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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밀로 님의 서재입니다.

영혼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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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밀로
작품등록일 :
2013.06.09 09:04
최근연재일 :
2013.07.29 21: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16,535
추천수 :
474
글자수 :
98,626

작성
13.07.19 22:55
조회
449
추천
8
글자
9쪽

20. 죽음의 강

DUMMY

20. 죽음의 강


축축한 어둠 위를 걸었다. 꿈속의 길을 찾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단서도 없고 내가 가 봤던 곳도 아니고, 짙은 현실의 어둠과 내 맘의 답답한 어둠이 서로 희석되어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공간보다 훨씬 다양한 구조의 공간이라 일일이 뒤지고 다닌다는 건 영겁의 세월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그 아이의 오빠를 찾아 저승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그 일에 대한 뒷감당이 어떤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난 내 양심이 시키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다.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깊은 상념에서 깨어날 무렵, 난 나의 눈을 의심하였다. 어둠이 가시고 여명이 드리워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밤의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것인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양팔을 벌렸다. 상큼한 새벽의 기운이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기분에 내가 인간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야무지군.

-...?

돌아보니 귀엽게 생긴 아이였다. 아이보리 계통의 무릎 위까지 오는 원피스를 입었고, 머리칼은 짙은 검은색이었다. 아이를 보는 순간, 피터팬에 나오는 팅커벨이 생각났다. 그리고 요정이란 단어도 떠올렸다.

-후후...

아이는 귀엽게 웃으며 말했다.

-영의 세계는 생각하는 대로 보이는 것뿐이야.

-혹시 내 생각을 읽는 거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의 양 볼에 보조개가 쏘옥 들어갔다.

-생각한 대로 보이다니? 그게 무슨 말이니?

-밝은 세상에 감탄한 당신은 지금 무얼 봐도 아름답게 보일거야. 그중 하나가 나일 테고 말이야.

-그럼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거란 말이니? 그리고 넌 어린데 왜 나에게 반말을 하고 있니?

아직 나이에 관해서 자유롭지 못한 난 그 점을 집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자, 생각을 달리해서 나를 봐봐. 어둡기만 했던 영혼의 길, 무섭게 노려봤던 길의 영혼들, 무덤속의 할머니...

아이가 말한 대로 난 눈을 감고 무서운 생각들을 끄집어냈다.

-자, 눈을 떠봐.

눈을 살며시 뜨며 아이를 보는 순간 난 경악을 하고 말았다.

-악!

그랬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끔찍한 아주 끔찍한 몰골의 형상이 내 앞을 막고 서 있는 것이었다. 길쭉한 키에 땅까지 질질 끌리는 망토와 허접한 밀짚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싫어했던 두껍고 긴 혀에 돌기처럼 올록볼록 꿈틀거리는 구더기들. 손가락은 마디마디 꺾여 흔들거렸으며 그는 흔들거리고 있는 손가락이 재미있는지 계속 흔들어 댔다. 턱은 앙상했기에 저것이 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침대에서 봤던 그 빌어먹을 저승사자 보다 훨씬 더 흉측한 모습이란 것이다. 그의 모습이 그리울 정도다.

-이. 이 모습이 너였니?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이 모습이 내가 아니라, 이런 모습으로 보는 게 바로 너란 거야.

-....?

-생각한 대로 보인다고 했지. 자, 그럼 생각을 바꿔봐.

그 말이 옳은 듯했다. 생각을 바꾸는 것. 다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참 묘한 심술이었다. 다른 모습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리면서 온갖-내가 인간이었던 시절 인터넷에서 보았던 우스꽝스러운 사진으로부터 좋아했던 스타, 날 사냥하려했던 멋있는 남자까지-것들이 떠오르는 거였다. 그러다 결국은 구관이 명관이란 진리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원점으로 돌아왔다.

-반갑구나.

아이는 생글거리며 나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나는 아이와 함께 오빠를 찾으러 떠났으면 하고 생각하자 아이는 곧장 반응을 보였다.

-어려울 것도 없지. 하지만 그 길은 매우 위험하고 험난할 거야. 나야 심심하니까 일부러 모험을 즐기는 스타일이지만 말이야. 후후

-물어볼게.

난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얻으며 말했고, 동시에 수백 가지의 단어가 머릿속에서 조립되어지고 있었다.

-생각을 읽지 말아 달라는 거지. 그리고 어둠이 너의 생각에서 나온 소품이었는지...

-그래, 내 생각을 내 입으로 말할 때까지 읽지도 말고 답도 하지 마. (잠시 뜸) 정말이야? 내가 생각한데로 보인다는 게.

-후후..그래.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아름다운 생각, 아름다운 느낌, 그리고 편안한 맘. 그러자 스쳐가는 영혼들이 천사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영혼의 세계가 이렇게 단순한 거였나?

-그렇다고 그리 만만하게 보면 안 돼. 많은 윤회를 겪은 너지만 영혼 사냥꾼이라는 타이틀로 이곳에 장시간 정착해 있는 것은 처음이니까 말이야.

아이의 말이 맞을 것이다. 이 아이는 이곳을 터전으로 삼고 있는 영임에도 어린 아이로 보인다는 이유 때문에 아이의 말이 가끔은 가소롭게 들리니 말이다.

이곳에 온 이후 처음으로 난 공포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동안 어둠에 싸여 지내온 것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니까.

-지옥문을 찾으러 가자.


또 다시 연무가 시작되었다. 나의 상상이라 생각하며 짙어오는 연무를 쫓으려 하였으나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건 상상이 아닌가?

-응. 저만치 강이 흐르기 때문이야. 자, 들어 봐.

숨소리를 죽이며 귀를 기울이자 곡소리인지 물소리인지 비현실적인 음이 계속 끊길 듯 이어졌다. 그 소리는 분명 섬뜩하였지만 가슴을 후벼 파는 짠함이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곡소리가 들려.

내 목소리는 무심하게 나왔다.

-저 소리는 물소리처럼 끝일 날이 없을 거야.

난 아이를 돌아보았다.

-저 강이 바로 죽음의 강이기 때문이야. 이리와 봐.

아이는 앞장서서 걸었다. 죽음의 강...스타 때문에 저수지에 몸을 던져 죽은 아이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 아이의 혼령을 보고 물에 빠져 죽은 매니저도 생각났다. 그들이 죽은 강과 이 강이 오버랩 되면서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연무는 점점 짙어졌다.

-조심해. 강에 빠지면 안 돼.

-왜?

-강에는 죽음의 사자들이 득실거리거든. 강에 빠지기라도 하면 그들은 순식간에 달려들어 영혼을 수습해 가 버리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말이야.

-무섭군.

나와 아이는 강에서 좀 떨어진 곳에 섰다.

-삐거덕...삐거덕...

노 젓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도 명료한 노 젓는 소리와 비현실적으로 들려오는 곡소리는 서로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배가 가는 길이 우리가 서 있는 길을 지나가는 것인지 근처로 다가왔다. 한참 클 것 같은 짙은 회색빛의 누더기 망토를 뒤집어 쓴 사자는 몹시 말라 있었다. 앙상히 뼈만 남은 두 손으로 노를 젓고 있었는데 그가 만일 인간이었다면 동정심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을 일이었지만 사자라는 사실이 나의 모든 걱정과 동정을 닫아 버렸다.

그 앞에 어깨를 움츠리고 앉아 있는 사내가 있었다. 아마도 이 자가 생을 다해 사자에게 끌려가는 중이리라.

그자는 가끔 곡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기도 하였다.

-저렇게 끌려가는 거구나.

평범히 살아 온 영혼들의 한결같은 모습일 것이다.

배는 우리 곁을 스쳐갔다.

나와 아이도 몸을 돌려 죽음의 강을 떠나려할 때 소동이 벌어졌다.

-가지 마! 가지 마!!

거의 창자가 끊어질 듯한 소리였기에 나는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직감에 사로잡혀 소리 나는 쪽으로 뛰었다. 아이도 덩달아 뛰었다.

남자가 탄 배를 잡으며 여자가 악을 쓰고 있었다. 두 사람은 연인인 듯싶었다. 남자는 모든 걸 체념하려는 것 같았지만, 여자는 그러지 아니하였다.

-너 혼자서 못 가. 나도 데려가. 이봐요. 이봐요. 나도 데려가요.

그녀는 노를 저으려는 저승사자의 다리를 붙잡으며 강에서 폴짝폴짝 뛰었는데, 그 모습은 배로 올라타려는 것 같았다.

-이미 강은 죽음의 강이라 여자도 곧 실려 가고 말거야. 하지만 여자는 자기의 명을 자기가 재촉한 결과라 저승으로 곧게 가지는 못할 거야.

아이가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보았다. 미세한 검은 그림자가 강을 거슬러 오고 있는 것을. 저 그림자, 내가 지옥으로 영혼을 보내고자 할 때 그림자가 저런 식으로 왔었다. 그렇다면 저 여자는?

-지옥으로 가는 거니?

-아마도.

지옥?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손을 떼고 너가 있는 곳으로 가. 당장 가. 그러다 너 마저 죽게 된단 말이야.

남자가 다급하게 그러나 최대한 안정 된 목소리로 여자를 달래며 말했다

-나도 따라 갈 거야. 너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걸.

남자가 던진 말이 여자에게는 위로였을까, 순식간에 여자는 평온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자가 빈약한 감상에 빠져 있기에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남자와는 절대로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남자는 새로운 생을 얻을 테지만 여자는 지옥에서 죽을 수도 없는 형벌을 겪을 거라는 사실, 그리고 남자는 원하면 얻어지는 인간다운 인간으로의 삶을 택할 수 있겠지마는 여자는 원할 수도 없는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거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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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 분노 13.07.29 387 43 9쪽
23 23. 용암속의 사형수 13.07.28 554 24 8쪽
22 22. 지옥으로 가다 13.07.23 468 21 8쪽
21 21. 곡소리 13.07.23 369 3 7쪽
» 20. 죽음의 강 13.07.19 450 8 9쪽
19 19. 종전의 끝 13.07.17 280 13 11쪽
18 18. 아이스크림 13.07.16 597 48 11쪽
17 17. 내전 13.07.13 530 9 9쪽
16 16. 금지된 사랑-비밀 13.07.11 448 6 9쪽
15 15. 남매 13.07.11 883 12 8쪽
14 14. 몰락 13.07.09 172 12 11쪽
13 13. 불길한 꿈 13.07.08 465 16 10쪽
12 12. 가슴앓이 13.07.03 715 16 10쪽
11 11. 스타의 자리 13.07.01 638 6 10쪽
10 10. 루머 +1 13.06.23 565 7 9쪽
9 9. 스타 13.06.20 960 41 10쪽
8 8. 지옥의 불길 속으로 13.06.17 394 5 6쪽
7 7. 내가 예수니라 13.06.16 462 8 8쪽
6 6. 권총문신의 남자 13.06.14 335 3 12쪽
5 5. 드디어 사냥하기로 맘 먹다. 13.06.13 525 3 11쪽
4 4. 꿈 13.06.12 847 76 9쪽
3 3. 계약 13.06.11 1,400 44 9쪽
2 2. 망할놈의 저승사자 13.06.10 1,780 38 9쪽
1 1. 꿈 13.06.09 2,313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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