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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입니다.

무인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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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
작품등록일 :
2021.02.16 23:20
최근연재일 :
2021.08.19 23:07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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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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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
글자수 :
116,372

작성
21.03.3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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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Almost Haven (1)

DUMMY

방금까지만 해도 거세게 불어대던 먼지 바람은 어디로 가고 황무지는 다시 정적에 잠겼다. 루니샤는 내리쬐는 볕을 가리기 위해 모자의 챙을 눌러 썼다.


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즈음 지평선 위로 하인리히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녀는 안장에 몸을 걸치고 그를 향해 다가갔다.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네, 루니샤 양."


"저는 오래간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하인리히가 쓰게 웃어보이더니 고삐를 가볍게 휘둘렀다. 말이 투레질을 몇번 하고선 마을을 향해 머리를 돌린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보를 통해 들었네. 유감일세. 건실한 남자처럼 들리던데."


"...예.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부고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묘해지는군. 이렇게나 허무하게 죽는 게 생명이라면 이 모든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말일세.“


”페르난데스 보안관은 허무하게 죽지 않았습니다.“


루니샤는 그 문장을 내뱉고서 무심코 인상을 찌푸렸다. 필요 이상으로 강한 어조였다. 그러나 앞서나가던 하인리히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미안하네. 그 젊은이가 개죽음을 당했다고 말하려던 건 아니었어. 다만 이 일을 하다보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질 때가 있거든.“


”보안관님과 제 직업이 의미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부럽구만. 나도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는데.“


일광이 강한 날이라 다그닥거리는 말발굽소리의 박자가 더디다. 루니샤는 비척거린다 해도 좋을 정도로 보폭을 줄인 말에 박차를 가했다.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던 말이 속도를 올린다.


"세상은 난장판이야. 일어나는 일에는 이유가 없고,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는 법칙이 없어. 부조리하다는 감상 이외에는 내놓을 게 없네.”


"법이 있지 않습니까. 다른 현상은 몰라도 사람만은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자네는 법은 세상의 부조리함에서 벗어나있다고 생각하나?“


그녀는 반사적으로 하인리히의 질문을 긍정하려다가 보호구역의 모습을 떠올렸다. 잠깐의 망설임이었으나 노련한 보안관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거보게. 다른 건 몰라도 법률이 얼마나 끔찍한지는 자네도 잘 알고 있을걸. 여기서 몇백 마일만 동쪽으로 가도 사람을 가축으로 취급하는 게 법이네. 통탄할 노릇이지.“


하인리히가 안장 위에서 뒤돌아보더니 종이곽 비슷하게 생긴 것을 던졌다. 그녀는 고삐를 쥐지 않은 손으로 그것을 잡아들었다. 내용물이 얼마 남지 않은 담뱃갑이다.


"전역 이후로 끊었습니다."


"피지는 않더라도 한 개피만 물고 있게. 그걸로도 충분히 도움이 되니까."


루니샤는 마지못해 6인치 남짓한 담배를 입술 사이에 물었다. 담뱃잎 특유의 씁쓸한 맛이 난다.


”매사에 이유가 있다고 믿지는 말아주게. 그냥 일어나니까 일어나는 일도 있는거야. 난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동료를 숱하게 봐왔고, 그 친구들 관짝이 묻히는 것도 봤네.“


"...“


”보안관 중에서 몇 할이 자기 머리통을 날려버리는지 알면 자네도 놀랄걸.“


평소라면 무어라 대꾸하는 시늉이라도 했겠으나, 지금 그녀는 담배를 물고 있었다. 아마 하인리히가 이것을 준 이유도 말하지 말라는 뜻이겠지.


루니샤는 잠시 고민하다 담배를 뱉어버리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새겨듣겠습니다. 저도 제가 모든 일의 이유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하다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고 있으라니까. 아무튼, 늙은 꼰대 푸념이라 취급하고 넘어가주게.“


”충고는 감사합니다.“


여태껏 자신의 머리를 날려버릴 계획은 없었고 또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쨌건 그녀를 염려해서 해준 말이다.


그녀는 미묘해진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이대로 입을 다문다면 후안과 페르난데스가 떠오를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보내드린 보고서는 보셨습니까?“


”아, 그 서류 말이지. 일단 써져있는 걸 읽어보기는 했다만 믿기지는 않는군. 요즘 세상에, 또 이런 곳에 반체제 조직이 있다니."


하인리히가 마침 떠오른 것처럼 말했다.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것이 당연하다. 서부에는 거스를 체제란 것이 드물다.


말뚝 박는 곳이 곧 소유지니 영주라 부를만한 것도 없고, 어느 지역의 귀족이라고 해서 거들먹거릴 수도 없다. 출신 운운하며 거들먹대다가는 이마에 구멍이 뚫리기 십상이니.


그러나 루니샤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단체는 그 몇 안되는 체제를 거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수인의 자유를 주장하는 집단입니다.”


“...진심인가?”


“지금까지 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그가 루니샤에게서 담뱃갑을 받아들더니 자신 몫의 연초를 꺼냈다. 불을 붙일 생각은 없는지 하인리히는 마지막으로 남은 담배를 가만히 잘근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만, 아니, 정황을 보면 그렇게 보는 편이 옳겠다만, 늙어서 머리가 굳었는지 뜬구름 잡는 것처럼 들리는군.”


앞을 보며 말을 모는 그가 루니샤를 볼 수 있을 리가 없건만 그녀는 무심코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다른 보안관이었다면 터무니 없는 헛소리로 치부할만한 주장이었다.


하인리히 반 할렌은 납득할 수 있는 근거만 있다면 헛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머리가 굳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유 없이 300 페이지짜리 불온서적을 필사하지는 않을 거라 믿습니다. 요나스 콜론의 문신을 해주한다면 틀림없이 더 자세한 정보가 나올 겁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야. 그리고 그 작자의 이름이 나왔으니 말인데, 마탑에서 5 서클의 마법사를 보내준다더군. 모처럼 기강을 다지려는 모양이네. 보여주기 식일 게 뻔하지만.”


꽤나 의외인 일이다. 인재에 인색한 마탑이라면 분명 3 서클, 운이 좋아야 4 서클 정도의 인재를 보내줄 거라 예상했는데.



“희소식이군요. 동부에서 이곳까지 오려면 상당히 오래 걸릴 텐데, 접선지와 일자는 정해졌습니까?”


“접선지는 제 9 사무국에서. 그리고 날짜는 앞으로 세 달 뒤.”


“...세 달?”


그녀는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아무리 세상의 반대편이라지만 급행 열차를 타고 오면 길어봤자 3주다. 지나치게 긴 시간이다.


“차라리 낮은 등급의 마법사라도 빠른 시일 내에 구하는 편이 낫습니다. 보안관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나도 아네. 그쪽에서는 이 건을 마탑의 위용을 과시할 기회 정도로 취급하더군. 웃긴 노릇이지.”


“어처구니가 없군요.”


“책상물림들이 하는 일이 다 이렇지 않나. 마음은 알겠지만 뾰족한 수가 없네.”


하인리히가 타고 있던 말이 발굽을 헛디뎠는지 순간 비틀거리고, 그가 물고 있던 담배가 툭 떨어졌다. 그가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보며 한껏 인상을 썼다.


“젠장, 돗대였는데.”


“떨어진지 얼마 안됐습니다. 지금 주우면 필 수 있을 텐데요.”


“끔찍한 소리 하지 말게. 그냥 좀 참고 말지. 그보다 그 불온서적 이야기나 더 해보게.”


루니샤는 주머니에서 메모지 뭉치를 꺼내어 앞서가는 하인리히에게 던졌다. 그는 안장 위에 앉아서도 놓치는 일 없이 그것을 받았으나, 구겨진 종이를 펴보고서는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못 읽겠네. 비꼴 의도 없이 묻는 건데, 이게 서부 공용어가 맞기는 한가?”


“그럴 겁니다.”


나름대로 신경써서 썼으나 오랜 악필을 고치기는 힘든 듯했다. 차라리 말로 표현하는 편이 빠르겠다. 그녀는 디에고에게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극단이 두고 간 게 틀림없다더군요. 찾아낸 전단지나 마을 사람들의 증언을 비교해 보면 적어도 극단이 이곳을 방문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극단?”


“연극이나 잡다한 묘기를 부리는 단체 말입니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닐세. 어째서 연극인이 반체제 조직의 선전물 필사본을 들고 다니는 게 이해가 안 가서 말이야.”


후우. 루니샤는 짧은 한숨을 내쉰 뒤, 품에서 또 다른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돈을 받고 팔기도 민망한 수준의 폐지에 번진 흔적이 뚜렷한 잉크로 그림을 그린 전단지다. 다만 형체를 파악하기에는 충분한 상태다.


그리고 포스터에 그려진 것들은 사지가 없는 인간과 난쟁이 수인, 수염 난 여자와 온갖 흉물들이다. 하인리히가 그 삽화와 자극적인 문구를 살피더니 신경질적으로 혀를 찼다.


“쯧, 프릭 쇼Freak Show로군. 이건 극단이 아니지.”


“적어도 그렇게 자칭하고 있습니다. ‘발라로카 박사의 별종 극단’이라더군요.”


“발라로카라는 것이 진짜 이름처럼 들리지는 않는데. 전혀 박사 같지도 않고. 행선지는 파악했나?”


그녀는 하인리히에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깊이 조사할 필요도 없었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으려는 극단의 특성상 행선지를 홍보하고 다녔으니까.


“섀넌도어 강 부근입니다. 들리는 마을의 수를 보자면 그 근처에서 한 달은 머물 겁니다.”


섀넌도어라는 이름을 듣기가 무섭게 그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아도 그 연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섀넌도어 강은 이웃한 주州에 위치한다. 그리고 하나의 주를 건너는 것은 단순히 마을 사이를 이동하는 것과 사정이 다르다.


단순하게 말을 타고 질주해도 나흘은 걸린다. 그동안 먹을 식량을 챙겨야 하고, 길을 잃을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중간에 수인 부족들의 습격이라도 받는다면 그야말로 낭패다.


“역마차를 타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게 좋겠네. 느리더라도 안전한 편이 낫겠지.”


물론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주 사이를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동수단이 있으니까.


“출발 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거의 다 도착했군요.”


“고맙네, 루니샤 양. 다른 사무국은 오랜만이군.”


슬슬 인가가 보인다. 루니샤는 안장에서 내리고선 말의 고삐를 쥐었다. 마차 사무국과 마굿간은 붙어있으니 가는 김에 표를 사면 될 터였다.


“이곳 사무국장이나 만나고 오겠네.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모르는 사이는 아니거든.”


하인리히 보안관이 느릿느릿하게 말에서 내리더니, 간신히 자빠지는 신세를 면하며 착지했다. 오랫동안 올라탄 자세를 유지해서 그런지 몸이 긴장한 듯했다.


“허리뼈가 제각각 따로 노는 기분인걸. 이 나이를 먹으니까 앉아 있는 것도 일이야, 아주.”


“제 13 사무국에서 여기까지 단숨에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보안관님이 아니라 저라도 버거울 겁니다.”


“빈 말이라도 고맙군. 표값은 나한테 달아놓게.”


루니샤는 그가 타고 있던 말의 고삐를 받아들고서 마차 사무국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평소에는 밤이나 새벽에만 나와 있던 마을을 대낮에 돌아다닌다는 것이 거슬렸으나, 겨우 마차표 두 장을 사는 데에 문제가 있지는 않을 터였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우문어입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하는 독자님들... 4월 25일부터 4월 28일까지 저희 학교의 중간고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마음같아서는 글만 쓰면서 살고 싶지만... 공부를 하지 않았다가는 미래가 불투명합니다...!


++++


2021.05.02 - 제목을 Cut Down for a Thing I Didn‘t에서 Almost Haven으로 수정했습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당분간 연재가 (정말로) 느려질 예정입니다! 하지만 저어의 독자님들을 향한 사랑은 진심입니다...! 연중 하나만큼은 절대 없음을 약속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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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Taking Pleasure in a Man's Pain (1) +4 21.08.14 50 7 16쪽
21 Almost Haven (6) +6 21.06.01 91 6 16쪽
20 Almost Haven (5) +8 21.05.18 59 10 11쪽
19 Almost Haven (4) +9 21.05.13 59 10 11쪽
18 Almost Haven (3) +6 21.05.06 87 7 8쪽
17 Almost Haven (2) +11 21.05.04 104 12 20쪽
» Almost Haven (1) +11 21.03.30 170 16 11쪽
15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8) +12 21.03.15 195 19 8쪽
14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7) +5 21.03.12 163 21 17쪽
13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6) +11 21.03.08 165 20 7쪽
12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5) +2 21.03.04 161 20 10쪽
11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4) +4 21.03.04 157 23 9쪽
10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3) +9 21.02.28 191 24 11쪽
9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2) +6 21.02.26 256 20 11쪽
8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1) +8 21.02.24 205 25 9쪽
7 What Maketh a Good Man? (7) +9 21.02.22 235 32 9쪽
6 What Maketh a Good Man? (6) +7 21.02.21 203 26 11쪽
5 What Maketh a Good Man? (5) +7 21.02.20 232 26 9쪽
4 What Maketh a Good Man? (4) +9 21.02.19 271 25 10쪽
3 What Maketh a Good Man? (3) +4 21.02.18 294 28 10쪽
2 What Maketh a Good Man? (2) +4 21.02.16 423 30 14쪽
1 What Maketh a Good Man? (1) +14 21.02.16 1,098 3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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