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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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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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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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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6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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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국을 향한 여정 (2)

DUMMY

'이 정도로 백중지세(伯仲之勢)일 줄이야. 그래도 역시 가 노야를 이길 수는 없네.'


구절편을 휘두르는 점창파 백발 장문인과 무려 백 합 넘게 겨루던 이지노괴 가천일. 남만 십괴 중에서 이괴를 맡고 있는 노인과 이토록 오래 겨룰 수 있는 이는 몇 없으리라. 그 긴 싸움의 종지부가 마침내 다가온 모양이다.


"타앗!"


왼손 검지로 구절편을 밀쳐낸 뒤 벼락같은 움직임으로 상대방을 노리고 거리를 좁히는 가천일. 그의 오른손 검지 손가락 끝이 어느새 노고수의 턱끝 아래에서 비수처럼 상대를 노려보고 있다.


"죽여라! 내가 이곳에서 네놈 같은 살인귀에게 목숨을 잃더라도 점창파의 삼 백이 넘는 식솔들이 나의 복수를 대신하여 줄 것이다!"


악에 받쳐 새빨갛게 일그러진 얼굴로 이를 악물고 고함을 치는 점창파 장문인. 허나 그 박력 넘치는 협박에도 되레 코웃음만 치던 가천일이 그대로 검지를 슬며시 밀어넣자 장문인의 몸이 지지대를 잃은 허수아비처럼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진다.


"끌끌. 나이를 먹었으면 곱게 늙어야지. 그 나이 먹고도 그리 성을 내면 얼굴에 주름만 늘어난다!"


정신을 잃은 상대를 우두커니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농을 던지는 가천일. 가벼운 언사와는 달리 쉽지 않은 싸움이었는지 전신에서 흘러내린 땀으로 어렵사리 구한 옷이 흠뻑 젖어있다.


"할아부지! 이 지역은 점창파의 세력권인데 그리 쉽게 장문일을 해하시면..."


"아미타불. 가 노야께서는 살생을 범하지 않으셨소. 그저 내공으로 가볍게 뇌를 뒤흔들어 정신을 잃게 하였을 뿐. 목숨에는 지장이 없소."


내공으로 가볍게 뇌를 흔들었다니. 듣기만 하여도 끔찍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아망의 덤덤한 모습에 다시 한 번 깜짝 놀라는 반웅. 다행히 그가 우려했던 것처럼 장문인의 목숨을 취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허나 본격적인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쯧. 그래도 네놈이 제자 농사는 잘 일궈낸 모양이구나. 땅 속에 묻혀 있을 네놈 사형도 분명 뿌듯해 하겠지..."


협곡 위를 찬찬이 둘러보며 혀를 차는 가천일. 그의 시선 끝에 무려 반 시진 동안이나 이어진 비무를 몰래 지켜보던 이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기척을 숨긴 채 대기하고 있던 삼 백 명의 점창파의 고수들이다.


=========================


운남 지역 최고의 세력을 자랑하는 문파이자 구파일방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점창파(點蒼派). 그들이 자리잡은 운남의 대협곡 지대처럼 호방하면서도 재빠른 사일검법(射日劍法)으로 유명하여 명성을 얻은 것이 벌써 몇 세대 전의 일이다. 천 번의 휘두름(揮劍) 만에 비검술(飛劍術)을 깨닫게 된 개파 조사 양일의 입지전적(立志傳的) 일화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며 어찌나 실력이 출중하였는지 몇 백년이 지났음에도 세간 사람들은 여전히 그가 후예(后羿)의 환생이라 입을 모아 칭송하고 있다.


어찌된 연유인지 근래에는 검보다는 활(弓)을 비롯한 다양한 병장기들을 다루고 있지만 말이다.


"할아버지, 대체 저희를 이곳까지 데려온 연유가 무엇일까요? 아까 대협곡에서 그대로 사살하였어도 저들을 막아내지 못하였을 텐데..."


"크흠. 네놈은 모르겠지만 이놈들은 내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할 명분이 없다! 지금은 장문인을 하고 있는 녀석의 사형의 목숨을 소싯적 젊은 혈기로 인해 실수로 취하였으나 이는 정당한 사생결단의 결과였기에 섣불리 내게 달려들지도 못 한다. 천하의 점창파가 속 좁게 벌써 몇 십년이나 흐른 비무에 대하여 괜한 트집을 잡고 이제와서 책임을 묻는다면 문파의 위신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겠느냐?"


대협곡 중앙에 위치한 점창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돌계단을 포박된 채로 점창파 고수들에 둘러싸여 벌써 반 시진 동안이나 오르고 있는 반웅과 일행들. 사방에 대놓고 적의를 내비치는 이들로 가득함에도 이토록 빳빳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산을 오르는 가천일의 얼굴은 여유롭기까지 하다. 안절부절 못하는 반웅은 그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해 보이지만 말이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아망이 한 마디 거든다.


"아미타불. 점창파는 무림에서도 알아주는 정파의 일원이니 정당한 이유 없이 타인을 해하지 않소. 게다가 세간에 흐르는 소문으로는 가 노야께서 이들이 원하는 물건을 지니고 계시니 어찌 함부로 대하겠습니까."


아망의 말이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원하는 물건'이라는 대목에 일제히 수 백 명의 시선이 가천일에게 모여든다. 살기마저 느껴지는 그들의 안광에도 막상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앞으로 묵묵히 나아가고 있지만 말이다. 오히려 이들을 자극하려는 듯 가 노인이 헛기침을 하면서 큰 목소리로 탄식을 흘린다.


"크흠. 그런건 저잣거리 놈들의 술안주 거리에 불과하거늘...대체 그 어떤 아둔한 놈들이 그런 뜬소문을 믿는 건지 모르겠구나."


'그렇게 말씀하시면 오히려 정말 무언가 지니고 계신 것만 같잖아요!'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면서 가천일을 흘겨보는 반웅. 한껏 첨예해진 분위기 속에서 이윽고 마지막 계단을 오르자 수 백년은 족히 살아온 운남 소나무 두 그루와 그 표면에 날카롭게 새겨진 점창파(點蒼派)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이다.


=====================


'빌어먹을! 처음부터 가 할아버지 말을 믿는 게 아니었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니. 점창파 안뜰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안뜰 중앙에 놓인 단상 위에 강제로 무릎을 꿇게 된 반웅과 일행들. 험악한 분위기로 보아 몸 성히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죄인 가천일은 들어라! 40년 전 점창파의 차기 장문인이자 소가주를 살해하고 절초 후예사일(后羿射日)이 실전되게 만든 죄를 물어 이 자리에서 목을 벨 것이니 지금이라도 비급의 행방을 낱낱히 고하여라! 그리하면 일행의 목숨만은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들것에 편히 누워 이곳까지 올라온 점창파 장문인 양조익이 기력을 회복하였는지 이들 맞은편에 놓인 단상 위에 올라가 묵직한 기운을 목소리에 담아 엄포를 늘어놓는다. 허나 그 위엄 넘치는 목소리에도 가천일은 대체 언제 포박을 풀어냈는지 하나 남은 검지로 연신 귓구멍을 파면서 딴청을 피우고 있다.


"喝! 후안무치(厚顔無恥)한 놈이로구나! 다시 한 번 본때를 보여야 입을 열겠느냐!"


"끌끌. 본때는 무슨. 이미 진즉 본좌에게 패하였으면서 제자들 앞이라고 무게를 잡는구나. 어차피 이곳에서 본좌를 제압할 수 있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어 보이거늘. 양가야,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리 고자세로 나오는지 모르겠구나."


'하...역시 상대방의 혈압을 오르게 하는 데는 가 노야 만한 사람이 없는 것 같네...지금은 저리 멀쩡해보이는 장문인도 결국 두 손가락 만으로 제압하셨으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수 백명의 적의 가득한 점창파 고수들이 싸늘하게 노려보고 있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되레 상대를 도발하는 가천일의 모습에 속으로 혀를 차는 반웅.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에 휘말리게 된 아망과 자신은 무사히 내려갈 수 있으리라 조심스레 생각하고 있었으나, 이어지는 양조익의 말에 당황하고 말았다.


"아무리 파문을 당한 놈이어도 사람으로서 양심은 있어야 할 것 아니냐! 네놈처럼 도리도 모르는 놈이 한 때 같은 문파에 몸 담았다는 것이 너무도 치욕스러울 지경이다! 네놈이 사형을 해하지만 않았어도..."


같은 문파 출신이었다니! 남만 십괴 중 한 명으로서 탄지공 하나만 사용하면서 오랜 세월 명성을 쌓아온 가천일이 운남 점창파 출신이라는 걸 아는 이는 앞으로도 이 곳에 모인 이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리라. 애초에 그 누가 이를 믿을 수 있겠는가!


"...대체 언제적 얘기를 꺼내는게냐. 본좌는 애당초 대월국 사람이거늘. 내 비록 한 때 강호를 동경하여 점창파에 몸 담았던 것이 사실이나 점창파의 무공은 이 곳을 나선 이후로 단 한 번도 시연한 적이 없거늘. 하산한 뒤 단 한 번도 동문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


허나 양조익의 발언으로 인해 이미 장내는 새벽 저잣거리보다 더욱 어수선한 상태다. 가천일이 까마득한 장문인과 비슷한 항렬이라면 여기 모인 모든 이들의 사백(師伯)이라 하여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한 번 연을 맺었다면 평생 변치 않는 것이 사제의 연이라는 것을 모르느냐! 그러니 네놈의 제자로 보이는 어린 녀석 또한 우리 점창파 소속이라 할 수 있을 터. 만약 저 놈이 우리 점창파의 절기를 단 하나라도 익혔다면 이 자리에서 그 죄를 물어 함께 죽음으로 갚아야할 것이야!"


처음부터 이것을 노린 것일까.


누런 이를 훤히 드러내며 마침내 꿍꿍이를 밝힌 양조익이 날카로운 안광을 밝히며 반웅을 노려보았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삶에 치여 늦게 업로드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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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리국을 향한 여정 (2) 22.08.26 3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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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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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망각행승 (1) 22.07.14 5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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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0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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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5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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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야수신궁의 역사 22.05.13 465 13 9쪽
2 여정의 시작 +2 22.05.11 687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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