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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입니다.

무인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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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
작품등록일 :
2021.02.16 23:20
최근연재일 :
2021.08.19 23:07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4,951
추천수 :
449
글자수 :
116,372

작성
21.05.06 15:20
조회
86
추천
7
글자
8쪽

Almost Haven (3)

DUMMY

“정상이 아닙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위험하다고 말하지는 않겠네만, 정상은 확실히 아니지.”


마른 덤불을 쌓아 피운 모닥불에서 불똥이 탁탁 튀어오른다. 마부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루퍼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나,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것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느껴졌다.


“가식을 떤 건 아닌 것 같은데. 자네는 어떤가?”


“모르겠습니다. 중부에는 저런 사람들이 많습니까?”


“음흉한 작자들이 비교적 많기는 하지. 하지만 저건 뭔가 꿍꿍이가 있다기보다는, 성격이 희안한 것 같네.”


하인리히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불씨가 사그라드는 것을 보고선 마른 덤불 줄기를 한 줌 쥐어 던져넣었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모닥불이 다시 타오른다.


희안하다니. 죽어가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 농짓거리를 던지는 것을 ‘희안한 성격’이라 표현하기에는 어폐가 있지 않은가.


장작 맞은편에 앉아있던 루퍼트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그가 싱글거리며 손을 흔들어 보였으나 루니샤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래도 곧 헤어질 테니 내색하고 싶지는 않군. 세상은 넓으니 미친놈 한 둘 만날 수도 있는거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인리히 보안관님.”


“적어도 저기 루퍼트는 사람을 죽이진 않았잖나. 우리같은 부류가 평소에 만나는 것들에 비하면 무척 양호한 편일걸.”


이름이 언급되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그가 시선을 돌려 둘을 바라보았다. 하인리히가 가볍게 고개를 까딱거리자 루퍼트 역시 머리를 숙여 목례했다. 정수리 위에 얹은 높은 모자가 기우뚱거린다.


“...별종이 아니라고는 못하겠지만. 혹시나 자네가 착각할까봐 말하는 건데, 중부인이라고 다 저렇게 차려입는 건 아닐세. 모자가 무슨, 내가 저만할 때 쓰던 놈을 보던 것 같군.”


“그쪽에서도 저런 의상이 흔하지 않습니까?”


“흔하겠나? 중부도 사람 사는 곳이야. 연회 때나 저렇게 걸치지, 평소에 저러면 미친놈 취급받을 걸세. 또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콧수염을 붙이지도 않고.”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시나요?”


루퍼트가 비틀거리며 일어서서는 루니샤를 향해 다가왔다. 그에게서 해방된 마부가 눈에 띄게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마차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자네 옷 이야기. 여기 루니샤 양은 그런 옷을 처음 본다는군.”


“서부에 계시면 모를만도 하죠. 중부라 불릴만한 곳까지 가려면 적어도 마차로 한 달은 걸릴 텐데. 열차면 또 모르겠지만.”


그녀는 스스럼없이 옆에 주저앉은 그에게서 은근히 거리를 벌렸다. 자리가 편치 않았다.


“열차를 탄다고 해도, 저는 중부에는 못 갑니다.”


“왜요? 직장 때문에요?”


그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의심스러워 루니샤는 루퍼트의 눈을 노려보았다. 유감스럽게도 표정을 보아하니 궁금증에서 우러나온 질문처럼 보였다. 혹은 그녀의 신경을 긁기 위해 대단한 연기를 하고 있던가.


“...피가 섞여있다면, 중부로 이송될 때는 상품 신분입니다.”


“아.”


루퍼트가 눈살을 찌푸린다. 그는 어색한 헛웃음을 몇 번 터뜨렸으나, 아무런 반응도 뒤따르지 않자 불편한 침묵 속에서 입을 다물었다.


“이건 많이 잘못 물어본 것 같네요. 안 그래요?”


“상관없습니다.”


“미안해요. 수인이랑 말해본 건 처음이거든요.”


“괜찮습니다.”


연이어 짧은 답변을 듣자 그의 표정에서 점차 웃음기가 빠져나갔다. 하인리히 보안관이 모닥불에 장작을 더 던져넣었고, 타닥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루퍼트가 무언가 말이라도 해주기를 바라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으나 보안관은 입을 열지 않았다.


“으음. 새벽에 출발한다니까 전 이만 자야겠네요. 저기 짐칸에 맥머피 씨...였던 것 옆에서 잘 테니, 선생님이랑 루니샤 씨는 좌석에서 주무세요.”


“나도 자네 옆에서 자겠네. 마부야 마부석에서 잘거고.”


“시체 옆인데 괜찮으신가요? 저야 직업이 직업이니 상관없지만.”


“내 일도 산 사람보다는 죽은 사람을 많이 보네. 루니샤 양, 자네가 첫 불침번이었지? 내 차례가 오면 깨워주게나.”


죽은 남자의 이름이 맥머피였던가. 가물가물하다. 루니샤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타오르는 모닥불을 응시했다. 하인리히와 루퍼트가 마차로 들어가자 사방이 고요해졌다. 불규칙하게 불똥을 튀기는 장작과 그녀 자신의 숨소리를 제외하면 정적뿐이다.


황량한 황무지라지만 불청객은 언제나 존재한다. 사소하게는 코요테부터 심각하게는 수인 부족까지. 그녀는 불 앞에 쪼그려 앉아 리볼버를 꺼냈다. 무심코 실린더를 만지작거리자 째깍이는 소리가 주변에 섞여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뒤에서 단단한 토양을 딛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루니샤 씨?”


달칵. 생각하기에 앞서 몸이 움직인다. 묵직한 총구가 뒤에 서있던 루퍼트의 이마에 맞닿았다.


“...”


후덥지근한 밤공기에 맞지 않게 싸늘한 침묵이 흐른다.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다.


권총? 단검? 아니다. 둥그스름하다. 안장이다. 루니샤는 모닥불의 불빛을 반사해 흐릿하게 빛나는 루퍼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웃고 있다.


“서부에서는 밤 인사를 이렇게 하나봐요. 저도 한 자루 챙겨올 걸 그랬나.”

“...죄송합니다. 믿을 사람이 드문지라.”


금속음과 함께 공이치기가 총신으로 밀려들어간다. 꺼림칙한 인간이지만 이런 식으로 대할 정도는 아니다.


“괜찮아요. 여기가 누구랑 만나면 화기애애하게 인사부터 하는 곳은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루니샤는 묵묵히 코킹을 푼 권총을 홀스터에 집어넣었다. 가죽 덮개가 딸깍이며 잠기자, 루퍼트가 쥐고 있던 물체를 들어올렸다.


잘못 본 것이 아니다. 안장이다. 많이 헤지고 모래먼지 따위가 잔뜩 묻어있기는 하지만, 가죽 재질의 타원 형태를 보아 틀림없는 안장이었다.


“옆에 앉아도 될까요?”


“당신 불침번까지는 두어시간 남았습니다. 지금 깨어있으면 나중에 힘겨울 겁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걱정이 아니라, 당신이 졸면 모두 위험합니다.”


다시 웃음기가 가신다. 루퍼트는 바닥에 쪼그려 앉은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에 걸터앉았다.


“맞는 말이네요. 하지만 오래 있을 생각은 없어요. 몇마디만 나누고 싶은데, 괜찮죠?”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가 루니샤에게 손에 들린 안장을 건넸다. 먼지에 쓸린 탓에 표면이 반질반질하게 연마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사용했는지 체중이 가해진 곳은 움푹 들어가있고, 말에 고정하는 끈은 닳아서 끊어져 있었다.


“밤 산책을 다녀왔어요.”


“그렇습니까.”


헤진 안장을 구석구석 살피며, 그녀는 성의없이 대답했다. 어딘가에서 굴러다니다 오기라도 한 꼴이다. 더 이상 제 용도에 맞게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있으니 좀이 다 쑤신다니까요. 그건 자기 전에 바깥바람이나 쐬려고 나갔다가 주운 거예요. 혹시 쓸 데가 있을까 해서요. ”


“주웠다니,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인데요. 걸어서 10분 정도 되는 거리에 나뒹굴고 있더라고요.”


루니샤는 안장의 굴곡진 부분을 손으로 더듬었다. 새겨져 있는 제조사의 이니셜이나 마감 상태를 보아서는 흔하디 흔한 공산품이다.


그러나 가죽의 상태가 이상하다. 골반이 맞닿는 부분의 정 중앙. 그러니까 꼬리뼈가 접촉할 부위가 기묘하리만치 납작하게 눌러져 있다.


10분 거리라. 루니샤는 일어서서는 모닥불의 장작을 걷어찼다. 불똥이 잠깐 휘날렸으나, 연료를 잃은 불꽃은 곧 사그라들었다. 갑작스러운 행위에 놀랐는지 루퍼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잿더미 위에 모래를 걷어차 확실하게 소화消火시킨 뒤, 그녀는 자세를 낮추어 귀를 바닥에 붙였다. 희미한 소리가 들린다. 편자와 발굽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다 깨우십시오. 상황 설명은 필요 없습니다. 위치가 탄로났다고 말하면 알아들을겁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우무문어입니다!


이번 주에 엄청엄청 열심히 글을 쓴 뒤, 일반연재를 신청할 계획입니다. 지금껏 제가 열심히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전부 독자님들 덕분이에요. 


내일도 더 나아진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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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Almost Haven (6) +6 21.06.01 90 6 16쪽
20 Almost Haven (5) +8 21.05.18 58 10 11쪽
19 Almost Haven (4) +9 21.05.13 59 10 11쪽
» Almost Haven (3) +6 21.05.06 87 7 8쪽
17 Almost Haven (2) +11 21.05.04 103 12 20쪽
16 Almost Haven (1) +11 21.03.30 169 16 11쪽
15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8) +12 21.03.15 195 19 8쪽
14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7) +5 21.03.12 163 21 17쪽
13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6) +11 21.03.08 164 20 7쪽
12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5) +2 21.03.04 160 20 10쪽
11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4) +4 21.03.04 157 23 9쪽
10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3) +9 21.02.28 190 24 11쪽
9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2) +6 21.02.26 256 20 11쪽
8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1) +8 21.02.24 204 25 9쪽
7 What Maketh a Good Man? (7) +9 21.02.22 234 32 9쪽
6 What Maketh a Good Man? (6) +7 21.02.21 203 26 11쪽
5 What Maketh a Good Man? (5) +7 21.02.20 231 26 9쪽
4 What Maketh a Good Man? (4) +9 21.02.19 271 25 10쪽
3 What Maketh a Good Man? (3) +4 21.02.18 293 28 10쪽
2 What Maketh a Good Man? (2) +4 21.02.16 422 30 14쪽
1 What Maketh a Good Man? (1) +14 21.02.16 1,095 3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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