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브랜드 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을 위하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브랜드킴
작품등록일 :
2021.05.13 21:41
최근연재일 :
2022.11.17 22:25
연재수 :
98 회
조회수 :
92,326
추천수 :
2,887
글자수 :
580,477

작성
21.09.26 14:40
조회
293
추천
13
글자
16쪽

18. 급전직하急轉直下(3)

DUMMY

"크아악-!"


정면에서 쇄도해 오던 세 명의 인물들이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창현의 손에서 번쩍인 빛이 은색 반원을 그림과 동시였다. 허리에서 피분수가 솟구쳐 오르고,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세 사람은 순식간에 상하가 분리된 여섯 조각의 고깃덩어리로 변해 버렸다. 실로 눈 깜빡할 새였다.


"아니?!"


장내의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은 표정을 지으며 제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명모를 조롱하던 인물, 십부장(十夫長) 상민 역시도 놀라움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어느새 꺼내든 날카로운 단창이 창현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저것이 원인일 거였다.


상민은 말도 안 된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단지 두 명뿐이다. 게다가 산짐승같이 지저분한 몰골에 어느 모로 봐도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놈들이 아닌가. 정택의 경고가 있긴 했으나 대양군 일개 조 전원이 힘을 써야 할 만큼 대단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셋이나 당하고 말았다. 그것도 몸통이 동강 나는 참혹한 모습으로.


사람이 낼 수 있는 힘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상대는 둘 뿐이고, 이쪽엔 아직 자신을 포함해 여덟이나 남았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녀석도 사람이라면 결국엔 별수 없을 거라고 상민은 다시 속으로 되뇌었다. 곧 그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튀어나왔다.


"조져버려!"


귀를 울리는 호령에 남은 군인들이 낯빛을 잔뜩 굳히고 움직였다. 본 것이 있는지라 종전처럼 무모하게 덤벼들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겁에 질려 몸이 굳은 것 같지도 않았다.


이전 정택을 만났을 때 숲에서 느껴지던 기묘한 압박감이 창현의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기습적인 휘두르기로 이득을 보았으나 서서히 조여오는 그들의 기세는 사실 만만히 볼 게 아니다.


긴장감을 느끼던 창현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들이 바로 수없이 들었던 대양의 군인임을 말이다. 짧으나마 군인들과 같이 생활하기도 했는데 왜 진작 알아보지 못했을까. 저들이 가진 적의가 눈을 가렸음이 분명하다.


"흐아압!"


쓸데없는 생각에 잠시 정신이 팔린 사이, 정면과 좌우 측면에서 다시 세 명이 짓쳐 들어왔다. 그들은 전부 양날의 긴 칼을 썼는데 크게 튀어 오르며 휘두르는 모습이 자못 위협적이었다. 창현은 거기에 맞서 창을 길게 잡고 허공에 비질하듯 좌우로 털어냈다.


촹-! 촤촹!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지고, 달려들던 인물들은 모두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비척비척 뒷걸음질 쳤다. 창현도 한걸음 뒤로 물러서긴 했지만 그들에 비해 훨씬 양호해 보였다.


그러나 창현은 마냥 여유롭게 있을 수 없었다. 방금 물리친 세 명뿐만 아니라 나머지 군인들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어느새 뒤로 돌아온 군인들이 거세게 들이닥쳤다. 참으로 시기적절한 순간이었다.


휙 하고 고개를 돌린 창현의 눈앞으로 작은 점들이 크게 확대되어 들어왔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반응했다. 고개를 젖혀 쏘아지는 점들을 피해내고 창을 뻗어 내지르는 일련의 동작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풀어져 나왔다.


챙! 챙! 챙!


경쾌한 금속성이 들리고 나서야 창현은 자신이 쳐낸 그 작은 점들이 실은 무기의 끝부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뒷덜미가 오싹해졌다.


공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까 물러섰던 이들이 다시 공격하기 시작한 덕분에 창현은 쉴 틈 없이 움직여야만 했다. 처음 당했던 것은 순전히 방심이었을 뿐이라고 웅변하듯, 이어지는 그들의 연환공격은 매우 질서 있고 체계적이었다.


두 명이 공격을 하면 나머지는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 방어와 동시에 후속타를 준비하는 식이었다. 서로의 간격이 매우 효율적이라 방해가 되는 일은 일절 없었으며, 공수의 전환 역시 번개처럼 빨라서 상대하는 입장에선 속수무책으로 계속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하루 이틀 손을 맞춘다고 되는 일이 결코 아니다. 그들의 성정이야 그렇다 쳐도 대양에서 갈고닦은 실력 하나만큼은 진짜라고 해야 할 터였다. 계속되는 연수합격에 창현의 기력은 점점 메말라 가고 있었다.


괴물들과 처절한 사투를 치르며 쌓아온 실전경험은 그동안 창현에게 많은 도움이 되어 주었지만, 이 순간엔 그것도 별 소용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간끼리의 싸움, 게다가 병기를 든 다수와 맞붙는 싸움이란 그에게 맞지 않는 옷과 같이 매우 어색했기 때문이다.


창현이 다급하게 몸을 한 바퀴 휘돌렸다. 정면에서 찔러오는 칼에 반응하던 순간, 뒤에서도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졌던 탓이다. 그 절묘한 시간차 공격에 창현은 젖 먹던 힘까지 전부 끌어다 써야 했다.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앞뒤의 공격을 모두 걷어냈다 싶었으나, 이번엔 좌우에서 공격이 감행되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마음 놓을 곳이 없었다. 창현은 깊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른쪽을 먼저 쳐 나갔다. 오른손잡이기에 당연한 선택이었다.


캉! 캉!


단 두 번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차단한 창현이 왼쪽에서 들어오는 칼로 시선을 돌릴 때였다. 걷어낸 줄로만 알았던 칼이 그의 창을 타고 뱀처럼 휘감아 들어오고 있었다. 창현은 심장이 내려앉을 만큼 크게 놀랐다.


서걱!


급히 몸을 뒤틀었으나 끝내 어깨에서 한 덩이 살점을 떼어주고야 말았다. 피 맛을 본 칼은 만족한다는 듯 물러갔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왼쪽에서 쇄도해 오던 다른 칼이 있지 않았던가. 어깨에서 느껴지는 격통만큼이나 강렬한 위기감이 머릿속에서 쉼 없는 경종을 울려댔다.


캉!


이번엔 정말 위험하겠다 싶은 순간, 예상치 못한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너...!"


창현이 입을 뻐끔거렸다. 거친 공세에 잠시 장외로 밀려났던 명모가 어느새 창현의 옆에서 칼을 막아서고 있었다. 힘을 주어 칼을 떨쳐낸 명모가 뒤돌아보며 말했다.


"니 혼자 잘난 체하지 말랬지?"


명모의 개입 이후 싸움의 양상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일방적으로 당하던 종전과 달리, 서로 등을 맞댄 상태로 차츰 반격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체력이 많이 떨어진 명모는 수비 일색이었지만 냉정하게 자리를 지키는 싸움을 했고 덕분에 뒤가 든든해진 창현은 본격적으로 진짜 힘을 발휘했다.


"그럼 잘난 걸 어떻게 하라는 거냐!"


크게 창을 휘두르며 소리치는 창현의 모습이 사뭇 진지해서 과연 저 소리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 말에 뒤돌아 있는 명모는 픽 하고 웃어 버렸다. 농담이어도 웃기고, 진담이라면 더욱 웃겼던 것이다.


창현은 이제 살인이라는 죄책감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있었다. 인간임에 집착하여 스스로 구속하던 족쇄를 벗어버리자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인가. 이어지는 싸움 동안 그의 몸놀림은 점점 빨라졌고 휘두르는 창에 막강한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정면과 왼쪽에 섰던 군인들은 결국 그런 창현을 막지 못하고 땅에 쓰러지고야 말았다. 목과 가슴에 구멍이 뚫린 사람은 서 있을 수 없는 법이므로.


"크윽-!"


"커헉-!"


순식간에 두 명을 해치운 창현이 이번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어깨를 썰었던 군인을 쳐다보았다. 동료들의 죽음에도 그는 냉철함을 유지하고 있있었다.


아까와 같은 상황을 노리는 것인지 그는 계속 칼끝을 기묘하게 흔들거렸다. 그러나 한번 당한 것을 또 한 번 당해 줄 창현이 아니다. 시기를 계산하던 창현은 한발 앞서 쾌속하게 팔을 내뻗었다.


뱀의 머리를 찍어누르듯 정확하게 칼 끝을 찍어 눌렀다. 그 빠름과 힘에 압도된 군인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손목을 움켜쥐는 모습을 보니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지만,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생각보다도 창은 훨씬 더 길었고, 또 훨씬 빨랐다.


푸욱!


냉혹하리만치 정확하게 심장을 꿰뚫은 창이 머리를 흔들며 빠져나갔다. 안색이 흐려지고, 영악스럽기까지 하던 그의 칼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군인은 곧장 가슴을 움켜쥐었지만 쏟아져 흐르는 피를 막지는 못했다.


털썩.


결국 그는 먼저 쓰러진 동료의 옆으로 무너져 내렸다. 처음 세 명이 당했으니 이제 남은 이들은 네 명뿐.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상민은 결단을 내릴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스릉!


허리춤에 매달린 칼을 뽑아 들고 장내로 다가섰다. 자신과 조원들 간의 실력이라고 해 봐야 종이 한 장 차이임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열 명이서 해내지 못한 일을 고작 다섯 명이 극적으로 이루어 내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해볼 만큼은 해봐야 하지 않겠나. 어차피 이대로 물러간대도 목숨을 부지하기는 요원할 테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을 목숨처럼 여기는 군인들. 근래 들어 더욱 칼 같은 규율을 적용받기 시작한 후로는 그런 경향이 한층 강해졌다. 오죽하면 임무에 실패할 바에야 차라리 자결하는 게 낫다는 말이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였던 것이다. 시선을 고정한 채, 상민이 비장하게 외쳤다.


"칼집을 버려라!"


칼집을 버리라는 말은 목숨을 내놓으라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군인들 또한 우혁이 따로 이르기 전부터 목숨을 내걸리라 마음먹고 있던 참인바, 망설임 없이 허리춤에 걸려있던 칼집을 전부 벗어던졌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들의 기세는 시시덕거리던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창현은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강렬한 투쟁심을 느꼈다. 언젠가 싸움 중에 느꼈던 그 고양감과 흥분이 다시 몰려들고 있었다. 붉은 눈이 더욱 짙게 달아오르고, 입에선 단내가 뿜어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와라!"


그 도발적인 외침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 상민이 성큼 앞으로 다가섰다.


"아까 네 녀석들을 무시한 건 사과하지."


창현의 한쪽 눈썹이 위로 말려 올라갔다. 너무도 의외의 말이었다.


"이미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칼을 들었으니 그런 말은 필요 없어. 무슨 의미가 있지?"


냉철한 창현의 대답에 상민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 말이 맞았다. 다만 아까 전 자신에게 느끼던 수치심을 이런 식으로나마 풀어보려 한 것뿐이다. 그러나 곧 이것도 그의 말처럼 의미 없는 일이 될 거였다. 이 자리에서 누가 죽든 간에, 그 이후엔 더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너희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토록 죽이라고 했는지는 몰라. 하지만 만약 너희가 살아난다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기를 바라지. 멀리 떠나라는 얘기야."


"그럼... 애초에 곱게 보내주면 됐을 거 아냐 이 미친놈들아! 헉... 헉... 이게 뭔 지랄이야, 지랄이!"


명모가 콧구멍을 벌렁거리면서 따졌지만 상민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굳게 다물어 버렸다. 그도 명령을 받고, 거기에 따르는 군인일 뿐, 그의 생각과 행동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명모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거였다. 어쨌든 이제 말은 필요 없었다.


그는 사방을 점거한 군인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군인들이 창현과 명모를 가운데 두고 천천히 맴돌기 시작했다.


그때쯤 상민도 칼집을 벗어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창현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죽음을 목전에 두었다 볼 수 없는 강한 빛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모두가 예감하고 있는 마지막 싸움. 사방엔 터질듯한 긴장감이 팽배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상민이 큰 기합성을 날리며 창현에게 돌격해 들어갔다.


"이야아압--!"


* * *


창현과 명모는 서로 등을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아 큰 숨을 헐떡거렸다.


"하아... 하아...."


"헉... 헉..."


사방엔 군인들의 시체가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뛰어난 실력을 보였지만, 상민을 포함한 군인들 모두는 결국 살아남지 못했다.


목숨을 잃은 그들에 비할 바는 아니나 창현과 명모 역시 지치고 상처 입은 모습이긴 매한가지, 특히 명모가 심했다.


"야... 괜찮냐?"


"카악- 퉤! 괜찮을 리가 있겠냐? 거 새끼들 징글징글하네."


명모가 피 섞인 침을 뱉어내며 중얼거렸다. 과연 대양의 군인들은 호락호락하게 당해주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악착같이 달려들던 그 서슬 퍼런 기세는 대범한 명모마저도 주눅 들게 했었다.


창현이 아니었다면 벌써 서너 번은 더 죽고도 남았을 거라고 그는 혼자 생각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다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시선이 갔다. 붉은 피가 흥건했다. 자신의 피도 있으려니와 대부분은 군인들의 피였다.


"음..."


저도 모르게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지난날 나쁜 놈은 죽여도 된다고 쉽게 말했으나, 같은 사람임에 어찌 괴롭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역시도 살인은 처음이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솔직한 말로 두 번 할 짓은 못 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창현은 그런 명모를 내버려 두고 일어나 동굴로 향했다. 휘청거리는 걸음걸이가 불안정해 보였다.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창현은 무슨 생각인지 말없이 계속 걸어갔다.


입구에서 시작한 시신의 행렬은 굴 안쪽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발에 채이는 시체 사이를 뚫고 창현은 정신없이 내부를 살폈다. 모두 죽었으리라 여겼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그러나 원치 않던 끔찍함은 현실이 되었건만, 간절히 바라는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망연자실해 있는 창현의 뒤에서 명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그도 창현을 따라 동굴로 들어와 있었다.


"이제 그만하자. 너도 알잖아... 아무 소용 없다는걸."


아무리 들여다본들 죽은 사람이 살아날 리 없다는 뜻인 게다.


"알아... 나도 알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진한 자괴감이 목소리에 스며있었다. 결국 창현과 명모는 아무런 소득 없이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속절없이 떠오른 태양은 어느덧 정오를 지나간다. 눈이 부셨다. 그들은 가까운 나무 그늘 밑으로 가서 등을 기대고 앉았다. 거센 해일처럼 피로가 밀려들었다.


"이제 어떡하냐."


"글쎄.. 먼저 호장님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겠다."


다른 무엇보다 막막함이 앞섰다. 사람들은 모두 죽었고, 에첵은 보이지 않았으며, 정택을 따라갔던 사람들의 생사도 불투명하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기력함에 전신을 장악당한 기분이었다.


"일단 나는 좀 쉴란다. 아무것도 못 하겠어."


연달아 충격을 겪은 탓일까. 명모는 모든 의욕을 상실한 듯 눈을 감아버렸다. 그 말을 듣고서야 창현은 어제부터 한시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눈 좀 붙여둬."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명모는 어느새 코까지 골며 기절하듯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손에 창을 쥔 채로, 창현도 다리를 편하게 뻗었다. 누군가는 깨어 있어야 하니 명모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요량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때마침 뒤편 수풀에서 바스락거리는 인기척이 들려왔다. 번개처럼 일어난 창현이 발끝으로 명모를 깨우는 한편, 창을 들어 정면을 겨눴다. 만약 놈들이라면, 상황은 정말 최악이라고 해야 했다. 그냥 빨리 벗어나야 했을까? 그러나 에첵의 시신이라도 확인하고 싶던 마음은 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창현의 목젖이 크게 꿀렁거렸다. 때마침 명모가 눈을 비비적거리며 일어나다가, 창현의 모습을 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무슨 일이 나긴 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침내 풀숲이 크게 흔들리고, 거기에서 누군가 그들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온몸이 먼지투성이에, 손에는 칼을 쥐고 있는 남자였다. 사실 남자라기보다는, 어린 소년에 가까웠다. 소년이 말했다.


"살려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인간을 위하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공지 +3 22.11.24 157 0 -
공지 제 글을 찾아 주신 모든 분들께. +6 21.11.27 456 0 -
공지 연재일 변경 공지.(수정) +2 21.06.20 611 0 -
98 25. 올가미(4) +1 22.11.17 52 3 13쪽
97 25. 올가미(3) +2 22.11.09 56 3 18쪽
96 25. 올가미(2) 22.11.03 54 2 17쪽
95 25. 올가미(1) +2 22.10.27 68 3 13쪽
94 24. 변이變異(6) 22.10.23 76 2 18쪽
93 24. 변이變異(5) +2 22.10.17 69 2 16쪽
92 24. 변이變異(4) +2 22.10.14 73 3 14쪽
91 24. 변이變異(3) 22.10.11 85 4 16쪽
90 24. 변이變異(2) +4 22.10.03 113 5 15쪽
89 24. 변이變異(1) +4 22.09.27 108 6 16쪽
88 23. 갈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5) +6 22.09.18 98 5 18쪽
87 23. 갈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4) +4 22.02.10 162 5 14쪽
86 23. 갈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3) 22.01.25 118 6 12쪽
85 23. 갈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2) 22.01.18 124 5 12쪽
84 23. 갈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1) 22.01.10 127 7 11쪽
83 22. 방황하는 분노(2) +4 22.01.03 137 6 14쪽
82 22. 방황하는 분노(1) +2 21.12.27 146 8 14쪽
81 21. 피와 욕망(3) +2 21.12.20 177 8 15쪽
80 21. 피와 욕망(2) +2 21.12.12 143 6 14쪽
79 21. 피와 욕망(1) +3 21.12.05 154 6 14쪽
78 20. 어둠에 잠긴 도시(3) +2 21.11.27 164 6 12쪽
77 20. 어둠에 잠긴 도시(2) +6 21.11.21 170 8 14쪽
76 20. 어둠에 잠긴 도시(1) 21.11.14 191 7 14쪽
75 19. 자유로움에 관하여(5) +2 21.11.07 191 9 14쪽
74 19. 자유로움에 관하여(4) 21.10.31 179 6 14쪽
73 19. 자유로움에 관하여(3) +1 21.10.25 195 6 14쪽
72 19. 자유로움에 관하여(2) 21.10.17 201 5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