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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pold2 님의 서재입니다.

꿈꾸는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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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로쿤
작품등록일 :
2024.05.15 19:37
최근연재일 :
2024.06.26 06:00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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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8
추천수 :
56
글자수 :
223,471

작성
24.05.28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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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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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0쪽

인생 2막

DUMMY

“각성자들은 시스템이라는 걸 사용합니다.”


호로록.


베르폰트는 홍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흠, 향이 좋군요. 좀 들지 그래요?”


그렇게 말하고는 한 번 더 차를 마셨다.

그는 입에 머금은 찻물을 완전히 목 뒤로 넘기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무튼. 각성자들은 모두가 블루박스라는 걸 가지고 있어요. 시스템이랑 연동하는 순간 자동으로 그렇게 되는 거죠. 본인이 허락한 경우, 해당 각성자의 시야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방금 제가 보여 드린 것처럼요. 방금 보신 화면은 둘의 블루박스 화면입니다.”


나는 하얀 찻잔에 담긴 붉은 물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베르폰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참가자들의 블루박스 영상을 편집해 영상으로 내보내는 거군요.”

“맞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방송들이 그런 식이에요. 뭐, 여전히 옛날 방식을 고집하는 이들도 있지만···”


베르폰트가 다시 영상을 출력했다.


내가 처음 헬기에서 내려 오솔길에 접어드는 장면이었다.

선명한 화질이었지만 알게 모르게 흐리멍덩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자.”


그 옆에 다른 화면이 놓였다.

나란히 놓고 보니 원래 재생되던 화면의 화질이 확연히 떨어진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뭡니까?”


내 질문에 베르폰트는 소리 내어 웃었다.

이내 웃음은 그쳤고.


“비각성자 주제에···”


웃음기가 싹 가신 그의 얼굴은 무서우리만치 차가웠다.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가 제공한 단말기는 어디 있는 겁니까? 그것도 없이 도대체 퀘스트는 어떻게 따라온 겁니까? 혹시 참가자들 중에 조력자가 있습니까? 영상을 확인해 보니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던데···”


그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죠··· 아니에요. 분명히 당신에겐 뭔가가 있습니다.”


베르폰트는 내가 등장하는 영상 여덟 개를 동시에 띄웠다.

그런 다음 재생했다.


모든 영상이 참가자들이 동시에 허공을 누르는 장면을 재생하고 있었다.

영상마다 내가 등장했다.

슈뢰딩거의 영상.

사브리나의 영상.

게오르그의 영상···

그밖의 영상들에서도 저마다 다른 각도로 내가 등장했다.

그곳에 등장한 나는···

역시나 빈손이었다.

게다가 전혀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따금 손바닥을 들여다보는 정도로만 보였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지금도.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으니까.


의문이 들긴 했다.


‘우리가 제공한 단말기는 어디 있는 겁니까?’


이게 무슨 말이지?

내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이 정말로 그 단말기가 아니란 말인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가 말하는 단말기가 이 스마트폰은 아닌 것 같았다.


태연하게 베르폰트가 재생한 영상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저는 언제 돌아가는 겁니까?”

“촬영 일정은 이미 끝났습니다.”

“그럼···”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그 말에 나는 베르폰트를 돌아봤다.


“내가 원하는 결말이 아니다.”


눈빛이 달라졌다.

달라진 그의 눈빛에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광기.

눈빛에 광기가 서려 있었다.


다행히 그 분위기가 오래 가지는 않았다.

베르폰트가 눈에 힘을 풀고 소파에 등을 푹 기댔기 때문이다.

그의 행동 하나에 실내 분위기가 오락가락했다.


“이번 방송은 아주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거였어요.”

“호기심이요?”

“네 그렇습니다. 비각성자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쓸모없는 존재인지 과연 스스로 알까, 하는 작은 질문이요.”


이 새끼가?


“그런 말을 나한테 하는 이유가 뭡니까.”

“참, 사지마님도 비각성자셨죠.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 드립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한테 제안을 하나 하고 싶습니다.”


*


뭔가 안 좋은 상상을 한 것과 달리, 정신을 차려 보니 집에 도착해 있었다.

정확하게 섬에서 왔을 때의 역순으로.

헬기에서 내린 뒤, 자루를 쓰고, 자루를 벗으니 집 앞이었다.

촬영지로 이동할 때와는 다른 직원이 나를 집까지 모셔다 주었다.

나를 내려놓고는 휑하니 사라졌다.


고작 며칠 만에 낡은 아파트 앞에 섰는데, 몇 달은 집을 비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바로 어제 집을 떠난 것 같기도 했다.


삑삑삑···


도어락을 누르는데 손가락이 꼬었다.


띠띠띠띠띠-


다시.


띠리리-


철컥.


문을 여니 안에 갇혀 있던 공기가 빠져나오며 코로 빨려들었다.


“우리집에서 이런 냄새가 났었나.”


짐 정리랄 것도 없어서, 바로 침대에 몸을 뉘였다.


*


짹짹짹, 짹짹짹짹!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침이었다.

늦은 아침.


“헐··· 몇 시간을 잔 거야.”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어떤 생각이 들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는 곧장 충전기가 꽂힌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계좌 잔액을 보고는 기쁨이 차올랐다.


688,810골드.

당장 몇 년을 놀고먹어도 너끈할 만큼의 돈이 계좌에 있었다.


“후···”


스마트폰을 들고 그대로 침대로 갔다.


냉동 음식을 데워 먹으며, 그동안 못 했던 스마트폰 게임과 인터넷, 동영상을 실컷 봤다.


꼬르륵.


배꼽 시계는 정확하다.

간만에 짜장면을 시켰다.


“8골드입니다.”


요새 물가가 너무 올랐다.

배가 빵빵해지니 책상 위의 택배 상자에 눈길이 갔다.

촬영 참가 전, 대충 뜯어서 스마트폰만 들고 집을 나섰더랬다.

종이 상자를 접어서 내놓으려고 하는데.

안에 뭔가가 들어 있었다.


“으잉? 이게 뭐냐···”


그때, 베르폰트가 했던 말이 머리에 스쳤다.


‘우리가 제공한 단말기는 어디 있는 겁니까?’


단말기.

그래,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기기는 단말기다.

그 단어에 아주 적합한 조악한 기기였다.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트레이닝복 팬츠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럼 이건 뭐냐···”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촬영 전날, 이 택배 상자 안에서 스마트폰을 꺼낸 기억인데···


“아닌가···”


기억이 흐릿했다.


나는 택배 상자 안에 들어 있던 단말기를 꺼내서 전원을 켰다.


띠리리리리리리리링!


살펴보니 간단한 메시지만을 위해 제작된 단말기였다.

나는 단말기에 찍힌 메시지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첫 번째 퀘스트 완료!]

[두 번째 퀘스트 완료!]

[세 번째는 식량 탈환 퀘스트입니다.]

[세 번째 퀘스트 시작!]

[네 번째 퀘스트 시작!]


.

.

.


[게오르그 범인 색출 성공!]

[게오르그에게 1,000,000포인트 지급. 나머지 참가자들은 500,000포인트 차감.]

[당신은 범인입니다. 이곳을 탈출하십시오.]

[일곱 번째 퀘스트 시작!]


단말기에 찍힌 메시지들의 내용은 들고 갔던 스마트폰과 비슷했지만 훨씬 단조로웠다.


아니···


“그럼 이 스마트폰은 뭐냐고.”


더 생각해 봐도 의문을 해결해 줄 이가 없다는 것은 자명했다.

스스로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피디는 섬을 떠나기 전, 내게 큰돈을 제안했다.


‘1,000,000골드.’


백만.

무지막지하게 큰 돈이다.

어쩌면 내가 평생 구경조차 하지 못할 만큼.


‘나머지는 방송 1, 2회분이 나간 뒤 다시 얘기하도록 하죠.’


베르폰트는 처음에 내게 출연을 제안하며 10,000골드를 바로 이체했었다.

당시에는 이해가 잘 안 갔다.

이런 큰 돈을 왜?

나한테?

내가 먹고 튀면 어쩌려고?


“훗.”


그때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난다.


아무래도 섬에서 6일을 보내며, 돈이라는 것의 의미가 조금은 바뀐 것 같았다.

사실 면전에서 베르폰트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다만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서 그러지 말라고, 제동을 걸어 왔다.

어쩌면 거의 처음으로 이성 대신 직감을 따랐다.

여유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여유란 다른 게 아니다.

빵빵한 통장 잔고!


통장에 큰돈이 들어와서인지, 은행에서 자꾸만 연락이 왔다.

비슷한 업무를 해 본지라 처음 며칠은 친절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자 내 태도는 내가 지금껏 연락한 고객들과 다를 바 없이 변해 갔다.


“괜찮습니다. 제가 지금 좀 바빠서요.”


···


“예, 예, 괜찮다구요.”


···


“아, 안 한다구요!”


점점 말이 짧아진다.


*


섬을 떠난 지 일주일.

일주일 만에 베르나르 베르폰트의 이름을 건 방송이 시작했다.

주말 이틀 동안 한 시간씩 방영되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제목은···


‘무인도의 비각성자.’


제목 꼬라지 하고는.

그 유명한 베르폰트 피디도 작명 센스 만큼은 가지지 못한 듯하다.

나는 닭다리를 뜯으며 영상을 재생했다.

그런데.


“헐···”


처음부터 내 얼굴이 너무 적나라하게 나왔다.


방송 시작 3분 후부터 스마트폰이 울리기 시작하더니, 방송이 끝날 때 즈음에는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이들에게 연락이 왔다.

하지만 전화를 거는 이보다는 메시지를 남기는 이들이 많았다.


“이게 방송의 힘이구나···”


하물며 의무 교육 시절에 알았던, 지금은 각성자가 된 녀석들한테까지 연락이 왔다.


얼떨떨했다.

연락에 일일이 응답하는 데만 해도 몇 시간이 걸렸다.

하물며 기억 나지 않는 몇몇은 건너뛰었는데도.


별의별 질문들이 다 있었다.


‘출연료 얼마 받았어?’


이런 것부터 해서.


‘사브리나랑 진짜 연락해? 정말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면 소개 좀···’


이런 것까지.

나 혼자서는 상상치도 못할 질문들을 쏟아 냈다.


연락은 당일에 그치지 않았다.

다음날, 그 다음날까지도 계속됐다.

지인들의 연락이 전부가 아니었다.


―사지마씨인가요?

“네, 그런데요.”

―안녕하세요, xx 피디입니다.


방송 2회 분이 나갔을 뿐인데 다른 피디에게까지 섭외 제안이 들어왔다.


집 앞으로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멋대로 사진을 찍어 대는 바람에 쓰레기를 버리러 잠깐 나갈 때조차 모자를 눌러써야 했다.


“후···”


성가시다.

몹시 성가시다.

하지만···

생전 처음 받아 보는 관심이 싫지는 않았다.


“나··· 사실은 관종인가? 큭큭큭···”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심장이 열일을 해야 했다.


“이러다 연예인 되는 거 아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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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헌터. 헌터··· 헌터? 24.05.30 173 1 12쪽
19 퇴사 24.05.29 179 1 10쪽
» 인생 2막 24.05.28 186 1 10쪽
17 각성 24.05.27 195 2 11쪽
16 막다른 길 24.05.26 174 1 12쪽
15 마피아 게임 24.05.25 17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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