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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밀로 님의 서재입니다.

영혼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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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밀로
작품등록일 :
2013.06.09 09:04
최근연재일 :
2013.07.29 21: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16,551
추천수 :
474
글자수 :
98,626

작성
13.07.29 21:20
조회
387
추천
43
글자
9쪽

24. 분노

DUMMY

24. 분노


이곳은 사후의 세계임에도 이승에서와 마찬가지로 중력이 느껴졌다. 바위를 지나기가 힘에 겨웠다.

-고행의 길이야.

아이가 툭 내뱉었다. 이곳에 들어 온 모든 영혼들에게 평등하게 해당되는 고행은 지옥불에서 고통 받고 있는 영혼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어서 가자.

난 걸음을 재촉했다. 어서 빨리 움직여 딸아이와 그 아이의 오빠를 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끄러운 바위를 지나니 무릎까지 오는 뾰족한 바위들이 나타났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공간이 거의 없었기에 그걸 내려다보는 순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끝이 없을 것 같아. 여길 지날 수 있을까?

-영혼에겐 고행만 따를 뿐이지 인간처럼 상처가 감염이나 죽음으로 이어지지는 않아.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거네. 후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죽지 않기 때문에 다행이란 건지, 죽을 수 없기 때문에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건지.

-아, 아

그야말로 고통을 제대로 표현한 신음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뾰족한 길을 걷고 있는 영혼이 보였다.

‘아!’

그 영혼은 스타였다. 한때 최고의 자리에 군림했던 그는, 자기를 사랑했던 여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그는, 뾰족한 바위를 걸으면서 죄 값을 치르고 있었다.

디디는 발에 바위가 뚫고 들어와 발과 다리는 금세 피투성이로 변했으며 그가 비틀거리며 쓰러질 때마다 바위는 여지없이 그의 손등을 뚫고 들어왔다. 걷기에도 힘든 그는 바위에서 손과 발을 빼내느라 힘겨워했다. 그의 몸은 떨어져 죽을 때의 충격으로 목뼈와 갈비뼈, 그리고 골반이 갈라지고 틀어져 제 형체도 찾기 힘들었다. 그 뒤로 그 때문에 죽음의 길을 택했던 여자 두 명이 따라오고 있었다.

한 여자는 모델이었고, 또 한 여자는 섬 여자였다.

그들에게 밧줄이 하나씩 목에 걸려 있었는데 그 밧줄은 스타의 목과 연결되었다. 결국 스타는 두 영혼의 짐을 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없었다. 이승의 인연은 모두 잊은 듯했고, 자기 목의 올가미를 끌고 가는 저 남자에 대해 어떠한 연민이나 슬픔도 없어보였다.

세 영혼은 발이 푹푹 들어가는 뾰족한 바위를 그저 힘겹게 걸을 뿐이었다.

나도 뾰족한 바위 내려와 걸었다. 무릎까지 파고들어가는 바위 때문에 힘겹고 고통스럽지만 이것도 내가 거쳐야 할 길임에 틀림없었다.

스타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스타는 꺾인 목을 힘겹게 들어 올리려 하였으나 결국 자기의 두 손으로 얼굴을 들어 목에 얹혀야 했다.

-왜 왔어요?

원망조도 아닌 의문문도 아닌 그냥 건조한 어투였다.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뒤에서 두 여자들도 무릎을 구부려 세우며 바위에 뚫린 발을 뽑아 다시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갔다.

굶음으로 죽음을 택했던 모델은 해골만 남아 퀭한 눈동자가 주먹만 했으며, 물에 빠져 죽음을 택했던 섬 여자는 물에 불어터진 찐빵 같았다. 그 여자의 몸에서는 계속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들에게 물었다.

-난 이 영혼들을 찾으러 왔어요.

나의 생각이 그들의 머릿속으로 전달되었다. 내 생각을 읽던 영혼들은 고개를 저으며 가던 길을 재촉해 걸었다. 이들은 자기에게 내려진 형벌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듯했다.


다시 길은 음산해졌다. 고독이 밀려오고 또 다시 슬픈 기억들이 되살아날까봐 난 두려웠다.

-제일 무서운 형벌은 고독인 것 같아.

내 말에 아이가 끄덕였다. 만일 내 곁에 아이가 없었더라면 난 이 길을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폐허가 된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건물들.

아! 낯이 익었다. 그렇다면 이곳 어딘가에 그 아이의 오빠가 있을 것이다. 난 아이의 손을 잡아끌며 건물들을 헤집고 다녔다. 이곳은 그야말로 형벌의 집합장 같았다. 건물 여기저기서 툭툭 떨어지는 영혼들.

-조심해!

아이의 소리침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내 코앞으로 육체가 뚝 떨어져 내리는 거였다. 다행히 아이의 오빠는 아니었다.

영혼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몸은 박살이 났다. 잠시 죽은 듯 누워있던 영혼은 육신을 추스르며 일어서는데 몹시 지쳐있었다.

-벌을 받고 있는 중이군요.

알면서 다른 붙일 말이 없어 그 말을 했다. 그게 그 영혼의 화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그는 삐그적 거리며 부러진 팔을 뻗어 내 목을 조르려 다가왔다. 뒷걸음질 쳤지만 부러진 다리의 그 영혼은 빨랐다. 어느새 내게 다가와 내 목을 잡아 틀었다. 그러더니 날 끌고 건물로 들어섰다. 놈의 손에 목이 잡힌 나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러지..마.

그러자 놈은 닭목 잡듯 내 목을 쥐어틀며 제 얼굴 가까이로 당겼다.

-너도 당해 봐.

그의 눈은 뭔지 모를 분노와 좌절로 가득 차 핏발이 붉게 서 있었다. 얼굴의 반쪽은 옥상에서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부서져 너덜거렸다. 이도 반은 부서져 없어졌고, 코도 많이 휘어져 있었다.

끌려가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는 날 기어코 끌고 올라가는 그는 망가진 육체에 비해 힘이 좋았다.

-끌려가면 안 돼!

밖에서 아이가 소리쳤다.

-구..해..

숨통이 거의 막힌 난 아무 말도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분노한 영혼은 나를 질질 끌며 옥상 난간으로 걸어갔다. 이 영혼에게 끌려가면 그 끝은 어떻게 되는 건가? 이제 모든 게 끝이라 생각했다. 더 이상 내 딸도 그 아이의 오빠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딸아이의 창백한 얼굴과 죽어가던 그 여자아이의 얼굴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순간, 목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들며 내 몸은 바닥으로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아!

눈을 떴다. 분노한 영혼이 구부리고 앉아 날 쳐다보았다.

-내 동생을 알아?

그럼, 네가 그 오빠?

-그 아이의 오빠였던 거야?

-내 동생을 아냐고?

분노의 영혼은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왜 분노하고 있는 것일까?

-알아. 네가 그 아이의 오빠 맞아?

-내 동생을 어떻게 아는 건데?

그러다 분노의 영혼은 ‘컥’ ‘컥’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서는데 그의 육신은 서서히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생전의 모습을 완벽하게 되찾은 그는 아이가 말 한대로 참 잘생겼다. 방금 전의 일을 잊은 듯 그는 멍한 얼굴로 난간에 가 서더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난 그를 잡으려 달려갔다. 하지만 내가 잡을 새도 없이 그는 땅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그와 동시에 내 몸도 남자가 투신한 땅으로 끌려갔다.

-아!

다시 시작이었다. 온 몸이 망가진 그는 분노에 찬 눈을 하고 내게 걸어왔다. 난 남자의 손에 잡히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 쳤지만 역부족이었다.

-왜 그래. 나한테 왜 그래?

그러나 그에게는 분노밖에는 남아 있지 않은 듯 보였다. 그는 내말을 들으려하지도 않았고 아예 내 말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그가 내 멱살을 잡고 건물로 들어가려 하였다.

-난 널 구하러 왔어. 그 여자에게 널 구해 데려가겠다고 약속했어.

내 머릿속에 동생의 영상이 떠올랐다. 그는 동생을 보았다. 그러나,

-악! 악!

그의 분노에 불을 붙인 격이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고 주먹으로 치고 머리로 들이받았다. 겁에 질린 난 그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그치지 않을 것 같았던 분노는 윤회의 시간을 따라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고, 그는 뛰어내렸다. 반복되는 부서짐과 고통 그리고 분노.

나는 그가 왜 분노에 몸부림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돼?

-분노로 가득 찬 영혼은 분노를 풀어 줘야해. 저 분노 때문에 다른 생을 선택하지도 못할 거야.

난 그가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올 장소로 미리 올라갔다. 그가 쩔뚝거리며 건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가 날 발견하지 못하도록 건물 뒤로가 몸을 숨겼다.

이윽고 옥상으로 힘겹게 올라 온 그는 서서히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가 다시 멍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난 그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에요? 저길 뛰어 내릴 생각인 거예요?

그는 내 물음을 무시하고 난간으로 걸어갔다.

-얘기 좀 해요. 당신 여동생이 전해주란 말이 있어요.

그제야 그가 돌아보았다.

-무슨 말이요?

-여동생은 당신을 무척 사랑했어요. 그래서 당신이 이곳에 떨어져 죽는 걸 원치 않아요.

-아니. 그 아이는 날 배신했어!

그가 소리치면서 난간으로 뛰어갔다. 나도 그를 따라 뛰면서 난간으로 몸을 날리는 그의 허리춤을 잡았다.

-내 말을 들어봐요.

그는 날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허리를 잡은 내 팔을 잡아 당겨 빠져나오며 다시 뛰어 내렸다. 업보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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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분노 13.07.29 388 43 9쪽
23 23. 용암속의 사형수 13.07.28 554 24 8쪽
22 22. 지옥으로 가다 13.07.23 468 21 8쪽
21 21. 곡소리 13.07.23 369 3 7쪽
20 20. 죽음의 강 13.07.19 450 8 9쪽
19 19. 종전의 끝 13.07.17 281 13 11쪽
18 18. 아이스크림 13.07.16 597 48 11쪽
17 17. 내전 13.07.13 531 9 9쪽
16 16. 금지된 사랑-비밀 13.07.11 449 6 9쪽
15 15. 남매 13.07.11 883 12 8쪽
14 14. 몰락 13.07.09 173 12 11쪽
13 13. 불길한 꿈 13.07.08 466 16 10쪽
12 12. 가슴앓이 13.07.03 716 16 10쪽
11 11. 스타의 자리 13.07.01 639 6 10쪽
10 10. 루머 +1 13.06.23 566 7 9쪽
9 9. 스타 13.06.20 961 41 10쪽
8 8. 지옥의 불길 속으로 13.06.17 395 5 6쪽
7 7. 내가 예수니라 13.06.16 462 8 8쪽
6 6. 권총문신의 남자 13.06.14 336 3 12쪽
5 5. 드디어 사냥하기로 맘 먹다. 13.06.13 525 3 11쪽
4 4. 꿈 13.06.12 847 76 9쪽
3 3. 계약 13.06.11 1,401 44 9쪽
2 2. 망할놈의 저승사자 13.06.10 1,781 38 9쪽
1 1. 꿈 13.06.09 2,315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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