Maketh a Good Man? (3) +4 21.02.18 294 28 10쪽
2 What Maketh a Good Man? (2) +4 21.02.16 423 30 14쪽
1 What Maketh a Good Man? (1) +14 21.02.16 1,098 3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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