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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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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1
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작성
22.06.19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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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1)

DUMMY

"후...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돌산을 오르는 무진. 그는 봉소에서 나온 뒤 곧바로 송금림으로 향하는 게 아니라 운귀 고원을 오르고 있다. 고원 농장에서 지내고 있는 반웅을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입구에 해당하는 주왕산 초입은 초목이 우거져 있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더욱 가파르고 위험천만한 바윗덩이들로 가득한 운귀 고원. 언제 어디서 산사태가 일어날지 몰라 인근 마을 사람들도 꺼리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무진이 자욱한 안개에 길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돈지 벌써 열흘이 지났다. 자신의 불찰로 인해 수련동에서 쫓겨난 반웅에 대한 죄책감과 무공을 가르치고 말겠다는 집념이 아니었다면 진즉 포기하고 수련동으로 돌아갔을 지도 모른다.


'수련동에서 네가 퇴출당한 것도 내 책임이 크다고 볼 수 있으니 수련법만 전해주고 나면 네게 갚을 빚은 없는 셈이다. 강해져서 수련동으로 돌아와라.'


무진은 자신의 수련법만 몰래 반웅에게 전하고 나면 다시 돌아갈 생각이지만 도무지 정상으로 이어진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또 진법에 갇힌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방향 감각이 없다고 강휘에게 욕먹던 시절이 떠오르는군. 그땐 그나마 지도라도 있었지...'


두 번째 정사대전때 묵호단에서 활약했던 두 사람은 연이 깊다. 함께 잠행을 다니며 마교 무리에 대한 정보를 야수신궁으로 보내던 게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길눈이 밝고 친화력이 뛰어난 강휘가 아니었다면 모든 임무를 그 정도로 완벽히 수행할 수는 없었으리라. 수련동에서 감독관을 맡게 된 것도 강휘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오늘도 야영인가. 돈은 무겁기만 하고 쓸모가 없군. 이러다간 식량도 곧 떨어지겠군.'


무진은 품에서 봉소 마을 촌장에게 받은 전낭을 한 손으로 꺼내 들고 그 묵직함에 혀를 찬다. 운귀 고원까지 가는 길에 마을 하나 보이지 않다니. 길을 단단히 잘못 든 모양이다.


결국 반 시진이나 더 헤맨 뒤에야 등에 맨 짐을 내려놓고 천막을 치는 무진. 편안한 잠자리만 있다면 어디든 집이 아니겠는가. 그게 비록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돌산 중턱일 지라도 말이다.


모닥불을 지피기 위해서 품에서 부싯돌을 꺼내든 무진의 뒤에서 낯선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젊은이는 어디로 가시는가? 길이 험하여 올라오는 게 쉽지 않거늘."


안개 속에서 뒷짐을 진 채 나타난 노인은 세 번의 시도 끝에 불을 지피는데 성공한 무진에게 말을 건넨다. 한땀 한땀 직접 꿰맨 것처럼 보이는 꾀죄죄한 가죽 옷으로 보아 영락없는 야인이다.


"수행도 할 겸 운귀 고원 정상에 오르려고 하고 있소. 거의 다 온듯하니 노인장은 걱정 마시고 갈길 가시오."


"...자네 말투가 원래 그리 까칠한가? 조금 섭섭하구먼 그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잠시 불 좀 쬐어도 되겠는가?"


"낯짝이 이리 두꺼운 노인네를 어찌 밀어내겠소. 편히 쉬다 가시오."


무진은 이미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노인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한 뒤 그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내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엄청난 경지에 이른 고수이거나 무공을 전혀 모르는 산 노인이다.


'근래에 만난 이들은 모두 고강한 무력을 지닌 고수들이었다. 그러니 거야휘 노야 말고도 운귀 고원에 은거중인 고수가 있어도 딱히 이상하지는 않다. 악의는 없는 듯하니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군.'


밀교에서 만난 고수들만 해도 자신과 엇비슷한 수준의 고수들이었고, 전대 교주는 물론 새로운 교주마저 무진 보다 강했기에 무진은 자신감을 많이 잃은 상태였다. 평소라면 짜증을 내면서 쫓아냈겠지만 그저 툴툴거리는 정도로 끝난 게 바로 그 반증이다. 물론 그의 눈앞에 앉아있는 노인은 그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 기색이지만 말이다.


"끌끌끌. 성질이 고약한 젊은이일세! 운귀 고원 정상은 뭐 하러 가려는 겐가? 아무것도 없으니 그만 하산하시게나. 자네가 정상에 도달하기에는 아직 이르네."


"여기까지 왔는데 하산할 수는 없소. 이만 피곤해서 자러가니 알아서 살펴 가시오."


무진은 다짜고짜 하산하라는 노인의 권유가 어딘가 매섭게 들렸지만 애써 무시한 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하지만 노인은 기어코 그를 보내줄 생각이 없는 듯하다.


"젊은이가 말길을 잘 못 알아듣는구만. 내가 내려가라 하지 않았나!"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기운을 끌어올리는 노인. 역시 운이 없는 무진답게 또 무림 고수를 만나고 말았다. 비록 교주의 기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무진보다 높은 경지에 이른 건 분명하다. 무진은 연달아 고수만 만나는 통에 이제는 절정 고수라는 자신의 경지가 우습게 여겨질 지경이다. 허나 여기서 조용히 물러날 수는 없다.


"...노인장은 누구시기에 초면인 사람에게 다짜고짜 엄포를 늘어놓으시는 게요. 산 정상에 볼 일이 있으니 그냥 조용히 서로 갈 길 가면 되는 게 아니겠소? 무기도 없는 노인과 싸울 생각은 없으니 모닥불이나 쬐다 물러가시오. 그 정도 은혜는 내가 베풀어 드릴테니."


비록 노인에 비해 내공이 많이 부족하지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다. 거산절부에 천잠보의까지 입었는데 아무런 무기도 없는 노인에게 꼬리를 말고 도망친다면 사부님을 뵐 낯이 없지 않은가.


무진의 대답에 조용히 턱을 괴고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던 노인은 마침내 좋은 생각 떠올랐는지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재밌는 젊은이로구만. 그럼 이리 하면 어떻겠나? 아까 부싯돌로 불을 지피는 데 세 번이 걸렸으니, 그 노고를 고려하여 내 삼 초식을 받아내면 정상으로, 못 받아내면 초입으로 데려다 주겠네."


삼 초식만 버티면 된다니. 노인의 갑작스런 제안에 무진은 한없이 가늘어진 눈으로 그를 째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다.


"그럼 시작해 봅세."


노인이 말을 마치자마자 뒷짐을 지던 손을 풀고 하나 남은 오른손 검지로 무진을 가리키자 손가락 끝에서 무형의 기운이 쏘아져 나와 그의 얼굴로 쇄도한다. 그 날카로운 기세에 놀라 무진은 반사적으로 바람개비처럼 회전하여 이를 간신히 피해냈다.


'탄지공(彈指功)!'


탄지공이라니. 어찌나 위력이 대단한지 수련하면서 검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을 전부 잃은 이지노괴(二指老怪) 가춘일의 독문무공이 아닌가. 십 장 밖에서 날린 탄지공으로 석벽에 일 촌이 넘는 구멍을 뚫은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저 반웅을 만나기 위해 운귀고원에 올랐을 뿐인데 이지노괴를 만나다니.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판이다.


"잘 피하는구만. 방금 시연한 초식 이름이 무엇인가?"


"회가추(回尜錘)라 하오."


"알기 쉬워서 좋구나! 그럼 다음 초식도 받아내 보시게나!"


이번에는 양손에서 기운을 쏘아내는 노괴. 오른손에서 뻗어 나온 기운은 성난 황소처럼 가슴을 향해, 왼손에서 뻗어나온 기운은 먹이를 쫓는 매처럼 크게 바깥으로 돌면서 머리를 노린다.


'이 빌어먹을 노괴가 정녕 처음 본 사람을 죽이려는 건가!'


무진은 내공을 끌어올려 거산절부를 쥔 오른손으로 머리로 날아든 공세를 가까스로 막아내고 왼손으로는 가슴팍에서 손도끼를 꺼내들어 심장을 뚫어버리기 위해 접근하는 사나운 기운을 찍어 누른다.


'쿨럭.'


급하게 내공을 끌어올린 탓에 내상을 입은 무진이 검은 피 무리를 토해낸다.


"도끼 한 자루가 아니라 무려 두 자루 씩이나 쓰는 놈이구나! 그 중 큰 녀석을 등에 멘 건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니, 스승이 누군지 몰라도 제법 잘 가르쳤구만!"


'빌어먹을. 다음 초식을 막아낼 자신이 없다. 괴물이 따로 없군.'


입에 흐르는 핏자국을 닦아내면서 욕지거리를 퍼붓는 무진. 그의 모습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노고수는 마지막 초식을 퍼붓는다.


"과연 기고만장할 정도의 실력은 되는 아해일세! 그럼 응당 이것도 받아보시게!"


양 손에서 동시에 터져 나오는 두 개의 기운이 나선을 그리며 무진의 복부를 노린다.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주변 공기를 빨아들이며 진격하는 사나운 기세에 무진은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젠장, 이대로는 죽는다!'


거산절부에 선천지기까지 담아 혼원야수공의 마지막 초식을 시전하는 무진. 두 거대한 기운이 부딪히자 도끼를 타고 팔이 떨어져 나갈 듯 한 통증이 밀려든다.


'끄어어어억!'


이제는 흰자만 보이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제자리에 굳어있는 무진. 비록 팔뚝의 피부가 뒤틀리고 베인 틈으로 핏물이 쏟아져 나오지만 팔을 잃지는 않았다. 결국 이지노괴의 삼 초식을 모두 버텨낸 것이다.


"마지막 초식은 낯이 익은 초식이로구나! 묵룡출회(默龍出回)였던가..."


노괴의 감탄사를 마지막으로 무진은 선 채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지노괴(二指老怪) - 탄지공을 수련하다 양손의 검지 손가락만 남은 고수


회가추(回尜錘) - 도는 팽이의 무게추라는 의미의 빙그르 돌면서 원심력으로 공격하는 무공


묵룡출회(默龍出回) - 혼원야수공의 마지막 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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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3) +1 22.06.19 99 1 9쪽
24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2) +3 22.06.19 105 1 10쪽
»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1) 22.06.19 95 1 9쪽
22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3) 22.06.19 99 1 9쪽
21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2) 22.06.19 93 1 10쪽
20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1) 22.06.19 105 1 10쪽
19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4) 22.06.11 130 1 10쪽
18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3) 22.06.09 146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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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1) 22.06.07 159 1 10쪽
15 무진이라는 사내 (5) +3 22.06.05 157 2 11쪽
14 무진이라는 사내 (4) +2 22.06.03 156 3 11쪽
13 무진이라는 사내 (3) 22.06.01 164 3 10쪽
12 무진이라는 사내 (2) 22.06.01 175 2 10쪽
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198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6 2 10쪽
9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 +1 22.05.27 233 2 9쪽
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0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0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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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5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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