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돈까밀로 님의 서재입니다.

영혼 사냥꾼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현대판타지

돈까밀로
작품등록일 :
2013.06.09 09:04
최근연재일 :
2013.07.29 21: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16,530
추천수 :
474
글자수 :
98,626

작성
13.07.16 05:22
조회
596
추천
48
글자
11쪽

18. 아이스크림

DUMMY

18. 아이스크림


집 안으로 들어 온 아버지는 벽을 주르르 타고 앉으며 머릴 쥐어뜯었다. 그 모습은 나쁜 상상만 하고 있던 모녀의 머리를 백짓장으로 만들었다.

-여보, 무슨 일이에요. 도대체 밖에선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냐고요.

아내의 말에 그는 오열하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모녀는 가슴 밑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던 불안이 치받아 올라왔다.

-아..아빠, 오빠는... 오빠는요.

-모른다...나도 모른다.

그는 계속 울기만 하였다. 그의 모습은 밖의 실상을 투영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리라.

-당신은 그리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왜 울어요...왜 울어요..?

남편의 모습에 불안을 느낀 아내가 딸을 끌어 당겨 안으려 말했다. 딸은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다시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세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여보...우리 여기 그대로 있어야 해요? 이제 우린 어떡해요.

총성과 아내의 울음 섞인 소리에 그는 정신이 드는지 눈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을 양손으로 쓸면서 일어섰다.

-난 이 집을 떠나야 할 것 같아.

-집을 떠나다니요. 왜요?

모녀가 그를 쳐다보았다.

-부족간의 전쟁이 생각보다 심각해. 내 아들도 우리 부족 군인들에게 끌려간 것 같아. 그 아이도 당신네 부족을 죽이는 군인이 되어 있을 거야. 우리가 부부로 한 집에 있는 다는 것은 서로에게 위험해. 내가 나가리다.

-안 돼요. 아빠.

그녀가 아빠의 허리춤에 매달렸다. 그는 살며시 양딸의 팔을 빼며 말했다.

-그래야 우리 모두 살 수 있단다.

그리고 딸의 이마에 키스를 하였다. 그는 울고 있는 아내를 안아 토닥거리며 말했다.

-꼭 살아서 만납시다.

아내는 차고 있던 목걸이를 빼 그의 목에 걸어 주었다. 얇은 금으로 세공 된 겨울나무를 형상화한 팬던트로 오팔로 포인트를 준 -돌아가신 아빠가 만들어 주었다.- 세계에 하나 밖에 없는 목걸이였다. 그녀는 목걸이를 딸만큼이나 사랑했다.

아버지는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 엄마의 손목에 차 주었다.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엄마와 양딸을 끌어안고 머리에 입을 맞춘 뒤 집을 나갔다. 그가 나가고 한동안 엄마는 시계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다.

아빠가 나간 지 이틀, 그가 나간 지 일주일이 되었다. 집은 먹을 게 거의 떨어져 갔고, 총성은 가까운 곳에서 자주 울렸다. 가끔 포탄도 떨어졌다.

진공청소기로 빨아올리듯 아빠의 부족들은 아빠처럼 마을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도 살아서 다시 만나자는 말을 서로에게 했을 것이다.

아빠의 부족은 선조가 노예로 살았던 끔찍했던 기억을 잊지 않았다. 선동에 의해 혹은 마지못해 군으로 흡수된 사람들도 있기 하지만 대부분 자의로 군에 들어가 지난 날 지배계급이었던 자들을 상대로 싸우는 길을 택했다.

살상용 무기가 임무를 다하기 위해 활약을 펼치는 소리가 난무한 가운데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섞여왔다. 엄마는 유리창을 막아 놓은 나무덮개 틈으로 밖을 살폈다.

-사람들이 이리로 오고 있어.

그들은 이층으로 올라가 숨을 곳을 찾았다. 옷장, 씽크대, 침대 밑...현관문이 열리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그들은 2층 딸 아이 방에 있는 중년의 아름다운 부인을 찾을 수 있었다.

의연한 태도로 의자에 앉아 있는 그녀는 끔찍한 바깥세상과는 별개인 사람처럼 보였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거죠? 제게 볼일이라도 있나요?

옷장 안에서 딸은 떨고 있었다. 어찌나 떨고 있는지 옷장이 같이 흔들리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한 딸의 귀에 태연히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안도감을 주면서 한편으로 눈물도 나오게 만들었다. 엄마가 살인범들을 상대로 저렇게 용감하리라고는 생각도 해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사내들은 모두 다섯이었다. 여자와 부족이 다른 그들은 여자 한 명, 아니 아름다운 여인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전까지는, 저 빌어먹을 놈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당신들과 나는 서로 이웃이 아니었던가요? 얼굴도 모르는 조상들이 진 빚에 대해서 선량한 후손들이 갚기에는 억울하고 벅차단 생각이 드는군요.

-잔말 하지 말고 일어나!

서열로 따지면 대장 다음인 듯한 자가 총부리를 들이대며 말했는데, 그의 표정과 말투는 매우 위협적이었다.

-일어나죠. 나도 이 집이 싫어지고 있었거든요. 옷 좀 걸치고 따라가도 되겠죠?

대장이 그러라 했다. 그녀는 옷장을 열었다. 옷장은 사내들과 1.5미터 떨어져 옆면으로 세워져 있었는데 여자가 문을 열면 옷장의 내부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안에는 웅크린 딸이 옷들에 가려져 있었다. 그녀는 얼른 가려진 딸아이를 확인했다. 옷 틈 사이로 발가락이 보였다. 발가락은 떨고 있었다. 옷 속에 파묻힌 딸의 모습이 어떨거라 상상이 가는 부분이다. 이것이 숨바꼭질이었다면 엄마는 문을 활짝 열고 ‘내 딸, 찾았다!’라고 소리치며 웃었을 것이다. 그게 아닌 것이 가슴 쓰리도록 아플 따름이었다. 딸은 엄마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빠꼼히 내밀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아이는 웃어 주었다. 엄마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차피 마지막일 테니 예쁜 옷으로 골라 입을 시간을 주세요.

-그러죠.

대장은 인내심을 갖고 여자가 옷 고르는 것을 기다려 주었다. 몇 벌의 옷을 꺼내 거울에 비치면서

-맘에 안 들어. 이건 전 남편이 사 준 건데 이제 내 나이에 맞지 않아요. 이 옷도 마찬가지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고상하고 입체적인 것으로 사달라고 할 걸 그랬죠.

그녀는 옷을 옷장에 아무렇게나 던졌으나-그들이 보기에는- 딸아이의 발과 좀 더 자연스런 숨김을 위해 장안에 흩트려 놓고 있는 것이다.

그때 포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집이 흔들리면서 천장에서 흙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악!

그녀는 귀를 막으며 열린 옷장 문에 스르르 기대며 주저앉았다. 옷장 문은 자연스럽게 굳게 닫혀졌다.

-일어 나!

그들은 여자의 팔을 강제로 잡으며 밖으로 끌고 나갔다. 사내 하나가 여자가 앉아 있던 의자 뒤와 침대 아래와 다른 옷장을 살핀 후 밖으로 뛰어 나갔다.

옷장 안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딸은 인기척이 사라지자 소리 없이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

-타르르르르....

주민들을 한데 모아 놓고 학살하는 총성이 울렸다. 그 소리에 그녀는 ‘엄마’하고 소리칠 뻔하였다.

마을은 과거 노예였던 부족들에 의해 점령당한 것 같았다. 엄마가 끌려간 지 삼일이나 지났다. 쳐진 커튼의 작은 공간을 통해 내다본 밖은 적막하던가, 아니면 점령자들에 의해 끌려나오는 사람들과 활개를 치고 다니는 점령자들의 모습 뿐 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누비던 거리와 거리에서 마주치던 사람들의 모습은 아무데도 없었다. 이 전쟁이 언제나 끝이 나려는지...절대로 끝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밤이 찾아왔다.

불도 켤 수 없는 밤이다. 그녀는 어둠을 무서워했다. 침대 밑에서 산다는 유령이 무서웠고, 천장에서 언제 얼굴을 내밀지 모르는 유령이 무서웠다. 헌데 지금은 점령자들이 더 무서웠다. 차라리 유령이라도 나타나 준다면, 만일 엄마가 그때 그 총소리에 희생되었던 사람 중 한 사람이라면, 엄마, 제발 내 앞에 나타나 주세요.

침대 밑에 있지 말고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이라도 좋아요. 내 곁에 있어 주세요. 제발요.

그리고 그녀는 외로웠다.

침대에 기대어 쭈그리고 앉아 무서움과 외로움 중에 어떤 것이 더 싫은가 생각을 해보았다. 외로움이 더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에게 양 팔을 들고 나가 나를 잡아가라고 해 볼까. 그러한 생각도 했다. 그리고 배도 몹시 고팠다.

모든 것을 놔 버리고 싶은 그녀는 침대 안으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자다가 잡혀가도 상관없었다. 나에게 이 보다 더 나쁜 일이 어디에 있을까?

절망은 또 다른 안락함을 낳았다. 눕자마자 깊은 잠속으로 그녀를 빠뜨려 버렸으니 말이다.

파란 하늘에 구름 몇 점이 뭉쳐 흘러가고 산들 바람에 머리칼이 날렸다.

그녀와 오빠는 학교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은 상채를 다 가릴 만큼 컸고 그녀는 그 아이스크림을 핥아서 다 먹었다. 그래도 배가 차지 않았다. 이번에는 오빠가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같이 핥아 먹었다.

오빠는 배가 부르다고 했다. 그녀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하지만 오빠 것을 다 먹어버리지는 않을 거라 했다.

-뭘 그렇게 맛있게 먹니?

바람결에 들려오는 말이었다. 그 목소리에 오빠는 사라져버리고 그녀는 눈을 살며시 떴다.

-꿈을 꾸고 있었구나.

-오빠?

오빠였다. 벌떡 일어나 오빠를 보았다. 수염이 많이 자란 얼굴은 몰라보게 수척해져 있었다.

-오빠.

그녀는 오빠를 껴안았다. 오빠도 그녈 껴안았다.

-아버지는? 어머니는?

그녀는 울면서 부모에 관해 얘기 해 주었다. 그도 계단을 올라오면서 너무도 조용한 그리고 아무렇게나 뒹구는 식탁의자와 주방 용기들을 보며 동생이 말하고 있는 일들이 일어났을 거란 짐작은 했었다. 그런데 막상 현실로 닥치고 보니 감정이 이걸 받아들이는 걸 거부하였다.

그는 머릴 쥐어뜯으며 울었다. 도대체 자기가 왜 군에 들어가 누굴 위해 애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었던가. 그러한 회의와 자괴감에 죽고 싶었다.

-오빠, 나 이곳에서 도망가고 싶어. 여길 나가면 살 수 있을까? 이곳은 하루에도 몇 번씩 놈들이 들어와. 난 그들을 피해 숨어 있어야 되는데, 세탁기 안에도 숨었고, 씽크대 안, 욕조 안, 침대 밑, 옷장...이젠 피할 기력도 없어. 이러다 언젠가는 잡히겠지...다른 곳으로 도망가자.

-그래. 그렇게 하자.

그가 보기에도 숨어 지내기에 썩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 그는 어떻게 놈들의 눈을 피해 동생을 피신시킬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녀에게 군복을 입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동생에게 군인으로 변장 시킬 옷을 구하러 다녀오겠다고 한 뒤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오빠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커튼 뒤에 숨어 지켜보았다. 그가 나간 지 30분 쯤 지나자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오빠.

반가운 맘에 그녀는 문을 열고 나갔다.

-꼼짝 마.

그는 군인이었다.

이 집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먹을 것을 찾으러 올라오던 중이었던 것이다.

그는 동생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밖으로 나가라 했다. 그녀는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영혼 사냥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4 24. 분노 13.07.29 387 43 9쪽
23 23. 용암속의 사형수 13.07.28 554 24 8쪽
22 22. 지옥으로 가다 13.07.23 467 21 8쪽
21 21. 곡소리 13.07.23 368 3 7쪽
20 20. 죽음의 강 13.07.19 449 8 9쪽
19 19. 종전의 끝 13.07.17 280 13 11쪽
» 18. 아이스크림 13.07.16 597 48 11쪽
17 17. 내전 13.07.13 530 9 9쪽
16 16. 금지된 사랑-비밀 13.07.11 448 6 9쪽
15 15. 남매 13.07.11 882 12 8쪽
14 14. 몰락 13.07.09 172 12 11쪽
13 13. 불길한 꿈 13.07.08 465 16 10쪽
12 12. 가슴앓이 13.07.03 715 16 10쪽
11 11. 스타의 자리 13.07.01 638 6 10쪽
10 10. 루머 +1 13.06.23 565 7 9쪽
9 9. 스타 13.06.20 960 41 10쪽
8 8. 지옥의 불길 속으로 13.06.17 394 5 6쪽
7 7. 내가 예수니라 13.06.16 462 8 8쪽
6 6. 권총문신의 남자 13.06.14 335 3 12쪽
5 5. 드디어 사냥하기로 맘 먹다. 13.06.13 525 3 11쪽
4 4. 꿈 13.06.12 846 76 9쪽
3 3. 계약 13.06.11 1,400 44 9쪽
2 2. 망할놈의 저승사자 13.06.10 1,780 38 9쪽
1 1. 꿈 13.06.09 2,313 1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