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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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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
작품등록일 :
2021.02.16 23:20
최근연재일 :
2021.08.19 23:07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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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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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6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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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What Maketh a Good Man? (1)

DUMMY

회전초 하나가 발치에 채였다. 루니샤는 한동안 갈색의 뭉텅이를 바라보다 그것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회전초 같은 인간이었다. 어디서 왔는지도, 어디로 가는지도 밝히지 않고서는 루니샤를 가졌고, 뿌리 따위는 가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흙먼지 섞인 바람이 그녀의 뿔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버지라는 작자의 유일한 유산이었다. 루니샤는 언제나 머리에 달린 한 쌍의 키틴 덩어리를 잘라버리고 싶었지만, 형질은 상속 포기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회전초는 어디다 쓰려고 들고 있는 겐가, 루니샤 양? 불을 지피기에는 아직 날이 밝은데.”


뒤에서 가래가 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풀뭉치가 다시 바람에 휩쓸려가도록 회전초를 바닥에 던지고선 뒤돌아섰다.


“잠시 숨이나 돌리고 있었습니다, 보안관님. 여기서 뭔가 건진 건 있었습니까?”


“전혀 없었지. 말렌 형제는 생각보다 철저한 모양이야. 하긴, 그러지 않고서야 보안관들을 따돌릴 수는 없었겠지만.”


하인리히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고는 연초 두 개비를 손에 쥐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야. 현장에서 마구잡이로 쏴갈기는 꼴을 보면 흔해빠진 삼류 강도인데, 계획은 시계 부품마냥 딱딱 맞아떨어져.”


“운이 따라주나 보군요.”


“운은 카지노에서 패를 받을 때나 따지는 거지. 경보 장치나 총알 세례 앞에서 행운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늙은 보안관이 담배를 건넸으나 루니샤는 그것을 받아들지 않았다. 담배를 관둔 지는 한참 지났다. 보안관에게도 몇 번 말했을 텐데, 그녀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는 손에 쥔 연초를 거두지 않았다.


“받게. 내키지 않아도 피는 게 좋아. 지금부터 리치몬드까지 달려야 하거든.”


“리치몬드요? 그 깡촌에 말렌 형제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탈취한 금덩이를 팔려면 여기 아니면 리치몬드 마을을 지나는 수밖에 없네. 그런데 여기에 외지인이 온 적은 없다고 하니 당연히 리치몬드 방향이겠지.”


보안관은 머리에 쓴 카우보이 모자를 툭툭 두드렸다. 정말 말렌 형제가 그곳을 지나갔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마구간의 문은 잠겨있었기에 둘은 마구간지기를 흔들어 깨워야만 했다. 아닌 밤중에 잠에서 깬 마구간지기가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손에 알텐 은화를 몇 푼 쥐여주자 금방 잠잠해졌다.


“말이 지치지 않는 선에서 되도록 서두르는 게 좋을걸세, 루니샤 보안관보. 녹여서 금괴로 바꾸고 나면 추적하기가 어려워지거든.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책상 물림들에게 욕을 실컷 들어먹어야 할게야.”


말에 박차를 가하며 하인리히가 말했다. 루니샤 역시 여유를 부릴 생각은 없었기에 고삐를 휘어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파트너가 바뀌고 나서 겨우 두 번째로 맡는 사건이었으나, 이번 일은 그녀가 본 것 중 가장 기묘했다. 2인조 무장강도 뉴헤이븐 은행 습격 사건. 그것이 루니샤가 담당하게 된 범죄의 임시 명칭이었다.


은행 강도야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다. 사실, 보안관이 맡는 일 중에 가장 흔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단둘이 은행을 턴다는 것은 결코 들어보지 못했다.


은행원이 설치된 스위치를 누르기만 한다면 기사단이 출동할 테고, 단단히 무장한 용병 역시 경비를 서고 있다. 아무리 허술한 은행이라 하더라도 고작 2명이 금고에 접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말렌 형제는 성공했다. 업무를 보던 은행원을 모두 살해한 뒤, 금고를 털었다. 심지어 추적이 쉬운 금화에는 손조차 대지 않고 금덩이만을 탈취했다. 마치 금고의 내용물을 알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뭘 그리 생각하나? 준 담배는 피지도 않고 말이야.”


“말렌 형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도주 경로까지 미리 정해두고 도망간 범법자가 은행원을 몰살하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특이하지. 대부분 이런 짓을 하는 족속은 못 죽어서 안달이 난 다혈질이거나, 초 단위로 계획을 세우지 않고서야 꼼짝도 안하는 치밀한 족속이거나 둘 중 하나잖나.”


하인리히는 어느새 손가락 마디만큼 짧아진 담배를 땅바닥에 뱉었다. 불이 붙은 꽁초가 주홍색 호를 그리며 땅에 떨어졌다. 그는 멀어지는 담배에 눈길을 주지 않고선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게 다일세. 철두철미하든 격정적이든 끝내는 꼬리가 잡히게 되어있어. 시기의 차이일 뿐이지.”


“꽤나 자신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지금껏 놓치신 범죄자는 없는 겁니까?”


그의 입가에서 담배 연기가 흘러나왔다. 하인리히는 잠시 침묵하더니, 고삐를 쥔 왼손으로 자신의 광대뼈를 가리켰다. 희끗희끗해진 흉터가 눈가에서 턱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칼로 내 얼굴을 그어버린 강간범이 한 명 있었네. 난 그놈을 잡지 못했고.”


“그럼 모든 범죄자가 잡힌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내가 잡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네. 놈을 찾기는 했는데, 때를 놓쳤지. 천장에 목을 매달았어.”


하인리히는 입맛을 다시고는 자세를 고쳐앉았다. 루니샤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박차로 말의 옆구리를 눌렀다. 어느새 걷다시피 하던 말이 보폭을 넓혔다.


“여우를 피하느라 범을 만났군요. 정의의 주인께서 공정한 심판을 내리실 테니 지금쯤 지옥에서 불타고 있을겁니다.”


“아, 자네는 천칭교단 신자였지?”


막 떠올랐다는 듯이 그가 물었다. 루니샤는 대답 대신 목에 걸린 장식을 그에게 보였다. 조잡한 은제 저울 모형이 달린 목걸이였다.


“수인 잡종이 믿을만한 종교가 달리 없더군요. 성화교도 찾아가봤는데, 뿔부터 잘라버리고 오라 하길래.”


“그 짝 인간들이 그런 경향이 심하기는 하지. 그래도 천칭교 신자가 보안관이라니, 적성을 찾았구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교까지 가지 않더라도 보안관직은 충분히 마음에 드는 일이었다. 뿔이 달렸다는 이유로 시비가 걸리지도 않고 필요 이상으로 사람들과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


물론 천칭교를 믿은 뒤로 일에 더 열성적으로 변하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늘상 하던 일에 낙원행 표라는, 나쁘지 않은 추가금이 붙었으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는 건 좋은 일이야. 언제 높으신 분들을 만나러 갈지 모르잖나.”


“보안관님은 믿는 신이 있으십니까?”


하인리히는 그녀의 질문을 듣더니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짧은 침묵 뒤에 이어진 것은 그 자신도 확신이 없다는 듯한 대답이었다.


“아니. 신들이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그 작자들이 날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네. 내가 업이 많아서.”


“보안관님 정도 되시는 분이 죄를 지었다면 얼마나 지었겠습니까. 여태껏 체포한 범법자만 올려놓아도 천칭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명백합니다.”


“자네도 꼭 내가 아는 사제처럼 말하는군. 체포한 강도, 처형한 살인범... 하긴, 루니샤 양이 말한 대로 심판 결과는 뻔하지.”


그가 고삐를 당기자 말이 울음소리를 내며 멈추어섰다. 다시 담뱃갑을 꺼내든 하인리히는 불을 붙이는 대신 잎 조금을 입에 집어넣고는 질겅거렸다.


“하지만 천칭의 팔이 어느 쪽을 가리키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잖나.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가 내 종착지를 결정하겠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글은 겨우 몇 자 끼적이는 정도라, 교리를 말하시는 거라면...”


“악을 벌하는 게 선뿐만은 아니라는 이야기일세. 자네도 알겠지만 악인들끼리도 서로 물어뜯거든.”


하인리히는 배낭을 뒤적거려 라이플 두 자루를 꺼냈다. 슬슬 리치몬드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언제, 어디서 말렌 형제와 마주칠지 모르니 무장할 필요가 있었다.


“사족이 길었네. 말을 타는 건 나 보안관이요, 광고하는 거나 다름없으니 여기부터는 걷도록 하지.”


좁은 마을에 소문이라도 난다면 목표가 도주하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루니샤는 가슴팍에 단 배지를 뒷주머니에 집어넣었고, 하인리히는 모자를 벗어 목에 걸었다.


어느덧 불그스름하게 물든 지평선 너머로 자그마한 마을의 실루엣이 보였다. 파수탑에는 등불이 걸려있었지만 아무도 경비를 서고 있지 않았고, 오직 리치몬드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칠 벗겨진 간판만이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보안관님. 낌새가 이상합니다.”


루니샤는 앞서 걷던 하인리히의 어깨를 붙잡고서 말했다. 텅 빈 파수탑에서도, 새벽녘의 정적에서도 위화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화약 냄새가 납니다. 총 소리는 들린 적이 없는데 아직도 흔적이 진한 걸 보면 한 두 번 발포한 게 아닙니다.”


“좋군. 이래도 수인들이 도움이 안된다고 하는 얼간이들이 있단 말이야.”


그는 조용히 루니샤에게 라이플을 건넸다. 위치가 발각되지 않도록 몸에 판초를 두른 뒤, 둘은 파수탑에 올라가 스코프로 리치몬드를 훑었다. 마을은 시간을 고려해도 지나치게 텅 비어있었다.


흙먼지 섞인 바람이 루니샤를 향해 불어왔다.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서풍이었다. 그녀는 스코프를 옮겨 리치몬드의 광장을 바라보았다.


“흐음, 루니샤 양. 드문 광경이군. 굉장히 특이해.”


울퉁불퉁한 화강암 타일들 위에는 시체가 즐비했다. 낮선 얼굴이 대부분이었지만 수배지에서 보았던 인물 역시 섞여 있었다. 말렌 형제였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우무문어입니다.

+++

2021 02 20, 말렌 형제의 이름이 윌슨 형제로 써져 있던 걸 수정했습니다.


2020 03 11, 맞춤법 오류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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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Almost Haven (2) +11 21.05.04 103 12 20쪽
16 Almost Haven (1) +11 21.03.30 169 16 11쪽
15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8) +12 21.03.15 195 19 8쪽
14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7) +5 21.03.12 163 21 17쪽
13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6) +11 21.03.08 164 20 7쪽
12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5) +2 21.03.04 160 20 10쪽
11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4) +4 21.03.04 157 23 9쪽
10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3) +9 21.02.28 190 24 11쪽
9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2) +6 21.02.26 255 20 11쪽
8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1) +8 21.02.24 204 25 9쪽
7 What Maketh a Good Man? (7) +9 21.02.22 234 32 9쪽
6 What Maketh a Good Man? (6) +7 21.02.21 203 26 11쪽
5 What Maketh a Good Man? (5) +7 21.02.20 231 26 9쪽
4 What Maketh a Good Man? (4) +9 21.02.19 271 25 10쪽
3 What Maketh a Good Man? (3) +4 21.02.18 293 28 10쪽
2 What Maketh a Good Man? (2) +4 21.02.16 422 30 14쪽
» What Maketh a Good Man? (1) +14 21.02.16 1,095 3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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