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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밀로 님의 서재입니다.

영혼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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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밀로
작품등록일 :
2013.06.09 09:04
최근연재일 :
2013.07.29 21: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16,537
추천수 :
474
글자수 :
98,626

작성
13.07.17 23:14
조회
280
추천
13
글자
11쪽

19. 종전의 끝

DUMMY

19. 종전의 끝


총부리에 질려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며 군인은 딸이 생각났다. 저 나이와 비슷하리라. 지배계급이었던 자들의 씨를 말리는 게 과연 타당한 일인가. 친절했던 옆집 사람들이 생각났고 그 옛날 제자들에게 ‘피해의식을 갖지 말고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라.’라고 가르치던 선생님이 생각났다.

이렇게 내전까지 일으킨 걸 보면 분명 자기네 부족들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없는 자의 자기 비하였던가!

앞서가던 여자 아이가 갈림길에서 뒤돌아보았다.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학살장으로 이어져 이 아이와의 인연은 끝맺음된다.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작은 소녀가 낙엽처럼 구덩이 안으로 고꾸라졌다.

‘아’

불길한 예감에 소녀의 죽음을 멀리서 지켜보던 그는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멀쩡한 군복 구하기가 쉽지 않아 시간을 끄는 바람에 이런 사단이 벌어졌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제길 군복을 구하러 가지 말았어야 했다. 사람이란 게 그렇듯 불길한 예감은 쉽게 믿어 버리는 경향이 있어 집으로 돌아와 동생을 찾던 그는 동생이 없자 총성에 구덩이로 고꾸라진 소녀를 동생이라 믿어 버렸다.

그는 군복과 총을 던져 버리고 울었다. 그녀의 웃는 얼굴, 우는 얼굴, 짜증으로 가득한 얼굴...모두 그리워하면서 말이다.


3년이 흘렀다.

시간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기도 했지만 바꾸어 놓기도 했다.

내란은 어느 정도 진정 되었다. 과거 노예 계급이었다는 피해 의식에 전쟁을 일으켰던 그들도 그리 커다란 수확을 얻지 못하였고 씨가 말라 단 한 사람도 살아 있을 것 같지 않았던 과거 지배계급층들도 살아남은 자가 많았다.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전쟁인가 허탈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노예층이었기에 타 부족 살인에 동조했던 그들은 양심의 가책 때문에 자살하는 이들도 많았고, 가족 중 그들에 의해 살해당했던 살아남은 자들은 그들을 물리적으로 복수하려 하였다.

총성은 거의 멎었지만 집어삼킬 듯한 태풍의 모습으로 불신의 바람이 온 나라를 뒤덮었다.

-너니?

긴 전장에서 돌아 온 아버지는 집안으로 들어설 때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들렸는데 유령의 흐느낌 같았다. 전기가 끊겨 어두운 굴속 같은 집은 그 소리와 맞물려 음산하기까지 했다.

조심스럽게 계단을 오르면서 그는 다시 물었다.

-아들아, 너니?

-....예

반가우면서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을 거란 생각에 그는 후다닥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아들은 걸인의 모습처럼 형편없었다. 이 남자가 과연 그 옛날의 내 아들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는 아들을 껴안았다. 아들은 그의 품에서 또 울었다.

-왜 울고 있는 거냐, 집은 언제 왔니. 엄마와 동생은 어디 있는 게냐.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 작은 소리로 그러나 집요하게 물었다. 아들은 자기 눈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눈동자는 허공을 표류하였다.

-3년 전, 집을 찾아 왔었습니다. 나는 동생을 피신시키기 위해 군복을 구하러 나갔어요. 흑흑...동생 곁에 있는 건데 그랬어요. 제가, 군복을 구하러 나간 제가 바보였어요.

총소리와 함께 굴러 떨어지는 소녀의 영상이 아지랑이처럼 꾸물거렸다. 많은 사체들 가운데로 떨어져버린 소녀, 그는 동생을 보기 전까지 그 소녀가 자기 동생이라 생각했다.

동생을 죽인 놈들과 같은 종족이란 게 싫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회의가 들었다. 이제 그는 과거 지배계급을 처단해야하는 군인이 아니었다. 그는 싸우기를 거부하여 이단자로 몰렸다. 지도층에 의해 따로 분류 돼 수용소로 이송 된 그는 그곳에서 노동과 핍박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하였다.

-차라리 그게 나았어요.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그렇게 종전을 맞았으면 좋았었을 텐데 말이에요.

그는 그곳에서 동생을 보았다. 한 사내와 나란히 차를 타고 지나가는 동생을.


-그건 강압이었어요. 나도 살고 싶었기 때문에 그의 요구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어요. 나를 끌고 갔던 군인에 의해 난 그의 부인이 될 수밖에 없었거든요.

아이는 울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이 내 손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난 아이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너는 그의 딸 정도의 나이밖에 되지 않았잖아?

-후..

아이는 울음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처음에는 딸이 생각났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점점 날 여자라는 한 객체로 보이기 시작했나 봐요. 그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보다보니 내 생각이 허영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우리가 거리를 맘껏 활보하고 운동장에서 웃으면서 뛰어다니는 그때가 아니잖아요. 어쩌면 이런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는 게 행운이었는지도 몰라요.

-오빠가 구하러 올지도 모르잖아.

-그 생각을 안 한 게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러다가 오빠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거든요. 그건 내가 늙은 남자의 부인이 되는 것보다 싫은 일이었어요. 내가 사라져줘야 오빠가 위험에 빠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거지요. 오빠가 수용소에 있다는 말을 얼핏 듣고 내가 잘 살고 있음을 보여 줘야겠다 생각했어요. 남편을 구슬렸어요. 수용소가 어떤지 구경하고 싶다고요. 오빠도 보고 싶었고요.

아이는 복받치는 슬픔을 어쩌지 못하고 힘들게, 힘들게 울었다.


-너...동생을 사랑했던 것이냐?

아버지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를 죽여 버리고 싶었어요. 그자의 옆에서 창백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동생은 세상의 모든 불행을 짊어진 모습이었죠. 전 참모를 찾아가 부대에 합류하겠다고 했죠. 아버지는...아버지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널 찾아 나섰다가 군부대에 징집됐지.

-아버지도 학살에 가담하셨나요?

그는 괴로운 듯 양손으로 얼굴을 여러 번 비볐다.

-너도 알잖니. 어쩔 수 없다는 걸.

두 사람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다.

-어머니에 대한 소식은 듣지 못 했나요?

-아마 1차 대학살 때 희생당한 게 아닌가 싶다.

두 사람은 아무 말을 잇지 못했다. 정적이 물기 머금은 공기처럼 무겁게 그들의 어깨를 짓

눌렀다.

종전이라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한산했다. 전쟁 전 서로 이웃이었던 사람들이 전쟁 중에는 살인을 저지르는 자와 살인을 당하는 자로 나뉘었던 것이 살아 있는 그들에게는 상처였다. 믿음, 소망, 사랑 중 믿음이 증발해버린 것이다.

두 남자는 텅 빈 집에서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각자 다른 방-추억을 되짚어 보려는 의도가 배제 된-에 처박혀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희망도 아무런 느낌도 없이 그렇게 밝음과 어두움을 보냈다.

며칠이 흘렀는지 아들은 알지 못했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 자전거 소리...소리는 사람을 깨어나게 만든다. 죽은 사람처럼 꿈쩍 않던 아들이 자유를 상실했던 관절들을 깨우며 서서히 일어났다.

-아버지!

제일 먼저 아버지를 불렀다. 그동안 아버지에 대해 전혀 생각 않고 있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며 그를 찾아 1층의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눈이, 자기의 눈이 환상을 본 것이 아니라면 그는 공중에 떠 있었다. 사지를 늘어뜨린 채.

오빠가 식구의 죽음을 목격하고 있을 때, 동생인 그녀는 남편에게 집으로 돌아간다고 통보한 후 집을 향해 오고 있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후렴구처럼 집요하게 되돌아오는 기분 나쁜 모호함에 그녀는 초조했다. 그녀가 집근처 모퉁이를 돌때였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초조함이 현실로 되어버리는 것인가, 그녀는 사람들을 헤치고 건물 꼭대기에서 떨어진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그의 형체는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오빠...

동공이 풀린 오빠를 보자 웃음이 나왔다. 이제 모든 것이 해결 된 느낌. 어느새 모호했던 초조감도 두통이 싹 가시듯 사라지고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시원함 마저 들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이제 영원히 오빠와 함께 할 수 있다는 희망, 다시는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

건물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저곳이구나. 저기서 떨어진 거야.

웅성대는 사람들을 뒤로 건물 꼭대기를 향해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난간에 발을 디디고 아래를 보았다. 밑에 있던 사람 중 한 사람이 무심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저 위에 사람이 있어요. 저 여자도 뛰어 내리려고 해요!

그의 고함에 사람들은 그녀에게 길을 터주기라도 하는 듯 뒷걸음질 쳤다. 그러면서 외쳤다.

-하지 마!

-뛰어 내리지 마!

그녀는 오빠가 누운 옆자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랬구나. 그랬던 거였구나.

그녀가 눈을 감으려 하고 있었다. 난 그녀의 영혼을 거두어 지옥을 보내야 했지만, 이상했다. 절대로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빠와 영원히 함께 있고 싶어요.

-그래, 함께 있도록 해 줄게.

아이는 눈을 감았다. 내가 아이의 영혼을 거두지 않자 저승사자가 다가왔다. 내 무릎을 베고 누워 있는 아이와 날 번갈아 보던 사자는 아이의 손을 잡아 영혼을 일으켰다. 그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왜 지옥으로 보내지 않았지?

-당신이 알 바 아니야. 어서 저승으로 데리고나 가.

-이번 일은 너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거야.

그와 아이가 나에게 등 돌리며 돌아섰다.

-한 가지만 물어볼게.

-뭔데?

그 둘은 다시 날 향해 돌아섰다.

-지옥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지?

-지옥은 왜?

-가르쳐 줘.

-너의 꿈을 찾아가면 돼.

-나의 꿈? 그게 뭔데?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야.

저승사자는 아이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홀로 남겨진 난 그가 말한 나의 꿈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꿈? 희망은 아닐 테고, 사자들은 꿈을 통해 인간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꿈은 인간과 사자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자가 말하는 꿈이란 나에게 경고했던 그것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한 꿈을 며칠 간 계속해서 꾼 적이 있다. 어두운 곳에서 수의가 입혀진 채 수레에 실려 저승사자에게 끌려간 그 꿈. 그가 그 꿈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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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종전의 끝 13.07.17 281 13 11쪽
18 18. 아이스크림 13.07.16 597 48 11쪽
17 17. 내전 13.07.13 530 9 9쪽
16 16. 금지된 사랑-비밀 13.07.11 448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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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 몰락 13.07.09 172 12 11쪽
13 13. 불길한 꿈 13.07.08 465 16 10쪽
12 12. 가슴앓이 13.07.03 715 16 10쪽
11 11. 스타의 자리 13.07.01 638 6 10쪽
10 10. 루머 +1 13.06.23 565 7 9쪽
9 9. 스타 13.06.20 960 41 10쪽
8 8. 지옥의 불길 속으로 13.06.17 395 5 6쪽
7 7. 내가 예수니라 13.06.16 462 8 8쪽
6 6. 권총문신의 남자 13.06.14 335 3 12쪽
5 5. 드디어 사냥하기로 맘 먹다. 13.06.13 525 3 11쪽
4 4. 꿈 13.06.12 847 76 9쪽
3 3. 계약 13.06.11 1,400 44 9쪽
2 2. 망할놈의 저승사자 13.06.10 1,780 38 9쪽
1 1. 꿈 13.06.09 2,313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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