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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pold2 님의 서재입니다.

꿈꾸는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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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쿤
작품등록일 :
2024.05.15 19:37
최근연재일 :
2024.06.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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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5.31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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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각성자 테스트 (1)

DUMMY

“이 머저리 같은 놈아! 인상 펴라고! 사랑에 빠진 녀석이 눈깔이 왜 그래? 다시!”


왜소한 엘프의 목소리가 사방에 쩌렁쩌렁 울렸다.

연기자는 몇 번이고 굽실거리며 그에게 사과했다.

촬영 감독, 스태프들···

여남은 명도 넘는 종들이 연기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베르폰트가 연기자들을 둘러싼 스태프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저들 모두가 아마 각성자일 것이다.

그래야 그들의 시야를 통해 블루 박스로 촬영을 할 테니.

촬영이라는 거, 막상 눈으로 보니 생각보다···

멋있는데?


촬영 현장에 있는 베르폰트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작은 거인이라 해도 손색 없을 만큼.


“언제 왔습니까?”

“좀 전에···”


조금 전까지 박박 인상을 구기던 베르폰트의 얼굴이 나를 보고는 거짓말처럼 풀어졌다.

처음이었다.

그가 그런 웃음을 보여준 건.


“이리로 오시죠.”


촬영장을 벗어나 코너를 두어 번 돌자 문이 나왔고, 그리로 들어갔다.

뭔가 으리으리한 사무실을 상상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생각보다 비좁았다.

그는 허리를 굽혀 테이블 아래쪽에서 캔커피를 두 개 꺼냈다.


“방금은 무얼 하고 계셨던 건가요?”

“방금이요? 아··· 미니시리즈 촬영이에요. 주연 배우 연기가 엉망이라서 잠깐 참견을 좀 하느라고요.”

“그런 일도 하시나요?”

“들어오는 일은 뭐든 하는 편입니다. 뭐, 다 직접 소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이름을 달고 나가려면 컨펌은 해야죠. ‘무인도의 비각성자’ 같은 작품은 좀 예외였고···”


이거 내 생각보다···

베르폰트가 더 거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 직접 보니, 모든 게 설명된다.

돌이켜 보니 직원을 따라 오는 내내, 내가 지나온 곳들은 전부 촬영 세트였다.

제각각 다른 테마를 가진 세트가 십여··· 아니, 수십여 개는 됐다.


딸칵-


베르폰트가 캔커피를 따서 내게 건넸다.

커피는 시원했다.

테이블 밑에 냉장고가 붙어 있는 모양.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그래, 돈 문제인가요? 내가 제안한 금액이 적어서 거절한 건가요? 그 정도면 신인 치고는 파격적인 대우인데.”


나는 베르폰트의 헐렁한 청바지를 보며 고민에 잠겨 있었다.

비각성자인 내가 헌터가 된다고 하면 분명 비웃을 텐데···

하룻밤 사이, 헌터가 되려고 마음먹었던 것이 머나먼 꿈처럼 느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그럴듯하다고 여겨졌던 이야기가 갑자기 개연성을 잃고 얼마간 흩어진 것이다.

이걸 말해야 돼, 말아야 돼···


“사지마씨가 다른 피디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정도로 멍청한 것 같지는 않고··· 무슨 다른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나는 고개를 들어 베르폰트의 눈을 봤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질러!


“저, 헌터가 되고 싶습니다.”


베르폰트는 눈을 가늘게 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뾰족한 귀가 약간 뒤로 움직였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냐는 듯이.


피디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목이 탄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캔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음료를 다 비우고 나서야 베르폰트의 입술이 벌어졌다.


“후우··· 그런 거라면 내가 구상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 말해 줘야겠군요. 미안합니다. 생각을 정리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나는 각성 메커니즘을 밝히는 방송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각성자 테스트에서 비각성자로 판명난 자를 의도적으로 각성시킬 수 있느냐,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어서요.”


베르폰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몰아치듯 말을 이었다.


“들어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22층에는 아주 소수이지만 비각성자 판정이 난 자가 뒤늦게 각성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방송되고 있는 ‘무인도의 비각성자’ 의 주역 사지마. 당신이 그 소수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내가 당신의 각성을 적극 도와 드린다면? 내가 가진 자원을 모두 활용해서!”


허허···

이 양반.

완전히 잘못 짚었는데?


머릿속이 엉망으로 헝클어졌다.

하지만.

완곡히 거절하려던 기존의 계획에 뭔가 나쁜 생각이 끼어들었다.


이용하고 싶다···

베르폰트가 가진 자원을.

인맥이든 장비든 돈이든, 뭐가 됐든 모조리.

분명 자기 입으로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혼자서 헌터가 되려면 난관이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 뒤에 베르폰트라는 거물이 있다면?

일이 한결 수월해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나도 제안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죠?”


베르폰트는 마치 간식을 기다리는 개처럼 눈을 반짝거렸다.


“두 배.”

“네?”

“당신이 제시한 금액의 두 배를 받고 싶습니다.”


내 말에 베르폰트의 턱이 떨어지며 눈의 초점이 흐려졌다.


“두 배요?”

“네. 두 배, 이백만 골드요.”


나는 이백만에 강세를 두며 베르폰트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그의 흐려진 초점을 나무라듯이.

이미 승강기에서 내려서 이쪽으로 올 때의 긴장감은 사라졌다.


“푸하핫!”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웃음은 한동안 지속됐다.


나중에는 억지로 웃음을 쥐어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대단합니다 사지마씨! 좋아요 좋아. 드리죠 이백만. 또 요구 사항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또요?”


다시 베르폰트의 눈이 커졌다.


“또 뭡니까?”


이번에는 ‘이 새끼 뭐냐?’ 하는 눈빛이었다.


“계약서를 이쪽에서 작성하고 싶습니다.”

“예에?”


*


“후우우우우···”


심장 멈추는 줄 알았네.


결과적으로 베르폰트는 내 모든 제안을 수락했다.

내가 한 거였지만 얼떨떨했다.

모두 직감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리고.

내 직감은 하나같이 모두 적중했다.


비각성자가 각성자로 변태하는 것은 22층에서 그 만큼 중차대한 일인 것이다.


이 모든 성과는 하나의 작은 추론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지금껏 내가 생각해 온 돈이라는 것의 정체가 한참 잘못된 것이었다는.


음속 열차를 타며 짐을 호출했다.

할 일이 산더미였다.

당장 계약서 작성을 위해 변호사부터 알아봐야 한다.


음속 열차에서 내리니 미리 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짜식, 합격이다.”


나는 음속 열차에서, 그리고 짐의 택시 안에서 내내 스마트폰과 씨름하고 있었다.

인터넷 만으로 변호사를 알아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짐.”

“네, 형님!”

“너 혹시 아는 변호사 있냐?”

“변호사요?”


녀석은 머리를 긁적였다.

짐은 머리를 긁는 습관이 있는데, 그가 머리를 긁으면 머리카락이 술술 빠진다.


“아니다. 신경 쓰지 마.”


되도록 머리를 긁는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겠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환장할 노릇이다.

통장에 돈도 충분히 있는데, 이런 사소한 일에서부터 막히다니.


“형님···”

“짐. 너 한 달에 얼마 버냐?”


일단은.

좀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쉬운 일부터 처리하자.


짐은 달에 1,500골드쯤 벌었다.

그래서 일단은 나와 함께 일하자고 말했다.


‘달에 2,000골드 줄게. 대신에 스케줄 싹 비워 놔라.’


짐은 얼떨떨한 표정에서 금세 환하게 웃었다.

나는 바로 그에게 2,000골드를 입금했다.


변호사를 찾는 일은 저녁 내 어찌저찌 끝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인터넷 검색보다는 직접 통화하는 게 편했던 것.


*


이틀 후, 내 변호사와 베르폰트 측 변호사가 계약서 작업을 마무리했다.


계약 내용의 골자는 이랬다.


하나. 갑(베르폰트 컴퍼니)은 을(사지마)에게 출연료 2,000,000골드(세금 포함)를 지급한다.


내가 갑을 하고 싶다고 변호사에게 말하니, 돈 주는 쪽이 갑이란다.

후···


하나. 녹화 일정은 한 달을 넘지 아니한다.


하나. 사지마가 요구할 시, 언제든 녹화 일정을 조율할 수 있다.


하나. 베르폰트는 방송에 나갈 내용을 사지마에게 미리 컨펌 받아야 한다.


‘계약서는 그저 계약서일 뿐입니다. 아무리 꼼꼼히 작성한다 해도 베르폰트 컴퍼니 같은 거대 기업이 마음먹으면, 충분히 이 내용들을 뒤엎을 수 있어요.’


변호사가 덧붙인 말이었다.


우려와 달리 베르폰트는 계약서 내용은 별로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어차피 계약서는 형식일 뿐입니다.’


그 뒤로 그의 입에서 계약서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계약서 작성 당일, 세금을 제외한 전액이 입금되었다.


띠링!


[입금: 1,934,000골드, 베르폰트 컴퍼니.]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고는 턱이 빠지는 줄 알았다.


그런 뒤에는 정식으로 미팅 일정을 잡았다.

정확하게는 미팅 겸, 마나 수치 테스트가 예정되어 있었다.


통장 잔고의 희열을 느낄 새도 없이 바로 일정에 돌입했다.


*


베르폰트는 비용 처리를 하면 된다며 사무실 근처에 호텔을 잡아 주었다.


‘시간은 골드입니다. 아니지. 골드로도도 살 수 없어요. 애초에 비교가 불가능한 자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가 돈을 쓰는 방식은 나와는 전혀 달랐다.

도구.

그에게 돈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오전 아홉 시.

호텔 앞, 검은 세단 안에서 베르폰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베르폰트의 사무실에 들른 게 벌써 나흘 전, 그러니까 나흘 만에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가시죠.”


1234지구 협회 건물은 생각보다 노후했고, 지상 주차장에도 차가 별로 없었다.


“당신은 여기서 대기해 주세요.”


베르폰트가 운전 기사에게 하는 말이었다.


뒷좌석에서 내린 우리 둘은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 데스크 직원이 베르폰트를 보고는 쪼르르 달려와 꾸벅 인사했다.


“어서오십시오, 피디님!”


베르폰트는 말 없이 직원의 어깨를 한 번 짚었다.


우리는 홀을 지나 승강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직원이 별로 없네요.”

“1234지구 협회는 별로 할 일이 없으니까요.”

“혹시 그것 때문인가요? 초대형 게이트.”

“오오, 맞습니다.”


나름 공부해 온 보람이 있군.


오늘도 베르폰트는 헐렁한 청바지 차림이었다.

청바지에 웃도리는 맨투맨 티셔츠.

언뜻 스타일만 보면 막 의무 교육을 마친 어린 각성자처럼 보인다.


테스트실 직원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탕탕탕!


베르폰트가 테이블을 두들기자 직원이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헉, 피디님!”


이 직원과도 아는 사이인 모양이다.


“여기 사지마씨는 알죠?”

“물론이죠! 영광입니다 사지마씨! 아, 아니지. 사지마님!”


구석 쪽에 우주선처럼 생긴 기계를 보자 압박감이 느껴졌다.

나는 베르폰트와 직원을 차례로 돌아봤다.


“바로 테스트 시작할까요?” 베르폰트가 말했다.


그의 말에 직원이 후다닥 기계 옆으로 뛰어갔다.

직원이 버튼을 누르자 세로로 길쭉한, 거대한 알처럼 생긴 캡슐이 덜덜거리며 가동되었다.


“준비 되셨습니까?”


베르폰트가 옆에 바짝 붙어 서서 귓가에 대고 물었다.


“네.”


그는 엘프인데도 나보다 조금 작았다.

아마 엘프 성체 남성들 평균에 못 미치는 키일 것이다.


기계 옆에서 몇 가지 체크를 마친 직원이 다가왔다.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고맙습니다.”


나는 대답하고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머신 안으로 들어갔다.


‘측정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5분? 10분쯤? 기계가 오래된 거라서요···’


밖에서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계 안에 들어오니 쿰쿰한 냄새와 함께 오래된 기억이 눈을 떴다.

마나 수치 0%의 악몽이.


우우웅.


머신이 가동되며 소음이 났다.


테스트 중간에 설핏 졸았던 것 같다.

편안해서가 아니라, 극도로 긴장한 탓에.

완전히 릴렉스된 상태와 극도의 긴장.

양극단에 있는 것이 비슷한 결과를 불러온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숨쉬기가 어려울 지경이 되어 호흡을 가다듬은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얼마나 걸렸죠?”


나는 머신 밖으로 나오며 물었다.


“10분쯤 됐습니다, 사지마님!”


내 물음에 머신 옆에서 수치를 체크하던 직원이 활기차게 대답했다.


부지런히 버튼을 누르던 직원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헐··· 말도 안 돼.”


그러고는 내 쪽을 쳐다보며 외쳤다.


“합격, 합격이에요! 현 시간 부로 사지마님은 각성자가 되셨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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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말할 수 없는 비밀 (1) 24.06.10 55 0 12쪽
30 안전제일! 24.06.09 6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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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구사일생 24.06.05 82 1 12쪽
25 네임드 24.06.04 95 2 11쪽
24 인스턴스 던전 24.06.03 102 1 11쪽
23 쌍둥이 형제 24.06.02 117 1 11쪽
22 각성자 테스트 (2) 24.06.01 131 1 12쪽
» 각성자 테스트 (1) 24.05.31 151 2 13쪽
20 헌터. 헌터··· 헌터? 24.05.30 172 1 12쪽
19 퇴사 24.05.29 179 1 10쪽
18 인생 2막 24.05.28 185 1 10쪽
17 각성 24.05.27 194 2 11쪽
16 막다른 길 24.05.26 173 1 12쪽
15 마피아 게임 24.05.25 176 2 12쪽
14 세기의 커플 탄생! 24.05.24 18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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