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Leopold2 님의 서재입니다.

마나 수치 99.99999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로쿤
작품등록일 :
2024.02.12 23:50
최근연재일 :
2024.04.04 16:05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52,539
추천수 :
1,138
글자수 :
284,751

작성
24.02.21 06:05
조회
1,165
추천
29
글자
11쪽

미운 오리 새끼

DUMMY

다음날 에리얼의 사무실.

그녀의 사무실에는 나와 그녀, 둘 뿐이었다.

새삼 느끼는 거였지만, 에리얼의 사무실은 그녀를 닮았다.

에리얼의 옷차림처럼 모던하면서도 화사하다.

공간에 적당한 크기인, 널따란 흑갈색 책상과 스틸로 포인트를 준 검정 계열의 사무용 의자와 스툴.

그림은 입구 정면에 딱 하나 걸려 있었다.

동그라미와 원, 그리고 네모로 된 그림인데 색감이 화사하다.

그리고 내가 앉아 있는 손님용 원형 테이블.

원형 테이블의 컬러는 화이트에, 길게 늘어져 내려온 조명 갓은 쨍한 주황이었다.

원형 테이블에 마주앉은 에리얼이 시스템 창 하나를 공유하며 타이틀을 읊조렸다.


“S급 헌터 하늘을 날다.”


그녀의 말에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사실 그게 난 건 아니고 점프를···”

“괜찮아요. 각성자라면 기본적으로 점프를 높이 뛸 수 있거든요.”

“아, 그래요? 그런데 왜 기자들이 왜 저렇게 난리죠? 난 또. 나만 이상한 줄 알았네요.”


안도감에 신나서 떠들었다.


“하지만.” 에리얼이 말했다. “건물 몇 개를 뛰어 넘지는 못 하거든요!”

“아···”


사실 그건 내게도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작정하고 점프한 건 처음이니.

확실히 게이트 안보다는 22층이 마나가 충만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기자들을 피해 점프를 뛴 후에 마나의 바다를 통과하며 더없는 평온을 느꼈더랬다.

텔로미어 사옥이 발아래로 까마득히 멀어진 뒤, 내가 얼마간 허공에 떠 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당연하다.

새가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바다에서 헤엄치는 원리와 다르지 않으니.


“차원영 헌터님!”

“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아, 아닙니다. 죄송해요.”


에리얼이 나를 세 번이나 불렀단다.


“연락을 받았어요.”

“무슨 연락이요?”


이건 또 무슨 말이다냐.

에리얼이 또다른 창 하나를 띄워 공유해 주었다.

자세히 보니 길드 명부였다.


“이건 왜요?”

“자세히 보세요.”


나는 찬찬히 명부를 훑었다.

···

어랍쇼!

우리 길드 이름이 왜?

그보다.


“헉! 순위가···”


무려 7위였다.

놀라긴 했지만 나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 몰랐다.

그 의미는 에리얼이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하나, 나는 하루 아침에 22층에서 가장 유명한 이가 되었다.

둘, 텔로미어 역시 22층에서 가장 유명한 길드가 되었다.

그밖에도 에리얼은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지만 잘 기억 나지 않는다.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헌터님은 어제부로 유명 인사가 됐어요.”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거야···


“원래 변화란 차근차근 찾아오기도 하지만, 이렇게 하루 아침에 찾아오기도 해요. 헌터님은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을 테니 제가 최대한 애써서 작성한 몇 가지 서류가 있어요.”


그제야 에리얼의 눈이 퀭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모습조차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제가 어떻게 하면 에리얼님··· 아니, 길드장님께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풋.”


순간 에리얼의 얼굴에 남아 있던 피로가 증발한 듯한 미소가 싹텄다.


“저 요즘 행복해요.”

“예에?”


갑자기?


“누구한테도 말한 적 없지만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설렌 적이 없었어요.”

“예에에?”


이 여인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왜 그런 줄 아세요?”


나는 입을 벌린 채 고개를 저었다.


“어리숙한 어떤 헌터 때문이에요.”

“그게 누구···”


헉.

설마···


“차원영.”

“허!”


놀라 자빠질 일이다.

예쁘고.

똑똑하고.

헌터로서도 유능하고.

게다가 길드 마스터인 여자가 나 때문에 행복하단다.

뭐야.

이거 혹시 플러팅?


“헌터님. 당신은 이미 내게 줄 수 있는 것을 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에리얼의 말투가 갑자기 좀 딱딱해진 듯했다.


“이제는 제가 헌터님을 도울 차례입니다.”


그러고는 내게 파일들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

여남은 개의 파일들.


“이, 이게 뭔가요?”

“제가 헌터님을 보호하기 위한 계약서들이에요. S급 각성자는 싸움만 잘해서는 안 됩니다. 다방면으로 S급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어요.”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달달해지던 분위기가 한순간 왜 이렇게 변한 걸까.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하지만 뭘 하든, 에리얼이라면 믿을 수 있다.

에리얼이 보낸 파일이 전부 계약 서류였다.


‘이건, 법적 대응을 위해 대리인을 내세울 때 필요한 계약서입니다. 전담 변호사!’

계약서마다 친절하게 메모를 덧붙여 놓았다.

이런 식으로.


“저는···”

“예?”

“헌터님을 놓아 드리려고 합니다.”


쿠웅.

이건 상상도 못한 전개였다.


“아니, 왜요? 도와 주신다면서요!”

“헌터님을 더 붙잡고 있는 건 제 욕심이에요. 이걸 보세요.”


에리얼은 공유창의 길드 순위를 가리켰다.


“저곳은 우리 길드의 자리가 아니에요.”

“안 돼요!”


갑자기 열폭하는 나를 보고는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S급은 다방면으로 유능해야 한다면서요! 저는 아직 아무 것도 할 줄 모른다구요!”


갑자기 왜 화가 나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지만 화가 났다.


“날 놓아 준다면서 이 계약서들은 또 뭐구요. 앞뒤가 안 맞잖아요!”


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 그래도 큰 눈이, 새파란 눈동자가 동그랗게 드러난 채 내게 고정되어 있다.


휙-


뒤돌아 나오며 사무실문을 좀 세게 닫았다.

문을 쾅 닫으려는 순간에도 에리얼의 마지막 표정이 떠올랐고, 또···

아.

아무래도 나.

에리얼을 좋아하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사무실을 나선 뒤 음속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모르는 사람 몇몇이 내게 뭔가를 물어 왔지만 들리지 않았다.


*


며칠을 집에 콕 틀어박혀 있었다.

에리얼이 보내 준 계약서는 열어 보지도 않았다.


저녁쯤에 자이라가 퇴근했다.


“차 헌터님!”

“차원영 헌터님! 안에 계십니···”


쾅!


“박쥐 같은 놈들 같으니라고. 도와달라고 그렇게 부탁할 때는 콧대만 세우고 있더니만 S급 나왔다니까 거머리처럼 달라붙는구먼. 저녁은. 먹었누?” 자이라가 물었다.

“생각 없어.”

“뭐야, 며칠째 출근도 안 하고.”


말하고 싶지가 않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각성자는 한동안 먹지 않아도 별다른 문제가 없는 모양이다.

아무튼 모든 게 귀찮았다.

도마뱀 녀석은 아무 것도 모르는 듯하다.

에리얼은 그런 것까지 공유하지는 않는 걸까?


“집 앞에 기자들이랑 정부랑 협회 녀석들까지 있는 것 같던데. 아주 종합 선물 세트가 따로 없구마잉?”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에리얼이 내밀었던 서류에 정부 어쩌구, 협회 어쩌구 하는 파일도 있었던 것 같은데.

에잇!

알게 뭐람!


퍽!


갑자기 눈앞에서 별이 반짝거렸다.

놀라운 사실이었다.

S급 각성자도 뒤통수를 맞으면 별이 보인다.


“이시키야. 미쳤냐? 죽을래?”

“그래, 그래야지! 크하핫!”


나를 내려다보며 호탕하게 웃는 도마뱀을 보고는 순간 기분이 풀려 버렸다.

젠장···

그래서일까.

꼬르륵-

배가 고파졌다.


“차라리 좀 나가자.” 내가 말했다.


자이라가 시선을 끄는 동안 창문으로 점프했다.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걸 모르는지, 그쪽에 기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하늘을 난다기보다는 헤엄치는 것에 가까웠다.

허공을 가득 채운 마나와 내 몸에 흐르는 마나를 동화시켜서, 중력을 중화한달까.

내 몸에 흐르는 마나와 근처의 마나를 동시에 응축하면 작용하는 인력이다.

아, 모르겠다.

감각적인 건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아무튼 이 느낌.

이 느낌이 너무 좋다.

아직 어색하긴 하지만 무척 편안하다.

마치···

엄마라는 존재가 있다면 그 품속이 이럴까?


“으앗!”


멍하니 유영하며 너무 멀리까지 날아와 버렸다.


―어디야.


자이라였다.


“하늘.”


시스템은 원래 스마트폰을 사용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그래 봤자 종들 간에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대전제가 바뀌지는 않지만.

이미징을 대화에도 억지로 활용한다면야 못할 건 없지만 쉽지 않다.


―나 도착했어. 떨거지들 떼어 내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

“응. 금방 갈게. 으앗!”


휴우.

또 버둥거리다 얼마간 추락했다.

아직은 하늘을 유영하는 것이 그리 익숙치 않았다.

시간 날 때 확실히 연습해 두어야겠다.

지상에 내려온 뒤, 나를 훑고 지나는 시선을 느꼈지만.

야구 모자와 후드를 눌러 쓰니 제대로 알아보는 이는 없는 듯했다.

볼캡에 후드티는 흔하디 흔한 패션이라서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술집이었다.

한 잔에 700골드씩 하는 고급 술집.

이른 저녁이라 손님도 별로 없었다.

조용한 분위기에 클래식이 살랑살랑 흐르고 있었다.


“음. 왔냐.”


자이라는 먼저 한잔 하고 있었다.

안주는 치즈였다.

많이도 시켰네.


“배고픈데 왜 이런 델 왔어.”


커다란 접시 두 개에 브리와 생모차렐라, 트러플 고다가 과일과 함께 가득 얹혀 있었다.

각성 초기.

그때는 참 후달렸는데.

지금은 700골드라는 것이 그저 우습게만 느껴졌다.

시스템 창에 찍힌 내 재산.

1,777,652,000 골드.

무려 17억 골드가 넘는다.


“네가 쏴라.”


지금 시스템 창으로 재산을 보고 있는지 다 안다는 것처럼 자이라가 말했다.


“앞으로도 쭉. 크하핫!”

“시끄러워.”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들이켜며, 나는 에리얼이 내게 했던 행동을 두서없이 자이라에게 말했다.


“후우···”


난 쉬지 않고 술을 들이켰다.

숨을 내쉴 때마다 위스키 향이 났지만, 곧 중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매번 첫 잔을 마시는 것 같았으니.

그래서.

술이 취하질 않아!

제기랄!


“이쯤 되면 각성자 용 술이 따로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 그라지? 딸꾹!”


뭐야, 얜 상태가 또 왜 이런대.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짜이?”

“그건 모··· 어쩌 수 없는 니리지. 누리도 S급은 처으미니깡.”


안 되겠다.

일단은 도마뱀 녀석을 좀 재워야겠다.

녀석을 데리고 집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이제 어쩌지?

정말로 둘을 떠나야 하는 건가?

그 생각을 할 때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다음날.

볼캡에 후드 패션을 하고 텔로미어 길드 전 역에 내려서 하늘을 날았다.

그러고는 옥상에 착지.

이제 제법 먼 거리의 마나도 응축이 된다.

아직 고소 공포감이 있어서 마음껏은 아니지만 제법 높게, 그리고 속도도 낼 수 있었다.

하늘을 나는 것은 내 답답한 기분을 얼마간 잊게 해 주었다.

옥상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되도록 종들을 마주치지 않고 에리얼의 사무실로 직행할 수 있다.


똑똑똑.


‘네.’


안쪽에서 에리얼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에리얼의 얼굴···

초췌하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밀려들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나는 사무실에 들른 용건을 말했다.

생각은 정리되었고, 에리얼의 뜻대로 하겠다 말했다.

다만.


“텔로미어 길드와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하고 싶습니다. 혹시 제가 멀리 가게 되더라도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나 수치 99.99999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6 소닉 붐 +1 24.03.01 574 25 11쪽
25 1g의 희망 +1 24.02.29 635 24 14쪽
24 나는 누구? 여긴 어디? +1 24.02.28 709 25 11쪽
23 대망의 첫 근무, 그리고 피할 수 없는··· +1 24.02.27 791 23 12쪽
22 어쩌다 보니 공무원 +1 24.02.26 875 24 12쪽
21 수수께끼의 인물 +2 24.02.25 913 27 11쪽
20 혼자서 세상을 구하는 방법 +2 24.02.25 1,005 27 12쪽
19 위기일발! 24.02.24 1,023 28 11쪽
18 마법사? 마검사? 24.02.23 1,097 29 12쪽
17 전직 24.02.22 1,153 28 12쪽
» 미운 오리 새끼 24.02.21 1,166 29 11쪽
15 I Believe I Can Fly(?) 24.02.20 1,199 34 11쪽
14 나만을 위한 공격대 24.02.19 1,304 30 11쪽
13 카우보이가 된 검은 전사님 24.02.19 1,425 28 12쪽
12 뒈지는 줄 알았다. 정신 차려 보니 뭐? 1조? 24.02.18 1,519 30 12쪽
11 라고 생각했는데 드래곤을 만난 후 24.02.18 1,623 30 12쪽
10 설마··· 나한테 반했나? 24.02.17 1,700 30 12쪽
9 시스템 +2 24.02.17 1,784 30 12쪽
8 VVVIP가 되었다. 24.02.16 1,837 32 12쪽
7 스킬: 돌진 24.02.16 1,922 28 11쪽
6 금테 두른 각성자 면허 24.02.16 2,177 37 12쪽
5 529 지구 협회 +2 24.02.16 2,504 38 12쪽
4 각성(2) +1 24.02.15 2,907 48 12쪽
3 각성(1) 24.02.14 3,096 46 8쪽
2 코어 결정 +1 24.02.13 4,407 49 12쪽
1 클리너 +3 24.02.12 6,247 66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