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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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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킴
작품등록일 :
2021.05.13 21:41
최근연재일 :
2022.11.17 22:25
연재수 :
98 회
조회수 :
92,325
추천수 :
2,887
글자수 :
580,477

작성
22.01.10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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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3. 갈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1)

DUMMY

일단의 군인들이 살벌한 눈빛을 흘리며 대로변에 진을 치고 서 있었다.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꼭 노예가 아니라 하더라도 군인의 눈에 거슬려서는 좋은 꼴을 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전재학이 정권을 잡은 이후 군인들의 위세는 갈수록 높아만 갔고, 최근에는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


"어이! 거기 잠깐 이리 와봐."


거리를 바라보던 군인 하나가 뜬금없이 소리쳤다.


"에...?"


두려운 눈빛으로 군인을 쳐다보던 다른 사람들은 재빨리 흩어졌으나 한 청년은 그러지 못했다. 정면에서 눈이 딱 마주쳐 버린 탓이다. 군인이 손짓하자 지목당한 청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주춤주춤 다가왔다.


"왜, 왜요?"


군인의 키와 덩치가 월등히 큰 까닭에, 안 그래도 어깨를 움츠리고 있던 청년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목소리에 실린 두려운 감정만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군인은 바로 앞까지 다가온 청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갑작스럽게 머리채를 움켜쥐고 뒤로 꺾어버렸다.


"히익!"


놀람과 고통이 뒤섞인 신음이 청년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하지만 군인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이었고,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마치 강철로 빚어 놓은 사람 같았다.


그는 한 손에 사로잡힌 청년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청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소년에 가까운 앳된 얼굴이었다.


"우씨! 왜 그러는 거에요!"


소년이 발버둥쳤지만 우악스런 그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빌어먹을. 이놈도 아니군. 근데 뭔 놈의 애새끼가 이렇게 커? 저리 꺼져!"


무엇이 그리도 마음에 안 드는지 군인은 한껏 눈살을 찌푸린 채 팔을 휘둘렀다. 소년은 철퍼덕 소리를 내며 맥없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조장님. 지금처럼 환한 대낮에 과연 그놈이 돌아다니겠습니까? 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 정신머리가 있다면 어디 숨었던가, 아니면 진작에 도망갔을 겁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여기는 저희만으로 충분하니 조장님은 들어가서 좀 쉬시지요. 이렇게 아이들이랑 어울려선 조장님 체면이 서질 않습니다."


십오 조의 조장, 원룡은 객쩍게 실실거리는 조원들을 차가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평소에도 스스럼없이 농지거리를 던지는 녀석들이니만큼, 말을 헤프게 하는 건 별로 밉지 않았다.


그러나 이놈들은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게 분명하다. 이건 큰 문제였다. 원룡은 조원들을 일깨워줄 필요성을 느꼈다. 그의 목소리가 눈빛보다 더욱 차갑게 새어 나왔다.


"너희가 그 자리에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놈은 상당히 위험해. 반드시 색출해야만 한다. 위에서도 최대한 빨리 잡으라고 하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항시 바짝 긴장하고 있어.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만약에 놈을 발견한다면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지원 요청부터 하도록. 절대 함부로 덤비면 안 돼. 이건 지침이 아니라 명령이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군인들은 얌전히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상관은 평소엔 잘해주다가도 한번 돌아버리면 소위 말하는 개가 되기 때문에, 지금 같은 경우 눈치껏 행동하는 요령이 필요했다. 원룡은 혀를 차며 다시 거리로 눈길을 돌렸다.


불현듯,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다. 순찰 나간 부하들을 대신해 입정관으로 직접 출동한 원룡은 그때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다. 멀찍이서 지켜본 흉수는 사람이 아니라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사람이 정말로 이 정도까지 강해질 수 있는가? 이렇게까지 강해도 되는 걸까?


그런 의문마저 치밀었다. 언제나 약자들을 상대로 무력을 휘둘러 왔던 그가 보아도, 이건 명백한 불합리 그 자체였던 것이다.


만약 직접 보지 않았다면 그도 절대 믿지 않았을 상황이 연거푸 펼쳐졌고, 흉수는 결국 도망쳐 버렸다. 그것도 두 길 높이의 담장을 훌쩍 뛰어넘어서. 함구령 때문에 입정관에서의 일을 자세히 말하진 못했지만 그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개미가 신경을 갉아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관자놀이를 문지르는 그의 눈앞으로 어린아이들이 정신 사납게 왔다 갔다 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녀석은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정말로 들어가서 좀 쉬어야 하나?'


하지만 그는 금방 마음을 다잡고 그날의 일에서 신경을 끊기 위해 노력했다. 살펴볼 사람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의 눈이 다시 한번 날카롭게 빛났다.


"어이! 거기! 잠깐 와봐!"


또다른 한 명이 그에게 불려 가고 있었다.


* * *


창현과 명모, 도진은 창고로 돌아와 있었다. 대양에 온 첫날, 그들이 밤을 지새웠던 그 창고였다.


삐걱-.


조심스럽게 창고의 문이 열렸다. 뿌연 음영을 드리운 낯선 그림자 하나가 그 틈을 비집고 재빨리 들어왔다.


"희남아! 드디어 와줬구나!"


얼른 문을 닫아걸고 나서 도진이 한 말이었다. 그는 매우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희남이라 불린 그림자도 그런 도진을 보고 반색했다.


"죽은 줄 알았잖아! 이게 얼마 만이야!"


그들은 서로 얼싸안고 좋아라 했다. 아무리 조숙하다고 해도 아이들임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한동안 재잘거리던 도진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야! 우리 얘기는 조금 이따 하자. 일단 형들을 소개해줄게. 창현이 형하고 명모 형이야. 군인들도 이길 만큼 싸움을 엄청 잘해."


도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와!'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창현과 명모는 어색하게 서서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들을 돌아보며 도진이 재차 설명했다.


"저번에 말했던 기철아저씨 아들이 얘예요. 옛날부터 친구였어요."


"안녕하세요! 박희남이에요! 근데 진짜 군인을 이길 수 있어요?"


희남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키는 훌쩍 컸는데 얼굴은 아직도 영락없는 어린아이라 제법 귀여웠다.


"그럼. 이길 수 있지. 우리가 왔으니 이제 걱정하지 마라. 형들이 혼내줄게."


명모가 나서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희남은 쑥스러운 듯이 뒤통수를 긁적이다가 이내 인상을 찡그렸다. 창고로 오던 길, 군인에게 잡혔던 부위가 아직도 아팠기 때문이다. 땅바닥을 굴러서 온통 흙먼지를 뒤집어쓴 모습이기도 했다.


"무슨 일 있었어? 또 벽 밖에 나가서 사고 친 거야?"


또래들과 어울려 답답한 성벽 밖으로 나가서 놀았던 게 한두 번이 아닌 만큼, 도진은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냈다.


"사고는 무슨 사고? 내가 무슨 맨날 그러는 줄 알아? 그냥 좀 재수가 없었어. 오다가 어떤 군인 새끼가 내 머리채를 잡아당기지 뭐야. 날 밀치기까지 했다구. 난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말야."


군인이란 말에 도진은 물론이고 창현과 명모마저 긴장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뭘. 그냥 그러고 말았어. 한눈판 사이에 잽싸게 도망쳤지. 오늘뿐만이 아니야. 요즘 말도 못해."


"혹시 꼬리가 달린 건 아니겠지?"


"걱정 마. 나 몰라? 뒷골목에선 내가 어른들보다 빠르잖아. 군인이라고 뭐 별수 있겠어? 그리고 오면서 다 확인했다구."


가슴팍을 주먹으로 두어 번 두드리며 희남이 호언장담했다. 그것은 도진 역시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그래. 그건 알지. 아무튼, 소식은 전했어?"


"응. 다들 알겠다고 했어. 호장님과 타말 얘기를 하니 별로 고민하지도 않던 걸?"


"애들 입단속도 잘했고?"


"당연하지."


창현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들 대화에 끼어들었다.


"희남이라고 했지? 도와줘서 고마워. 너흰 정말 큰일을 한 거야. 근데 이건 너무 중요한 문제라서 새어나가면 안 되거든. 미안하지만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말해줄래?"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친구들은 의리 빼면 시체거든요!"


"그런데 숫자가 모두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니? 그... 이번에 너희가 몰래 만난 사람들 말이야."


창현은 차마 노예라는 단어를 꺼내기 어려워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러나 정작 희남은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아, 노예들이요? 친구들이 다섯 번씩은 들렸다고 했어요. 저는 일곱 집이나 들려서 말해주고 왔지만요."


"친구들이 몇 명이나 되는데?"


희남은 한참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헤벌쭉 웃었다.


"열 명이 두 번이고 다섯 명이 한 번이에요."


어리둥절한 창현의 귓가에 대고 도진이 속닥거렸다.


"숫자를 열까지밖에 못 세요."


창현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이번엔 그가 희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스물다섯 명이 다섯 번씩이면 얼추 계산해도 백여 명이 조금 넘는 숫자다. 그들의 가족까지 생각한다 해도 삼백은 넘지 않을 게다.


다행히 상황은 긍정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타말의 부탁을 승낙하고 난 지 벌써 나흘. 그 시간 동안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상황을 풀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벌써 내린 상태였다.


결론은 일단 정직하게 맞부딪혀 보자는 거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정택과 그를 따라나선 다수의 군인들이 아직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대양의 전력이 완전한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었으며, 지금이야말로 탈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뜻이기도 했다.


선행 되어야 할 조건은, 먼저 이 계획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군인들이 공공연하게 눈을 부릅뜨고 있는 시국이라 은밀히 그 일을 진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지금도 길거리를 들쑤시고 다니는 군인들 통에 함부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드니 말이다.


도진과 희남의 친구들이 활약한 부분은 바로 여기였다. 그 누구도 어린아이들이 쏘다니는 것을 의심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양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그들의 의사까지 확인한 것은 실로 대단한 공로라 할 만했다. 창현은 노파심에 다시 한번 당부했다.


"사흘이야. 앞으로 사흘 뒤 정오, 정문 앞으로 모이라고 다시 확인해 줄래? 조금이라도 늦으면 안 돼."


"걱정하지 마세요. 잘 말해둘게요!"


희남은 씩씩하게 대답하고 돌아갔다. 창현과 명모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일은 계획처럼 흘러가고 있었지만, 그 계획이란 것이 문제였다. 생각보다 일이 너무 커져 버린 것이다.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네. 아무리 니가 계획한 일이라지만 이건 좀 무리 아니냐?"


"계속 생각해봐도 이 방법밖에 안 떠오르는데 어떡하냐. 어쩔 수 없지."


"지금까지 바퀴벌레처럼 잘 살아남았으니 알아서 해라. 난 모르겠다."


"너가 덥석 하겠다고 해서 이렇게 된거라고는 생각 안하지?"


"난 그냥 몇 명 구해주면 되는 줄 알았지."


명모의 뻔뻔한 말에 창현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다가, 끝내 힘없이 내려놓았다. 어차피 사흘 뒤, 쓰고 싶지 않아도 젖먹던 힘까지 끌어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창고에서 밤까지 기다린 후, 어둠을 틈타 그곳에서 빠져나갔다. 창고를 나서며, 창현은 아주 긴 사흘이 될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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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23. 갈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2) 22.01.18 124 5 12쪽
» 23. 갈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1) 22.01.10 127 7 11쪽
83 22. 방황하는 분노(2) +4 22.01.03 137 6 14쪽
82 22. 방황하는 분노(1) +2 21.12.27 146 8 14쪽
81 21. 피와 욕망(3) +2 21.12.20 177 8 15쪽
80 21. 피와 욕망(2) +2 21.12.12 143 6 14쪽
79 21. 피와 욕망(1) +3 21.12.05 154 6 14쪽
78 20. 어둠에 잠긴 도시(3) +2 21.11.27 164 6 12쪽
77 20. 어둠에 잠긴 도시(2) +6 21.11.21 170 8 14쪽
76 20. 어둠에 잠긴 도시(1) 21.11.14 191 7 14쪽
75 19. 자유로움에 관하여(5) +2 21.11.07 191 9 14쪽
74 19. 자유로움에 관하여(4) 21.10.31 179 6 14쪽
73 19. 자유로움에 관하여(3) +1 21.10.25 195 6 14쪽
72 19. 자유로움에 관하여(2) 21.10.17 201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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