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브랜드 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을 위하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브랜드킴
작품등록일 :
2021.05.13 21:41
최근연재일 :
2022.11.17 22:25
연재수 :
98 회
조회수 :
92,214
추천수 :
2,887
글자수 :
580,477

작성
21.10.17 18:33
조회
199
추천
5
글자
11쪽

19. 자유로움에 관하여(2)

DUMMY

"...아무튼 그렇게 됐어."


"그래서 이제 어쩔 건데?"


다짜고짜 찾아와 자신을 데려간 진에게서 대략의 자초지종을 들은 것은 새벽이 가까워 올 무렵이었다. 한참이나 달린 덕분에 그들은 터스겅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었다. 타스가 가쁜 숨을 억지로 진정하며 재차 물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이대로 평생 도망자가 되자고?"


다소 공격적인 어조였으나 사실 누구라도 그럴 거였다. 아무리 기분이 상했어도 그렇지, 감히 로우이터를 살해하다니! 타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솔직히 이후의 일은 생각 안 했어. 네가 보기엔 바보 같겠지? 하지만 나는 나를 속이며 살지 않겠다고 맹세했어. 순간순간 나에게 충실히 살 거야. 아까 전엔 그렇게 하고 싶었고 그래서 나는 내 행동을 후회하지 않아. 잘못됐다고도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타스. 넌 내가 챙길게."


진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으나 타스의 인상은 여전히 찌푸려진 상태였다.


"그래! 바보 같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해해 타스. 사실 고백할 게 있어. 너 덕분이야. 네가 아니었다면 난 여전히 과거에 짓눌려 괴로워하며 살았을 거야. 어제처럼 동굴 속에 처박혀서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았겠지. 하지만 네 덕분에 난 깨달음을 얻었고 그건 지금과 앞으로의 내 운명을 모두 바꿔놓았어.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언젠간 너도 이걸 느꼈으면 해. 날 믿는다고 했지? 그럼 계속 믿어줘. 친구로서 말이야."


진의 마지막 말에 타스는 그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는 없어도, 친구를 믿어줄 수는 있는 것이다. 진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로이드가 기다렸다는듯 경직된 얼굴로 끼어들었다.


"강제로 터스겅을 떠난 것이 불만이겠지만, 이해해 주셔야겠습니다. 라나트께 배정된 아르드투로서, 당신이 그냥 남았다면 과연 책임을 피할 수 있었을까요?"


타스의 공격적인 말투가 어지간히도 불쾌했나 보다. 그의 어조도 날카롭게 날이 서 있었다.


"그건...!"


타스는 여기에도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사실이 그랬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로 터스겅에 남았다면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진 줄도 모르고 곤경에 처했을 테다. 사건의 심각성을 따져보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대도 과장된 말은 아니다.


"로이드."


막 한 마디 더 쏘아붙이려던 로이드를 진이 막아섰다. 진의 입이 다시 열렸다.


"갑자기 이렇게 된 건 사과할게. 미안해. 하지만 너 혼자 남겨둘 수는 없었어. 너는 내 친구니까."


"그걸 따지려던 건 아니었어. 이제 어떻게 할 건지 걱정이 된 것뿐이야."


괜스레 목소리가 기어들어 간다. 타스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따라 새벽별이 더욱 환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언젠가 자유를 갈망하며 바라보았던 별이다. 문득 그의 눈이 커졌다.


"그럼 우리 이제 자유인 거야?"


터스겅을 떠나왔으니 베엘닥치와 아르드투로 연결된 그들의 권한과 의무는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래. 이제 쉬고 싶으면 쉬고, 떠나고 싶으면 떠나는 거야. 매일 사냥하지 않아도 돼. 아무도 강제하지 않아."


고되지만 익숙했던 일상을 순식간에 빼앗겼다고 여겼는데, 바꿔 생각하니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제 자유인 것이다. 그토록 원했던 자유!


"그럼, 멀리 떠나자!"


언제 불평했냐는 듯 타스는 미소를 지었다. 로우이터를 죽이고 도망치듯 떠나온 터스겅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친구와 자유가 있는데.


"어디로 가고 싶은데?"


"그냥 아무 데나! 멀리 한번 가보고 싶어. 어릴 때 말고 나는 멀리 떠난 적이 없으니까."


"그래. 근데 그전에 들릴 곳이 있어."


"어딘데?"


진도 타스를 따라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보면 알아."


* * *


토페익투족 아르드투 사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베엘닥치 가운데서도 포악하기로 악명이 자자한 야힌을 한 명 꼽자면 단연 투르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모든 면에서 탐욕적이었으며, 그 탐욕에 걸맞은 힘 또한 가지고 있었다.


최고의 권능이라는 `제를렉의 피`를 각성하지는 못했지만 유달리 강인한 육체와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엠드라흐는 그를 젊은 나이에 라나트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의 폭급한 성정이 더욱 발산되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나, 어쨌든 힘의 논리가 우선시 되는 야힌 사회의 특성상 그것은 큰 흠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런 제기랄!!"


꽝!


투르카의 큼지막한 주먹이 벽에 처박히며 돌가루를 우수수 쏟아냈다. 벽이 진동하는 것만 같았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의 더고르, 파라힘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젠장! 내가 무슨 죄라고!`


못생긴 데다가 성질까지 더러운 라나트를 모시게 된 것이야말로 그의 생애 최대의 불행인 만큼 사실 누구에게 따질 거리도 못 된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욕을 참을 수 없었다.


"대체 수색을 어떻게 하길래 다 놓쳤다는 거야! 네놈들 눈은 장식이냐! 진짜 죽고 싶은 거야?!"


흉측하게 튀어나온 송곳니가 다시 위협적으로 움직이고, 고함 소리가 굴속을 요란히 울리며 떠다녔다. 그는 진짜로 화가 난 것이다. 미드씨커에게서 로우이터를 살해한 범인을 잡아 오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 벌써 어제의 일이었다.


그 사이 범인으로 특정된 인물은 놀랍게도 전(前) 제를렉이었던 진. 역사에도 없던 일대 사건에 아르슬랑 터스겅 전체가 크게 술렁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범인의 더고르인 로이드와 아르드투 주제에 잘도 그들을 따라 사라진 타스의 이야기가 이 사건에 흥미를 더해주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여러 야힌의 이목이 쏠려 더욱 크게 부풀려진 이 사건은 베엘닥치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었다. 분노한 미드씨커와 하이워커가 대대적으로 베엘닥치들을 소집하여 추살령을 내렸던 것이다.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그 책임자가 된 야힌이 바로 광기 충만한 투르카였다. 투르카는 이례적으로 아르드투들까지 동원하여 진의 흔적을 뒤쫓았지만 하룻밤 내내 발견한 것이라곤 근처를 배회하던 몇 개의 발자국이 전부였다.


모두의 관심사가 된 이 사건에서 창피한 꼴을 당하기라도 한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투르카는 다시 광분했다.


"내일까지 당장 찾아! 못 찾으면 다 죽는 거야!"


원래부터 투르카는 한번 성질이 뻗치면 선배 베엘닥치도 안중에 없기로 유명했다. 갈수록 치솟는 화를 참기 힘든지 그의 눈에 위험한 광채가 감돌기 시작했다. 파라힘이 어쩌지도 못하고 식은땀만 흘리고 있는 그때, 다른 야힌이 급하게 문을 열며 들어왔다.


"투르카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어디야! 내가 직접 간다!"


"안내하겠습니다."


투르카는 그의 더고르에겐 눈길도 안 주고 성큼성큼 걸어서 나가버렸다. 파라힘은 그제야 땀을 닦으며 숙였던 허리를 폈다. 그러나 얼굴은 여전히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미친 성질머리하고는... 내가 라나트였으면 진짜 반 죽여놨을 텐데..!`


물론 라나트와 더고르의 상하관계가 바뀐다고 한들 저 성질머리가 바뀌지 않는 이상 그의 소망은 이루어지기 힘들 거였다.


"야! 뒤질래! 빨리 안 따라와!"


"예! 갑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호통에 혼자 푸념을 늘어놓던 파라힘은 허겁지겁 투르카를 따라나섰다.


* * *


진 일행은 어느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중이었다. 터스겅에서 도망쳐 나온 지 벌써 닷새가 지났지만, 진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때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타스는 즐거운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매일매일 촉박한 시간에 맞추어 사냥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땅과 하늘은 마치 예전 우헬 텐게스를 보내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미지에 대한 두근거림과 흥분이 차올랐다. 그때처럼 외롭고 두렵지 않다는 점도 좋았다.


"아직도 멀었어?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도 말 안 해줄 거야?"


"이제 거의 다 왔어."


타스는 별 의미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웠던 것이다. 진과 발맞추어 경쾌하게 걷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로이드가 조용히 옆으로 다가왔다.


"라나트여."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묻어나왔다.


"알아."


"어찌하실 겁니까?"


"글쎄. 아직 시간이 있으니 생각을 좀 정리해봐야겠어."


로이드는 더 말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이런 침착함과 정력(定力)은 예전엔 없던 능력이다.


`분명 더 성장하신 거야. 그래도 하필이면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안타까움에 로이드는 새삼 속으로 혀를 찼다. 능력을 겸비했으니 계속 부족의 제를렉으로 남아 있었더라면 언젠가 큰일을 이루어 냈을 게 분명하지 않았겠는가. 이제 와 탓하는 건 아니지만 물 건너간 기회가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쉬운 것은 둘째치고, 사실 지금 당면한 상황이 더욱 문제였다. 추격자들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다. 베엘닥치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그는 애초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보다 강력한 엠드라흐를 사용하는 진이 이걸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먼저 물은 것인데 그 역시도 아직 뚜렷한 방법은 찾지 못했나 보다. 아무것도 모르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타스를 보자니 답답함이 더욱 심해졌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속도를 높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무리 그와 진이 강하다 해도, 수많은 부족의 베엘닥치를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느껴지는 기운으로 볼 때 추격해오는 숫자가 한두 명이 아닌바, 지금이라도 속도를 올려 도망치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되었다.


"잠깐. 내가 생각 중이라 그랬잖아."


"...알겠습니다."


말없이 한참을 더 가던 중에 로이드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낯익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강한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이곳은...!"


탄식과 함께 내뱉은 말에 진이 답해 주었다.


"로이드. 기억나지?"


"잊을 수 없죠. 그런데 왜 이곳에...?"


"그냥. 잠깐 옛 생각이라도 할 겸 온 거야."


로이드는 왜 이곳에 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들의 쉘터가 멀리에서부터 눈으로 확대되어 들어왔다. 강렬한 붉은 빛이 다시금 번져오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로이드. 내 말 잘 들어. 타스. 너도 마찬가지야. 원래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쩔 수 없게 됐어."


"무슨 생각인데 그래?"


진이 타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가 놈들을 유인해 줘야겠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인간을 위하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공지 +3 22.11.24 151 0 -
공지 제 글을 찾아 주신 모든 분들께. +6 21.11.27 454 0 -
공지 연재일 변경 공지.(수정) +2 21.06.20 610 0 -
98 25. 올가미(4) +1 22.11.17 52 3 13쪽
97 25. 올가미(3) +2 22.11.09 55 3 18쪽
96 25. 올가미(2) 22.11.03 54 2 17쪽
95 25. 올가미(1) +2 22.10.27 67 3 13쪽
94 24. 변이變異(6) 22.10.23 76 2 18쪽
93 24. 변이變異(5) +2 22.10.17 67 2 16쪽
92 24. 변이變異(4) +2 22.10.14 69 3 14쪽
91 24. 변이變異(3) 22.10.11 84 4 16쪽
90 24. 변이變異(2) +4 22.10.03 112 5 15쪽
89 24. 변이變異(1) +4 22.09.27 106 6 16쪽
88 23. 갈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5) +6 22.09.18 97 5 18쪽
87 23. 갈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4) +4 22.02.10 161 5 14쪽
86 23. 갈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3) 22.01.25 116 6 12쪽
85 23. 갈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2) 22.01.18 121 5 12쪽
84 23. 갈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1) 22.01.10 126 7 11쪽
83 22. 방황하는 분노(2) +4 22.01.03 135 6 14쪽
82 22. 방황하는 분노(1) +2 21.12.27 146 8 14쪽
81 21. 피와 욕망(3) +2 21.12.20 176 8 15쪽
80 21. 피와 욕망(2) +2 21.12.12 143 6 14쪽
79 21. 피와 욕망(1) +3 21.12.05 153 6 14쪽
78 20. 어둠에 잠긴 도시(3) +2 21.11.27 163 6 12쪽
77 20. 어둠에 잠긴 도시(2) +6 21.11.21 169 8 14쪽
76 20. 어둠에 잠긴 도시(1) 21.11.14 191 7 14쪽
75 19. 자유로움에 관하여(5) +2 21.11.07 189 9 14쪽
74 19. 자유로움에 관하여(4) 21.10.31 178 6 14쪽
73 19. 자유로움에 관하여(3) +1 21.10.25 194 6 14쪽
» 19. 자유로움에 관하여(2) 21.10.17 200 5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