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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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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킴
작품등록일 :
2021.05.13 21:41
최근연재일 :
2022.11.17 22:25
연재수 :
9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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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324
추천수 :
2,887
글자수 :
580,477

작성
22.01.18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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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3. 갈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2)

DUMMY

작은 방안에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창현과 명모, 그리고 타말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 거사까지 남은 시간이란 이제 불과 하루 남짓, 마지막으로 계획을 점검해야 했다.


타말은 방에 모인 사람들을 쭉 둘러보다가 시선을 한쪽에 고정시켰다. 이윽고 타말이 말했다.


"결단을 내려주어 다시 한번 고맙단 말을 하고 싶네. 자네들에게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졌네."


그는 서슴없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어두운 불빛 사이로 드러난 그의 얼굴은 희망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이들이 도와준다고 해서 얼마나 좋은 결과가 나올지는 물론 미지수다. 실패할지도 모르고, 아마 그럴 가능성이 더욱 클 것이다.


그러나 결과가 어찌 되던 시도조차 못 해보고 허물어지는 것보단 백배 천배 낫지 않은가. 맞은편에 앉아있던 창현과 명모도 얼른 같이 고개를 숙였다.


"어이쿠, 어르신. 목 관절도 안 좋아 보이는데 자꾸 이러시면 탈 나요."


고개를 숙이면서도 명모가 방정맞게 입을 놀렸다. 제 딴엔 좋은 소리랍시고 한 말이지만 기철의 표정이 대번에 굳어지는 걸 보니 썩 유쾌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그 덕분에 묘한 긴장감에 차 있던 방 분위기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타말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렇게 날 생각해 줄 줄은 몰랐는데 고마우이. 내 나이쯤 되면 확실히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긴 하지. 자네도 지금부터 관리 하는 게 좋을걸세. 그건 그렇고, 이만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타말이 기철을 지긋이 쳐다보자, 약속이라도 한 듯 그는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그는 낙인이 없는 보통 사람이므로, 대외적인 비밀 작전을 수행하기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일단 제 1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모두 소식을 돌렸습니다. 제 못난 아들놈 말이 맞다면요. 내일 봐야 알겠지만 대부분 호응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습니다.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수입니다. 아마 지난번 입정관 사태를 몰래 소문내고 다닌 효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변화가 시작됐다는 것을 눈치채면 아무래도 결단을 내리기가 쉬울 테니까요."


대양 중심부에 위치한 왕의 궁전과 그 주변 고관대작들이 사는 지역을, 사람들은 1구역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1구역을 기준으로 나머지 동서남북의 땅에 각각 2에서 5까지 번호를 붙여 이름 했다.


그러므로 기철의 말은 경계가 특히 삼엄한 중심부를 제외하고 대양 전 지역에 소식을 뿌렸다는 의미였다. 그들이 움직인 시간을 생각한다면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타말이 새삼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 일을 맡기면서도 긴가민가했는데, 훌륭히 해내 주었구먼. 희남이 고 녀석, 누굴 닮았는지 아주 영특해. 나중에 큰일을 하겠어. 허허."


타말의 칭찬은 한동안 계속됐다. 줄곧 날카로운 인상을 유지하던 기철의 얼굴에도 작은 미소가 피었다.


"그럼 기철쪽 일은 걱정 안 해도 될 듯하고, 우리는 어찌 되어가는가?"


이번엔 에첵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물었다. 거기엔 삼십 줄에 들어선 장한이 앉아있었다. 지난번 창현 일행이 처음 찾아왔을 때 지금처럼 타말과 같이 앉아 있던 인물이었다.


"짐도 다 꾸려놓았고,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됩니다."


장한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우렁우렁해서 모두의 뒤에 똑똑히 들어가 박혔다.


"동지들이 이상하게 여기진 않던가?"


"그랬습니다만, 적당히 둘러댔습니다."


"잘했네. 만에 하나라도 불미스러운 일은 없어야겠지. 혹시 모르니 내일까지 계속 참아줘야 하네."


"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들에 관한 내용도 동지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행이군. 모든 게 순조로워."


타말은 몹시 만족스러워 보였으나 장한은 정반대였다. 그는 딱딱한 얼굴을 한 채로 잠시 말을 아꼈다. 그러다가 곧 낮은 어조로 말을 이어갔는데, 목소리엔 여실한 고뇌의 흔적이 스며있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걱정입니다. 이건 보통 계획이 아니지 않습니까? 모두의 목숨이 달렸습니다. 그런데..."


장한은 심유한 눈빛으로 창현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창현도 그 눈빛을 피하지 않고 마주 바라보았다. 방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꿈틀거렸다.


"자네는 또 그 생각인가? 저번에 다 설명하지 않았는가? 물론 자네 말대로 이건 보통 일이 아니지. 그래서 이렇게 철저히 준비하고 있는 것이고 말이야. 이제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두게나."


"단순한 기우가 아닙니다. 무작정 의심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제 말은... 이게 과연 우리에게 옳은 방법이냐는 겁니다. 한순간 몰살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는 우리에게 시간이 너무 없다네.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어. 지금은 마음을 모아야 할 때야. 그래야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올라가지 않겠나."


"마음만 모은다고 될 일이라면 저는 벌써 수백 번 그렇게 했을 겁니다. 제게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들이 하려는 계획은 분명 무모한 점이 있었다. 그건 타말도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거사는 이미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그들 또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창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인지 압니다. 그러나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은 그저 저를 믿어 달라는 것뿐입니다. 지금 당장 증명해 보일 수는 없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걸 합니다. "


창현의 말에 장한의 목소리가 한 단계 높이 올라갔다.


"지난번과 똑같은 전개군. 이해 못 하겠나? 나는 자네의 그 말만으로는 믿음을 가지기 힘들다고 하는 거야. 자네의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는 잘 몰라. 그래. 신의는 대단하다고 그러더군. 그걸 깎아내릴 생각은 없네. 하지만, 나에겐 수많은 우리 대양의 백성들 목숨 값이 훨씬 더 무겁네. 자네의 말은 그것보다 무거운가? 그걸 감당할 수 있겠나? 자네가 혼자?"


옆에서 명모가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그 역시 감정을 자극하는 말이 불편했던 거였다.


"아저씨. 혼자는 아니거든요? 나도 있거든요?"


결국 명모가 못 참고 한마디 내뱉고야 말았다. 그나마 크게 발작을 일으키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한 일일 거였다. 그 소리를 듣고 창현의 미간에도 주름이 졌다.


그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설득이 불가능할 정도의 완고함은 너무나 답답했다. 창현이 다시 무어라 말을 하려는 찰나, 그보다 앞서 단호한 음성이 입구 쪽에서 들려왔다.


"장한수. 말을 가려서 해라. 에첵께서도 늘 그렇게 이르지 않으셨던가?"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곳엔 반쯤 열려있는 문을 뒤로한 무성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가 안고 있는 덕문이 있었다. 덕문의 입이 다시 열렸다.


"그는 나와 에첵이 인정한 최고의 전사다. 존중을 보여라."


덕문의 등장으로 날 선 겨울바람 같던 장한, 한수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어린 시절부터 왕의 집에서 노예로 자랐던 그였기에 감히 덕문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그들은 꽤나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무성이 빈자리로 걸어가 덕문을 의자에 앉혀주었다.


"한수야. 너의 고민이 무언지 잘 안다. 그래도 정히 창현을 못믿겠다면, 날 믿어라. 난 괜찮겠지?"


"호장님! 괜찮으신지요?"


한수가 잠시 침묵을 지키는 사이, 타말은 그답지 않게 목소리를 높이며 덕문을 맞이했다. 그는 꽤나 많이 호전된 듯한 덕문의 모습에 사뭇 감동한 눈치였다.


"덕분에 이제는 많이 괜찮아 졌어, 타말. 그보다... 이젠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 예전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잖아?"


덕문의 편안한 말투는 그들의 오랜 유대를 대변하고 있었다. 타말은 손사래까지 치며 웃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이 늙은이 서운합니다. 저는 이게 편하니 그냥 하던 대로 하게 해 주시지요. 그게 좋습니다."


"타말도 에첵을 닮아서 고집이 보통이 아니군. 그런데 타말. 밖에서 듣자하니 이상하더군. 왜 이렇게 뜻이 나뉘는 거지? 저번에 끝난 이야기가 아닌가?"


그들의 대화는 매우 여상스럽게 시작했지만 덕문은 곧바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한순간 타말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한수가 납득하지 못했나 봅니다. 저 녀석 고집이야 워낙 유명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기세가 한풀 꺾였다고는 해도 뜻마저 꺾인 건 아닌 모양이었다.


"저는 한 사람에게 모든 이들의 희망을 맡기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한 사람이 무너지면, 결국 모두가 무너져 버리게 될 테니까요. 그건 너무나 위험합니다. 하지만... 호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이제 말을 아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말을 한다고 뜻을 거스를 생각인 건 아닙니다. 그럼, 내일 일찍 찾아뵙겠습니다."


한수는 가볍게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미련 없이 문으로 걸어갔다. 그가 막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덕문의 담담한 목소리가 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굳은 듯 몸을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한수야. 너는 어릴 적부터 주체적인 성격이 강했고, 누구보다 주관이 뚜렷했지. 그 때문에 곤혹스러울 일도 많았지? 아직도 기억나는군. 나는 너의 그 점을 무척이나 좋아했어. 왜인 줄 아느냐? 나 역시 너와 같았거든. 내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건 잘 믿지도 않았고, 인정하려 하지도 않았어. 아마 너도 그랬을거야."


"..."


"그러나 나는 에첵과 대양을 떠난 뒤로 많은 걸 보고 느꼈어. 생각도 많이 변했고. 그동안 내가 전부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들이 실은 이 세상에서 정말 작은, 먼지 한 톨만큼의 가치도 없다는 걸 깨달은 거야. 나는 너도 그런 걸 알았으면 해. 대양 밖에는, 저 벽 너머에는 우리의 상식과 상상을 초월하는 많은 신비가 기다리고 있어. 그러나 여기 안에만 있다면 아무것도 알 수 없지. 한수야. 내 말을 이해하기 힘들겠지. 지금 굳이 설득하진 않으마. 어차피 내일 너도 저절로 깨닫게 될 거야. 네가 믿지 못하는 그 신비를 보게 될 거야."


"...그저, 진심으로 그러길 바랍니다. 호장께서 말씀하시는 신비의 가호가 부디 우리를 저버리지 않길 바라겠습니다."


한수는 작게 중얼거린 뒤 방을 나가버렸다. 덕문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신비는 이미 우리 곁에 있단다, 한수야.'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밤이 지나가고, 어느새 아침이 밝아왔다. 가을답지 않은 짙은 회색 구름이 온 하늘에 퍼져 있었다. 명모가 골목 사이에 숨어 하늘을 흘깃 올려다보더니 굵은 가래침을 뱉어냈다.


"카악-! 퉤! 우라질 놈의 하늘 꼬라지 하곤. 비가 오려나?"


"그럴지도 모르지. 슬슬 시작하자. 나 먼저 간다? 놈들이 움직이면, 알지?"


명모는 긴장되는 마음에 괜시리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기어코 침을 한 번 더 내뱉었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했다.


"후-흡! 알아 알아. 걱정 말고 너나 조심해."


"그건 내가 할 소리고. 아무튼, 이따가 보자고."


창현은 그 말만을 남기고 어둡게 가라앉은 골목길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얼마쯤 지났을까. 아직 정오가 되려면 한참이나 남았을 무렵에, 멀리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대양을 뒤흔들었다.


"끄아아악-!!"


드디어, 거사가 시작된 것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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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23. 갈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1) 22.01.10 126 7 11쪽
83 22. 방황하는 분노(2) +4 22.01.03 137 6 14쪽
82 22. 방황하는 분노(1) +2 21.12.27 146 8 14쪽
81 21. 피와 욕망(3) +2 21.12.20 177 8 15쪽
80 21. 피와 욕망(2) +2 21.12.12 143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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