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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8,205
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작성
22.07.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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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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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망각행승 (1)

DUMMY

"봉황 만두 사세요! 한 끼 식사로 딱인 봉황 만두 사세요!"


마을 어귀에서 만두를 팔고 있는 사내가 찜통을 들어올리자 뿌연 김이 구름처럼 올라와 이를 골똘히 바라보고 있는 소년의 눈 속에 맺힌다. 그런 그를 한심하다는 듯 팔짱을 끼고 바라보고 있는 적발의 여인과 뒷짐을 지고 있는 노인. 반웅과 그의 일행들이다.


"할아버지, 만두 하나만 사주세요. 이게 전국에서 가장 맛있다는 봉황 만두잖아요! 봉소(鳳巣)에 들렀는데 이걸 먹어보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이 비웃는다구요!"


허나 그런 반웅의 말에도 고목처럼 단단히 제자리를 지키는 아란과 가천일. 그들 또한 봉황 만두의 유명세는 익히 알고 있지만 지금은 더욱 시급한 사안이 당도해 있다.


망각행승을 찾아야만 한다.


아란이 만두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반웅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만두는 무슨 만두야! 우리의 목적을 잊었어? 그분을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 네가 익힌 것을 잊을 수 있잖아!"


"하. 아무리 노력해도 그분의 다음 행선지에 대한 정보가 그리 쉽게 들어올 리가 없잖아요. 만두라도 먹으면서 기력을 회복해야 머리 회전도 빨라지고 사리분별도 잘하게 되지 않겠어요?"


궤변을 늘어놓는 반웅은 여전히 만두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가천일이 결국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다가온다.


"됐다. 저리 먹고 싶어하는 건 처음이니 하나 사주자꾸나. 이보게, 봉황 만두 하나 주시게."


은자 한 냥을 건내는 가천일. 허나 이를 받아든 만두 상인의 표정이 어둡다.


"허허. 만두값에 비해 훨씬 큰 금액을 지불하였음에도 낯빛이 그리 어두우면 쓰나. 대체 무슨 일인가?"


"죄송합니다 어르신. 혹시 남송의 회자(会子)는 없으십니까? 근래 운남 지역에서 방문하는 상인들이 대월국의 은자를 받지 않아 재료 수급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비록 봉황 만두가 봉소 마을의 명물이기는 하나, 그에 들어가는 향신료들 중에서 다수는 페르시아와 중원 무림에서 나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봉황 만두는 비록 산길이 비좁고 비탈져도 다른 지역으로 거처가는 주요 거점인 봉소에서나 맛볼 수 있는 별미인 것이다. 운남에서 온 상인들이 대금으로 대월국의 은자를 받지 않는다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원 무림과 마교가 아무리 남만에 문고리를 닫고 있다고 하여도 대월국과 남송 사이에서 꾸준히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결코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그거 참 묘한 일이로구먼..."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생각에 잠긴 가천일. 심각한 그의 얼굴에도 불구하고 따끈한 만두를 양손에 쥐고 호호 불고 있는 반웅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무언가 사건이 벌어지려나 보네.'


아란은 근심 가득한 노인의 얼굴에서 앞으로 크나큰 고비가 다가올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


기억력이 좋기로 유명한 촌장댁으로 향하면서 가천일에게 연신 말을 거는 아란. 만두 가게에서 본 그의 어두운 표정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든다.


"노야께서는 분명 남송 상인들이 더 이상 대월국의 화폐를 받지 않는다는 대목을 들으시고 낯빛이 일순 어두워지셨습니다. 그 정확한 연유를 일러주시지 않으면..."


"됐다. 아해들은 알아도 어찌할 수 없는 천하의 일이니 모른채 하거라. 그저 너희들이 안고 있는 사사로운 일보다 훨씬 중요한 사안이기에 쉽사리 입을 열수가 없다는 점만 알고 있으면 된다. 모르는 것이 때로는 약이다."


더 이상 설명할 생각이 없다는 듯 고개마저 아란에게서 돌려버린 가천일. 그들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반웅은 곧장 촌장댁 초가집 문으로 쏜살 같이 달려가 한 방에 열어재낀다. 그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고 있던 한 노인네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뒤로 자빠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으, 으아아악!"


"예끼, 이놈아! 촌장 앞에서 그게 무슨 추태냐!"


흙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반웅을 가볍게 꾸짖는 가천일의 목소리를 듣고 슬며시 미소를 띠우며 화답하는 봉소 마을의 촌장. 히끗히끗한 장발의 머리카락과 그에 못지 않게 길게 늘어뜨린 수염이 지나온 세월의 길이를 일러준다.


"저희 집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가 형님."


그런 그의 입에서 형님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오자 아란과 반웅은 촌장에 비해 젊어 보이는 가천일에게 일제히 시선을 돌린다.


무공 고수들은 일정 경지에 오르면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하더니. 전설로만 치부되던 경지를 이룬 자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는 것을 마침내 깨닫게 된 것이다. 비록 이미 상당히 늙어 반로환동에는 미치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그럼 운귀 고원에서 무진 사부를 때려눕힌 거야휘 노야는 대체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거야?'


반웅은 연배를 가늠할 수 없는 가천일이 형님이라 부른 운귀가의 거야휘가 마침 떠올라 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끌끌끌. 이제는 나보다 늙어보이는구나, 아우야. 적야라는 이름이 울겠구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이지노괴 가천일.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적야라는 이름이 아란의 머릿속을 간지럽히다가 끝내 작은 폭죽처럼 터져나가자 그 안에서 한 명의 무림 고수가 피어난다. 다리에 힘이 풀린 아란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는다.


단인소괴(短忍笑拐) 적야(赤夜).


30년전 첫 정사대전때 남만으로 파견된 수많은 무림맹의 자객들을 놀라운 계략으로 몰살시킨 십괴 중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단인소괴(短忍笑拐). 그 심정이 매우 사납고 거칠어서 항상 웃는 얼굴로 상대를 베어넘기는 것으로 유명한 십괴가 바로 눈앞의 노인이라니. 십괴 중 둘째를 맡고 있는 이괴 가천일이 바로 옆에서 친근하게 대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웃는 얼굴로 평온한 분위기를 풍기는 노인네의 정체를 끝내 알아채지 못하였으리라.


"끌끌. 아해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활동한 노인네를 이리 알아봐주니 참 고맙구려."


이괴의 술수에 당하여 강제로 남만 전역을 떠돌아 다니는 것도 억울한데, 이제는 십괴까지 나타나다니. 이 위험천만한 여행에서 더 이상 누구를 만나더라도 놀라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아란은 떨려오는 몸을 간산히 가라앉히고 반웅과 함께 촌장댁 안으로 들어섰다.


눈치 빠른 아란이 아무것도 모른채 아직 손안에 든 만두나 음미하고 있는 반웅이 부러운 건 아마 지금이 처음일 것이다.


==============================


"소괴야, 네놈 아들은 어디로 갔길래 콧배기도 안 보이느냐?"


"그놈은 진즉 흙으로 돌아갔지. 핏덩이만 남겨두고 훌쩍 떠나버려서 어찌나 힘들었는지..."


"그럼 손주가 생긴 게로구나! 직접 벌모세수 해줄테니 퍼뜩 나오라 하거라!"


"벌모세수는 무슨! 적우는 진즉 성인이 되어 훨훨 날아다니고 있는데! 몰래 출가하였는데 아마 이름 꽤나 날리고 있을거요. 그 손주놈 키우느라 피골이 상접하여 이리 쇠약해졌으니 조만간 열릴 천도(薦度)만 기다리고 있거늘..."


좁은 방 안에서 두 노인이 회포를 푸는 광경을 옆에서 무릎을 꿇고 어색하게 보고만 있는 반웅과 아란. 자신의 죽음마저 만담거리로 삼는 이들의 대화에 도무지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 친정댁은 요즘 좀 어떠한가? 여전히 사나운 풍파에 밀려나 이리저리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고 있나?"


친정댁 이야기를 꺼내자 안색이 어두워지는 적야. 그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친정댁은 사실 태풍으로 돌변한 풍파로 인해 근래 큰 변고를 겪고 인근 북룡산맥으로 거점을 옮겼지. 마침 북룡폭포 인근으로 이사하였으니 형님이 방문하여 망각행승에 대하여 물어보아도 괜찮을 거요."


친정댁이 북룡폭포 인근으로 옮겼다니. 그 해괴한 발언에 담긴 본래의 뜻을 유추해내기 위하여 아란은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반웅은 여전히 그들의 대화에는 관심도 주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규칙적으로 고개를 떨구는 것으로 보아 뜬 눈으로 졸음과 씨름하고 있다.


"보아하니 옆에 적발 아해는 극음지체를 타고났지만 옆에서 졸고 있는 아해가 기묘한 사술을 사용하여 그 막대한 양의 음기를 대신 짊어지고 있구려. 이 또한 친정댁에 가면 필히 도움을 줄 것이니 형님은 이들을 데리고 편하게 다녀오시오. 이 아우는 그동안 큰 달(大月)과 오래된 집(宋)이 서로 반목하지 않도록 이곳을 지키고 있을테니."


"그럼 아우만 믿고 이만 아해들과 함께 자네 친정댁 좀 다녀오겠네. 부디 자네의 처가 반갑게 맞아주어야 할텐데 말이야. 이미 30년이나 지난 일이 아니던가."


온통 두루뭉실한 두 노인의 대화 속에서 아란이 마침내 이를 해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아냈다. 30년전에 벌어진 첫번째 정사대전과 얽혀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를 토대로 뇌리에 떠오른 한가지 가설에 대하여 그녀는 조심스레 입을 연다.


"노야! 방금 나누신 대화는..."


허나 아란은 더 이상 질문을 이어갈 수 없었다. 서둘러 촌장댁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서는 가천일이 온몸에서 풍기는 고독한 분위기에 압도된 것이다. 가볍게 입을 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하. 그래도 친정댁이라는 곳에서 나와 반웅을 도울 수 있다고 하셨으니 들러도 손해는 없겠지. 망각행승을 쫓다가 온갖 곳을 다 들리는구나.'


아란은 어둠이 자욱하게 깔린 봉소 거리를 이미 반쯤 졸고 있는 반웅의 손을 이끌고 밖으로 나선다. 앞서가는 가천일을 따라가야만 한다.


그들의 뒷모습을 방 안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적우의 입가에 지금껏 띠고 있던 미소가 사라지고 봉소 마을 촌장을 연기하는 필부의 얼굴로 돌아간다. 그가 다가올 파란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 누구도 아직은 알 수 없으리라.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자(会子) - 남송에서 실제로 사용하던 지폐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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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대리국을 향한 여정 (2) 22.08.26 33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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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3) 22.08.21 2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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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불협화음 (1) 22.07.31 3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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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3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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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3 1 10쪽
45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22.07.19 43 1 9쪽
44 망각행승 (2) 22.07.17 4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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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북란성을 떠난 이들 22.07.12 5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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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198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6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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