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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pold2 님의 서재입니다.

마나 수치 99.99999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로쿤
작품등록일 :
2024.02.12 23:50
최근연재일 :
2024.04.04 16:05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5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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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8
글자수 :
284,751

작성
24.02.17 01:07
조회
1,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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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글자
12쪽

시스템

DUMMY

깎아지른 벽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직각으로 꺾은 뒤 또 한참을 걸었다.

바쁘게 10분여를 걷다가 바르가스의 짧은 두 다리가 멈추었다.

“헉헉··· 자, 다 왔습니다.”

그리 빠르게 걷지 않은 것 같은데 바르가스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상점의 큼직한 자동문이 열리고, 반듯하게 슈트를 차려입은 트롤 점원이 등장했다.

“바르가스님!”

“오오 그래. 그간 잘 지냈는고?”

점원의 시선은 곧 내게로 향했다.

“VIP시군요. 바르가스님이 직접 모시고 올 정도면.”

VIP라는 말에 조금 머쓱해졌다.

옷이라도 조금 깨끗한 걸 입고 올걸.

“VIP는 무슨! VVVVVIP 헌터님이시다!”

기분 탓인지 브이가 더 늘어난 느낌인데···

“여기서 가장 좋은 너클을 가지고 오거라!”

그는 바르가스가 시킨 대로 빠릿빠릿 움직였다.

트롤 점원이 사라진 동안 상점 안을 훑어봤는데 나처럼 허름한 차림의 종이 오기에는 너무도 고급진 곳 같았다.

안이 훤히 보이는 크리스탈 진열장에는 지문 하나 찍혀 있지 않았다.

진열된 방어구와 무기는 하나 같이 때깔이 좋았다.

모든 장비가 적정량의 마나를 품고 있다.

가격이···

“100만 골드!”

깜짝 놀라 소리쳤다.

“왜 그러세요 헌터님? 무슨 문제라도?”

바르가스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아, 아니에요.”

점원이 들고 온 너클을 보고는 까무러칠 뻔했다.

아이템에 적힌 0을 세느라 정작 아이템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급 장비는 밖에 진열해 놓지 않는 법이지요. 크, 역시 손재주는 드워프도 뒤지지 않는군요. 물론 우리 트롤들을 따라오려면 멀었지만요.”

바르가스가 점원이 가져온 너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실제로도 트롤들은 다방면에서 가장 많은 활약을 하고 있는 종족이었다.

그나저나 1,200만 골드.

너클의 가격은 무려 1,200만 골드였다!

돈 계산을 하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살면서 상상조차 못 해 본 액수였다.

나는 고민하는 척, 너클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한 번 착용해 보셔도 됩니다.” 점원이 말했다.

“예··· 잠시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내가 당장 어디서 1,200만 골드를 수급한단 말인가!

주머니에 가득 든 코어 결정을 다 해 봐야 20만 골드도 채 안 될 것 같았다.

혹시 대출이 되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것도 점원의 눈치가 보인다.

“매니저님.”

“예, 헌터님.”

“저 일단은 아이템보다 급한 게 있어요.”

“그게 뭐죠?”

“인벤토리요.”

점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VVVIP라는 놈이 아직 인벤토리도 없다니, 그런 눈초리랄까.

하지만 바르가스 매니저는 눈치가 빨랐다.

그의 커다란 머릿속에서 내가 늦깎이 각성자라는 사실이 늦게나마 떠오른 듯하다.

바르가스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하하! 헌터님도 참.”

점원이 내놓은 너클이나, 진열된 아이템들에 비하면 인벤토리는 서비스로 주어도 좋을 수준의 가격이었다.

만? 혹은 이만 골드?

가격을 물어볼 타이밍은 없었지만 기억하기론 그쯤 했던 것 같다.

“몇 칸이나 준비해 드릴까요?”

“음···”

바르가스가 나 대신 고민했다.

“앞으로 헌터님도 장비랑··· 음, 음··· 적어도 스무 칸은 필요하겠는데. 넉넉히 서른 칸으로 주게.”

순간이었지만 점원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펴지는 것이 보였다.

“흠흠, 제가 바르가스님이니까 특별히 서비스해 드리는 겁니다.”

“알지알지.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참, 그런데 인벤토리 병합 비용은 별도입니다.”

인벤토리는 한 칸에 20cm³ 이다.

“그래그래.”

시간을 벌었다.

둘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적당한 핑계를 찾아낸 것이다.

“저, 생각이 바뀌었어요.”

두 트롤의 고개가 동시에 내쪽을 향했다.

도대체 눈이 몇 개람···

“검이랑 너클, 둘 다 써 보고 싶어졌어요. 첫 아이템인 만큼 시험 삼아 사용해 보고··· 혹시 나중에 다시 와서 더 좋은 무기로 교환도 되나요? 물론 웃돈 얹어서요.”

잠깐 정지되어 있던 점원의 얼굴이 다시 움직였다.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저희 매장은 중고 거래는 하지 않습니다만, VVVIP시니 특별히! 다시 오시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재량껏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럼 무기는 어떤 등급으로 준비해 드리면 될까요?”

나는 진열장에서 봐 두었던 것을 가리켰다.

“이거랑 저거요.”

각각 10만 골드쯤 하는 하급품이었다.

그렇지만 내게는 거의 전재산을 털어야 하는 돈이었다.

점원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는 게 보였다.

바르가스가 점원에게 말했다.

“금방 또 오실 거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말게.”

가게를 나선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인벤토리 비용만 해도 내가 산 아이템 가격을 훌쩍 넘는다고, 바르가스가 웃으며 말했다.


또···

집으로 가는 대신 휴게실로 향했다.

사옥이 워낙 넓어서 휴게실이 한 층에도 몇 개씩 있었다.

“이미징이라고 했겠다.”

바르가스에 따르면, 인벤토리는 이미징이라는 첨단 기술을 사용한다.

이미징.

원하는 이미지 하나를 시스템에 등록한 뒤 그것을 명징하게 떠올리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사실까지 점원이 친절히 확인해 주었다.

인벤토리는 최초에 칸으로 구매하는 만큼 그것을 한 공간처럼 사용하려면 병합 비용이 별도로 발생한다고 했다.

호주머니에 있는 코어 결정을 탈탈 털었는데도 돈이 부족해서 바르가스가 눈치껏 잔금을 대신 지불해 주었다.

“휴···”

나는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꺼냈다가 다시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시스템을 사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막상 하려니 막막한데···”

검색 같은 간단한 기능조차도.

3초쯤 머리를 쓰다가 다시금 스마트폰을 꺼내 하나하나 검색했다.

각성자 시스템.

시스템 이미징.

시스템 사용법.

인벤토리 사용법.

―이미징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육성으로도 시스템을 활성화 시킬 수 있습니다.

커뮤니티 댓글 이었다.

“시스템.”

나는 허공에 대고 말했다.

댓글은 사실이었다.

내 몸에서 흘러나온 고운 마나 입자들이 구름처럼 눈앞에 뭉쳐진 것이다.

―이미징이 서툴러도 우리는 말을 할 때 어떤 무의식적 상상을 하기 때문에 시스템은 그것을 민감하게 인지합니다.

“인벤토리 사용법.”

그 말처럼, 뭉쳐 있던 마나 구름이 글자를 배열하기 시작했다.

너무 느리게 움직인다고 생각하려던 순간, 이미 검색 결과가 눈앞에 나타났다.

스마트폰을 꺼내고, 화면을 켜고, 손가락을 움직이고.

이 모든 과정을 시스템은 생략했다.

그저 말만 하면 된다.

이것만 해도 파격적인데 이미징이라는 것은 그것을 떠올리기만 하면 되는 신기술이었다.

“인벤토리.”

말과 거의 동시에 내 앞에.

옷장 크기의 공간이 쩍 벌어졌다.

그곳에 내가 산 무기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인벤토리는 마나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끈적한 마나의 밀도 때문인지 아이템들이 허공에 고정되어 있다.

너클과 롱소드.

그 안에서 손을 휘적거리니 정말로 물리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인벤토리의 이미징을 위한 이미지가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기하다.

인벤토리 옆에 마나로 쓰인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나는 정수리를 벅벅 긁었다.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머리 아픈 일이다.

“닫아. 전부 닫아.”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인벤토리가 닫히고, 눈앞에 글자를 구성하던 마나가 흩어지며 다시 내 몸으로 흘러들었다.

직관적이지가 않았다.

적어도 현재의 나한테는 그렇게 느껴졌다.

뭔가가 너무 쉽게쉽게 이루어지니 도리어 머리가 둔해진 느낌이랄까.

나는 목을 한 번 돌리고는 훈련장으로 향했다.

반가운 도마뱀.

가는 길에 자이라를 마주쳤다.

“차뽕!”

“짜야···”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되는 대로 부르곤 한다.

“어디 가냐 신입.”

“나 훈련장. 같이 가자.”

자이라는 홀의 시계탑을 흘끗 쳐다보고는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가 내 어깨에 두른 팔을 몇 번 고쳐 본다.

“하, 예전 높이가 더 좋았는데···”

도마뱀이 투덜거렸다.

이동하며 자이라에게 어젯밤 사냥과 지하 상점가, 아이템을 구매한 것 등을 두서없이 떠들어 댔다.

훈련장에는 헌터들이 제법 있었지만, 워낙 넓어서 빈 공간을 찾고자 한다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우리는 구석 계단참으로 갔다.

그곳에 앉아 점처럼 보이는 헌터들을 굽어보며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크하핫! 그래서, 밤을 샜다고?”

“응.”

“아무리 각성자라도 무적은 아니라서 잠은 자 줘야 해. 나는 좀 무적이지만. 크하핡!”

“전혀 아무렇지 않은데도?”

“그게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거지 타격이 없는 건 아냐.”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음···”

자이라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이를테면 마나가 우리의 의지를 갉아먹는다?”

“그게 무슨 말이야. 좀 알아듣게 설명해 봐봐.”

“마나는 우리가 이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를 도와주는 존재로, 우리보다 아득하게 위에 있는 고위의 존재야. 아마도? 사실 마나를 해석하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무엇 하나 확실한 건 없어. 마나는 말이 없으니까.”

나는 계속 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뜻을 이루지. 예를 들기는 어려운데 가령 이런 거야. 네가 지금 밤을 샜잖아? 왜 밤을 샜어?”

“응? 사냥하다 보니까··· 재미있어서?”

“크흐흣! 바로 그거야. 그게 사실은 너의 의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지.”

“그게 뭔 개똥 같은 소리야.”

자이라가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팔짱을 꼈다.

“원래 이게 철학 같은 거라서 수학처럼 말할 수가 없어. 다 각자의 견해가 있는 거지. 지금 네가 들은 이야기는 위대한 리자드맨, 텔로미어의 에이스이신 나 자이라님의 견해인 거고. 됐고, 샀다던 무기나 보자.”

이 도마뱀 시키가 도대체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평소와 다르게 자이라가 안경을 끼고 박사모라도 쓴 듯한 환상이 보였다.

녀석의 말에 잠시 사고에 렉이 걸렸다.

아니다.

잠을 못 자서 그런 걸 거다.

나는 머리를 흔들고 말했다.

“인벤토리.”

인벤토리가 벌어졌다.

안에 진열된 무기를 양손에 각각 하나씩 잡은 뒤 일단 롱소드를 자이라에게 건넸다.

“크하핫!”

녀석은 그걸 받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아 왜.”

웃음을 멈추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거 얼마 주고 샀냐.”

“10만 골드?”

자이라는 다시 콧구멍을 크게 벌리며 웃어 젖혔다.

누구랑 갔냐고 묻길래 바르가스랑 갔다고 대답했다.

바르가스는···

온갖 폼은 다 잡았지만 호구였다.

자이라에 따르면 그랬다.

점원, 알고 보니 그곳 주인인 녀석이 추켜세우는 것에 홀렸다고.

“뭐, 괜찮아. 그 정도면 껌값이니까.”

이 도롱뇽 자식이 뭐라는 거지.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이라랑 사는 3년여 동안 내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은 것.

그건 신기한 일이었다.

자이라의 배려가 그만큼 깊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필요하다고 하면 군소리 없이 골드를 내줄 때 녀석의 재산을 가늠했어야 했다.

아무튼 이제 나도 자이라 녀석 이상으로 돈을 많이 벌 자신이 있었다.

내 각성자 면허는 금테를 둘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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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4 홈즈홈
    작성일
    24.03.09 17:16
    No. 1

    스킬이니 인벤토리니 사용법을 일반 헌터물처럼 쉽게 했으면 좋았을텐데요 읽다 지쳐버리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6 로쿤
    작성일
    24.03.10 00:11
    No. 2

    헉스, 그렇군요!
    고민해서 더 간결하게 써 보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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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스킬: 돌진 24.02.16 1,923 28 11쪽
6 금테 두른 각성자 면허 24.02.16 2,177 37 12쪽
5 529 지구 협회 +2 24.02.16 2,504 38 12쪽
4 각성(2) +1 24.02.15 2,907 48 12쪽
3 각성(1) 24.02.14 3,097 46 8쪽
2 코어 결정 +1 24.02.13 4,408 4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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