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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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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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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글자수 :
263,461

작성
22.06.09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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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3)

DUMMY

꼭두새벽부터 성실하게 농장 일을 거드는 반웅. 그의 모습이 달라졌다.


‘녀석. 드디어 무공을 익히는 것을 포기한 모양이로구나.’


고산선의 거야휘는 드디어 다른 아이들처럼 농장 일에 전념하는 반웅의 모습이 기특하기만 하다. 매일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무게가 한 관이 넘어가는 항아리를 양 손에 하나씩 들고 차디 찬 새벽 공기를 맞으며 짐승 우리에 들어가는 건 건장한 성인 남성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잠을 잘 자서 그런지 몸도 쑥쑥 크는구나.’


거야휘는 운귀고원에서 지내면서 부쩍 성장한 반웅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몰래 읊조렸다. 분명 이 곳에 올 때만 해도 다른 아이들 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는데 대체 언제 이렇게 큰 걸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게 아이들이라고 하지만 반웅의 변화는 조금 가파른 듯하다.


‘하후진과 올돌궈를 조만간 따라잡겠구나. 이대로만 자라다오.’


다른 아이들에 비해 갑작스레 성장하는 모습이 의아할 수도 있건만, 노인은 그저 무럭무럭 자라나는 반웅이 대견하기만 하다. 그의 모든 변화가 무공을 포기하면서 이루어진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허나 반웅은 무공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은 내가 소젖 짜는 날이구나. 빨리 끝내고 뒷간에서 운기조식이나 해야지.’


반웅은 새로 배운 채기법(採氣法)으로 고원 농장에서 기르는 동물들의 기운을 흡수하면서 점점 내공을 늘려가고 있다. 온갖 짐승의 기운을 전신세맥과 팔맥에 흩뿌려두었기에 그의 몸이 이렇게 단기간 만에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전보다 기운을 많이 빨아들이는 느낌이야. 더욱 조심해야겠어.’


반웅이 터득한 음양조화신공은 비워낼 수 있는 양에 비례하여 반대되는 기운을 흡수하는 심법이다. 반웅의 단전의 크기가 작지 않았더라면 이미 거야휘에게 들키고 말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부족한 자질이 오히려 천운으로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흡수하는 양을 제어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그에게 기운을 빼앗긴 짐승들은 잠시 졸도하는 게 아니라 영원히 잠들고 말 것이다. 여러모로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반웅, 왜 항상 다 짜고 나서도 멍 때리고 있어? 다 끝났으면 슬슬 돌아가자!”


소의 유통(乳筒)을 가만히 움켜쥔 채 눈을 감고 앉아있는 반웅. 그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다른 아이들의 눈에는 기묘하게 비춰질 뿐이다. 요령을 터득하여 노인이 일러준 주문을 속으로만 외우고 있어서 망정이지, 사술(邪術)에 빠진 것으로 오해 받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냐! 그냥 바깥 날씨가 춥기에 쥐고 있었어. 같이 돌아가자.”


“빨리 와. 할아버지 걱정하시겠다.”


무공을 배우지 않고 농장 일만 배워서 그런 걸까. 이 곳의 아이들은 대개 성정이 순박하여 반웅을 챙겨주려는 모습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지만.


“그냥 둬. 저런 식으로 짐승 젖무덤을 주무르는 게 하루 이틀이냐. 그냥 변태라서 그래.”


뒤에서 별안간 나타나 반웅을 변태로 몰아가는 올돌궈. 10살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부진 체격과 두꺼운 팔뚝이 눈에 띈다. 오 척 반이나 되는 신장은 청년이라 해도 열에 아홉은 믿으리라.


“변태라니. 말이 좀 심한 거 아냐? 사과하지 그래?”


옆에서 끼어드는 하후진. 몸이 날래고 일머리가 뛰어나 거야휘가 직접 대장으로 뽑은 아이다. 올돌궈에 밀리지 않는 체격이라 반웅은 졸지에 자신보다 큰 아이 둘에게 꼼짝 없이 둘러싸였다.


“얘들아, 내가 잘못했어. 오해 받을 만한 행동은 다음부터는 안 할게. 이만 돌아가자.”


웃으며 분위기를 풀어보려던 반웅은 되레 험악해진 분위기에 당황하고 말았다.


“네가 뭘 잘못했는데? 가만히 멍 때리고 있다고 변태라고 몰아가는 게 이상한 거 아냐?”


“넌 좀 끼어들지 좀 마. 그런 식으로 어물쩍 넘어간 게 한 두 번이야? 왜 항상 짐승들 젖이나 잡고 저러고 있는 건데?”


더욱 팽팽해진 공기에 안절부절 못하는 반웅. 혹시라도 거야휘의 눈길을 끌까봐 더욱 조심스럽다.


“처음 여기 왔을 때부터 나는 저 놈이 마음에 안 들었어. 마치 자기만 특별하다는 듯이 새벽마다 몰래 밖에 나가지를 않나, 밤에는 거야휘 말씀도 어기고 뒷간 근처에서 무공을 수련하지를 않나. 웃기는 짓거리를 하는 놈이 분명한데 대체 왜 감싸는 건데?”


올돌궈의 비난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하후진. 처음 운귀고원에 도착한 날부터 지금까지 반웅은 기행을 펼치지 않았던 날이 없다. 거야휘의 거듭된 권유에도 고집을 부리며 무공을 수련하느라 남들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통에 깊게 잠들지 못하는 아이도 늘어나고 있다. 함께 생활해야 하는 고원 농장에서 반웅은 알게 모르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여태 자각하지 못한 반웅은 오히려 발끈하고 말았다.


“난 단 한 번도 내가 특별하다고 말한 적 없어. 하지만 무공을 익힐 기회가 주어졌던 건 사실이야. 그걸 내가 따로 시간을 들여서 연마하겠다는 데 대체 뭐가 문제야? 배운 걸 조금이라도 익혀서 유용하게 쓰겠다는 게 잘못이야? 너희가 기감을 일깨우지 못해서 무공을 배우지 못했다고 나도 그렇게 해야 되는 거냐고!”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거라고. 거야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지. 무공을 잊으라고. 그런데 왜 너만 그런 식으로 몰래 수련하는 건데? 니가 뭔데 할아버지 말씀도 안 듣고 멋대로 하는 건데? 니가 그렇게 잘났어?”


이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올돌궈는 안간힘을 쓰면서 주먹을 꼭 쥐고 있다. 하지만 반웅은 여기서 언쟁을 멈출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러니까, 왜 내가 무공을 잊어야 하는데? 너희는 자질이 부족해서 배울 수도 없...”


반웅은 마지막 문장을 마칠 수 없었다. 올돌궈가 기습적으로 내지른 정권 찌르기에 속절없이 얼굴을 내주고 말았으니까.


“크헙.”


“똑바로 서! 뭐라고? 자질이 부족해서 배울 수도 없어? 니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건 진작 알았다! 무공 배운 적 없는 놈한테 어디 한 번 먼지나게 맞아봐라!”


어느새 몸 위에 올라탄 올돌궈에게 바닥에 누워 사정없이 맞는 반웅. 간신히 팔로 얼굴을 가린 채 수련동에서 배운 대로 운기하여 멋드러지게 올돌궈를 제압하는 상상을 하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처음 맞은 건 기습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치더라도 그 이후 속절없이 무너진 자세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무공을 배우지 않은 올돌궈가 반웅보다 강하다.


“여기 모인 다른 아이들 중에서 그 누구도! 니가 그런 식으로 함부로 잣대를 들이밀 대목이 아니야! 누군가는 육친의 복수를 위해, 또 누군가는 가문을 위해 어릴 적부터 남만 전사만 바라보며 살아 왔다고! 니가 뭔데 우리를 평가해!”


올돌궈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절규에 옆에서 지켜보던 하후진은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가문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어릴 적부터 갖은 영약과 가문의 비기를 전수 받았지만 결국 수련동은 커녕 농장에서 썩어가는 자신의 심정은 물론, 다른 아이들의 심정도 대변하는 말이었다.


‘미안하지만 이건 올돌궈 말이 맞다. 생각 없이 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져라.’


조용히 지켜보던 하후진은 반웅이 너무 많이 맞았다 싶으면 개입할 생각이다. 치명상을 입으면 자신을 믿고 대장직을 맡긴 고산선의를 뵐 낯이 없다.


“아, 진짜!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좀 때려! 내가 잘못했으니까! 나도 너희 마음을...”


“아니, 넌 좀 더 맞아야 돼. 진심이 안 느껴져.”


대체 얼마나 때려야 만족할 수 있는 걸까. 한 식경이나 이어진 올돌궈의 주먹세례는 결국 때리는 사람과 막는 사람 모두 체력이 빠지자 끝을 맞이했다. 오히려 힘겹게 팔을 드는 올돌궈가 누워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반웅보다 기력이 쇠한 것처럼 보인다.


'뭐야, 쟤는 왜 저렇게 멀쩡해? 게다가 웃는다고? 너무 맞아서 실성(失性)한 건가?'


하후진은 바닥에 누워서 팔틈 사이로 올돌궈를 슬쩍슬쩍 쳐다보면서 미소 짓는 반웅의 모습이 기이하다. 분명 일방적으로 맞는 쪽인데 싱글벙글한 모습이 마치 이런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이게 되는구나! 근데 사내의 몸 속에도 음기가 존재할 수 있는건가? '


불리한 상황에서 반웅이 꺼내든 비장의 수는 올돌궈의 기운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네놈 기운은 적당히 가져갔으니까 앞으로는 기어오르지 마라! 이게 무공을 배운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다!'


음양조화신공을 통해 출처를 알 수 없는 음기를 올돌궈에게서 흡수하는데 성공한 반웅. 자신과 반대되는 기운만 흡수할 수 있는 음양조화신공이 대체 어떤 연유로 성공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반웅은 머릿속에 떠오른 잔꾀를 통해 정체되어 있던 내공 수련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생각이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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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불협화음 (2) 22.08.02 33 1 9쪽
50 불협화음 (1) 22.07.31 3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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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39 1 9쪽
47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1) 22.07.24 41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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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22.07.19 43 1 9쪽
44 망각행승 (2) 22.07.17 45 1 10쪽
43 망각행승 (1) 22.07.14 5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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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3) +1 22.06.19 99 1 9쪽
24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2) +3 22.06.19 105 1 10쪽
23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1) 22.06.19 95 1 9쪽
22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3) 22.06.19 99 1 9쪽
21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2) 22.06.19 93 1 10쪽
20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1) 22.06.19 10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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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3) 22.06.09 147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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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무진이라는 사내 (5) +3 22.06.05 157 2 11쪽
14 무진이라는 사내 (4) +2 22.06.03 156 3 11쪽
13 무진이라는 사내 (3) 22.06.01 164 3 10쪽
12 무진이라는 사내 (2) 22.06.01 175 2 10쪽
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199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6 2 10쪽
9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 +1 22.05.27 233 2 9쪽
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0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0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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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5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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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야수신궁의 역사 22.05.13 465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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