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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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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글자수 :
263,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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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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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불협화음 (3)

DUMMY

'계속 뒤따라 오고 있는 저 놈은 대체 정체가 뭐지? 살기는 없는 것으로 보아 적은 아닌 것 같은데...'


한 차례 거센 폭풍이 지나간 봉소 마을 촌장댁에서 너무도 피곤해 보이는 간소소와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객잔으로 돌아가고 있는 티엔.


그들의 뒤를 몰래 쫓아오고 있는 의문의 추격자의 기척에 조금씩 속도를 높이고 있지만, 그는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속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보란듯이 이따금씩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티엔에게만 당당히 전하는 듯 하다.


네 명의 아이들은 물론 간소소마저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실력자가 분명하리라. 허나 이런 상황을 계속 이어나갈 수는 없는 법이다. 티엔이 기진맥진한 일행과 함께 제자리에 잠시 멈춰선 뒤 큰 소리로 의문의 추격자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어이! 누군지 몰라도 그런 식으로 쫓아오면 제발 알아차려 달라는 거지? 셋을 셀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겠어!"


꼬리를 달고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어쩌면 위험한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 이미 이런 촌구석에서 은거기인을 무려 두 명이나 만나지 않았던가. 지금은 지나가는 작은 바람이라도 조심하여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아미타불. 소승(小僧)이 본의 아니게 놀라게 한 것 같구려. 부디 용서해 주시구려. 그저 네 아이와 간 낭자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 조심스레 따라와 보았구려."


골목 구석에 드리운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빛바랜 죽립(竹笠)을 눌러쓴 승려. 그 무색무취한 기운은 마치 그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허나 그 기운은 특색이 없더라도 그 행보는 분명 기이하기 짝이 없다. 일전에 봉소 마을 입구에서 함께 봉황 만두를 티엔과 경쟁이라도 하듯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던 것이 바로 이 남자다.


"뭐야, 누군가 했더니 술과 고기를 마다하지 않는 특이한 승려잖아? 당신이 왜 여기서 나와? 제법 수준급의 무공을 익힌 것으로 보아 소림사 출신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승복이라고는 정사대전때 소림사나 아미파의 고수들이 입은 것만 여지껏 볼 수 있었던 티엔. 그들과는 복식이 조금 다른 것처럼 보이나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눈썰미를 지니지는 못하였다. 자칫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을 그녀의 말에 민머리 사내는 죽립을 조심스레 들어올리며 쓴웃음을 짓는다.


"아미타불. 석가께서는 단 한 번도 고기와 술 자체를 금하신 적이 없구려. 그저 자신을 위하여 살생하지 말 것을...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지 말 것을 당부하셨을 뿐. 게다가 중원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아무리 소림사라고 하여도 어찌 소승의 복장을 보고도 그리 생각할 수 있는지 의문이구려. 소승은 대리국에서 온 아망(我忘)이오."


"허...허업..."


완전히 죽립을 벗은 승려의 얼굴을 본 티엔과 일행은 자신들도 모르게 깊은 탄식을 흘리고 말았다.


이마 부근에서부터 길게 뻗어나온 커다란 화상 자국이 머리 한 톨 없는 정수리까지 폭력적으로 이어진 그의 모습에 놀라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


새롭게 조우한 아망과 함께 객잔까지 돌아온 티엔과 일행들. 간소소와 네 아이들은 피곤하였는지 곧장 객실로 돌아가 잠을 청하였으나, 티엔은 자신들을 쫓아온 남자와 술자리에서 담판을 지을 생각이다. 독한 술을 통해 타인의 꿍꿍이를 알아내는 것은 규헐단 단원들에겐 일상이다.


"대리국 사람이 그러니까 왜 봉소 마을에 와서 봉황 만두나 먹고 있냐고. 진짜 이해가 안된다니까?"


객잔에서 티엔과 함께 술병을 들이키고 있는 대리국 출신의 아망 승려. 일전에 마을 어귀에서 봉황 만두를 먹어치웠던 것처럼 이번에는 의기투합하여 객잔의 양화주를 각자 한 병씩 거덜내고 있다. 마지막까지 정신을 온전히 유지할수만 있다면 상대방에게 술값을 모조리 덤터기 씌울 수 있으니 서로 거리낄 것이 없는 것이다.


"소승은 수행을 위하여 남만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구려. 다행히 석가께서 매일 묘시에 총 일곱 집을 탁발하여 시주해주는 대로 받아 먹는 것이 미덕이라 하셨기에 여태 버틸 수 있었소. 그분의 가르침이 비록 남만 백성들의 삶에 깊게 뿌리를 내리지는 못하였으나, 다들 성정이 선하고 수행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것으로 보아 희망이 보였다 할 수 있겠..."


"하, 파계승처럼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작자가 여태 어찌 생존하였는지는 관심 없고, 신통력 좀 발휘해서 흥 좀 돋구어 주는게 어때? 미륵(彌勒)이었나...미래의 부처님께 뭐 좀 들은 거 없어?"


미륵이라는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태 마시고 있던 양화주를 뿜어내는 아망. 조금 취기가 올라온 상태임에도 티엔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술과 침이 하나로 뒤섞인 액체를 술상에 얌전히 놓여 있던 술잔을 이용해 모조리 막아낸다.


"푸, 푸웁. 불교는 그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기묘한 사술을 부리는 종교가 아니오! 우리는 수행을 통해..."


"그래, 알았으니까 제발 다른 이야기 좀 해봐! 언제까지 남만에서 어떻게 탁발 만으로 생존했는지 듣고싶지 않으니까! 애초에 봉황 만두 먹을 때 보니까 돈도 제법 있는 것 같더만!"


그녀의 말처럼 벌써 한 시진 동안 남만의 다양한 지역에서 어떤 음식을 시주 받았는지 자랑하고 있는 아망. 그에게는 값지고 귀중한 경험일지 몰라도 티엔에게는 그저 술 취한 중년인의 푸념보다 값어치가 없다.


"크흠...알겠소. 그럼...낭자는 조만간 대월국이 전운(戰雲)에 잠식될 것을 알고 계시오?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일이니 발빠른 상인들은 물론 이미 알 사람은 모두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을 것이오."


"...다시 한 번 말해봐. 뭐라고?"


취한 척을 하면서 연신 헛소리만 읊어대던 아망. 어느새 취기를 모조리 몰아내고 매서울 정도로 날카로운 안광을 뿜어내고 있는 그에게서 뜻밖의 단어들이 흘러나왔다.


그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면서도 진지한 모습에 티엔은 뒷목이 서늘할 지경이다. 지금껏 취한 연기를 한 것이 자명하다. 규헐단 최고 살수를 가볍게 속여넘긴 것이다.


"침공(侵攻). 대리(大理). 대월(大越). 닷새."


시끌벅적한 객잔 안에서 아망이 툭툭 내뱉은 단어들은 비록 삽시간에 허공에 흩어져 버렸지만, 그 안에 담긴 믿기 힘든 내용들은 이미 그녀의 뇌리에 비수처럼 날아와 박혀버렸다.


닷새 안에 대리국이 대월국을 침공한다니.


객잔에서 우연히 열린 술자리에서 농으로 던질 만한 말이 결코 아니다.


"낭자는 남만의 무력이자 자존심인 야수신궁에서 제법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을 것 같구려. 게다가 앞서 보았던 네 명의 아이들과 여협은 복장으로 보아 주요 도시들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성호단 소속일 터. 내가 일러준 정보를 한 시라도 빨리 궁주에게 알리시오. 그가...야수왕 무단이 직접 나서지 않는다면 남만 백성들에게 희망이란 없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서는 아망. 눈 깜박할 사이에 신기루처럼 눈앞에서 사라진 그의 모습에 티엔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 밖에서 그의 행적을 쫓지만 이미 육식과 음주를 즐기는 대리국의 승려는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젠장, 오늘따라 왜 이리 기이한 인물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거야! 십괴 두 명에 이어서 전쟁의 위험을 몰래 일러주는 대리국의 승려라니! 누가 믿어주기나 하겠냐고!'


평소라면 그저 특이한 인물의 헛소리 정도로 치부하였을지도 모르지만, 오늘 벌어진 일들은 모두 하나 같이 비현실적이지 않았던가. 게다가 차갑게 가라앉은 아망의 검은 눈동자를 본 순간 티엔은 그가 술자리에서 털어놓은 모든 일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정사대전때 수많은 핵심 인물들을 납치한 뒤 고문하여 정보를 얻어내는 것은 물론, 침소에 숨어들어 중요한 정보를 쥔 인물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면서 심문해온 규헐단 최고 살수의 감이 한시라도 빨리 야수신궁으로 복귀하여야 한다고 연신 경고를 보내오고 있다.


'이런 빌어먹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턱대고 돌아가도 결국 누구도 설득할 수 없겠지. 너만 믿는다, 간소소!'


비록 수련동에서 다른 감독관들과 경쟁하면서 이런저런 악랄한 수를 써온 간소소였지만, 남만을...나아가 대월국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애초에 전장에서 선보인 그녀의 권모술수들이 없었더라면 진즉 목숨을 잃었을 남만 전사들이 수없이 많다.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어딘가 다급해 보이는 티엔이 자신의 의복의 흰 소매자락을 찢어내고 검지 손가락을 깨물자 그 끝에서 방울방울 새빨간 피가 흘러나온다.


그 피를 먹물 삼아 뜯어낸 천조각 위에 무언가 황급히 휘갈긴 뒤 내공을 담아 간소소의 방문을 향해 던지며 자리를 뜨는 티엔.


말없이 사라진 그녀와는 달리 문지방에 정확하게 박혀든 이 천 쪼가리가 간소소에게 사건의 전말을 일러줄 것이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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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대리국을 향한 여정 (3) 22.08.28 28 0 9쪽
60 대리국을 향한 여정 (2) 22.08.26 33 0 9쪽
59 대리국을 향한 여정 (1) 22.08.23 23 0 9쪽
58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3) 22.08.21 25 0 10쪽
57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2) 22.08.18 28 0 9쪽
56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1) 22.08.17 31 0 9쪽
55 전쟁의 서막 (3) 22.08.15 33 0 9쪽
54 전쟁의 서막 (2) 22.08.09 32 0 9쪽
53 전쟁의 서막 (1) 22.08.07 34 1 9쪽
» 불협화음 (3) 22.08.04 39 1 10쪽
51 불협화음 (2) 22.08.02 32 1 9쪽
50 불협화음 (1) 22.07.31 37 1 10쪽
49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3) 22.07.28 47 1 9쪽
48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38 1 9쪽
47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1) 22.07.24 39 1 9쪽
46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1 1 10쪽
45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22.07.19 42 1 9쪽
44 망각행승 (2) 22.07.17 44 1 10쪽
43 망각행승 (1) 22.07.14 51 1 10쪽
42 북란성을 떠난 이들 22.07.12 51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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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진실을 찾아서 (2) 22.07.07 52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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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세 번째 시험 - 뜻밖의 기연과 새로운 약조 22.06.27 107 1 10쪽
32 세 번째 시험 - 호랑이 가죽에 남겨진 실마리 22.06.23 89 1 10쪽
31 세 번째 시험 - 다시 도채밀림으로 22.06.22 8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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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5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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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58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298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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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3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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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야수신궁의 역사 22.05.13 457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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