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MOSF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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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 반도체 전쟁을 기다림
22. MOSFET
나는 1959년에 강대원, 이집트계 고체 물리학자인 모하메드 아탈라와 함께 MOSFET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원 역사에서 강대원과 모하메드 아탈라의 공적인데 내가 꼽사리 끼었다.
근데 지금 강대원과 모하메드 아탈라 두 사람은 실제로 내가 다하고 자신들 두 사람이 보조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MOSFET 한국어로 금속 산화막 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로 번역되는 게 뭔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그냥 요즘 쓰는 반도체는 특수목적으로 사용되는 극소수를 빼면 전부 이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CPU, DRAM, GPU, 사운드칩 하여간 그냥 우리가 쓰는 반도체라고 부르는 건 전부 이거다. 이게 아니면 반도체의 미세화와 저전력화는 꿈도 못 꾼다.
옆에서 우리 말을 듣고 있던 모하메드 아탈라가 말했다.
“MOSFET의 미래를 아주 확신하는구나.”
“그럼요. 그래서 두 분을 초청해서 연구를 한 거죠. 미래가 여기에 걸려 있으니까요.”
“IC의 집적도가 지금보다 더 높아지려면 MOSFET만이 해결책이다 이거지?”
“그렇죠.”
큐브 컴퍼니는 지금 하나의 칩 위에 트랜지스터를 100개 이상 집적한 IC를 개발했다. 하지만 MOSFET이 아닌 바이폴라 트랜지스터이다보니 벌써 한계에 직면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강대원이나 모하메드 아탈라도 MOSFET의 상용화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나와 함께 MOSFET을 개발한 만큼 미래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은 잘 안다. 그들이 의아해하는 것은 내가 너무 서두른다는 점이다.
강대원이 말했다.
“도대체 그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뭐야? 이미 큐브 컴퍼니는 미국 아니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반도체 기업이야. 굳이 그렇게 서두를 이유가 없잖아?”
우리는 작년에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페어차일드를 따돌리고 미국 최대의 반도체 공급업체가 되었다.
모하메드도 말했다.
“미래가 MOSFET이라는 데는 나도 데이비드도 동의해. 그러나 지금 현실을 보자고 지금 제대로 된 TTL을 생산하는 회사는 우리 큐브가 유일해.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개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지만 우리를 따라잡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야. 당장 IBM도 우리에게 반도체를 납품해 달라고 난리잖아.”
“IBM과의 계약은 정말 머리가 아파요. 그들은 세컨드 라이선스를 다른 기업에 주기를 원하니까요.”
DEC에서 트랜지스터 대신 IC를 사용한 컴퓨터인 PDP-2를 출시하자 IBM에서도 큐브에 반도체 구입을 위해 접근해 왔다. 그러나 지금 IBM과는 중대한 문제가 걸려 계약 체결을 못하고 있다.
DEC를 위해서 경쟁 업체인 IBM에 납품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DEC와 IBM은 서로 시장이 다르다. IBM은 대기업에 범용 컴퓨터를 납품하거나 대여하여 지속적인 서비스를 이용해 돈을 버는 기업이고 DEC는 군이나 대학 혹은 고등학교, 중소기업 등에서 직접 운용할 미니 컴퓨터를 판매하는 회사라 시장이 겹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IBM에 반도체를 판매한다고 DEC의 시장을 갉아먹지는 않는다. 문제는 IBM이 우리의 반도체 기술을 다른 회사에 라이선스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IBM이 우리 회사를 통째로 잡아먹겠다거나 하는 과한 욕심을 부리거나 갑질을 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반도체 공급을 큐브 하나에만 의존하다가 만에 하나 사고가 일어나거나 제품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생산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고 때문이다.
가령 우리 큐브의 반도체 공장에 불이 나서 IC 공급이 중단된다거나 우리가 납품한 IC에 중대한 하자가 생겼을 때 이를 대신 공급해 줄 수 있는 2차 공급처를 원하는 것이다.
IBM은 지금까지 이 원칙을 아주 강하게 지키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가진 지적 재산을 타인에게 넘겨주는 것이니 큰 손해를 보는 것인데 대신 IBM이라는 이 시대 최대의 시장을 새로 얻는다는 장점이 있다.
IBM의 요구에만 따르면 우리는 아주 안정적인 판매 시장이 생겨 회사를 두 배로 키울 수 있다.
이 딜레마 때문에 큐브의 최고경영자 고든 카파는 지금 아주 심하게 고민하고 있다.
우리가 IBM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IBM은 당장 텍사스인스트루먼트나 페이차일드를 찾아 갈 거고 그렇게 되면 그 회사들이 돈벼락을 맞고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경쟁자가 될 거고 그렇다고 IBM의 요구에 따라 2차 라이선스를 넘겨주면 텍사스인스트루먼트나 페이차일드 이외의 또 다른 강력한 경쟁자를 우리 손으로 만들 수도 있다.
모하메드가 말했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IBM에 물건을 팔아먹으려면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지. 어차피 우리가 팔아먹을 물건도 최신 IC가 아니라 한 세대 이전 IC잖아.”
강대원이 말했다.
“아니 불과 3년 전에 개발한 물건을 한 세대 이전이라고 말해도 되는 거야?”
“솔직히 최신 IC에 비하면 구식이 맞는데 뭐.”
우리는 새로운 IC를 위해 DIP(dual in-line package) 패키지를 새로 개발했다. DIP가 뭐냐 하면 우리가 반도체라고 할 때 흔히 떠올리는 지네처럼 양쪽으로 다리가 달린 바로 그거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장차 21세기까지 아주 유용하게 사용될 기술이다. 20세기 후반에 표면실장 기술이 등장하면서 용도가 줄어들기는 하지만 지금은 이게 세계 최고의 패키지 기술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고든도 아마 결국 IBM의 조건을 응낙할 거예요. 지금은 IBM과 최대한 실랑이를 해서 조건을 더 좋게 하려는 거고요.”
이 부분은 나도 인정한다. 우리가 IC를 모조리 우리 내부 제품 만드는 데 소모하는 게 아니라 IC 자체의 상품화를 원한다면 IBM 같은 대형 고객을 잃을 수 없다.
강대원이 말했다.
“그래서 기술 차원이 아예 다른 MOSFET으로 IC를 만들겠다?”
아무리 IBM이 대형 고객이라고 해도 우리가 MOSFET으로 IC를 만들면 그 원천기술인 MOSFET 기술까지 다른 회사에게 넘기라고 할 수는 없을 거다. IBM이 대기업 갑질을 안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럼 시장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독점금지법을 위반할 위험이 되어서 그렇다.
솔직히 지금 IBM은 시장의 2인자인 DEC 따위는 전혀 위협으로 여기지 않는다. 미국 법무부와 독점금지법을 가장 무서운 적으로 여길 뿐이다.
“그것도 있지만 일단 여기 일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그래요. 최소 2년 정도의 기술 격차를 벌려 놓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아요. MOSFET을 이용한 반도체 생산라인을 가동시켜 놓고 떠나고 싶은 거죠.”
강대원과 모하메드 아탈라 둘 다 내 말에 놀랐다.
강대원이 어이없이 했다.
“아니 한국으로 돌아가서 뭐하게? 지금 미국에서 가장 큰 반도체 회사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컴퓨터 회사를 만들어 놓고 한국으로 가겠다고?”
“영구적으로 가는 건 아니고 지금 가서 해야 할 일이 있어요.”
“그게 뭔데 시우 네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야?”
“지금 한국으로 가서 한국에 있는 생산라인을 정리하고 아빠 사업도 좀 도와야겠어요.”
“그건 돈만 보내드리면 되는 거 아냐?”
“돈만 보내서는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지금 돌아가서 확실히 가닥을 잡아둬야죠.”
모하메드는 한국 사정을 모르니 가만히 있었지만 강대원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도대체 한국으로 가서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네.”
강대원은 6.25 직후에 미국으로 온 사람이라 한국이 전쟁으로 황폐해지고 발전의 가능성이나 미래의 희망 따위는 한 점도 안 보이는 한국밖에 모르고 있었다.
아마 나도 미래에서 회귀한 게 아니라면 지금의 한국에서 미래의 가능성 따위는 전혀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미래에서 지금부터 한국이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시점에 한국에서 최대한 발을 뻗고 침을 발라놔야 할 필요가 있었다.
*
“저는 우리나라가 10년 안에 달에 사람을 보내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TV에서 케네디가 국회에서 연설하는 장면이 방송되고 있었다.
이제 미국의 TV는 완전히 컬러 방송이 자리를 잡았다. 칙칙한 흑백 화면이 현란한 색깔을 뿜어내는 컬러 화면으로 바뀌고 있었다.
켄 올슨이 말했다.
“저거 우리에게 컴퓨터를 더 주문하겠다는 소리 맞지?”
웨슬리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주머니에 달러 뭉치를 넣어줄 테니까 주머니 벌리고 있으라는 얘기지.”
케네디의 우주 개발 선언에 TV 앞에 모여 뉴스를 보던 모두가 희희낙락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진짜 켄과 웨슬리의 말대로 미국 정부에서 DEC와 큐브 컴퍼니에 돈을 퍼주겠다는 소리였다.
켄의 동생 스탠이 말했다.
“그러잖아도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이나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개발한다고 반도체나 미니컴퓨터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데 우주 개발까지 더하면 진짜 몇 배로 수요가 늘어나는 거 아냐?”
마빈 민스키가 말했다.
“안 그래도 나사에서 지금 인력을 무지무지 모으고 있다더라고 나보고도 나사로 안 올 거냐고 물어보던데.”
이미 미국 굴지의 대기업이 된 DEC와 큐브 컴퍼니인데도 자기가 이직 요청 받았다는 소리를 태연히 할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가 우리 사이에는 있었다.
해런이 마빈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갈 거야?”
“아, 미쳤어? 내가 여기 스톡옵션이 얼마가 걸려 있는데.”
모두 DEC의 창업 멤버들이라 스톡옵션이 빵빵하게 걸려 있었고 상장만 하면 다들 백만장자가 되는 건 따놓은 당상이었다.
물론 그중에서 최고는 주식 70%를 소유하고 있는 나다. 거기다 DEC는 원역사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해서 지금 주식을 상장하면 내 주식만 최소 3억 달러 이상 평가 받으리라는 예상이었다. 그 뒤로는 켄 올슨이 대략 10%, 웨슬리 클라크가 6% 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그 외에 스탠 올슨이나 마빈 민스키, 해런 앤더슨 같은 사람들도 2, 3% 정도 가지고 있다. 그 외에 큐브 컴퍼니의 최고 책임자 고든 카파도 1% 정도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월스트리트 여기저기에서 자기들에게 상장 작업을 맡기라고 마구 작업을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DEC의 주식 상장은 1, 2년만 늦추죠. 징조가 좀 이상해요.”
켄 올슨의 동생 스탠 올슨이 물었다.
“왜, 가격이 더 오를 거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아무래도 그 정도만 늦추면 주가가 두 배는 더 오를 거 같단 말이죠.”
이미 여기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예언자 수준으로 나를 믿고 있었다.
내가 두 배 정도 더 오를 거 같다고 말하자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스탠이 말했다.
“그럼, 케네디의 우주 개발이 진짜 커질 거 같다는 얘기야?”
“아무래도 그런 징조가 많이 보여요. 게다가 군에서 나오는 얘기도 장난이 아니고요. 소련에서 사람을 우주로 보냈는데 미국으로 핵미사일을 못 보낼 리가 없게 되어 지금 군의 반응이 장난이 아닌 거죠.”
아닌 게 아니라 지금 TV에서도 핵전쟁이 일어났을 때의 대처요령 따위가 방송될 정도로 핵에 대한 위협이 많이 거론되고 있었다.
지금 미국인들의 핵공포증은 장난이 아니다.
소련의 핵미사일을 막을 방법이 없다면 보복이라도 확실히 해야 된다고 너도나도 주장하고 있으며 미국 전역을 핵미사일로 도배를 해야 안심할 듯싶었다.
당연히 이런 핵미사일을 컨트롤하는 컴퓨터는 우리 DEC 제품밖에 쓸 만한 게 없었다.
핵미사일에서 그러니 자연스럽게 우주로 날아 올릴 우주 로켓도 DEC의 제품 말고는 마땅한 걸 찾기 어려울 것이다.
“로켓 컨트롤용의 컴퓨터 말고도 우주선에 실을 컴퓨터도 우리 물건이 들어가야만 해요.”
마빈이 말했다.
“우주선에 실으려면 당연히 지금보다 훨씬 작아야되겠군.”
“그렇죠. 그리고 지금 그런 기술을 가진 건 우리 DEC와 큐브뿐이죠.”
- 작가의말
표지에 있는 반도체 모양이 바로 DIP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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