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 청어와 메기, 그리고 상어(2)
“그래서 뭐라 그랬는데요, 그 사람이?”
“그냥 뭐······.”
어둠 내린 휴게소.
진수와 서린은 빙 둘린 장벽 위를 걷고 있었다.
다행히 저 어둠 너머에서 어떤 흉악한 것들이 몰려올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별 말은 안 했어요. 허허 웃더니 싫음 마시라, 그래도 한번 생각해 보시라 하고 가더라고요.”
“그 뒤론 별일 없었고요?”
“네, 뭐. 조용했어요.”
“어휴.”
서린은 걸음을 멈추며 난간에 기댔다.
“훈육 반장은 무슨. 그 사람은 그냥 진수 씨 등에 업고 완장질 한번 해보겠다는 거잖아요.”
“그런 느낌이 들긴 하더라고요.”
“사람들은 왜 이렇게 감투에 목을 매는지······.”
그녀는 먼 산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러다가 불쑥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아! 그나저나, 인어맨이랑 조개소년이랑 드러누워 잤다고요? 일하던 중에?”
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빈집 들어가서 자는 걸 김영기 그 사람이 발견했던 모양이에요.”
“아니, 왜 잤대요? 어디 아프대요?”
“아뇨. 그냥 더워서 쉬러 들어갔다가 잤대요.”
“엑?”
서린이 똥 씹은 표정이 돼선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아놔 이것들······ 그렇게 안 봤는데 순 뺀질이였네? 걔들은 어떡했어요?”
“경고 하나씩 줬죠.”
“우씨! 그거 가지고 되겠어요? 어깨동무 시켜서 오리걸음이라도 시키지.”
서린의 말에 진수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가 뜸 들이다 물었다.
“서린 씨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체벌이 필요하다고.”
“뭐어······.”
서린은 말꼬리를 끌다가 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어느 정도는요.”
“······.”
“두들겨 패야 한다는 뜻은 아녜요. 나도 고등부에 있을 때부터 선배들한테 엄청 맞았는데, 반성은커녕 반감밖엔 안 들었거든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렇대도 체벌은 필요했어요. 말로 해서 못 알아먹는 사람이 너무 많고, 그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계속해서 물을 흐렸으니까요.”
“······.”
“진수 씨는 그런 사람들까지 끌고 가겠다는 거잖아요? 그럼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확실하게 기강을 잡아야죠. 하물며 우린 죽고 사는 문제에 걸쳐 있는 사람들인데.”
그녀의 말에 진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자괴감을 느꼈다.
‘말로 해서 못 알아먹는 사람······.’
그래. 그런 사람이 널렸다는 건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어찌 모를까.
사회생활 하다 보면 허다하게 마주치는 게 사람인지 침팬지인지 헷갈릴 인간들인데.
과거, 그런 사람과 만났을 때 진수가 택했던 처신법은 ‘무시’였다.
말 안 통하는 인간?
병신이구나 하고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그 회피적인 태도는 고스란히 ‘두 번 경고해서 세 번째에 내쫓는다’는 쓰리아웃 제도에 반영됐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병신)은 내쫓아버리면(무시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세상이 멀쩡했을 땐 그래도 됐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서린의 말마따나 우린 죽고 사는 기로에 서 있고, 모든 문제는 생존과 직결됐다.
미꾸라지가 물을 흐리면 기분만 잡치고 마는 게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사람 말 귓등으로 듣는 놈들은 예나 지금이나 귓등으로 듣는다는 게 오늘 일로 증명됐다.
김유찬과 이동근.
휴게소에 데려다 놓은 지 나흘 만에 시원하게 원아웃 해 처먹지 않았던가?
그들이 마음 깊이 뉘우치고 남은 두 번의 기회를 사수하려 노력할까?
뭐······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컸다.
아마도 어떻게 하면 다음엔 들키지 않고 꿀을 빨 수 있을까, 짱구나 굴릴 테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진수는 그걸 알면서도 묵인했다.
또 걸리면 내쫓으면 그만이라고, 손해 보는 건 어차피 저들이라고 자위나 하면서.
어쩌면 나태함에 절여져 변화를 거부한 건 김유찬이나 이동근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을지도 몰랐다.
“후! 그래도 서린 씨 덕분에 생각 정리가 좀 됐네요. 고마워요.”
“엥? 난 별 말 하지도 않았는데. 뭐, 도움이 됐다니까 다행이네요.”
두 사람은 장벽을 내려갔다.
서린은 휴게텔로 갔고, 진수는 오줌이나 눌 겸 화장실로 향했다.
휴게텔에 별도로 화장실이 없는 게 아쉬웠다.
2단계로 업그레이드 하면 화장실이 추가되긴 할 텐데······.
‘일단 주유소부터 뽑고.’
모든 일엔 우선순위가 있기 마련이다.
화장실에 도착한 진수는 안으로 들어서려 손잡이를 잡았다.
그때, 귓가로 수군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장실 건물 뒤편에 누가 있는 모양이었다.
무시할까 싶었지만, 그 목소리가 귀에 익어 건물 옆으로 돌아갔다.
슬쩍 고개를 내밀어 보니, 김유찬과 이동근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씨발 좆같은······. 생각할수록 빡치네. 그 깡패 새끼 확 안 뒤지나.”
“그러니까. 자기가 뭔데 우리한테 지랄이냐고.”
“후! 동근이 너, 그 새끼가 계속 우리 감시했던 거 알아?”
“엥? 리얼로?”
“그래! 아니면 우리가 거기 있는지 자기가 어떻게 아냐고! 우리 쫓아다니다가 우리가 잠드니까 일부러 큰 소리로 지랄 떤 거야. 사람들 다 들으라고.”
“와······ 소름이네. 쩝. 근데 잔 건 우리 잘못이긴 해.”
“아 씨! 그럼 더워 죽겠는데 어쩌라고! 태어나서 그딴 일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어휴.’
진수는 속으로 한숨 쉬었다.
20살씩이나 먹었다는 놈들 정신연령이 중학생 애들보다 못한 것 같았다.
진수는 계속 듣고 있다간 신경질만 더 날 것 같아서 몸을 돌렸다.
그 찰나였다.
“씨발. 난 그 사람도 존나 이해 안 가.”
“누구?”
“누구긴 누구야! 여기 휴게소 주인이지. 씨······ 그 사람도 깡패랑 똑같아. 아까 깡패 새끼 편드는 것 봤지?”
“음······ 그게 편든 건가?”
“당연하지! 나 대가리 처맞는 거 봐놓고도 ‘흐즈므세요~ 폭력은 은듭느다~’ 하고 말았잖아.”
“킥킥킥! 와, 너 졸라 잘 따라 한다.”
“씨······ 그 정도면 퇴출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애초에 그딴 깡패 새끼들을 왜 받아가지고······.”
“내가 누구 받고 말고 하는 것도 댁들 허락 받아야 합니까?”
“헉!”
“어, 어어······.”
진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유찬과 이동근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묻잖아요. 내가 니들 허락 받아야 되냐고.”
“어어······.”
“아니, 그, 그게,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고 뭐?”
“······.”
“뭐? 말을 해봐. 뭐 어쩌라고?”
“······.”
김유찬과 이동근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하아.”
진수는 화도 안 나고, 그냥 갑갑한 마음만 들었다.
“뒷담 까는 건 좋은데 깔 거면 안 들리게라도 하던가. 이건 뭐, 지나가던 개새끼도 듣고 나한테 일러 바치겠네.”
“······.”
“그래. 다 들었는데, 이제 어쩔까요? 내가 이거 그냥 참고 넘어가야 해요?”
“저, 저는!”
“음?”
“저는 그, 그쪽 욕은 안 했어요. 저는 그 깡패만 욕했어요!”
“야, 야!”
“뭐! 맞잖아? 나는 저분 욕은 안 했어! 그냥 맞장구만 쳤지!”
이동근이 스리슬쩍 발을 뺐다.
김유찬은 배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친구를 쳐다봤지만, 이동근은 시선을 피할 따름이었다.
아주 시트콤이 따로 없었다.
‘애새끼구나, 애새끼야.’
요새 20살은 고등학생이랑 별 다를 것도 없다더니.
이래서는 고등학생도 아니고 초등학생 수준이었다.
초등학생이 초등학생 짓 하면 봐줄 수 있다.
하지만 명색이 어른이면, 좋든 싫든 나이 먹은 값은 해야 했다.
“두 분은······.”
진수가 그들에게 말했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한 번만 더 눈에 거슬릴 짓 해요. 그땐 퇴출······, 아니 퇴출 정도가 아니라 구울 한가운데 던져버릴 테니까.”
“윽! 네, 넵······.”
“지지, 진짜, 진짜로 죄송합니다······.”
“조용히, 그냥 조용히 살아요. 알아 들어요? 남들만큼 못해도 상관 없으니까, 최소한 분위기는 흐리지 말라고.”
진수는 그 말을 남긴 뒤 화장실로 가 오줌을 눴다.
다시 나왔을 땐, 둘 다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는 담배 한 대 꼬나물었다.
“어렵네 진짜······.”
질척질척한 것은 언제나 인간관계였다.
차라리 구울이 깔끔했다.
·
·
·
“으음. 음.”
전명환은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드르렁, 드르렁 울리는 코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낮에 안 좋은 사건이 있었다.
자신과 함께 마트에 살았던 20살 청년 유찬.
그가 여기서 만난 친구와 농땡이를 피우다 걸린 것이다.
유찬은 마트에 있을 때부터 게으름 피우기로 유명했다.
녀석은 20년 평생을 서울에서 산 천상 서울 사람인데, 조부 제사 때문에 시골집으로 내려왔다가 변을 당한 것이랬다.
그런 그의 일거수일투족에선 금지옥엽, 오냐오냐 키운 티가 났다.
뭐만 하면 할 줄 모른다, 해본 적 없다, 더럽다, 힘들다, 덥다,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냐······.
김영기한테 한바탕 얻어맞은 뒤부턴 좀 고분고분해졌는데, 휴게소에 오자마자 다시 게으름 병이 도진 모양이었다.
명환은 유찬과 마트에서 처음 만난 사이지만, 그래도 어른으로서 그에 대한 부채감을 느꼈다.
‘우리 연서도 참 철부지였는데······.’
덧붙여, 떠나보낸 딸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고.
날이 밝거든, 유찬을 앉혀놓고 진지하게 설교를 해야 할 성싶었다.
녀석이 들어먹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르고 달래 봐야지.
-상득이, 자나.
-으음? 예, 예, 형님? 부르셨슴까?
-아, 미안타. 자라.
-아닙니다, 형님. 잘랑 말랑 했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안 자면 담배나 한 대 피우자꼬.
-오우. 좋습니다.
-엇, 형님. 저도······.
-뭐꼬? 진호 니 안 잤드나?
-킥킥. 형님. 이 새끼 담배 소리 듣고 눈이 번쩍 뜨인 모양인데요?
-둘 다 나온나. 한 대 풌자. 할 얘기도 있고······.
김영기 일행은 푸드코트 제일 구석에서 잠을 청했는데, 웅성웅성 하더니 셋 다 바깥으로 나갔다.
‘······할 얘기?’
전명환은 괜히 찝찝한 마음이 들어 슬그머니 따라 나갔다.
그들은 푸드코트 건물 뒤편에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명환은 음영에 몸을 숨긴 채 그들이 떠드는 얘기를 엿들었다.
세 사람은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데 가만 듣노라니, 자신이 알지 못하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한바탕 소란이 있었던 후, 김영기 저 인간과 휴게소 주인인 고진수 씨가 언쟁을 벌였던 모양이었다.
“······예? 그, 그래서 어쩌셨습니까 형님?”
“어쨌냐고? 고마, 칵 마 손날치기로 울대를 조사뿔까 하다가······ 참았지. 킥킥! 천하의 김영기도 성깔 마이 죽었다.”
“하, 하하. 잘 참으셨습니다.”
최상득은 어색하게 웃다가 슬그머니 물었다.
“저······ 그런데요, 형님.”
“어, 와?”
“혹시 그 휴게소 주인장 말입니다······. 재끼실 계획이신 겁니까?”
김영기는 픽 웃더니 대답했다.
“와? 함 재끼뿌까? 씨바꺼, 맘만 먹으면 못할 것도─”
“저, 저저 형님!”
그때였다.
박진호가 김영기의 말을 끊으며 다급히 말했다.
명환은 자신이 엿듣는 게 들킨 건가 싶어 심장이 벌렁거렸다.
“뭐꼬? 와 똥 마려운 강아지맹키로 안절부절 못 하노?”
“죄송한데 배, 배가 너무 아파서······. 화장실 좀 가도 되겠습니까?”
“이쉑? 지금 행님이 말씀 하시는데 화장실을 간다꼬?”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진짜 너무 아파서······.”
“쯧쯧쯧. 가서 똥 싸라 싸.”
김영기가 허락했고 박진호는 화장실로 후다닥 달려갔다.
“저 새끼 와 저카노? 뭐 잘못 먹었드나?”
“글쎄요. 아까 저녁을 많이 먹긴 하던데.”
최승덕은 적당히 맞장구치곤 물었다.
“그런데요 형님. 진짜로 재끼실 생각이십니까?”
“흐흐흐.”
김영기는 새로 담배를 꼬나물며 대답했다.
“인마야, 내가 뭐 똘개이가? 재끼긴 뭘 재끼노?”
휴······. 최승덕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여기 있는 건물이고 밥이고 물이고, 다 그 양반한테서 나온 거라 카더만? 그 양반 잘못 건드렸다가 여기 있는 거 다 사라져뿌면 우짤라고? 우리 먹고 마실 것도 없어지는 건데.”
“예예, 그렇죠. 큰일이죠, 그러면.”
“쯥······. 고마 살살 구슬리면 넘어올 줄 알았더만. 생각보다 대가 세더라꼬. 우리 입맛대로 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고 사장은.”
김영기가 이어 말했다.
“뭐, 여기서 이러고 조용히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이가? 그니까 앞으로도 잡음 내지 말고 조용히 지내라. 알았나?”
“예예, 형님. 당연하죠.”
“그래. 진호 점마한테도 괜히 설치지 말라꼬 전해주고.”
“아유, 진호 저 새낀 담이 작아서 혼자선 안 설칩니다.”
“맞나? 아, 그리고. 고 사장이 무슨 일 한다고 하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서 점수 좀 따놓으레이. 그래야지 나중에라도 자리 하나 나면 눌러 앉는 거다.”
“예, 형님. 명심하겠습니다.”
“오냐. 고마 들어가자. 덥다.”
김영기와 최승덕이 불 꺼진 푸드코트로 들어갔다.
얼마 뒤 전명환도 들어갔고, 박진호는 한참 후에야 들어갔다.
***
2025년 7월 21일 월요일.
아포칼립스 발발 28일째가 밝았다.
“빨래 왔어요. 자기 거 가져가세요.”
휴게텔 세탁실엔 큼직한 대형 세탁기가 3개 있고, 건조기도 3개 있었다.
세탁기와 건조기 모두 1회 이용료가 5,000원이었는데,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려 사람들은 빨래를 한 번에 모아서 했다.
옷이 섞이기 때문에 각자의 옷엔 유성 매직으로 주기(朱記)가 돼 있었다.
사람들은 주기를 확인한 뒤 본인의 옷을 가져갔다.
“어? 이상하다?”
그런데 중3 소녀 나은은 고개를 갸웃대며 한참을 빨래 산을 뒤졌다.
때마침 옆에 있던 서린이 물었다.
“왜 그래, 나은아?”
“아······ 서린 언니. 그게······.”
나은이 우물쭈물하다가 말했다.
“팬티가 없어져서요.”
“엥? 없어졌다고?”
“네. 분명 이번에 빨래 할 때 넣어놨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요.”
“무슨 색깔인데?”
“하얀색에 분홍 줄무늬요.”
“잘 찾아봐. 이거······ 는 아니네. 이것······ 도 아니고.”
서린도 합세하여 빨래를 뒤졌지만 나은의 팬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녀들 곁으로 혜지가 다가오며 물었다.
“뭐해 두 사람? 왜 빨래를 어지럽혀?”
서린이 머쓱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 어지럽히는 게 아니고, 나은이가 팬티 잃어버렸다고 해서. 하얀색에 분홍 줄무늬라는데 혹시 못 봤니?”
“으음. 못 봤는데······. 근데 이나은 너도 팬티 잃어버렸냐? 그저께는 예린이가 잃어버렸다던데.”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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