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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pold2 님의 서재입니다.

꿈꾸는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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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쿤
작품등록일 :
2024.05.1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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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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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8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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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메타포

DUMMY

“들러리가 되어 주십시오.”


들러리가 되어 달라고?

그게 무슨 뜻이지?

이 조그만 녀석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다.


아무튼 베르폰트는 처음으로···

내게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처음 내린 주문이 들러리가 되어 달라는 거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팔짱을 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사실 기뻤던 것.

큭큭큭···

속으로 웃었다.

피디가 말하기 전까지는 더 심각한 상황, 이를테면 계약 해지라든지 계약 불이행에 따른 손해 배상 따위를 예상했기에.


“혹시 계약서 가지고 계십니까?” 내가 물었다.

“계약서요?”

“네, 당신과 나의 계약 내용이 적힌 계약서요.”

“물론입니다. 그건 왜요?”

“계약서 사본을 한 장 받고 싶습니다. 확인할 게 있어서요.”


자연스러운 타이밍이었다.


베르폰트가 말한 들러리라는 것은 사브리나의 F급 던전 공략을 돕는 것이었다.

원래라면 나를 중심으로 두 단계 낮은 던전인 H급에서 촬영을 해야 했지만 내 마나 수치가 하락한 덕분에 콘텐츠가 바뀐 것이다.


*


H급 던전을 찾아 헤맬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녹화가 진행됐다.

던전의 입구인 메타포를 손쉽게 찾기 위해 던전 공략가가, 던전 클리어시 위험 관리를 위해 사브리나와 동급인 F급 헌터가 추가로 고용됐다.


“안녕하세요.”


공략가는 호리호리한 오크였다.

요즘 들어 근육량이 적은 오크를 자주 보는 것 같다.


그는 손 안에 쏙 들어올 만한 크기의 기기를 조작해 손쉽게 메타포를 찾아냈다.

산속을 헤맨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번에는 왜 그 개고생을 한 걸까···

아마도 시답잖은 드라마를 연출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오와···”


그가 메타포라고 지목한 것은 어느 들꽃 한 포기였다.


“메타포는 그전까지 22층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종으로 나타나지요. 그게 곧 던전으로 향하는 문입니다.”


그렇게 말하는데 그의 두꺼운 안경알이 매섭게 빛났다.

공략가는 주섬주섬 붉은 들꽃 주변에 삼각 구도로 기계 장치를 설치하고는 우리에게 물러나라고 신호했다.


우리가 물러난 뒤에 기계 장치에서 파동이 일며 자기장이 생겼다.


츠츠츠츠츠!


이후 가볍게 땅이 흔들리며 들꽃이 사라졌다.

잎과 줄기가 세포 단위로 흩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1초 남짓.


잠시 후 들꽃이 있던 자리로 주변 지형지물이 빨려 들어갔다.

바로 그 자리에 포탈이 생성되었다.


공략가가 말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럼 전 이만.”


그는 그 말만 남기고, 해맑게 웃으며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개부럽네.”


공략가가 사라진 뒤에 레미가 말했다.


“뭐가요?”

“저놈 방금 전에 벌어 간 돈이 얼만 줄 알아요?”

“저야 모르죠.”

“자그마치 1,000골드예요.”

“···”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던전 두 개 찾으면 2,000골드.

2천이면 내 한 달 월급이다.

확실히 쉽게 벌긴 하는군···

쉬워도 너무 쉽다.

하지만 그전처럼 배가 아프진 않았다.

지금 내 재산에 비하면 1,000골드쯤 푼돈에 불과하니까.


“뭐, 그래봤자 헌터에 비하면 세발의 피지만. 이참에 나도 다시 헌터에 도전해 볼까 봐요.”

“···”


그게 도전한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우리가 대화하는 사이, 사브리나와 베르폰트, 새로 영입한 헌터가 포탈 앞에 서서 우리 쪽을 돌아봤다.


포탈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살짝 손을 대 보았는데 아무런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다음 몸을 던졌는데.


“윽!”


가벼운 현기증이 있을 거라는 말은 거짓이었다.

내가 모르는 어떤 힘이 머릿속을 몇 번이고 휘저어 놓은 듯했다.

눈물이 한 방울.

콧물도 조금 흐른 것 같았다.


휘이잉.


불어온 바람이 볼에 닿았다.


“어···”


어느새 현기증이 멈추었고.

주변을 살펴보니 폐허가 된 도시 한복판이었다.

사브리나는 이미 저만치 앞서 나가 있었다.


그녀가 다시 일행 쪽으로 와서 말했다.


“이쪽이에요.”


선두는 사브리나, 후미는 새로 온 헌터가 맡았다.

아직까지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브리나가 어느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절반이 사라진 콘크리트 건물로, 거대한 검으로 건물을 반으로 썰어 버린 듯한 모양새였다.


“여기네요.”


끼이이이이-


사브리나가 녹슨 셔터를 올리자 날카로운 소리가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반쯤 올린 셔터 안으로 들어가니 컴컴했고, 베르폰트가 랜턴을 켰다.


‘키키키킥!’


불쾌한 웃음 소리가 들렸다.


“뒤쪽 잘 커버해 주세요 헌터님.”


사브리나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예.”

“그럼 갑니다.”


생각보다 건물 내부가 넓었다.


저 앞쪽에서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가가니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사브리나와 그녀보다 체구는 작지만 두꺼운 몸을 가진 몬스터의 그림자가 설핏 보였다.

인스턴스 던전에서 봤던 녀석들과 다른, 이족 보행을 하는 녀석이었다.


“저건···”

“고블린 같네요.”


베르폰트가 대답했다.


더 다가가니 사브리나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전에 봤던 것보다 느린 움직임으로 고블린과 칼싸움을 하고 있었다.


깡, 깡깡, 챙챙!


“음?”


자세히 보니 칼싸움이 아니었다.

사브리나와 고블린은 미리 합을 맞춘 것처럼 움직였다.


깡, 깡깡, 챙챙!


두어 번 더 비슷한 소리가 울리다가···


푸욱.


사브리나의 기다란 검이 고블린의 심장을 찔렀다.


“키에에에엑!”


고통스러운 신음이 울려퍼지고.

푸른 빛이 어둠 속에 번졌다.

빛은 잠시 몬스터의 사체 주변을 감돌다 사라졌다.


“솜씨가 좋은데요?”


뒤에 서 있던 헌터가 말했다.


사브리나는 보스 몬스터가 나오기 전까지 비슷한 방식으로 싸웠다.


깡깡, 깡, 챙!


깡깡깡, 챙챙챙!


뭐 그 비슷한 리듬이었던 것 같다.

평소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건 상대의 패턴을 읽기 위함이라고, 헌터가 말해 주었다.

일단 비각성자의 눈으로 그녀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한 층, 또 한 층 위로 올랐다.

고블린을 열댓 마리 잡은 뒤에 고블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덩치가 큰 녀석이 나타났다.

언뜻 오크처럼 보이는.


“보스네요.”


고용된 헌터가 말했다.

등 뒤에 해설자가 서 있으니 편하군···


보스의 패턴은 조금 더 복잡했고, 소리도 한층 요란했다.


깡깡, 깡깡깡! 챙! 깡깡! 챙!


패턴이 한 번.

또 한 번 반복되었다.


하지만 결말은 똑같았다.


사브리나의 검이 고블린의 심장을 관통했다.

그전까지 처치한 고블린들보다 커다란 빛이 일었다가 사라질 즈음 영롱한 소리가 건물 안에 울렸다.


띵!


점.

푸른 점이 바닥에서 빛나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용된 헌터가 말했다.

사브리나는 바닥에서 빛나는 푸른 점을 주워서 인벤토리에 넣었다.


착시 현상인가?

주변 풍경이 살짝 일그러져 보였다.


“밖으로 나가죠!”


어느새 다가온 사브리나가 말했다.


밖으로 나오자 반 토막 난 건물 전체가 쪼그라들고 있었다.

우리는 건물에서 떨어진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침내 건물이 우리가 들어올 때와 똑같은 출구를 만들었다.

그렇게 던전 공략이 끝났다.


체감상 한 시간도 안 걸린 것 같았는데 시간을 보니 한 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시간 감각이 좀 이상해진 건가.


“던전 안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요.”


멍하니 서 있는 내게 사브리나가 말했다.


아하.

그 말을 들으니 던전 안에서 느꼈던 긴장감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평소에 말이 많던 레미조차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일행 중 유일하게 입을 연 것은 후미에 선 헌터였다.

아마 경험에서 나온 여유였겠지.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는 그 말을 남기고 총총 사라졌다.


고용 헌터에게 지급된 돈은 5,000골드.

공략가가 받아 간 돈의 무려 다섯 배였다.


“F급 헌터 중에는 이런 일을 하는 이들이 제법 있습니다.” 베르폰트가 말했다. “몸을 사리는 족속들 말입니다.”


그는 아무리 하급 헌터라고는 해도 헌터의 수가 전체 각성자의 10%밖에 안 되기 때문에 할 일은 넘쳐난다고 덧붙였다.


“이만 복귀합시다.”


*


숙소에 와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던전에서의 사브리나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달랐어···”


지금까지 보아 온 사브리나의 모습이 아니었다.

평소처럼 나를 보면 웃긴 했지만, 그러한 모습조차 어색했다.


“한번 가 볼까.”


나는 당장 몸을 일으켰다.


방에서 나가 복도를 따라 계단을 지나 첫 번째 방.


‘사브리나.’


문패가 달려 있었다.


똑똑똑.


노크를 하자 곧 문이 열렸다.


“어? 사지마씨.”


사브리나도 샤워를 했는지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다.

사브리나한테서 좋은 향기가 났다.


“웬일이에요? 처음이네요. 사지마씨가 나를 찾아온 건···”


그녀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냥요.”

“아직 저녁 전이죠? 우리 맛있는 거 먹을까요?”

“좋습니다.”

“잠시만요. 옷 좀 갈아입구요.”


사브리나는 금세 옷을 바꿔 입었다.

그냥 헐렁한 티셔츠에 무릎 위까지 오는 레깅스 팬츠를 입었을 뿐인데도 옷 테가 났다.

몸의 굴곡 때문인가···


“괜찮아요? 이것도 협찬해 준 옷인데, 제 옷이 아니라 그런지 어색하네요.”

“잘 어울려요.”


사브리나의 시선이 내 착장을 훑었다.


“사지마씨도 멋져요. 나 그 브랜드 좋아하는데.”

“아, 그래요?”


우리는 카페테리아에 가서 각각 샌드위치와 커틀릿을 시켜 간단하게 요기했다.

식사하는 동안 별말이 오가지는 않았다.


“커피도 한 잔 할까요?” 사브리나가 말했다.

“좋아요. 디카페인으로.”


내 대답에 옆에 앉은 그녀의 시선이 잠깐 볼쪽에 다녀가는 게 느껴졌다.

참, 각성자는 디카페인 안 마시지.


“자꾸 까먹어요. 사지마씨가 비각성자라는 거.”


사브리나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음료를 다 마실 즈음이었다.


“저··· 죄책감이 들어요.”


나는 계속 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의 눈을 쳐다봤다.


“몬스터를 죽이는 거요. 저도 알아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거. 그 아이들을 처치해서 던전을 닫아야만 이 세계가 온전하리라는 것도요.”


으잉?

그게 무슨 말이지?

몬스터를 죽이는데 웬 죄책감?

나는 던전을 비롯해 이 세계가 어떻게 유지되는지 따위는 잘 모른다.

헌터 아카데미에서는 그런 걸 가르치는 모양.

그런 속마음과는 다르게 다 안다는 듯이, 사브리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녀는 섬에서와 다른 말을 했다.

아, 다른 말이 아니라 그때는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헌터가 될 능력을 가지고도 이 일을 하지 않는 데 대한 책임 같은 걸 느꼈어요.”


나는 미간을 좁히며 눈을 크게 떴다.


“섬에 다녀 온 이후로요. 특히 사지마씨를 보고···”

“에··· 저를요?”

“네. 사지마씨는 헌터도 아닌 데다 하물며 각성자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하고 있잖아요.”


사브리나는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내 이익을 위해 움직일 뿐인데···

아무튼 나는 입을 다물고 묵묵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저! 더 강해질 거예요! 마나 수치도 더 올릴 거고, 멘탈도 다잡을 거예요!”


더 강해질 거라며, 비장한 얼굴을 하는 사브리나의 말에 차마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었다.


사브리나가 마음에 걸려 그녀를 만나고 왔는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들뜬다.

나는 그저 나만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움직였는데, 누군가는 그런 행동을 좋게 해석하고 발전적인 일을 도모한다.


“역시 남다르단 말이야···”


이따금 내가 사는 방식에 대한 회의를 품은 적이 있었다.

사브리나의 말에 내 삶에 의미가 생기는 듯했다.

내 하찮은 삶에도 말이다.


“이거··· 개꿀인데?”


무척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된 기분이랄까.

게다가.


[이미지를 사용하겠습니까? 한 번 사용한 이미지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능력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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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사일런스 우드 (2) 24.06.18 34 0 11쪽
36 사일런스 우드 (1) 24.06.17 36 2 10쪽
35 한계 돌파! 24.06.14 43 0 13쪽
34 불편한 계약 24.06.13 45 1 12쪽
33 더치페이 24.06.12 46 0 12쪽
32 말할 수 없는 비밀 (2) 24.06.11 54 1 12쪽
31 말할 수 없는 비밀 (1) 24.06.10 55 0 12쪽
30 안전제일! 24.06.09 65 1 12쪽
» 메타포 24.06.08 63 0 12쪽
28 퇴출 24.06.07 71 1 12쪽
27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24.06.06 80 0 14쪽
26 구사일생 24.06.05 83 1 12쪽
25 네임드 24.06.04 96 2 11쪽
24 인스턴스 던전 24.06.03 103 1 11쪽
23 쌍둥이 형제 24.06.02 118 1 11쪽
22 각성자 테스트 (2) 24.06.01 132 1 12쪽
21 각성자 테스트 (1) 24.05.31 151 2 13쪽
20 헌터. 헌터··· 헌터? 24.05.30 173 1 12쪽
19 퇴사 24.05.29 179 1 10쪽
18 인생 2막 24.05.28 186 1 10쪽
17 각성 24.05.27 195 2 11쪽
16 막다른 길 24.05.26 174 1 12쪽
15 마피아 게임 24.05.25 177 2 12쪽
14 세기의 커플 탄생! 24.05.24 18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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