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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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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무문어
작품등록일 :
2021.02.16 23:20
최근연재일 :
2021.08.19 23:07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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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449
글자수 :
116,372

작성
21.02.2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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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What Maketh a Good Man? (7)

DUMMY

“다른 사무국에 알려야겠네.”


하인리히가 담배 연기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기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차라리 여기에 적힌 것들이 모조리 가짜라면 좋겠지만... 자네가 직접 알아낸 정보라면 그럴 리는 없겠지. 근시일 내로 전보를 치겠네.”


요나스 콜론의 입에서 나온 진술은 터무니없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예상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캐닌’이라는 조직의 간부라고 실토했다. 그리고 말렌 형제에게 범행을 지시한 것도, 범행 계획을 세워준 것 역시 캐닌이었다는 사실도.


본디 은행에서 금을 탈취한 뒤, 말렌 형제와 일당은 돈을 지불받고 금을 캐닌에게 넘길 예정이었다. 다만 여느 밑바닥 인생이 다 그렇듯이 눈앞의 황금에 홀려 멍청한 선택을 한 거겠지.


“자네 생각에는 그 캐닌이라는 조직의 목적이 뭐라고 생각하나?”


“돈입니다.”


“아니, 그야 당연한 거겠지. 하지만 그 돈을 모으는 이유가 뭐라고 예상하나?”


“더 많은 돈입니다.”


“...”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 대답에 하인리히의 입이 굳게 다물렸다.


“저는 이런 조직들이 금전 이상의 무언가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범죄자들은 탐욕이 도덕을 넘어선 쓰레기일 뿐이고, 범죄 조직들은 범죄자들이 모여서 만들어집니다. 다른 목적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참 심하다 싶을 정도로 단호한 답변이다. 그는 의자에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루니샤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정말이지 한결같군.”


“...잘못된 겁니까?”


“아닐세. 그냥 자네처럼 늘상 사명감 넘치는 사람은 드물거든. 대부분의 보안관보들은 범죄자들에 대해... 더 관대한 편이지.”


보통은 남의 귓구멍에 코르크 따개를 박아넣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기도 하고.


하인리히는 입가에서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짧아진 담배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굳이 더 말해봤자 피차 불편해지기만 할 이야기였다. 그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폐 안에서 니코틴의 잔재를 몰아냈다.


“아무튼 전보가 가는 대로 이 사건은 우리 관할에서 벗어날 걸세. 요나스 콜론 같은 마법사가 있는 것도 그렇고, 말렌 형제가 캐닌을 피해 서쪽으로 도주한 것도 그렇고, 이 조직은 동부 지방에 뿌리내리고 있는 모양이야.”


루니샤가 고개를 대강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나스를 심문할 때부터 직감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제 13 사무국의 인원은 열 명을 간신히 넘는다. 그마저도 정기적으로 얼굴을 보이는 인물은 그녀와 하인리히 뿐이고, 사무국 건물보다 펍에서 직원을 찾는 편이 수월한 판이다.


결국 다른 사무국에게 이 건을 넘길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하인리히의 말처럼 조직이 동쪽에 위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까지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인리히의 사무실 밖으로 나가기 직전, 그가 자신의 책상에서 종이 한 장을 들어보였다.


“그러니까 자네가 가게.”


“...예?”


누렇게 뜬 양피지나 싸구려 마분지 따위가 아니라, 순백색에 가까운 펄프지. 서부에서는 보기 힘든 재질의 종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루니샤를 당황케 만든 것은 그 내용이었다.


보안관보 발령서. 일시적으로나마 그녀를 다른 지부의 소속으로 만들 수 있는, 보안관의 권한.


“이번에 자네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확신했네. 루니샤 양은 이런 곳에서 썩어갈 인재가 아니야.”


“저도 이딴 장소에 영원히 있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다만 머리에 그런 게 달린 이상 동쪽으로 가봤자 천시만 받을 거라고? 아니면 늙은 보안관 한 명이 발령서를 쓴다고 사무국에서 자네 소속을 옮겨줄 리가 없다고?”


하인리히가 쿨럭거리며 담배 연기를 한가득 뱉어냈다. 기침은 곧 큭큭거리는 웃음소리로 바뀌더니, 이내 잦아들었다.


“말 끊어먹어서 미안하네, 루니샤 양. 그냥 이런 신세가 좀 우스워서 말이야. 꼰대같지만, 나도 왕년에는 좀 나가던 사람이어서.”


“괜찮습니다.”


“난 늙었어. 이제는 피스톨만 들어도 손이 떨려서 사격 실력도 떨어졌고, 말이 달릴 때마다 허리가 뻑적지근해. 하지만 아직 사람 보는 눈만은 쓸만하다 자신하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사무실 한 구석에 있던 찬장을 열었다. 한번도 열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선반이었기에 잡동사니들을 집어넣는 공간이라 어림짐작하고 있었으나, 그 내용물은 의외의 것이었다.


황동 트로피. 먼지가 쌓인 상장. 그리고 인치 단위로 쌓인 수배지.


“저 수배지들, 모두 검거하신 겁니까?”


“자네는 어째 저 트로피보다 수배지를 먼저 보는구만. 난 트로피 쪽이 더 마음에 들었는데.”


하인리히가 투덜거리면서 의자를 선반 밑으로 끌고 갔다. 그가 의자 위에 서더니, 선반 안의 것들을 하나하나 꺼낸다.


“이건 왕실배 사격 대회에서 받은 3위 트로피. 고작 3위라고 비웃으면 화낼걸세. 만 명 단위로 참가했던 대회였으니까. 이건 성화교 쪽 이단을 쏴죽여서 받은 감사장이고. 이건... 기억도 안나는군.”


마치 그것들이 싸구려 편자 던지기 대회에서 받은 것이라도 되는듯이 말하고 있었지만, 전혀 사소한 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벽에 당당히 걸어놓고 오는 사람에게마다 보여주어도 모자랄 판이다.


“요점은. 내가 이런 구석진 곳으로 좌천된 신세긴 해도 자네 한 명 보내주지 못할 못난이는 아니란 말일세.”


“하인리히 보안관님.”


“루니샤 양. 자네는 유능해. 솔직히 말하자면 내 보안관 생활 30년 동안 본 보안관보 중에서 가장 뛰어나지.”


하인리히가 어색한 움직임으로 다시 트로피와 수배지, 상장들을 선반 속에 집어넣었다. 그는 사무실의 책상 위에 놓여져 있던 발령서를 고이 접고선 그것을 루니샤에게 건넸다.


“가서 자네를 이런 곳에다 배치한 책상물림들에게 보여주게. 보안관보 루니샤 웨스트는 구석에 쳐박혀 썩을 인재가 아니라고. 고작 혈통 따위로 트집 잡기에는 유능한 사람이라고.”


“...”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배배 꼬았다. 단어를 잘 고르지 못하겠다. 아니,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자체를 알 수 없었다.


웨스트라는 성이 가진 의미. 아무리 챙이 큰 모자를 써도 드러나는 뿔. 서부의 피에서는 나올 리가 없는 새하얀 피부.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은 13 보안 사무국에 있는 것이 나았다. 동쪽으로 나아가봤자 받을 것은 천대와 멸시가 고작이겠지. 그렇다면 어째서 망설이고 있는걸까.


“저는.”


루니샤는 무심코 걸려있던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천칭 모양의 은제 모형. 그녀가 걸치고 있는 것 중에서는 그나마 치장에 가장 가까운 물건이었다.


“의인의 길은 사면 열렸으나 악인의 삶은 멸로 이어질 뿐이라.”


“으음?”


예고없이 튀어나온 문장에 하인리히가 신음했다. 어조를 보아서는 천칭교의 교리 중 하나인 것 같았지만, 그 말이 나온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저는 사람이 살지 말아야 할 곳에서 살아왔습니다.”


“...자네 어린 시절 이야기라면 하지 않아도 좋네.”


그는 문득 루니샤의 전 사수가 남긴 문서를 떠올리고선 말했다. 빈민가 출신. 수인 혼혈. 부친 부재. 그것 세 개만 읽어도 유년기가 어땠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잠깐 고개를 젓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곳의 쓰레기통에서는 고기 썩는 냄새가 사철 납니다. 봄과 여름에는 구더기가 알을 까고, 가을에는 거무스름하게 변색된 핏물이 흘러나옵니다. 하지만 최악은 겨울입니다.”


“...”


“추우면 그 고기도 먹을만하거든요.”


하인리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루니샤는 여전히 천칭 모형을 손바닥 안에서 굴리며 의자에 기대었다.


“길바닥에 노트 한 권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의인의 길은 사면 열렸으나 악인의 삶은 멸로 이어질 뿐이라’. 그 구절을 읽고 저는 그곳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이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가 뭔가?”


“저는 그 문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루니샤는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책상 위에 놓여져있던 발령서를 집었다.


“정의라는 단어의 뜻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트에 적힌 문장을 읽으니 웃음이 나오더군요.”


그녀는 주머니에 발령서를 대강 집어넣고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왜냐하면, 제가 본 악인들 중 파멸한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만들기로 했습니다.”


짐이 챙겨지는 대로 출발할 계획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우무문어입니다.


+++++

2020. 03. 12, 지적해주신 맞춤법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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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Taking Pleasure in a Man's Pain (1) +4 21.08.14 50 7 16쪽
21 Almost Haven (6) +6 21.06.01 90 6 16쪽
20 Almost Haven (5) +8 21.05.18 59 10 11쪽
19 Almost Haven (4) +9 21.05.13 59 10 11쪽
18 Almost Haven (3) +6 21.05.06 87 7 8쪽
17 Almost Haven (2) +11 21.05.04 103 12 20쪽
16 Almost Haven (1) +11 21.03.30 169 16 11쪽
15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8) +12 21.03.15 195 19 8쪽
14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7) +5 21.03.12 163 21 17쪽
13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6) +11 21.03.08 165 20 7쪽
12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5) +2 21.03.04 160 20 10쪽
11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4) +4 21.03.04 157 23 9쪽
10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3) +9 21.02.28 190 24 11쪽
9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2) +6 21.02.26 256 20 11쪽
8 Lord, I Ain't Coming Home With You (1) +8 21.02.24 204 25 9쪽
» What Maketh a Good Man? (7) +9 21.02.22 235 32 9쪽
6 What Maketh a Good Man? (6) +7 21.02.21 203 26 11쪽
5 What Maketh a Good Man? (5) +7 21.02.20 231 26 9쪽
4 What Maketh a Good Man? (4) +9 21.02.19 271 25 10쪽
3 What Maketh a Good Man? (3) +4 21.02.18 294 28 10쪽
2 What Maketh a Good Man? (2) +4 21.02.16 422 30 14쪽
1 What Maketh a Good Man? (1) +14 21.02.16 1,095 3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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