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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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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
작품등록일 :
2021.02.16 23:20
최근연재일 :
2021.08.19 23:07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4,954
추천수 :
449
글자수 :
116,372

작성
21.03.08 10:54
조회
164
추천
20
글자
7쪽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6)

DUMMY

루니샤는 묵묵히 종이 위에 문장들을 휘갈겼다. 두꺼운 가죽으로 휘감아 어두운 티피 안에 싸구려 펄프와 펜촉이 마찰하는 소리가 울린다.


“언제까지 여기서 기다리게 할 셈이야?”


수갑이 채워진 채로 앉아있던 여성이 물었다. 옆에 앉은 디에고가 그녀를 살벌한 눈빛으로 노려보았으나, 그녀는 조금도 기죽은 기색을 보이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혹시나 말해두는 건데, 난 후회같은 거 안해. 그 쓰레기는 명줄을 붙여놓는 것도 아까워.”


“마야, 이게 장난으로 보이는거냐?”


“Shutora, Diego. Meno thoracs vagabondia-”


“보안관보님 앞이다!”


탁자가 흔들린다는 착각이 들 정도의 성량으로 디에고가 소리쳤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으나 취조받던 여성은 얼굴을 조금 찌푸릴 뿐, 그 외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도주하거나 범행을 숨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체포될 것을 일찍이부터 알고 있었던 확신범이다.


“너는 소떼만을 훔쳐왔다고 내게 말했다! 사람을 해쳤다는 말은 없었잖나!”


“...”


마야가 독기 어린 눈빛으로 그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할 말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루니샤는 종이에 단어들을 끼적이는 일을 멈추고, 조잡한 나무 탁자 위에 펜을 내려놓았다.


“왜 그랬습니까?”


“식량이 다 떨어졌으니까. 틀림없이 디에고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을텐데, 잘나신 보안관보님?”


“목장의 카우보이를 상처입힌 이유를 물은겁니다, 마야 피고.”



“아, 소치기. 사람이 다쳤는데 당연히 이야기를 하셔야지, 안 그래.”


마야가 자신의 검지로 탁자를 툭툭 두드리더니, 루니샤를 향해서 가까이 오라는 듯이 손짓했다.


“그거 알아? 지난 해에 비가 온 적을 다 합쳐도 열 변이 안된다는 거. 여긴 보호 구역같은 게 아니야. 안에서 굶어죽으라고 만든 수용소지. 내가 아니라 부족의 누구라도 그 쓰레기들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비꼬는 기색으로 가득한 말투였다. 루니샤는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고 종이에 마야의 말을 기록해갔다.


“열심이시네. 하기야 머리통에 그런 걸 달고서 은뱃지까지 다시려면 소처럼 일해야-”


“당신은 카우보이를 살해했어야 합니다, 마야 피고.”


루니샤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적의와 비웃음이 뒤섞여있던 마야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뭐?”


“확실하게 일을 끝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상해나 살인이나, 똑같이 종착지는 교수대입니다. 단순히 조금 더 위로 화살을 겨누기만 했으면 됐을 일입니다. ”


말이 이어질수록 그녀의 표정이 혼란스럽다는 듯이 바뀌었다. 마야는 무뚝뚝하게 글을 써내려가는 루니샤를 한동안 노려보다가, 기어들어가는 음량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뜻이야?”


“당신은 카우보이를 죽였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고! 거기 카우보이한테 악감정이라도 있는거야? 아니면 살인범을 잡아넣는 쪽이 더 큰 건수여서 그러시나?”


“어째서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제서야 루니샤의 말뜻을 알아챈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도망치려는 시도조차 없이 잡힐 준비를 한 범죄자다. 상해죄나 살인죄나 처벌은 교수형으로 똑같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카우보이 빅 빌은 마야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던 무방비 상태였다. 그의 생사여탈권을 쥔 상태에서 그녀는 복부에 화살을 꽂는 것으로 멈췄다.


그렇다면, 왜?


“저는 보안관 투코 페르난데스에게 이 사건을 배심원 제도로 배정하자고 건의할 생각입니다. 피해자인 빅 빌을 매수하고 눈물 조금까지 흘린다면 형을 줄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아마 채석장 노역 7년 정도일겁니다.”


짧은 시간에 쏟아진 서부 공용어를 이해하지 못한 듯이 그녀가 멍한 표정으로 루니샤를 바라보았다. 루니샤는 단어를 잔뜩 휘갈겨 써놓은 종이를 찢어 바닥에 흩뿌렸다.


“피고에게 호의적인 보안관보는 무척 드뭅니다. 그러니까 부디, 제가 당신을 매달아버리겠다고 결심하기 전에 전부 실토하는 걸 추천드립니다.”


“...”


문득 디에고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이 떠오르기라도 했는지, 마야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묵묵히 그녀의 눈을 응시할 뿐이었다.


“죽을 사람은 그놈이 아냐.”


침묵 끝에 그녀가 말했다. 부족의 언어가 아닌 서부공용어였지만, 루니샤보다는 족장에게 건네는 말인 듯 시선은 디에고를 향해 있었다.


“몇 주 전에 여동생이 붙잡혔어. 목장에서 나처럼 소를 빼내려다가.”


순간 맞은편의 디에고가 얼어붙었다. 사정을 알지 못했던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던걸까. 그가 처음으로 눈에 띄게 동요했다.


“...Maya, dena sistia ignoranco-”


“말을 안해줬으니까 당연히 몰랐겠지.”


그 말을 끝으로 천막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루니샤는 다리를 꼰 채로 생각에 잠겼다.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았다. 절도를 시도했다는 명분까지 있다. 마야가 20대 정도로 보이는 것을 보면 그녀의 자매는 갓 성인이 됐을 정도의 나이일까.


이곳의 사람들은 법을 불신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의 고향을 강탈해간 것에 어떻게 의지할 수 있겠는가. 사적제재에 의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멍청한 짓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해의 선이다.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마야의 입술이 안으로 말려들어갔다.


“어째서 진작에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족장조차 자매분이 당한 범죄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언제까지고 침묵하고 있었다면 이 일은 대체 누가 처벌했겠습니까?”


“그 아이를 욕보였다고! 내가 이 안에서 소문이라도 냈어야 했나? 넌 이해 못하잖아!”


“결국 자매가 끌려갈 지경인데, 그분이 퍽이나 좋아하겠습니다! 수치가 희생양의 몫입니까? 결국 법으로 행해지지 않은 복수는-”


루니샤는 찰나에 스쳐지나간 생각에 말을 멈추었다. 불길한 직감이 엄습했다.


목장 안의 카우보이라고는 빅 빌과 블론디밖에 없다. 마야가 말하기를, 죽을 사람은 빅 빌이 아니다. 그녀는 블론디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투코와 루니샤가 목장을 지키고 있었기에, 마야는 소떼를 데리고 보호구역으로 돌아왔다. 블론디는 건드리지 않은 채.


루니샤는 의자에 앉아있는 그녀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단순명료한 증오가 깃든 표정이다. 복수를 포기한 게 아니다.


“이미 누군가가 갔군요.”


“눈치도 빠르셔라, 보안관보님. 내 동생은 친구가 많아.”


멍하니 앉아있는 디에고와 마야를 두고서, 루니샤는 티피를 박차고 나갔다. 바깥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투코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보안관님. 당장 목장으로 가야합니다.”


사람이 죽을 것이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우무문어입니다.


학기가 시작하고 나니 정신이 없네요! 잠을 줄여서라도 쓰고 있기는 하지만 방학 때만큼 글 쓸 틈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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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Almost Haven (5) +8 21.05.18 59 10 11쪽
19 Almost Haven (4) +9 21.05.13 59 10 11쪽
18 Almost Haven (3) +6 21.05.06 87 7 8쪽
17 Almost Haven (2) +11 21.05.04 103 12 20쪽
16 Almost Haven (1) +11 21.03.30 169 16 11쪽
15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8) +12 21.03.15 195 19 8쪽
14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7) +5 21.03.12 163 21 17쪽
»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6) +11 21.03.08 165 20 7쪽
12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5) +2 21.03.04 160 20 10쪽
11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4) +4 21.03.04 157 23 9쪽
10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3) +9 21.02.28 190 24 11쪽
9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2) +6 21.02.26 256 20 11쪽
8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1) +8 21.02.24 204 25 9쪽
7 What Maketh a Good Man? (7) +9 21.02.22 234 32 9쪽
6 What Maketh a Good Man? (6) +7 21.02.21 203 26 11쪽
5 What Maketh a Good Man? (5) +7 21.02.20 231 26 9쪽
4 What Maketh a Good Man? (4) +9 21.02.19 271 25 10쪽
3 What Maketh a Good Man? (3) +4 21.02.18 294 28 10쪽
2 What Maketh a Good Man? (2) +4 21.02.16 422 30 14쪽
1 What Maketh a Good Man? (1) +14 21.02.16 1,095 3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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