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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pold2 님의 서재입니다.

마나 수치 99.99999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로쿤
작품등록일 :
2024.02.12 23:50
최근연재일 :
2024.04.04 16:05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52,558
추천수 :
1,138
글자수 :
284,751

작성
24.02.26 21:55
조회
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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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글자
12쪽

어쩌다 보니 공무원

DUMMY

가벼운 분위기 때문에 잠시 상황을 망각할 뻔했다.

각성자 중앙 협회라는 것은 거대한 조직.

게다가 눈앞에 있는 것은 그러한 조직의 수장이었다.

분위기에 휩쓸리면 안 된다.

결코 우습게 봐서도 안 되고.

“아이코. 제가 좀 천박하게 말했군요. 사과 드립니다. 저는 그저 차원영 헌터님과 함께 더욱 큰 일을 도모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뿐입니다.”

사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 아름다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긴 팔을 사선으로 쭉 뻗으며, 금방이라도 세상을 끌어안을 듯한 자세를 취했다.

아무리 봐도 정신세계가 정상은 아닌 듯하다.

혹시 제정신으로는 협회장 일을 수행할 수 없는 건가?

나는 모르는 척, 입을 열었다.

“제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는 협회장님도 대충은 아시지 않습니까. 저를 돈으로 공격하겠다고요?”

나름은 미끼를 던져 본 것이었다.

“흠?”

그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향했다.

협회장은 픽, 웃었다.

“돈은 시작일 뿐입니다. 제 무기는 무궁무진합니다만.”

“계속 저를 괴롭히실 겁니까?”

“제 부탁을 거절하신다면요?”

“제가 회까닥 해서 다 때려 부수면 어쩌려고요.”

“에이에이··· 그러지 않을 거 다 압니다.”

“내가 전직 클리너라서?”

그 말을 하면서 양손에 마나를 응축했다.

순간 요원 셋이 달려와 협회장과 나 사이를 가로막았고, 협회장은 귀찮다는 듯 그들 사이를 빠져나와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내 양손을 잡았다.

손이 몹시 차다.

시체처럼.

“저는 이 자리에 있다 보니 이런저런 정치질에 능해졌습니다. 그래서 헌터님께도 못된 버릇이 나온 것 같네요. 사과합니다. 다시합시다, 처음부터 다시.”

나는 잡혀 있던 손을 뺐다.

“그래요, 그냥. 헌터님 말처럼 그냥 즐겨 보자는 거예요.”

협회장의 저자세에 조금은 마음이 풀어졌다.

그러고 보니 구체적으로 사이다가 무엇을 하려는지 듣지 못했다.

“그럼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 보세요.”

그리 어려운 얘기도, 긴 얘기도 아니었다.

협회장은 팀을 꾸리고 싶어 했다.

강력한 팀.

이를테면 어떤 위협이 닥쳐도 감당할 수 있는 해결사.

나더러 팀의 리더가 되어 달란다.

“무릇 팀장은 가장 강한 헌터여야겠지요?”

팀원을 고를 권한은 물론 팀에 관한한 모든 권한을 내게 준다고 한다.

다만, 자신도 팀의 고문으로 활약할 기회를 달라는 것이 그의 요구였다.

“안 그래도 실무에서 너무 멀어진 것 같아 우울하던 참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바뀌어 가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협회장은 다소 느긋하게 말했다.

“얻는 게 많을 겁니다.”


펜트하우스 같은 협회장의 사무실을 나서면서도 아직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느긋하게 하세요 느긋하게. 하지만 언제 또 오늘 같은 위협이 있을지 모르니 그것만 염두에 둬 주십시오.’

각성자 중앙 협회.

의심할 것 없이 가장 큰 정부 기관이었다.

전에 529지구 협회에 들렀던 때가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났다.

중앙 협회가 얼마나 돈지랄을 하는가는 눈앞에 있는 포탈관이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1,200여 개의 지구.

어디로든 즉시 이동할 수 있는 1,200개가 넘는 포탈들이 상시 가동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텔로미어 옥상의 포탈을 떠올렸다.

처음 그것을 봤을 때도 충격이었지만 지금 당연히 지금 만큼은 아니었다.

“이쪽입니다.”

배웅에도 요원 셋이 대동했다.

나는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529지구로 통하는 포탈에 올라탔다.

“윽!”

포탈을 지나는 현기증은 어디서든 에누리가 없었다.

사옥에 도착하자마자 비틀비틀 계단을 내려갔다.

어쩐지 진이 빠지는 날이다.

똑똑.

에리얼의 사무실 문 앞이었다.

똑똑···

두 번째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 슬그머니 문을 열었다.

누군가 엎드려 있는 게 보인다.

익숙한 백금발에 가녀린 어깨.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책상에 엎드린 에리얼에게로 다가갔다.

쌔근쌔근, 그녀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몹시 피곤했던 모양이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그냥 들어가서 편하게 자지.”

속삭이면서도 사무실이 비어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똬리를 틀었다.

들썩이는, 선이 고운 어깨와 뽀얀 볼을 얼마간 내려다보고 있자니 차츰 마음이 편해진다.

3분쯤 그러고 있었을까.

나는 수납장에 비죽 튀어나온 담요를 펼쳐 에리얼의 어깨에 덮어 주고 사무실을 나섰다.

사무실을 나선 뒤에는 다시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런 다음 하늘로 점멸했다.

유영해서 충분히 고도를 높인 다음 시스템 창을 열었는데.

어김없이 수백 미터쯤 추락했다.

“으아아아!”

가까스로 한 손에 마나를 응축해 몸을 붙들었고.

“아직 잘 안 되네 크크···”

이어서 다른쪽 손과 양발에도 마나를 응축하며 차츰 앞으로 나아갔다.

역시 멀티태스킹에는 재능이 없나, 생각하며 점멸을 썼다.

최대 사거리로 점멸한 뒤, 마나를 응축.

다시 최대 사거리로 점멸하고 마나를 응축하며 나아갔다.

점멸이 끝나는 지점에서 마나를 응축하면 살짝 몸이 경직되며 동작이 어색해졌지만 현재로선 그게 최선의 비행이었다.


사이다 협회장이 건넨 계약서는 에리얼이 만든 계약서에 비해 조항이 단순했다.

아무래도 얼마간 서식을 무시한 것 같다.

이런 사소한 것도 권력이라면 권력일까?

내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서 불합리한 조건을 내걸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듯했다.

아니, 다시 보니 파격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조건이었다.

에리얼도 그러한 생각에 동의했다.

“좋은데요? 변호사를 불러서 다시 검토는 하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원영 헌터님이 손해 볼 건 없을 것 같아요. 특히 ‘팀의 전권을 차원영에게 위임한다.’ 이 조항은 가히 파격적인데요?”

에리얼과 나는 그녀의 사무실 원탁에 앉아 있었다.

독룡 떼 소동이 있고 난 뒤, 게이트 일대에 몬스터가 뜸해져서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대대적인 휴무를 가졌다.

쉬는데도 지원금은 나온다며 기뻐하는 에리얼.

“그래서, 중앙 협회장을 만났는데 홀린 것 같다고요?”

“네.”

“그렇게 예쁘던가요? 여성이었어요? 종족은요?”

그녀의 적극적인 질문 공세에 살짝 당황했다.

내 표정을 본 에리얼이 부연했다.

“핫핫, 협회장에 대해서 세간에 알려진 바가 별로 없어서 궁금해서 그래요.”

그녀답지 않은 어색한 웃음이 마음에 걸렸지만 일단은 대답했다.

“어, 음··· 예쁜 건 모르겠고··· 일단 남성에, 종족을 잘 모르겠어요. 저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확실친 않아요.”

“인간이라구요?”

에리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인간이라는 종은 나밖에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얘기에 에리얼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던 때가 떠올라 볼이 뜨거워졌다.

엄마 미소.

어디선가 본 구절이 머리에 스쳤다.

만약 그 이야기에서처럼 엄마라는 존재가 진짜로 있다면 에리얼처럼 웃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층의 종들은 모두 부모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음유 시인들이 종들을 낳은, 혹은 창조한 이에 대한 노래를 창작하는 것이다.

“요원들이 헌터님을 데리고 갈때···”

나를 보던 에리얼이 눈을 피하며 말했다.

“걱정했어요.”

그 말에 어쩐지 코가 매워졌다.

머쓱해져서 눈을 돌렸는데.

에리얼의 어깨 너머로, 책상 위에 반듯하게 개켜진 담요가 보였다.

담요를 보며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고맙습니다.”

“고맙다뇨. 당연한 걸···”

음?

뭐지?

잘못 본 건가?

찰나였지만, 에리얼의 마나 수치가 급격히 늘어났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였지?

어제 마나 수치가 뻥튀기 협회장을 보고 의아했었는데, 평범한 각성자들도 이렇게 마나 수치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인가?

아무튼 본인은 전혀 자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


나는 휴식을 취하는 동안 텔로미어 사냥터에서 스킬을 숙련했다.

그러면서 생각이 공고해졌다.

아마 한동안은 마법사로 지내지 않을까 싶다.

또한 스킬을 숙련할수록, 전사보다는 마법사가 훨씬 더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성? 허허··· 적성이라는 걸 다 생각하고 앉았네.”

적성.

그전까지 그런 단어를 떠올린 적이 있던가.

클리너 시절, 적성이라는 단어는 없는 단어나 다름없었던 기억이다.

그건 그렇고, 마나 수치가 높을수록 왜 마법사가 유리한지 잘 알겠다.


사냥터에 있는데 사이다 협회장에게 연락이 왔다.

통화 수락을 누르자 내 몸에 있던 마나가 미량 흩어져 나와 협회장의 얼굴을 빚어냈다.

실제 크기와 똑같은 머리통과 목, 어깨선까지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오늘은 깃이 뾰족한 와인색 슈트에 블랙 보타이를 맸다.

얼굴이 잘생기면 저런 것도 어울리는구나.

헤어스타일은 단정하게 내려 뒤로 묶었다.

이런 젠장?

내가 또 무슨 생각을.

망할 놈의 패시브!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내고는 말했다.

“여보세요.”

―네네, 안녕하십니까. 계약서는 잘 받았습니다! 굿 초이스! 아주 잘한 선택입니다 차원영 헌터님! 아니. 이제 차원영 팀장님이라고 불러야겠지요?

윽···

간지럽다.

팀장님이라니···

“네··· 뭐. 그냥 아무렇게나 부르세요.”

―정부에서 일하려면 세금 문제가 깨끗해야 해서 살펴보았는데, 누군가 일처리를 끝내주게 해 놨더군요! 퍼펙트! 바로 계약 이행하면 되겠습니다! 계약 기간은 계약서에 작성한 대로 1년마다 갱신되는 걸로 알고 계시면 됩니다. 그럼, 우리. 오늘부터 1일입니다!

저게 행복한 표정이구나.

살면서 한 개체가 저렇게 다채로운 표정을 짓는 것을 보지 못했다.

에리얼과 자이라, 특히 크루엘라를 보면서 얼굴 표정이 저렇게 다양할 수도 있구나 생각했는데, 그건 사이다를 만나기 전 얘기였던 것이다.

―저는 고문 역이지만 임시로 비서 역할도 수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비서는 제가 알아서 유능한 분으로 구해 볼까요? 아니면 직접?

“아뇨. 해 주세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자! 팀장님! 그럼 이제 무엇부터 하실 생각이십니까?

팀장이라.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은 간단했다.

22층의 안보에 직결된 초대형 게이트.

그것이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임무였다.

“일단은 최전방에 가서 좀 살펴보고 말씀 드릴게요.”

―좋습니다! 그럼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제가 준비한 선물은 오늘 안에 도착할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중앙 협회장의 웃는 얼굴이 잘게 흩어져 내 몸으로 돌아왔다.


*


첫 근무 날이 밝았다.

따로 정해진 근무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침 일찍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 안.

나는 겨드랑이 쪽을 긁적이고 있었다.

“이놈의 갑옷을 바꾸던가 해야지, 아직 불편하네···”

상점에 갈 시간이 없었다.

저 앞쪽으로 게이트 안에 도열해 있는 공격대들이 보인다.

공격대는 게이트를 중심으로 커다란 부채꼴 진영을 갖추고 있었다.

전투는 한참 앞쪽에서나 드문드문 치러졌다.

나흘 전, 그 난리가 있은 후로 약간은 달라진 풍경이었다.

다리에 마나를 응축하며 빠르게 걸었다.

이따금 점멸을 사용하기도 하면서.

대기에 맺힌 마나의 밀도가 더욱 높아진 듯하다.

“저긴 골렘··· 저긴 화룡. 화룡··· 골렘··· 화룡···”

익숙한 대형 몬스터 사이에, 게이트 안에서 흔히 보이지 않던 몬스터가 시야에 들어왔다.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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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금테 두른 각성자 면허 24.02.16 2,177 37 12쪽
5 529 지구 협회 +2 24.02.16 2,505 38 12쪽
4 각성(2) +1 24.02.15 2,907 4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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