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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밀로 님의 서재입니다.

영혼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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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밀로
작품등록일 :
2013.06.09 09:04
최근연재일 :
2013.07.29 21: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16,548
추천수 :
474
글자수 :
98,626

작성
13.06.09 09:11
조회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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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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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 꿈

DUMMY

1. 꿈


나의 귀는 열려 있는데 마치 날 죽은 사람 취급을 하고 있다. 이사? 꽃상여 타고 이사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누구의 발상인지 웃음도 안 나오는군. 억만 번의 지옥 불을 밟더라도 지금 꽃상여 운운하는 자들과 함께 죽어가는 객체를 바라보며 나란히 서 있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어. 지구의 모든 무덤을 파헤쳐 죽은 자의 간을 빼내 먹으라면 그렇게 하겠어. 그러니 제발 날 살려줘.


꿈이었다. 눈만 감으면 꿈을 꾼다. 아니 눈을 뜨고 있어도 꿈을 꾼다. 이제는 현실과 꿈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꿈은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언제였나.

길을 걷고 있었다. 세상은 흑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어두운 모양새를 봐서는 깊은 밤 어느 외진 곳 그리고 무겁게 흐린 날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바늘로 이 어둠을 찌르면 밝은 빛이 바늘구멍으로 쏟아져 들어 올 것 같았다. 두꺼운 외투는 밤의 습기로 축축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기 때마다 길은 강력분 밀가루를 반죽해 놓은 것처럼 두 다리를 붙들고 늘어졌고 발을 들어 한 발 앞으로 떼어 놓으면 강력분 밀가루의 성능은 한 층 더 세져만 갔다. 이제 앞으로 나아갈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목이 말랐다. 눅눅한 습기는 살 속까지 파고들었다. 빌어먹을 길을 저주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군가의 술수에 걸려 든 것처럼 불길했다. 내가 왜 이 길로 왔을까, 어떡하다 이 길로 들어섰을까, 내가 가려고 했던 곳은 어디일까...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공기도 빨아들일 것 같은 고요함, 울고 싶었다.

-누구 없어요?

공허함.

-살려 주세요.

나의 외침에 아무도 답해 주지 않았다. 하다못해 쥐새끼 하나 길고양이 하나 없는 것 같았다. 기진맥진 힘들어진 난 주저앉아 버리고 싶었지만 내 두 발을 묶고 있는 진흙 때문에 앉을 수 없었다. 그랬다간 내 몸마저 저 흙 속에 박혀 버리고 말테니까.

그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았다. 어둠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난 아랫배에 힘을 주고 힘차게 도와달라고 외쳤다. 그러나 소리는 입으로 나와 내 귓바퀴를 두어번 돌다가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다시 외쳤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소리는 마치 수증기처럼 증발돼 버렸으니까. 하는 수 없이 소리가 나는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나마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소리는 점점 내게로 가까워졌다. 이상했다.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불길한 느낌이 날 휘감았다.

‘아!’

눈을 떴다. 그러나 내가 뜬 건 눈이 아니었다. 정신이었다. 내 눈은 멍한 상태로 죽음도 삶도 아닌 경계에 있을 뿐이다. 옆에는 아무도 없다. 내가 임종이 가까워 졌다는 전달을 받을 때 비로소 가족은 모일 것이다.

엄마, 아빠, 남편, 아들, 딸. 내 또릿한 정신으로 이들을 한번 안아 봤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눈을 맞추며 사랑한다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모든 게 정상적으로 편안히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허둥대는 모습으로 옆에 있지 않을 때, 가족들이 빙 둘러 서 있지 않을 때, 그리고 고요함이 바다처럼 흐를 때, 그 고요함의 바다를 내 컨디션을 체크하는 기계가 유영하고 있을 때, 그리고 하늘이 나를 데려가기 위해 서서히 열리는 낌새가 전혀 없을 때, 이럴 때가 나에게는 모든 게 정상적인 상황이다.

내 코와 입을 덮고 있는 인공호흡기를 느껴보려 눈을 감았다.- 사실 눈이 감긴 건 아니다. 내 의지대로 눈꺼풀을 내릴 수 없다.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한 것뿐이다. -한 동안 호흡기를 생각했다. 내 모습을 내가 볼 수 있다면. 내 목숨을 연장시켜주고 있는 호흡기는 간혹 날 힘들게 했다. 어쩌다 호흡이 스스로 될 때가 있다. 이걸 알 리 없는 호흡기는 습관처럼 산소를 내 폐로 밀어 넣는다. 폐가 터져버릴 것-벌린 입안에 한 치의 공간도 없이 물을 따라 놓고 물을 마시기 위해 입을 오므려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처럼 괴롭다. 그러나 난 이미 죽은 자와 같이 그 괴로움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의 눈에 띌 정도로 오래 간다면-내가 자가 호흡하고 있다는 걸 의사가 증명해 준다면- 사람들은 내가 살아난 양 흥분하겠지. 그리고 호흡기를 떼고 날 관찰하겠지. 정말이지 사람들이 가만히 서서 날 뚫어지게 바라보는 게 싫다. 울부짖는다. 제발 나를 쳐다보지 말라고.

언제는 엄마가 아버지와 함께 오셔서 반나절을 내 손을 꼭 쥐고 있는 통에 어깨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제발 손 좀 놔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아무도 내 소리를 듣지 못했다. 우리 집 강아지를 갖다 놨더라면 아마 내 소리를 들었을지도. 녀석은 귀가 밝았으니까. 다행히도 해질 무렵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실 듯 보였다. 마지막으로 엄마는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시더니 다음에 또 오시마 하시며 한 손으로 내 손등을 툭툭 치셨다. 난 악소리가 났다. 팔이 어깨 관절로부터 떨어져 나온 느낌이었다.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놀라지 않고 계시는 걸 보니 다행히도 내 팔은 어깨 관절에 잘 붙어 있는 모양이다. 설마 암세포가 어깨까지 갉아 먹고 있는 건 아니겠지. 드디어 엄마가 내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휴- 밧줄에서 풀려난 느낌이었다. 비록 앙상하고 뻣뻣해지긴 했어도 나의 피와 영양분을 나누어 갖는 몸의 일부분이 아닌가.

인공호흡기가 내 호흡을 대신 해주고 있는 한, 나는 스스로 숨을 쉬지 않아도 된다. 나의 에너지를 조금 더 아껴 주고 있는 호흡기에게 감사를 해야 하나.

바시락.

소리가 들렸다.

바시락.

낯선 소리다. 조심스럽게 뭔가를 행하는 소리. 도둑인가?

바시락.

아! 누군가 이곳에 침입한 것이다. 제발, 누구 없어요? 도둑이에요!

바시락 바시락...

뭔가를 뒤지고 있는 것 같다. 제발...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릴 수 있게 해 주세요. 하나님!

‘아!’

고개가 돌아갔다. 영원히 정지 된 채로 한 자리 만을 지키고 있을 줄 알았던 목이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눈을 덮고 있던 죽음의 꺼풀이 올라갔다. 빛이 보인다. 하나님이 내 말을 들어 준 것일까.

-헉!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오늘 죽을 거다. 내일 죽을 가다. 하면서 날을 받아 놓은 할머니였다. 내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꺼풀이 올라간 순간, 날 뚫어져라 보고 있던 할머니의 눈과 마주친 것이다. 할머니의 얼굴과 내 얼굴의 거리는 불과 20cm도 안 될 것이다. 건강한 시절 내 시력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헌데 지금은 떠다니는 공기 입자가 보일 정도로 모든 것이 매우 선명하게 보였다. 이것이 얼마나 괴롭고 두려운 일인가 지금 깨닫고 있는 중이다.

-괜찮으세요?

할머니의 얼굴은 매우 창백했고, 염색물이 빠진 머리칼은 아무렇게나 뒤엉켜 머리통에 붙어 있었는데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난 매 순간 괴롭힘을 당했었어. 네가 눈을 멀거니 뜨면서 꿈을 꾸고 있을 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알기나 해? 저승사자가 내 목을 비틀어대고 있었어. 그러면서 내 귀에 대고 속삭였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는 지옥을 내 눈 속으로 집어넣었어.

-하지 마세요. 제발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마세요.

난 내 귀를 막으며 흐느껴 울었다. 당신이 괴롭힘을 당할 때 나 또한 편하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그러니 조용히 곱게 떠나라고 말했다.

-너무 힘들어 너를 불렀지. 하지만 너는 꿈속을 헤매느라 나를 모른 척했어. 저승사자가 묻더군. 뭘 해 줄까? 하고. 대답했지. 눈만 멀뚱 뜨면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 저년의 목에 내 손톱을 꽂게 해 달라고.

-왜 나에게 그러세요. 나와 할머니는 똑같은 처지란 말이에요.

-똑같은 처지라고?

갑자기 할머니의 눈알이 앞으로 쏟아질 듯 커졌다. 앙상한 얼굴에 동공 풀린 흰 눈은 정말이지 끔찍했기 때문에 날 죽일 듯 달려드는 할머니를 어쩌지 못했다. 양 팔로 두 눈을 가렸다.

-할머니 제발 가 주세요.

내가 가달라고 하면 할수록 할머니의 분노는 타올랐다.

-네 눈엔 저승사자가 보이지 않아? 저 망할 놈의 사자가 매일 밤 내목을 비틀고 내 배 위에 올라와 가슴을 짓누르며 갈고리 같은 혀로 내 얼굴을 핥았는데도 넌 그 놈이 보이지 않아?

할머니가 괴로움을 당하는 동안 모른 척해서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그제야 할머니의 분노는 사그라들었다.

-나도 꿈을 꿨었지. 저 놈이 내게 달라붙기 전까지 매일 같은 꿈을 꾸었어. 어둠속을 헤매이다 끈적거리는 진흙탕에 발이 빠져 오도 가도 못하는 그러한 꿈이지.

내가 꾸고 있던 꿈과 같았다.

-그 꿈이 끝나면 저승사자가 달라붙어 목을 비트나요?

-누군가를 애타게 불렀어, 나 좀 꺼내달라고. 하지만 내 소리는 어둠이 잡아먹어 곧 사라져버리고. 그렇게 버티고 서 있기도 힘들었지.

-나도 그 꿈을 꾸었어요.

난 또 다시 흐느꼈다. 할머니는 회상 하 듯 말을 이었다.

-그 때 뭔가 내게로 다가오는 소리가 났어. 그 소리는 아주 불길했지.

-제발...할머니 제발. 날 좀 내버려 두세요.

갈 갈 거리며 할머니가 웃었다. 웃음소리의 80%는 가래 끓는 소리였고 20%는 폐안에 남아 있는 공기가 목을 넘어오는 소리였다. 유쾌하지 못한 웃음을 웃고 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눈두덩을 빠져나올 것 같은 초점 없는 커다란 눈알은 허공을 향하고 있었고, 임종 후 빼 버릴 틀니 덕분에 아직은 형태를 갖추고 있는 입은 웃음을 내보내느라 아주 크게 벌어져 있었다. 그 틈으로 하얗게 테 낀 혀가 꿈틀 거렸다. 난 숨을 몰아쉬었다.

-이젠 내 차례잖아요. 할머니가 미리 날 괴롭힐 필요는 없어요. 가세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의 얼굴은 금세 웃음이 사라졌고 체념한 듯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보는 할머니의 모습은 연약했으며 매우 쓸쓸했다.

-데려가요. 천당인지 지옥인지 어서 날 데려가요.

벽에 대고 할머니가 외쳤다.

-으악!

난 까무러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할머니의 부탁에 답을 하기 위해선지 천장에 가까운 벽 모퉁이에서 갑자기 몸통 없는 얼굴이 하나 쑥 나타났기 때문인데, 그는 내 비명소리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얼굴은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고-어쩌면 그 보다는 덜했을지 모른다. 머리칼이 흰색이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이 더 검게 보였을 수도 있다.- 입꼬리 한 쪽이 올라간 붉은 입술 때문에 매우 교활해 보였다. 빨간 눈동자는 팥알만큼 작았다.

-으악!

난 다시 한 번 더 비명을 질렀다. 얼굴 옆에서 팔짱 낀 몸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가 보여주는 마술쇼를 더 이상 관람하고 싶지 않아 이불을 뒤집어썼다.


새벽.

교대 간호사가 환자 체크를 하다 할머니의 죽음을 발견하였다.





작가의말

문피아가 새롭게 단장하는 바람에 다가가지 못하고 망설였었어요.

이제 글을 올립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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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 곡소리 13.07.23 369 3 7쪽
20 20. 죽음의 강 13.07.19 450 8 9쪽
19 19. 종전의 끝 13.07.17 281 13 11쪽
18 18. 아이스크림 13.07.16 597 48 11쪽
17 17. 내전 13.07.13 531 9 9쪽
16 16. 금지된 사랑-비밀 13.07.11 449 6 9쪽
15 15. 남매 13.07.11 883 12 8쪽
14 14. 몰락 13.07.09 173 12 11쪽
13 13. 불길한 꿈 13.07.08 465 16 10쪽
12 12. 가슴앓이 13.07.03 716 16 10쪽
11 11. 스타의 자리 13.07.01 639 6 10쪽
10 10. 루머 +1 13.06.23 566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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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꿈 13.06.12 847 76 9쪽
3 3. 계약 13.06.11 1,401 44 9쪽
2 2. 망할놈의 저승사자 13.06.10 1,780 38 9쪽
» 1. 꿈 13.06.09 2,315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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