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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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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76
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작성
22.06.07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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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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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1)

DUMMY

수련동 석실에서 다섯 가지 독을 조합해 오독환을 제조하고 있는 간소소. 그녀는 비동 회의 이후로 벌써 두 달째 찾아오는 티엔이 귀찮기만하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생각할수록 이해가 안 되네."


"네 입으로 그랬잖아. 몸이 너무 허약해져서 무진이 반웅을 치료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럼 대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아봐야지."


암굴에 별다른 위협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티엔은 간소소와 함께 오독환을 실험하면서 효능이 떨어졌을 가능성에 대해 철저히 점검하고 있다.


"지금 내 실력을 의심하는 거야? 내가 직접 만든 오독환(五毒丸)은 완벽해. 겨우 이 정도 독환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면 사부님 명성에 먹칠하는 거야."


"그러니 고산선의(高山善醫) 거야휘 노야를 위해서라도 더욱 확실히 해야지. 너의 실력은 잘 알고 있지만 만약 재료에 문제가 있어서 효력이 떨어지고 있는 거라면 앞으로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어."


티엔의 말에 침묵하는 간소소. 만약 티엔의 의심대로 기감을 일깨우기 위해 사용했던 오독환의 효능이 떨어졌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점혈을 당한 채 암굴 바닥에서 오랜 시간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있어야 하는 수련생들이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다. 오독환은 오감은 물론 신진대사를 극단적으로 늦추는 게 핵심이니까. 다음에 또 비슷한 사단이 벌어지면 간소소 또한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너도 잘 알잖아. 우리가 아무리 암굴에서 아이들을 수시로 살펴보아도 예상치 못한 사고는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사각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야. 문제 요소를 미리 발견하면 오히려 처벌 받을 일도 없을 거 아냐."


"노파심에 말하는 건데, 재료에 문제가 있었다고 밝혀지더라도 반웅을 다시 데려올 수 없는 건 알지? 그 아이가 복용한 오독환에 문제가 있었다고 입증할 방법은 없어."


티엔의 초연한 말에 간소소는 오히려 다시 한 번 그녀의 진의를 떠본다. 간소소 자신에게는 별다른 타격이 없다는 걸 간접적으로 알려주면서 말이다.


"난 그저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야. 만약 오독환에 이상이 생길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내년에 들어올 수련생들을 위해 미리 대응책을 준비해둬야 하지 않겠어?"


간소소의 말을 태연히 넘기는 티엔. 그럴싸한 이유를 붙이고 있지만 그녀의 속내는 조금 달랐다. 반웅을 다시 데려오는 건 이미 다른 방안을 생각해둔 그녀다. 정확히는 수련생 신분으로 돌아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만약 오독환에 문제가 있었던 거라면 내가 모아둔 사안들을 상부에 고발해 주마. 징계를 받게 할 수는 없겠지만 귀찮게 만들 수는 있겠지. 무진은 봉소에서 실컷 흑철웅 무리랑 씨름하고 있겠지? 그 놈이 돌아올 때까지 어울려 주마.'


티엔이 오독환의 재료를 이토록 꼼꼼하게 점검하는 진짜 이유는 간소소의 책임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직접 묻기 위해서였다. 그리한다면 반웅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애초에 시야를 조금 넓힌다면 반웅을 다시 데려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수련동을 거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전사가 될 수 있어. 남만 전사만 전사가 아니야. 네가 포기하지만 않으면 다시 돌아올 방법은 분명히 있으니까!'


입술을 깨물며 반웅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정진하기를 바라는 티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던 간소소는 다시 독환 제조에 집중했다. 회의 때 억지스러운 전통과 마교를 언급하면서 반웅을 내보낸 것에 대한 죄책감만 아니었다면 진작 때려 쳤을 것이다.




[천해유만(川海流滿)]


[만기지일사사(萬氣之一社事)]


[인야합일 천하제일인(人野合一 天下第一人)]


인시(寅時)부터 산에 자욱한 안개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만야환상대법(萬野喚相大法)의 구절을 외우고 있는 반웅. 비록 수련동에서 쫓겨났지만 꿈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남만 전사가 아니라 막연히 무공 고수를 꿈꾸고 있지만 말이다.


수련동에서 퇴출된 이상 남만의 전사로 거듭날 수는 없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온갖 남만의 절기들과 비약들로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그의 동기들은 결국 치열한 경쟁 끝에 야수신궁의 서로 다른 단체로 입단하여 활약하게 될 것이다. 그 중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아이는 소궁주로 선택되어 야수왕 무단의 후계자로 길러질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들과 경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반웅은 처음부터 무공을 익히고 강해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저 어딘가에서 살아계실지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명확히 밝히고 싶었을 뿐.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는 낭인이 된다 하여도 충분히 만족할 자신이 있었다. 비록 그를 길러주고 있는 은거기인(隱居奇人)의 생각이 다를지라도 말이다.


'거야휘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저는 이렇게라도 무공을 수련할 거에요.'


수련동에서 기감을 일깨우는데 실패한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반웅은 이미 내공을 쌓고 지금까지 배운 무공을 연마할 수 있는 기반을 갖고 있다. 온갖 고생을 하면서 얻게 된 단전과 혼원야수공(混元野獸功)이 아니던가. 아직 네 번째 초식까지만 익혔지만 나머지 초식들도 매일 연습한다면 언젠가 능숙하게 시연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무공이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고산선의 거야휘의 말을 고분고분 따를 수는 없다.


"चर्म अधिषवणे'


한참 집중하고 있던 반웅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소리에 황급히 운기조식을 갈무리하고 눈을 떴다. 거야휘에게 무공 수련하던 것을 들킨다면 저번처럼 은월랑(銀月狼) 무리의 대변을 치우게 될 것이다. 새벽을 틈타 농장 동쪽으로 무려 한 식경이나 걸어왔지만 노야의 기감이라면 진즉 눈치를 챘을지도 모른다.


"समिद्धस् मध्यतस् तौ मुष्कौ"


까치발을 든 채 다시 농장으로 향하려던 반웅. 그는 안개가 걷히자 널찍한 바위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잔잔하게 바라보는 창백한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으아아악!"


반웅은 새벽 댓바람부터 귀신을 본 마냥 소리를 지르며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엄청난 고수였는데 결국 자식들에게 배신 당해서 내공을 모두 잃었고, 다른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먼저 도망쳤는데 길을 잃고 여기까지 오게 되셨다구요?"


"이해가 빠른 아해로구나. 그래. 이 할아비가 마음만 먹으면 천하제일인이 될 수도 있었던 사람이다. 허나 내 원대한 계획을 이해하지 못한 우둔한 무리들에게 당하고 말았을 뿐. 본래 범인은 천재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는 법이지."


반웅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창백한 노인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기가 찼다. 다짜고짜 배가 고프다면서 반웅이 몰래 챙겨온 육포를 뺏어갈 정도로 허기가 져있던 노인이 막장 인생사에 이어 천하제일인을 논하다니. 매병(呆病)에 걸린 것이 분명하다.


"그럼 할아버지 별호가 뭔데요? 무림 고수들은 다들 멋들어진 별호 하나씩은 갖고 있던데요? 설마 별호도 없는 건 아니죠?"


"예끼, 이놈아! 본래 무림 고수란 지천에 널린 풀처럼 많고 조용히 살아가는 이들이 더욱 많은 것을. 내 비록 별호는 없었지만 무려..."


바위 위에서 반웅과 함께 가부좌를 틀고 대화를 이어가던 노인이 무언가 우울한 기억이 생각났는지 갑자기 초연한 표정으로 먼 하늘을 바라본다.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속세에 관여하고 집착할수록 깨달음에서 멀어지는 것을. 이 할애비는 슬슬 가야겠구나."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제대로 얘기도 안 해줄거라면 육포라도 돌려줘요!"


간식을 뺏어 먹은 것도 모자라 궁금한 지점에서 이야기를 끊고 갑자기 떠난다니. 반웅은 노인의 뻔뻔함에 어이가 없다.


"은사(恩師)께서 여기에 계셨군요. 오랫동안 찾아다녔습니다. 함께 가시지요."


갑작스레 신형을 드러낸 뒤 둘의 대화에 끼어드는 복면인. 그의 차가운 음성에 반웅은 온몸의 털이 곧추섰다. 지척에 올 때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것으로 보아 엄청난 고수가 분명하다.


"세상만사 모두 잊고 바람처럼 자유롭게 노닐고 싶거늘. 그냥 보내주면 안되겠느냐?"


"노야께서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다만 목격자는 없어야만 하니 이 아이의 목숨은 취하도록 하지요."


어느새 비수를 꺼내들고 반웅의 뒷목을 장난스럽게 툭툭 치는 복면인. 마치 맹수 앞에 선 먹잇감 마냥 굳어버린 반웅은 그 서늘한 감촉에 오한이 들린 것처럼 떨려오는 자신의 몸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을 뿐. 아무런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적우야. 네놈이 기어코 아무 죄도 없는 아이에게 살수를 펼치겠다는 게냐?"


"그건 노야께서 하시기 나름이지요. 고집은 그만 부리시고 함께 가시지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침묵만을 고수하던 노인이 결국 도망치려던 자세를 풀고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복면인이 비수를 거둔다. 반웅은 다리에 힘이 풀려서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나를 구하기 위해서 노야가 끌려가시는구나.'


반웅은 무력하게 바닥에 처박혀 있는 자신의 비루한 몸뚱아리가 저주스러웠다. 연약한 노인이 살기를 뿜어내는 악한에게 끌려가는 걸 그저 보고만 있어야 하다니.


"서두르시지요.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서라. 그래도 육포 하나 얻어먹은 값은 해야 되지 않겠느냐."


노인은 풀려난 뒤 바닥에 처박혀 바들바들 떨고 있는 반웅에 귀에 무언가를 길게 속삭인 뒤 복면인과 길을 나섰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병(呆病) -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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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대리국을 향한 여정 (2) 22.08.26 33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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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3) +1 22.06.19 98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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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1) 22.06.19 92 1 9쪽
22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3) 22.06.19 97 1 9쪽
21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2) 22.06.19 91 1 10쪽
20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1) 22.06.19 103 1 10쪽
19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4) 22.06.11 129 1 10쪽
18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3) 22.06.09 145 1 9쪽
17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2) 22.06.08 140 1 10쪽
»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1) 22.06.07 158 1 10쪽
15 무진이라는 사내 (5) +3 22.06.05 15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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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무진이라는 사내 (3) 22.06.01 163 3 10쪽
12 무진이라는 사내 (2) 22.06.01 173 2 10쪽
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195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5 2 10쪽
9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 +1 22.05.27 230 2 9쪽
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58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298 3 9쪽
6 첫 비무 - 선발제인(先發制人) +2 22.05.20 314 6 11쪽
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3 7 10쪽
4 수련과 생사기로(生死岐路) 22.05.16 394 11 9쪽
3 야수신궁의 역사 22.05.13 457 13 9쪽
2 여정의 시작 +2 22.05.11 681 18 11쪽
1 프롤로그 +4 22.05.11 655 1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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