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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입니다.

무인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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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
작품등록일 :
2021.02.16 23:20
최근연재일 :
2021.08.19 23:07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4,969
추천수 :
449
글자수 :
116,372

작성
21.02.19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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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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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What Maketh a Good Man? (4)

DUMMY

자로 상흔의 크기를 재고, 깊이를 확인한다. 손을 집어넣어 상처 내부의 상태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하인리히가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이래서야 같은 인물이 아니기가 더 힘들겠네, 루니샤 양. 일부러 이렇게 저지르기도 힘들 정도로 수법이 똑같아."


보안관은 줄자를 자신의 주머니에 주섬주섬 집어넣고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루니샤가 바닥에 잠잠히 누워있는 보안관의 사체를 노려보았다.


보안관에 대한 공격은 범법자들 사이에서도 금기로 통한다. 당연하지만 상도덕이나 공권력을 향한 존중에서 비롯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보안관을 살해한 순간부터 목에 현상금이 기하급수적으로 걸리기 때문이다.


"그나마 여기서는 증인이 많아서 다행이야. 지금 그 빌어먹을 작자를 봤다는 사람들로만 거리 한 블록을 통째로 채울 수 있을 정도네."


"목격자가 그렇게나 많습니까?"


"나와 자네 둘이서 한 마디씩만 들어도 한나절을 보내야 할 수준이지."


하인리히의 말을 들은 루니샤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면 누군가는 용의자를 추적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다. 굳이 알량한 정의심 때문이 아니라도 현행범 체포의 현상금은 꽤나 쏠쏠한 편이니까.


그런데 목격자들이 그렇게 많은 상황에서 듀데일에서 감쪽같이 사라질 수가 있을까. 상식적으로 접근한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마법으로 사라진 겁니까?"


그녀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마법은 루니샤가 유일하게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현상이었다. 순식간에 무장한 11명을 살해할 수준의 마법사라면 모종의 방법으로 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하인리히는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도 의심해본 가설이었으나, 가능성은 희박했다.


"전문가가 그럴 일은 없을거라 말하더군. 공간 계통의 마법은 거의 씨가 마르다시피 한 모양이야."


"상황이 더 이상해지는군요.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기를 빠져나간 겁니까?"


보안관이 잠깐 침묵했다. 그가 듀데일의 뒷편에 있는 광산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마법을 쓴 건 맞을걸세. 하지만 다른 곳으로 이동했기보다는 모종의 방법으로 모습만 숨겼을 가능성이 높아."


루니샤는 수긍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선 주섬주섬 도구를 챙겼다. 가죽 가방에 6발들이 실린더를 5개 정도 챙겨 넣은 뒤, 그녀는 듀데일의 광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인리히 역시 그 뒤를 따랐다.


보안관이 살해당하는 것과 동시에 듀데일에서 나가는 모든 역마차는 봉쇄되었다. 마구간 역시 잠긴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몰고 온 말을 도로 타고 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그 작자는 마을 안에 있다. 자경단과 현상금에 목마른 주민들이 샅샅히 마을을 뒤질 것이고, 루니샤와 하인리히는 마을 외부와 연결된 유일한 통로를 수색한다.


광산. 루니샤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그곳으로 도망쳤으리라. 머리 위에 달린 것은 어떻게든 헬멧이나 두건으로 숨기고 인적이 없는 곳을 지나면 듀데일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 테니까.


“지도는 미리 외워두는 게 좋을걸세. 밖으로 통하는 출구는 최대한 빠르게 봉쇄해야 해.”


“시도해보겠습니다.”


그녀는 품에서 광산의 지도를 꺼내 다시 암기하며 대답했다. 가능한 많은 통로를 기억해두어야 한다. 만약 용의자가 광산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면 그들이 가진 우위라고는 정보밖에 없었다.


술래잡기가 아니다. 용의자의 목적이 도주임은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또다른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갱도 안에서도 언제든지 암습 당할 수 있었다.


“나도 불안하지만 결국 각개행동이 유일한 방도인 것 같네, 루니샤 양. 그러지 않고서야 놈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이해합니다. 석탄 광산이 아닌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합니다.”


“그래. 총까지 쓰지 못했다면 닭 쫓던 개처럼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겠지.”


하인리히가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더니 갱도의 입구를 가리켰다. 경비로 보이는 자가 톱으로 잘라낸 산탄총을 들고 있었다. 그는 보안관의 뱃지를 꺼내보이고 경비에게 말했다.


“연방 보안관 하인리히 반 할렌이요. 이쪽은 내 부사수 루니샤 웨스트 양이고.”


“광산 뒤지려고 온거지? 이야기는 대강 들었소. 어떤 미친놈이 보안관을 죽인담.”


경비가 혀를 차며 광산의 문을 열었다. 그는 루니샤에게 달린 뿔을 힐끗 쳐다보더니 갱도에 깔려있는 레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씹새끼는 두 발로 어기적어기적 걸어가야 할 테니 멀리는 못 갔을 거요. 수레가 갱도 끝까지는 안 가니 중간에 내려야 하겠지만, 걷는 것보다는 충분히 빠르지.”


그가 광산의 창고 구석에서 수레를 끌고 와선 레일 위에 얹었다. 안전과는 거리가 먼 외형에 루니샤가 불신에 찬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자, 시선을 느낀 경비가 헛기침을 몇 번 하고선 수레를 탕탕 두드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을걸. 이래 봬도 레일 깐 날부터 여태껏 사고 한번 없었으니까. 천장에 뿔이나 안 부러지게 조심하셔.”


“...”


경사 덕분에 갱도가 평탄해질 때까지 힘을 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경비원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수레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둘이 들어가기에 비좁지는 않을 정도의 크기였기에 하인리히도 어렵지 않게 탑승할 수 있었다.


그가 이제 꽁초만 남은 담배를 수레의 벽면에 비벼 끄고서는 입을 열었다.


“내가 서쪽 통로를 봉쇄하겠네. 동쪽을 맡아줄 수 있겠나?”


루니샤는 고개를 끄덕인 뒤 품에서 장전된 여분 약실을 두어개 꺼내 그에게 건넸다. 평소라면 최소한의 발포로 끝내는 게 원칙이었지만, 이번에는 상대도 단단히 무장한 채였다. 그것도 평범한 총기가 아니라 마법으로. 과하더라도 탄환을 낭비할 필요가 있었다.


하인리히가 가벼운 목례와 함께 원기둥 모양의 실린더들을 받아들었다. 리볼버의 약실을 교체하고 총기의 상태를 확인한 그가 만족스럽게 홀스터에 권총을 집어넣었다.


“고맙네. 기습당하지 않는 이상 자네가 그 작자를 제압하지 못 할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운을 빌지.”


“용의자를 발견하면 바로 발포하겠습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지원 부탁드립니다.”


“이럴 때는 ‘저도 행운을 빌겠습니다’고 하는 걸세, 이 사람아.”


어느덧 수레가 레일의 끝에 다다라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멈춰섰다. 그녀는 민첩하게 어두컴컴한 갱도 밖으로 뛰어내리며 대꾸했다.


“행운은 카지노에서 패를 받을 때나 쓰는 거라더군요. 정의의 여신께서 등 뒤를 지켜주실 겁니다, 하인리히 보안관님.”


픽. 그 역시 헛웃음을 터뜨리며 수레에서 내렸다. 뭐라 말하기도 전에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루니샤를 보며, 하인리히는 반대편 갱도로 향했다.


아무리 벽에 마석등이 붙어있다 하더라도 지하는 어두웠다. 질좋은 광원이 아니어서 그런건지, 단순히 몇 피트 간격으로 배치된 등으로 드넓은 갱도를 밝히기에는 부족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시각은 더 이상 그리 믿음직한 정보가 되지 못했다. 마른 먼지 때문에 냄새도 간신히 맡을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청각과 촉각이 전부였다. 루니샤는 손으로 흙벽을 짚으며 경보競步로 몸을 옮겼다.


그렇게 몇십분을 걸었을까. 어디에서 용의자가 튀어나올지 몰랐기에 자연스레 신경이 곤두섰다. 혀 끝에 맴도는 것이 흩날리는 분진의 맛인지, 혹은 어둠 그 자체의 맛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미리 홀스터에서 권총을 뽑아들고선 공이치기를 당겼다. 무기를 꺼내는 찰나의 시간조차도 허비해선 안됐다.


“...”


그리고 멀리서 발걸음이 들렸다. 순간 자신의 발소리가 벽에 반사된 것은 아닌지 의심했으나, 소음은 틀림없이 갱도 저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루니샤는 그대로 몸을 벽에 밀착시켰다. 가뜩이나 헤진 보안관복이 검게 변하다시피 했으나 복장에 신경 쓸 시간이 아니었다.


마석등의 흐릿한 불빛으로는 실루엣조차 분간할 수 없었기에,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조심스럽게 총구를 겨누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한 발짝씩 전진하고 있을 때, 어느 순간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의 페이스가 빨라졌다. 뜀걸음과 질주의 중간 속도로.


지나치게 먼 곳까지 들릴 소음을 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행이 따라붙었는지 확인하기에는 충분한 속력이다. 놈이 눈치챘다.


“건방진 새끼.”


곧이곧이 용의자의 뜻대로 놀아나는 대신 루니샤는 총구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발포한다.


겨냥따위는 하지 않는다. 오직 총구의 방향만을 잡고 한 손으로는 방아쇠를, 다른 손으로는 공이를 몇 번이고 젖힌다.


패닝Fanning. 명중률을 대가로 리볼버에게 속사를 허가하는 기술.


탄광의 벽에서 불똥이 튀김과 동시에 앞에서 무언가가 거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루니샤는 텅 빈 약실을 뽑아내고 바닥에 내던졌다. 머리통에 얻어맞고 죽어버렸다면 바랄 나위도 없는 일이었겠지만, 살면서 운이 따라준 적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바람 소리와 함께 오른다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고드름이 정강이께에 박혀있었다.


“이, 미친 자식! 탄광 안에서 총을 쏘다니!”


멀리서 들리는 고함과 고통을 무시하고 재장전한다. 그리고 권총을 겨눈다. 다시 6발의 총성이 울려퍼졌으나, 용의자는 모퉁이를 돌았는지 이어지는 것은 납탄이 견고한 표면에 부딪히는 소리 뿐이었다.


루니샤는 인상을 찌푸리며 어설프게 걸어나갔다. 통증과는 별개로 고드름이 틀어박힌 곳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투명한 얼음을 상처에서 뽑아버리고, 비틀거리며 걷는 일을 이어갔다.


총성이 잦아들자 갱도 너머에서도 절뚝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탄환이 다리에 적중한 모양이다.


가장 근접한 탄광의 출구조차 거의 마일 단위로 세야 할 판이었다. 그녀는 품에서 헝겊을 꺼내 대강 상처에 쑤셔박고 발을 옮겼다. 절름발이들의 경주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김우무문어입니다.


날이 춥습니다. 다들 몸조심하세요.


+++


중간에 누구의 말인지 불분명했던 대사를 수정했습니다! 


2021. 03. 11, 지적해주신 맞춤법을 수정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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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Almost Haven (5) +8 21.05.18 59 10 11쪽
19 Almost Haven (4) +9 21.05.13 59 10 11쪽
18 Almost Haven (3) +6 21.05.06 87 7 8쪽
17 Almost Haven (2) +11 21.05.04 104 12 20쪽
16 Almost Haven (1) +11 21.03.30 170 16 11쪽
15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8) +12 21.03.15 195 19 8쪽
14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7) +5 21.03.12 163 21 17쪽
13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6) +11 21.03.08 165 20 7쪽
12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5) +2 21.03.04 161 20 10쪽
11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4) +4 21.03.04 157 23 9쪽
10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3) +9 21.02.28 191 24 11쪽
9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2) +6 21.02.26 256 20 11쪽
8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1) +8 21.02.24 205 25 9쪽
7 What Maketh a Good Man? (7) +9 21.02.22 235 32 9쪽
6 What Maketh a Good Man? (6) +7 21.02.21 203 26 11쪽
5 What Maketh a Good Man? (5) +7 21.02.20 232 26 9쪽
» What Maketh a Good Man? (4) +9 21.02.19 272 25 10쪽
3 What Maketh a Good Man? (3) +4 21.02.18 294 28 10쪽
2 What Maketh a Good Man? (2) +4 21.02.16 423 30 14쪽
1 What Maketh a Good Man? (1) +14 21.02.16 1,098 3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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