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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pold2 님의 서재입니다.

꿈꾸는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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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로쿤
작품등록일 :
2024.05.15 19:37
최근연재일 :
2024.06.26 06:00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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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글자수 :
223,471

작성
24.06.05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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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구사일생

DUMMY

몬스터의 그로울링에 온몸이 마비된 듯했다.

소리의 방향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 더 큰 공포를 불러왔다.


움찔움찔.


마비된 듯한 게 아니었다.

심리적인 게 아니었던 것.

정말로 마법에 걸린 듯이 몸이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마법···

마법인가?

마법을 쓰는 몬스터라고?

사전 조사가 너무 부족했다.

나는 눈동자를 굴려 일행들을 살폈다.

윤곽으로만 보였지만 일행들도 나와 비슷한 처지인 듯했다.

그나마 사브리나가 어렵사리 무기를 고쳐잡는 게 보였다.

F급 각성자인 그녀가 겨우 움직일 정도의 마법을 쓴다고?


잘못됐다.

뭔지는 몰라도 지금 상황이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만은 알겠다.

스마트폰이 있어서 각성을 했다 한들, 살아남을 수 있을까?

소용없는 생각이다.

스마트폰이 없으니까.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건가.


거대한 그림자가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게 보였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그때.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긴급 세이프티 모드 발동. 동영상을 소모하시겠습니까? 한 번 사용한 동영상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네][아니오]


나는 눈앞에 나타난 버튼을 터치했다.


화악.


일순간 주변 풍경이 색을 입었다.

쪽빛을 비롯한 청색, 그리고 그보다 옅은 명도가 다른 푸른 빛들이 어지럽게 뒤엉키며 해일을 일으켰다.


마치 시간이 느려진 듯했다.


“어···”


검의 무게.

검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볍다.


마비되었던 몸도 어느새 자유로워졌다.


“후···”


웃음이 났다.

검이 너무 무거워서 인벤토리에 좀 넣어 달라고 할까 고민했던 게 떠올랐던 것.


“큰일 날 뻔했네.”


일행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커다란 맹수.

나는 맹수를 향해 검을 그었다.


슥. 삭. 쇽.


쇼룸에서 사브리나가 허수아비를 향해 보여줬던 움직임.

나는 그 움직임을 그대로 재연했다.


촤아아!


머리 위에 떠 있던 청색의 마나 덩어리가 넷으로 쪼개지며 허공에 피를 뿌렸다.


그때까지도 느려진 시간의 흐름은 여전했다.


나는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마나가 타오르고 있는 양 손바닥을 들여다봤다.

그런 뒤에는 옆에 선 일행들을 살폈다.


느려진 게 아니었다.

시간이 아예 멈춰 버렸다.


띵!


어디선가 영롱한 울림이 들려왔다.


“이게 어떻게 된···”


내가 입을 열자 주변에 펼쳐졌던 모든 푸른 기운이 입으로 빨려들었다.

착각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게 내 기억의 끝이었다.


*


눈을 떴을 때는 숙소였다.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았다.

그런데.


“으으···”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크흡!”


겨우 몸을 틀어 옆으로 돌렸다.

이렇게 심한 근육통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온몸이 부서졌다 다시 조립되면 이런 상태가 되는 걸까?

아니지.

이쯤 되면 뼈가 몇 군데 부러진 거 아닌가?


“크으으!”


젖 먹던 힘을 다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몸을 뒤집는 것뿐이었다.

목도 심하게 잠겨서 좀비 소리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몇 번 더 몸을 움찔거리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안 되겠다···

나는 겨우 심호흡을 하며 이렇게 된 바에야 잠이나 더 자자고 생각했다.


*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좀 나았다.

창밖으로 길게 들이친 빛이 나란히 놓인 스마트폰 두 개를 비추고 있었다.

누운 채로 몸을 굴려 협탁에 놓인 스마트폰 두 개 중에 하나를 집었다.

검정 스마트폰.

내 각성 도구.

내 밥줄···


흐릿하게나마 기억이 돌아왔고.

적어도 사지가 멀쩡한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돌이켜 봐도 꿈만 같은 일이었다.


“긴급 모드 어쩌구 했던 것 같은데···”


화면을 켜서 앱을 눌렀다.


액자 어플을 눌러서 이리저리 확인해 보았지만 달라진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따로 메시지나 통화가 걸려온 것도 아니었고.


“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동영상···”


나를 돌아보던 이의 짧은 동영상이 사라졌다.

동영상을 확인한 뒤로 쭉.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던 얼굴이었다.

어딘가 익숙하고, 보면 눈물이 주르륵 흐르던 여인의 얼굴.

기분이 영 찝찝해졌다.


정황상 긴급 모드인가 뭔가를 발동하는 대신 동영상을 소모한 모양인데···

사라진 동영상의 주인공.

여인의 얼굴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눈, 코, 입.

그 모두를 담고 있는 얼굴과 이마를 비롯해 턱이 얼마나 갸름한지, 혹은 머리카락 길이가 어땠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깨끗하게 기억이 지워졌다.

누가 지우개로 지워 버린 듯이.


벌컥.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사브리나였다.


“사지마씨!”


그녀는 곧장 내게로 달려와 나를 껴안았다.


“으아앙!”


그리고 울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나 나올 법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얼마간 그녀의 들썩이는 어깨를 보며, 그녀의 체취를 맡으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으···”


허리가 저렸다.


“저기, 잠시만 좀···”

“아! 미안해요! 사지마씨! 몸은요, 몸은 어때요? 움직일 수 있어요? 아니다! 제가 얼른 가서 의사 데리고 올게요!”


잠시 후 의사가 와서 진찰을 했고, 그러는 동안 사브리나는 턱을 찡그리며 옆에 앉아 있었다.

진찰을 마친 의사의 말은 간단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예?”


나보다 사브리나가 더 놀란 것 같았다.


“말씀드린 대롭니다. 전혀요.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누워 있어서 신체 기능이 내려간 것 말고는요. 그것 또한 평범한 각성자 기준으로 해도 더 나쁘지는 않은 정도고요.”


사브리나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는 의사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사브리나가 너무 법석을 떠는 통에 좀 민망할 정도였다.

그리고···

고마웠다.

지금껏 누구도 내게 이렇게 마음을 기울여 준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22층은 대부분 1인 가구이고, 그게 당연한 거였으니···

사브리나가 좀 특이한 엘프인 거다.


“염색은 왜 한 거예요?” 내가 물었다.

“아··· 이거요.”


사브리나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게··· 말이죠··· 따라한 거예요.”

“네?”

“사지마씨 머리카락 검정색이잖아요.”


으엥?

설마 했는데···

정말로 그런 거였다니.

그녀의 말에 귀가 화끈거렸다.


“근데 막상 하고 났더니 사지마씨 머리카락 색이 완전히 검정은 아니었더라구요! 헤헤···”


내 머리카락은 검정에 가까워 보이지만 밝은 빛에서 보면 갈색이 좀 섞여 있다.


배시시 웃는 사브리나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사브리나는 나보다 네 살이 어린, 이제 막 성인이 된 엘프.

아직 감수성이 예민할 수 있는 나이였다.

감수성은 육체의 성장과는 다르다.

종마다 육체의 성장 속도가 좀 다르긴 한데, 엘프는 좀 빠른 편으로 열다섯만 돼도 육체의 성장이 완전히 끝난다고 한다.


정부에서 조사를 나왔다고, 사브리나가 말했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산에 네임드를 소환한 것 같다나.

“그런 게 가능하다구요?”

“더한 것도 가능해요.”


몬스터는 죽으면 코어 결정을 남기는데, 코어 결정의 크기가 곧 몬스터의 위험도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더 크고, 더 위험한 녀석일수록 더 큰 결정을 남긴다.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 당시 자리에 있던 모두가 소환 당해서 조사를 받았고, 사라진 비셔스 타이거의 사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조사가 끝난 상태라고 했다.


“12그램짜리 코어 결정을 남겼다나 봐요.”


똑똑똑.


사브리나가 말하는데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어, 왔나 봐요. 정보국인가? 어디에서 누가 온다고 했거든요.”


사브리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 주었다.


“깨어나셨군요, 사지마님.”


내가 일어나려 하자 그가 괜찮다며 말렸다.


“안녕하세요.”


나는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정보국 과장 티구안입니다.”


사내가 면허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정보국이요?”

“예, 각성자 중앙 협회 산하 기관입니다.”


각성자 중앙 협회라면 가장 큰 정부 기관이었다.

22층의 모든 각성자들을 관리하는 기관.

지은 죄도 없는데 덜컥 겁부터 났다.

지금은 마나가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사내에게는 어떤 힘이 느껴졌다.

거짓말을 했다간 큰일 날 것 같은 느낌이랄까.


티구안 과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물었고, 나는 기억나는 대로 대답했다.

몇 가지는 빼고.

옆에 사브리나가 있어서 도움이 됐다.


“네임드 몬스터의 이름은 미구엘입니다.”

“이름이요?”

“그렇습니다. 네임드, 니까요. 네임드라고 하면 해당 몬스터의 평균적인 등급보다 두 단계는 위로 봅니다. 편차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말이죠.”


티구안은 세 개의 눈과 네 개의 팔을 가진 트롤이었다.

저 정도 피지컬이면 축복 받은 트롤에 속한다.

트롤의 눈은 많을수록 좋다.

둘보다는 셋이, 셋보다는 넷이.

팔도 마찬가지다.

그는 위풍당당한 외모만으로 자신이 엘리트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티구안 과장은 설명에 골몰하고 있었다.


“비셔스 타이거는 F급 몬스터로, 등급이 매겨지는 기준은 해당 등급의 헌터 다섯이 잡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던전의 등급 또한 그와 비슷한 원리로 매겨지는 것이고요.”


힐끔 돌아보니 사브리나는 이미 다 아는 내용인 듯했다.


“아. 사지마님이 비각성자라는 이야기는 베르폰트 피디님께 전해 들었습니다.”


트롤은 손에 들고 있던 수첩을 바바리 안에 집어넣었다.

그의 두 팔은 코트 주머니에, 나머지 두 팔은 뒷짐을 지고 있었다.


“미구엘은 최소 D급 비셔스 타이거. 다르게 말하면 D급 헌터 다섯 명이 달려들어야 잡을 수 있는 몬스터입니다.”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정말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런 기억이 없으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다 기억난다.

하지만 슥삭쇽, 했더니 몬스터가 죽었어요.

이렇게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깊게 생각한 건 아니지만 어쩐지 그 부분만은 바른대로 말하는 것을 몸이 거부했다.


“콜록콜록!”


심하게 기침을 했다.

침을 삼키다 사레들린 것이었다.


티구안은 몇 가지 사소한 질문을 더 하고는 방을 나섰다.


“사브리나. 어떻게 된 거예요?” 내가 물었다.


당시 그녀의 시선이 궁금했다.

사브리나의 시선에서 그때의 상황이 어떻게 비추어진 것인지 알고 싶었다.


“당시에 저는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놈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스킬까지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으니··· 치잇!”


사브리나는 그때를 회상하며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뜨끔.


설마···

다 본 건가?

나는 사브리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헌터는 일반 각성자에 비해 시력이 좋은 편이에요. 그런데···”


그녀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손을 곰지락거린다.


“미구엘이라고 했나? 그 녀석이 D급이라면 저로선 손쓸 방법이 없는 게 당연했어요. 제가 무능한 탓에 꼼짝없이 당할 뻔했는데···”


의아했다.

사고였을 일을 가지고 자책을 하다니.


“저기, 사브리나.”

“네?”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녀가 나를 바라봤다.


“무능하지 않은 것도 물론이구요. 섬에서도 사브리나 덕분에 제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 걸요.”


정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다니···”


끝까지 말을 잇지는 못했지만 사브리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있었다.

굳이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전해졌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난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에요! 이건 신의 뜻! 저 헌터가 될 거예요! 그것도 아주 강한 헌터가!”


어랏.

말이 그렇게 되는 건가?


“그런데 사브리나.”

“네?”

“혹시 미구엘이 어떻게 죽은 건지··· 그러니까 누가 죽인 건지 보셨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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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사일런스 우드 (2) 24.06.18 34 0 11쪽
36 사일런스 우드 (1) 24.06.17 36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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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말할 수 없는 비밀 (1) 24.06.10 55 0 12쪽
30 안전제일! 24.06.09 64 1 12쪽
29 메타포 24.06.08 62 0 12쪽
28 퇴출 24.06.07 70 1 12쪽
27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24.06.06 80 0 14쪽
» 구사일생 24.06.05 83 1 12쪽
25 네임드 24.06.04 96 2 11쪽
24 인스턴스 던전 24.06.03 103 1 11쪽
23 쌍둥이 형제 24.06.02 118 1 11쪽
22 각성자 테스트 (2) 24.06.01 132 1 12쪽
21 각성자 테스트 (1) 24.05.31 151 2 13쪽
20 헌터. 헌터··· 헌터? 24.05.30 173 1 12쪽
19 퇴사 24.05.29 179 1 10쪽
18 인생 2막 24.05.28 185 1 10쪽
17 각성 24.05.27 195 2 11쪽
16 막다른 길 24.05.26 173 1 12쪽
15 마피아 게임 24.05.25 177 2 12쪽
14 세기의 커플 탄생! 24.05.24 18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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