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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8,217
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작성
22.06.11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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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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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0쪽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4)

DUMMY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어.'


평소라면 모두가 잠들어 있을 야심한 한밤중에 40명의 다른 아이들과 방 안에서 함께 둥그렇게 모여 앉아 무언가 의논하고 있는 반웅. 그는 자신이 생각해낸 꾀가 제법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그게 대체 무슨 헛소리야?"


눈을 크게 뜨고 재차 묻는 올돌궈. 낮에 빼앗긴 기력은 벌써 회복한 모양이다.


"너희들도 무공을 배워서 반드시 이루고 싶었던 목표가 있잖아. 그러니 나만 배운 것들을 몰래 연습하는 건 너무한 것 같다고."


침을 삼키며 다음 문장을 기다리는 아이들. 그의 입에서 아이들이 지금껏 염원해 왔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문장이 펼쳐진다.


"같이 만야환상대법(萬野喚相大法)과 혼원야수공(混元野獸功)을 수련하자."


반웅의 말에 웅성거리는 아이들. 비록 농장 일을 거들며 거야휘의 말에 따르고 있었지만 수련동에서 무공을 배우고 싶어했던 열정은 거짓이 아니다. 그 불씨가 아직 가슴 속에 남아 있다.


"무공을 멋대로 타인에게 전수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 네 녀석은 무림의 도리라는 것도 모르냐? 어떻게 그런 추악한 짓을 할 수 있지?"


정면에서 반웅을 반박하는 올돌궈. 그의 말대로 무공을 문파의 허락 없이 가르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힘이 전부인 세상에서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바로 무공 아니던가. 야수신궁의 비전을 반웅 멋대로 자신들에게 전수한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정론에도 반웅은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


"잘 생각해봐. 난 수련동에서 무공과 심법을 배웠지만 이 곳으로 보내졌어. 성취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말이지. 게다가 내게 다른 아이들에게 무공을 전수하면 안 된다고 한 사람은 없어. 이게 무슨 뜻이겠어?"


반웅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단번에 말을 이어간다.


"어차피 꼴찌였기 때문에 내가 너희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더라도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런 수준이라면 나한테 배워도 큰 문제없는 게 아닐까? 애초에 누가 우리한테 신경이나 쓰겠어?"


허나 불신이 가득한 대다수의 아이들의 표정으로 보아 아직 완전히 설득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럼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 부모님께 연락도 드리지 못한 채 거야휘 할아버지 밑에서 가축들이나 돌보고 젖이나 짜면서 평생을 보낼 셈이야?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 있어?"


이어지는 반웅의 말에 침묵하는 아이들. 농장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은 사람은 없었기에 그의 말에 조금은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어차피 여기 모인 사람은 모두 남만인이잖아. 야수신궁의 목적은 남만을 외세로부터 지키는 건데, 우리가 자진해서 무공을 익히고 힘을 보탠다고 해서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아무것도 모르는 농가 무지렁이 보다는 조금이라도 무공을 배우는 게 낫지 않을까?"


술렁이는 장내 반응을 조심스레 관찰하며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을 물색했지만 다행히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내는 아이는 없다. 치명적인 허점을 지적하는 하후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네 말대로 무공을 수련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고 치자. 근데 우리는 기감을 일깨우지 못했는데 대체 어떻게 심법을 수련하라는 거지? 내공 심법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한낱 춤사위와 다를 바가 뭐가 있냐고."


매섭게 정곡을 찌르는 하후진. 허나 반웅은 오히려 그의 질문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맞아. 내기를 느낄 수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지. 하지만 그걸 느낄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 있다면?"


경지에 이른 무공 고수라면 타인의 몸속으로 기운을 유도하여 기감을 일깨워 줄 수도 있지만, 남만에서는 전통적으로 그런 행위는 자연에 거스르는 행위라면서 도외시하고 있다. 실상은 자질이 떨어지는 아이들에게 부족한 자원이 소모되는 것을 막고 소수의 기재들만 육성하겠다는 방침이 숨어있지만 말이다.


'설마...'


하후진은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반웅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의 제안이 마냥 허황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오신다!"


농장 정문에 연결된 가느다란 천잠사 실타래를 통해 신호를 전달 받은 한 아이가 뒷간 근처에 모여 몰래 무공을 수련하고 있던 다른 아이들에게 허겁지겁 달려온다. 반 시진 씩 돌아가면서 망을 보며 거야휘가 어슬렁거리며 보러 오는 것에 대비하고 있던 것이다.


'오늘은 왜 이렇게 자주 오시는 거야!'


반웅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면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축국을 하는 모양새를 꾸민다. 축국은 다양한 전술 전략을 연습할 수 있는 모의 전투로 알려져 있지만 거야휘의 눈을 피해 자연스레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몇 안되는 여흥거리이기도 하다. 정해진 자리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마치 잘 훈련된 병졸들 같다.


"올돌궈, 오늘은 너가 축국(蹴鞠) 영웅이야! 열심히 뛰어!"


"이러면 이따가 수련할 때 피곤한데...부쩍 나만 시키는 것 같다?"


불만을 토로하며 기구(氣毬)를 받는 올돌궈. 거야휘가 이들을 관람하는 동안 주도적으로 판을 이끌고 점수를 내야 하는 역할이 귀찮기만 하다.


"그럼 내가 할까? 난 다른 애들 기감 열어주느라 기진맥진한데?"


짐짓 아픈 척을 하면서 허리를 두드리는 반웅. 삭신이 쑤실 나이도 아니건만 엄살이 심하다.


"거의 다 오셨다! 빨리 뛰어!"


망을 보던 아이가 다급히 재촉하자 축국 경기가 시작된다. 요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공을 주고받는 모습이 꽤나 본격적이다. 올돌궈가 기구를 구문 사이로 밀어넣는 데 성공할 무렵, 거야휘가 도착했다.


"예끼 이놈들! 망까지 세워놓고 또 축국을 하느냐! 작작 놀고 농장 일이나 돕거라! 이 할아비는 친구 좀 만나고 올 테니 밀린 집안일도 좀 하고!"


"예, 할아버지! 부디 살펴 가세요! 돌아오시기 전까지 집안일은 꼭 해놓겠습니다!"


단체로 포권지례를 취하며 일제히 노인을 배웅하는 40명의 아이들. 올돌궈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이 얼마나 열심히 연기하였는지 보여준다.


'휴. 다시 무공 수련에 임할 수 있겠어.'


아무런 의심도 없이 신형을 날리는 노인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아이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앞으로 두 시진 동안은 마음 편히 수련할 수 있을 것이다.


"자, 다음 사람! 기감을 일깨울 사람은 가부좌를 틀고 앉고, 나머지 사람들은 하후진한테 기본 초식들을 배워! 올돌궈는 마을쪽 망 좀 보면서 쉬다 오고!"


아이들을 능숙하게 이끌면서 자리에 앉은 아이의 등에 손을 얹는 반웅. 내공이 턱없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대체 어떻게 기감을 일깨워 주겠다는 걸까.


'후. 오늘은 제발 성공해야 될 텐데...'


음양조화신공을 통해 기운을 흡수하려 노력하는 반웅. 그 당돌함에 올돌궈는 기가 찰 노릇이다.


'사술이 분명하지만 덕분에 기감을 깨울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다. 지금은 그냥 넘어가 주마.'


최초로 반웅에게 기운을 빼앗긴 올돌궈는 거야휘가 사라진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반웅을 찜찜한 얼굴로 째려보았다.


'기감을 열어줬으면 백 번 절해도 모자랄 판에. 어휴, 속 좁은 녀석.'


그 눈빛을 알아챈 반웅은 그의 태도가 섭섭하기만 하다. 어차피 한 배를 탔는데 저리 나올 건 없지 않은가.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한밤중에 열린 회의 끝에 체계적으로 거야휘의 눈을 피해 무공을 수련할 수 있는 방법을 궁구한 아이들은 결국 축국을 연막으로 활용하여 반웅에게 무공을 배우기로 하였다. 보초까지 세워가면서 말이다.


이 계획의 핵심인 반웅이 아이들의 기감을 일깨워주는 방식은 단순했다. 그저 음양조화신공으로 기운을 흡수하면서 상대방이 만야환상대법의 구절을 외우게 하는 것이다. 비록 채기법이라고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기감을 깨운 게 하후진과 올돌궈다. 온갖 영약을 섭취하면서 자라온 탓에 팔맥은 물론 전신 세맥에 음의 기운이 축적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타인의 기감을 일깨우는 건 역시 어렵네...'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른 아이들의 기감을 일깨워 주기 위해 매일 열의를 쏟고 있는 반웅. 애초에 남자는 음의 기운을, 여자는 양의 기운을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삼는 음양조화신공이 두 명에게라도 효과가 있었다는 게 천운이다.


'아무래도 다른 아이들은 안 되는 것 같은데...'


이미 효과를 본 아이가 둘이나 나온 탓일까. 다른 아이들은 언젠가 자신들도 기감을 익힐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정작 반웅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음에도 말이다.


'여성에게서 기운을 흡수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음기를 흡수하는 게 월등히 쉽다는 걸 몸소 체감한 반웅. 마을로 내려가 여성들로부터 기운을 흡수해보고 싶었지만 거야휘는 아이들을 데려갈 생각이 없다. 그의 도움 없이 산 정상에 자리 잡은 농장에서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마을까지 내려가는 건 불가능하다.


'날 데리고 마을로 내려가 줄 사람이 어디서 안 나타나려나.'


반웅이 아쉬운 마음에 열심히 혼원야수공을 가르치고 있는 하후진을 힐끔 쳐다보았지만 곧바로 매서운 눈초리를 되돌려 받을 뿐이었다. 결국 반웅의 내공은 수련동의 아이들과는 다르게 한동안 정체 되어 있을 예정이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축국(蹴鞠) - 고대의 축구. 중국 기원으로 고대 문헌에 자주 언급됨.


기구(氣毬) - 오늘 날의 축구공과 매우 유사한 축국에 사용되는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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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3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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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2) 22.06.19 90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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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3) +1 22.06.19 99 1 9쪽
24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2) +3 22.06.19 105 1 10쪽
23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1) 22.06.19 95 1 9쪽
22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3) 22.06.19 99 1 9쪽
21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2) 22.06.19 93 1 10쪽
20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1) 22.06.19 105 1 10쪽
»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4) 22.06.11 131 1 10쪽
18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3) 22.06.09 147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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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1) 22.06.07 159 1 10쪽
15 무진이라는 사내 (5) +3 22.06.05 157 2 11쪽
14 무진이라는 사내 (4) +2 22.06.03 156 3 11쪽
13 무진이라는 사내 (3) 22.06.01 164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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