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8,203
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작성
22.05.13 23:47
조회
464
추천
13
글자
9쪽

야수신궁의 역사

DUMMY

“일각 안에 광장으로 집합해라!”


묘시(卯時)에 울려 퍼지는 감독관의 말에 옷매무새가 단정한 아이부터 혁대만 겨우 맨 아이까지 모두 허겁지겁 광장으로 달려 나간다. 서늘한 새벽 공기를 만끽하며 이들을 훑어본 무진은 큰 목소리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는 무진이다. 야수신궁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볼 사람 없나?"


짐짓 못 들은 채를 하며 시선을 피하는 아이들의 참여를 돕기 위해 무진이 한 가지 제안을 덧붙였다.


“설명이 맞다면 오독환(五毒丸) 한 알을 지급하도록 하지.”


지금은 야수신궁에 흡수된 오독문(五毒門)의 절기로 만들어진 오독환은 내공 수련 초기에 큰 도움이 되어주는 비약이다. 추후 아이들 전원에게 지급되는 보급품이지만 환(丸)이라는 말에 지원자가 속출한다. 무진은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손을 든 아이를 지목했다.


“이름이 뭐지?”


“맹웅입니다.”


옆에 팔짱을 낀 채 미소 짓고 있는 강휘. 그가 데려온 아이가 분명하다.


“좋아. 설명해봐.”


"야수신궁은 가장 강력한 세력을 지녔던 야수궁이 약화된 백화궁(白火宮)과 오독문을 흡수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맹웅이 설명을 마치자 갑자기 손을 드는 아이가 하나둘씩 늘어간다.


"왜 그렇게 되었지?"


"첫 정사대전 때 마교를 지원한 것이 밝혀져서 중원 무림이 이들을 공격했기 때문입니다."


거침없는 그의 대답에 여기저기서 불만스러운 목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그건 백화궁이···"

"그건 오독문이···"


"喝! 여기서부터는 내가 맡는다."


일어서는 아이들까지 나오자 무진은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아이들을 제압한다. 분명 오독문과 백화궁의 후예들일 것이다.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의자에서 졸던 강휘를 흘겨보며 무진은 맹웅에게 오독환을 던졌다.


"중원 무림은 마교의 끄나풀을 제거한다는 명분 아래 첫 정사대전이 끝나자 당시에는 야수궁과 견줄만한 세력이었던 오독문과 백화궁을 습격했다. 하지만 정사 구분 없이 교류하던 남만의 문파들은 양측 모두와 교류가 있었고 그건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이유로 공격한다면..."


"...남만의 그 어느 문파도 무사할 수 없다.”


마지막 문장이 깊게 스며들 수 있도록 무진은 말을 잠시 아낀다. 그가 침묵하자 아이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잦아들고 이윽고 싸늘한 정적만이 남는다. 자신을 주목하는 수십 쌍의 눈을 피부로 느끼며 그는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애초에 마교에는 주술과 유사한 학문을 연구하는 이들이 있고 강자존(强者尊)을 고수하는 무림은 전사들이 수행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강함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정사 구분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 처음부터 중원 무림은 남만 진출을 목표로 삼고 오독문과 백화궁 대신 구파일방(九派一幇)의 분타를 세워 영향력을 키울 생각이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들을 저지한 야수왕 무단(武斷)님이 아니었다면 남만의 역사는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무단의 이름이 거론되자 아이들이 다시 술렁이기 시작한다. 남만의 무력의 상징이자 우상. 남만야수신궁의 1대 궁주. 야수왕 무단은 수련동 안의 모든 아이들이 목표로 삼는 존재다.


“남만인 최초로 현경(玄境)의 경지를 이루신 그분의 무력이 있었기에 우리는 구파일방을 상대로 같은 묘족(苗族)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오독문과 백화궁을 흡수하고 야수신궁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너희가 배우게 될 혼원야수공(混元野獸功)이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으니 그분의 은혜라고 할 수 있지.”


무림맹의 맹주 검왕 적천욱

마교의 교주 창왕 장선일

야수신궁의 궁주 야수왕 무단


현경의 경지에 오른 이 세 고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무단의 이름을 듣고 한껏 들뜬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무진은 강휘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첫 무공 수업을 맡은 강휘라고 해. 다른 감독관들과 더불어 너희들의 사부가 될 사람이지. 오늘은 혼원야수공의 기본을 가르쳐줄 거야. 무진이 말했듯이 남만의 세 가지 무공의 정수를 녹여내어 새롭게 창시된 무공인데 궁주님께서도 이 과정에 참여하셨으니 열심히 익히도록 하자."


야수왕 무단이 무공 창시 과정에 참여했다는 말을 듣고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 후끈 달아오른 열기를 느끼며 강휘는 준비 자세를 취한다.


“혼원야수공의 핵심은 누구보다 빠른 발에 있다고 할 수 있어.”


왼발을 앞으로 딛고 무게를 실어 몸을 기울인 채 오른발을 뒤로 뻗어 비스듬히 지지하는 강휘.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그렇게 제자리에서 정면을 향해 내딛은 발을 교체하던 강휘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속도를 더해간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적당한 보폭을 유지하고 양 발을 바꾸는 그의 움직임은 얼핏 보면 규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도와 순서를 종잡을 수가 없다. 점점 빨라지는 호흡에도 그의 움직임이 안정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상체를 제자리에 고정한 채 앞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움직임의 기본은 단단한 하체에서 비롯돼. 하반신의 단련이 필수라는 얘기야."


광장에 모인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따라해 보지만 짐짓 제 발에 걸려 넘어지는 아이가 태반이다. 자리에 주저앉은 채 얌전히 경청하는 아이가 늘어가는 모습을 보며 강휘는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혼원야수공은 보법인 혼원칠영보(混元七靈歨)와 권법인 만야지세권(萬野之勢拳)이 합쳐진 무공이야. 가장 중요한 건 이렇게 발을 빠르게 바꾸면서도 무게중심을 유지하는 것이지. 그걸 위한 기본기가 방금 너희들에게 보여준 혼원칠영보의 기수식(起手式) '묘입'(卯立)이고."


'토끼가 바르게 선 자세'라는 이름을 듣자 여기저기서 실소가 터져 나온다. 아직 10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더욱 쉽게 가르치기 위해서 '천지유영'(天池游泳)이라는 이름을 '묘입'으로 바꿨다는 사실을 아는 강휘는 쓴웃음을 짓고 있다. 무진도 이런 아이들의 반응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지 매서운 눈초리로 변하였다.


"그럼 다음으로 배우게 될 이초식 '사보'(巳步)를 보고도 웃음이 나오는지 볼까."


날카로워진 눈빛과 목소리로 느슨해진 분위기를 다잡고 본격적인 시범에 나서는 강휘. '뱀의 걸음'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이초식의 본래 이름은 '망룡승천'(蠎龍昇天). 긴 회의 끝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어버렸다는 사실이 매번 강휘를 괴롭힌다.


'아이들이 쉽게 배울 수 있다면 무엇이 문제겠어.'


강휘는 빠르게 몸을 왼쪽 오른쪽으로 비틀면서 발에 무게를 실어 앞으로 밀어내듯이 쭉 나아간다. 처음에는 굼벵이처럼 천천히 앞으로 뻗어나가던 신형이 점점 속도를 더하면서 전혀 다른 생물의 움직임처럼 변모한다.


스르륵. 스르륵.


부드럽지만 호쾌한 곡선을 그리며 굽이진 궤적을 남긴 강휘는 땅 위에서 하늘을 향해 아우성치는 한 마리의 이무기가 되었다. 단상 끝자락에 다다른 뒤 막힘없이 다시 중앙으로 돌아온 그의 신위에 아이들의 눈에서 빛이 난다. 달라진 공기를 느끼며 강휘는 마지막 초식을 선보인다.


"마지막으로 보여줄 삼 초식은 '비연보'(飛鸢步)인데..."


야수궁의 시조가 축지(縮地)의 이치를 담았다고 전해지는 삼초식 '일심천리'(一心千里). 지금은 '날아가는 솔개의 걸음'이라는 평이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지만 그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다. 천천히 뜀박질 자세를 잡은 강휘는 발가락 끝자락까지 완전히 내공을 돌린 뒤 이를 분출하면서 바닥을 박차고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여기야 여기!"


짐짓 주변을 살피던 아이들은 백 리는 족히 떨어져 있는 광장 입구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강휘를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오늘 그가 선보인 것처럼 제자리에서 계속 발을 바꾸어 빠른 대응이 가능케 하고, 앞뒤 양옆으로 유연하게 대처하며, 간격을 조절하는 것은 모든 무공의 기본이다. 진정한 묘리는 각 초식에 사용되는 내공의 경로와 전체적인 흐름을 제어하는데 있다. 결국 내공심법을 익힌 뒤에 천천히 내공 운용과 함께 다시 가르쳐야 한다는 얘기다.


사전에 약속했던 것과는 다르게 강휘가 가르치기 가장 어려운 것들을 자신에게 떠넘기려 하는 것 같아 내심 불안했던 무진의 직감은 이내 현실이 되었다.


"이 세 가지 초식의 기본을 익히면 기감을 여는 방법을 익히게 될 거야. 옆에 있는 무진 사부한테서."


단상 위로 다시 돌아온 강휘의 말에 열광하는 아이들. 의기양양한 얼굴로 초식들을 재연하고 세부적인 동작을 설명해주고 있는 강휘와는 다르게 무진의 표정이 어둡다.


'지루하고 오래 걸리는 부분만 내게 떠넘기다니. 귀찮게 됐군.'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기초 강의만 하려던 무진은 궁리 끝에 올해는 조금은 색다르게 진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독문(五毒門) - 독을 중점적으로 다루던 남만의 문파


백화궁(白火宮) - 불을 숭배하는 남만의 교단 (조로아스터교의 개파)


혼원야수공(混元野獸功) - 작중 남만 전사들이 익히는 무공


혼원칠영보(混元七靈歨) - 천지의 일곱 영물의 움직임을 본 딴 보법


'망룡승천'(蠎龍昇天) - 이무기의 승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남만야수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금일 연재 안내 22.08.16 6 0 -
공지 연재 주기 안내 22.06.28 15 0 -
공지 수정 안내 22.06.19 32 0 -
공지 한자 용어에 관한 질문입니다. 22.06.16 78 0 -
62 봉소 마을로 모여드는 이들 (1) 22.08.31 44 0 10쪽
61 대리국을 향한 여정 (3) 22.08.28 29 0 9쪽
60 대리국을 향한 여정 (2) 22.08.26 33 0 9쪽
59 대리국을 향한 여정 (1) 22.08.23 23 0 9쪽
58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3) 22.08.21 26 0 10쪽
57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2) 22.08.18 29 0 9쪽
56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1) 22.08.17 32 0 9쪽
55 전쟁의 서막 (3) 22.08.15 35 0 9쪽
54 전쟁의 서막 (2) 22.08.09 33 0 9쪽
53 전쟁의 서막 (1) 22.08.07 35 1 9쪽
52 불협화음 (3) 22.08.04 40 1 10쪽
51 불협화음 (2) 22.08.02 33 1 9쪽
50 불협화음 (1) 22.07.31 38 1 10쪽
49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3) 22.07.28 50 1 9쪽
48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39 1 9쪽
47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1) 22.07.24 40 1 9쪽
46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3 1 10쪽
45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22.07.19 43 1 9쪽
44 망각행승 (2) 22.07.17 45 1 10쪽
43 망각행승 (1) 22.07.14 54 1 10쪽
42 북란성을 떠난 이들 22.07.12 52 1 10쪽
41 진실을 찾아서 (3) 22.07.10 51 1 10쪽
40 진실을 찾아서 (2) 22.07.07 54 1 10쪽
39 진실을 찾아서 (1) 22.07.06 67 1 9쪽
38 거검문의 진짜 소문주 (2) 22.07.05 75 1 10쪽
37 거검문의 진짜 소문주 (1) +2 22.07.04 74 1 10쪽
36 여인을 설득하는 방법 (2) 22.06.29 86 1 9쪽
35 여인을 설득하는 방법 (1) 22.06.28 87 3 10쪽
34 야수신궁의 5대 단체 22.06.28 98 2 10쪽
33 세 번째 시험 - 뜻밖의 기연과 새로운 약조 22.06.27 108 1 10쪽
32 세 번째 시험 - 호랑이 가죽에 남겨진 실마리 22.06.23 90 1 10쪽
31 세 번째 시험 - 다시 도채밀림으로 22.06.22 86 1 10쪽
30 하니 마을의 준예(哈尼儁乂) (2) 22.06.19 100 3 9쪽
29 하니 마을의 준예(哈尼儁乂) (1) 22.06.19 90 1 9쪽
28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3) 22.06.19 90 1 10쪽
27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2) 22.06.19 90 1 9쪽
26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1) 22.06.19 96 1 10쪽
25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3) +1 22.06.19 99 1 9쪽
24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2) +3 22.06.19 104 1 10쪽
23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1) 22.06.19 94 1 9쪽
22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3) 22.06.19 99 1 9쪽
21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2) 22.06.19 93 1 10쪽
20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1) 22.06.19 105 1 10쪽
19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4) 22.06.11 130 1 10쪽
18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3) 22.06.09 146 1 9쪽
17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2) 22.06.08 141 1 10쪽
16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1) 22.06.07 159 1 10쪽
15 무진이라는 사내 (5) +3 22.06.05 156 2 11쪽
14 무진이라는 사내 (4) +2 22.06.03 156 3 11쪽
13 무진이라는 사내 (3) 22.06.01 164 3 10쪽
12 무진이라는 사내 (2) 22.06.01 175 2 10쪽
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198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6 2 10쪽
9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 +1 22.05.27 233 2 9쪽
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0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0 3 9쪽
6 첫 비무 - 선발제인(先發制人) +2 22.05.20 315 6 11쪽
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5 7 10쪽
4 수련과 생사기로(生死岐路) 22.05.16 400 11 9쪽
» 야수신궁의 역사 22.05.13 465 13 9쪽
2 여정의 시작 +2 22.05.11 687 18 11쪽
1 프롤로그 +4 22.05.11 666 18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