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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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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6
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작성
22.07.07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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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진실을 찾아서 (2)

DUMMY

반 시진이나 진을 빼고 나서야 흑도 무리에 대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흑도 무리 끄나풀 치고는 제법 질긴 놈이었지만 결국 오독환에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오감을 빼앗은 뒤 촉감만을 되살리고 전신에 독충이 기어다니게 하는 건 정사대전때도 제법 효과적이었던 고문법이다.


전당포 밖으로 나와 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네 명의 아이들에게 희소식을 전한다. 전당포 안을 엿보았는지 낯빛이 꽤나 어둡지만 말이다.


"새롭게 자리를 잡은 흑도 무리들의 거점을 알아냈어. 이 곳에서 그리 멀지가 않으니 부지런히 쫓아오렴."


예고 없이 우측 골목으로 신형을 날리지만, 역시 후기지수들 답게 무리 없이 쫓아오고 있다. 어차피 목적지는 그리 멀지가 않다.


허름한 전당포에서부터 인적없는 상가들을 따라 쭉 이어진 길. 반 리 정도 되는 그 길의 끝에 위치한 허름한 금은방에서 메스꺼운 냄새가 진동한다.


이런 일은 박력이 중요한 법이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내공을 실어 큰 소리로 장내에 모인 무리에게 엄포를 놓는다. 창문조차 없는 밀폐된 공간은 이미 삼을 태운 연기만이 자욱하다.


"성호단에서 나왔습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이 거검문의 전대 소문주 추허와 짜고 대월국의 기밀을 빼돌리려 했다는 밀고가 있었으니, 얌전히 따라오십시오!"


갑작스레 들이닥친 까닭일까. 향초를 피우고 기괴한 춤을 추고 있던 30명 남짓의 페르시아인들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한다. 그들 중에서 화려한 금색 문양이 인상적인 모자 쓴 중년 남성이 다가온다. 배꼽까지 길게 늘어진 수염으로 보아 페르시아 남성들은 평생 턱수염을 깎지 않는다는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오해가 있는 것 같네, 젊은 처자. 우리는 대월국에서 생활하는 페르시아인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는 단체일 뿐. 만약 누군가 소문주와 그러한 악행을 꾸미고 있다면 우리가 먼저 나서서 막았을 것이야. 소문주는 그저 마니교의 교리에 대하여 알아가고 있는 중이었네. 정확한 증거 없이..."


"누구를 바보로 아십니까? 딱 봐도 당신은 무공을 익혔고, 뒤에서 안전부절 못하고 있는 남정네들도 한 실력 하는 것 같군요.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과 옆에 놓인 향초로 보아 적어도 셋은 마교 교인이 분명하군요."


정사대전때 워낙 자주 맡아보았기에 저 향초를 헷갈리는 일은 없다.


마니향초(麻尼香草).


서역에서 들여온 특이한 삼을 여럿 꼬아서 만든 심지에 돼지 기름을 부은 뒤에 굳힌 저 향초는 마니교 놈들이 수행할 때 사용하는 물건이다. 닭똥을 태우는 것처럼 고약한 냄새를 맡으면 속이 니글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운 것이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정체가 발각되었다는 걸 깨닫고 중년인이 다짜고짜 주먹을 날린다. 연약한 여인에게 폭력부터 휘두르는 것으로 보아 찔리는 부분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그가 달려들자 다른 남정네들도 주변에서 봉이나 촛대 같은 잡다한 물건을 들고 뒤를 따른다. 그래봤자 내 옷자락조차 스치지 못하지만 말이다.


"오해하실까봐 말해두지만 마교라서 잡으러 온 게 아닙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온 것이지요. 그러니 얌전히 좀 잡혀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 입 다물거라! 중원인들은 물론, 너희 남만인들도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페르시아인들을 핍박하고 괴롭혀 왔다! 우리는 그저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것 뿐이다! 마교라는 종교 또한 본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교리중 하나일뿐! 우리와는 관계 없다!"


직선적인 이들의 공격을 피하는 것도 슬슬 따분하다. 마교인들은 대체 왜 항상 같은 주장을 하는걸까. 마니교든 마교든 그 명칭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이 타국에서 자신들의 교리를 설파하고 민중을 현혹하여 갈등을 야기하는 게 잘못된 것이다. 아무리 다른 종교라 주장하여도 마니교가 마교라 불리우는 명교의 뿌리라는 건 지나가던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당신들 마니교는 교리부터 이상합니다. 세상 만물을 무조건 선과 악으로 구분 짓고, 자신들은 항상 선이라 믿고 있죠. 게다가 소수의 선택받은 이들만 지식을 쌓고 나머지 교인들은 이를 위해 희생한다고 하니, 그게 대체 어디가 평등인지 모르겠군요. 당신들은 모순덩어리들이라 칭할 수 있겠습니다."


"선각자들을 후원하는 기쁨을 어찌 남만의 우민이 알겠느냐! 오직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에게는 왕도, 신하도 없고 그저 지식의 탐구자와 이를 돕는 대의만 있으니!"


평등을 추구한다면서 지식을 탐구하는 소수의 인원만을 특별시 하고, 자신들이 살고있는 타국의 근간 자체를 부정하여 왕은 물론 정부 관리들조차 끌어내리는 교리가 마니교의 실체다. 여기에 무공을 결합시켜 믿음을 직접 실천하는 마교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대월국에 살면 적어도 여기 법을 따라야 할 것 아닙니까! 진리는 무슨! 당신들은 그냥 범죄자입니다! 거검문의 소문주를 사도에 빠트린!"


이미 전당포에 버려둔 남자에게서 사건의 전말을 들었기에 이들이 무엇을 꾀하고 있었는지 알고 있다.


거검문을 마니교의 교두보로 만드는 것.


성공하였다면 거검문이라는 북란성 최대 문파는 결국 페르시아 본국에 존재하는 선각자들을 지원하는 물주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것도 소문주라는 작자는 마니향초에 중독되어서 말이다. 마교의 술수는 역시 간악하기 짝이 없다.


"좋은 말로 할 때 무기 내려놓고 깔끔하게 가시지요. 이대로 가면 한 명 밖에 못 살려드립니다."


여기 모인 교인들 중에서 단 한 명이라도 잡아갈 수 있다면 심문을 통해 이에 얽힌 다른 인물들을 색출해 낼 수 있으리라. 지금처럼 손속에 사정을 두고 피하기만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가냘픈 남만 여성이 자신들을 쉽게 농락하고 있다는 것을 수염을 휘날리는 페르시아인들은 인정할 수 없는 모양이다. 달려드는 기세가 더욱 필사적으로 변하였다.


"당신들이 자초한 겁니다."


지금까지 품 안에서 잠들어 있던 철선을 결국 꺼내든다.


오늘만 벌써 몇 번이나 피를 보게 되는건지.


정사대전때 간소소라는 이름 석자 만으로 꽁무니 빠지게 도망치던 마교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비록 악명일지라도 적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는건 어쩌면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살생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부드럽게 철선을 펼치고 마치 춤을 추듯 원을 그리면서 페르시아인들이 휘두르는 병장기들을 옆으로 쳐낸다. 그 중에는 어느새 검, 창, 봉처럼 평범한 무기들도 섞여있지만 어차피 몸에 닿지 않는다면 한낱 나뭇가지와 다를 바가 없다.


맨 앞에서 얼굴부터 들이미는 남정네의 목 아래에 절제된 동작으로 철선 끝을 밀어넣는다.


벗겨진 살가죽 아래로 훤히 드러나는 목울대. 그 양 옆으로 끊어진 혈관을 타고 붉은 피가 거친 빗줄기처럼 바닥을 적신다.


"제, 젠장!"


욕지거리를 하면서 뒤로 물러나는 마니교 교민들. 허나 먼저 공격한 이상 이들을 살려둘 수는 없다. 애당초 한 명만 살려두어도 충분하다.


우측에 공포심에 질려있는 네 명의 남자들의 목을 손끝에서 발산한 기운으로 단 한 획으로 그어내고, 좌측에서 여전히 전력으로 맞서려고 하는 여섯 명의 교민들의 손목을 철선으로 그린 유려한 곡선으로 베어낸다.


삽시간에 사방이 피바다가 되었으나 이 또한 저들이 자초한 일이다.


명백한 실력 차이를 깨달았는지 뒷걸음질을 치는 나머지 무리들.


허나 오늘 금은방에서 살아서 나가는 이는 단 한 명 뿐이리라.


"살고 싶으면 서로 싸우고 죽여라. 살아남는 놈만 데리고 가겠다."


직접 손을 더럽힐 것도 없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면 압도적인 절망 앞에서 얼마든지 서로에게 칼을 겨눌 수 있는 무리다.


그것이 이들이 주창하는 평등이고 진리다.


"사, 살려줘! 나는 자...끄억!"


그 하찮고도 애처로운 발버둥 끝에 결국 남은 20명 남짓의 이교도 무리는 순식간에 자멸한다.


그저 뜨거운 태양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은 중년 사내를 비추고 있을 뿐.


=====================================


"사부님, 굳이 전원을 몰살하여야만 하였는지 제자는 모르겠습니다."


네 아이들은 뒤늦게 금은방에 도착하여 목격한 참상에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비록 타국의 사람일지라도 목숨이란 것은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현명한 아이들이다.


"필요한 한 명은 살려두었다."


처음 말을 걸어온 금색 자수가 박힌 모자를 쓴 중년인. 사방에 널브러진 시체더미들 속에서 무릎을 꿇고 침묵으로 일관중인 그가 결국 살아남았다.


한 눈에 보아도 가장 중요한 직책을 맡은 그가 살아남게 된 것은 운이 아니다.


그렇게 되도록 유도한 것이다.


허나 네 명의 아이들은 아직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다.


직접 마교 무리와 부딪힌 적이 없으니 이 정도로 매정하게 그들의 뿌리를 뽑아야만 하는지 속으로 끝없이 의심하고 있으리라.


이들과 얽힌 수많은 개인적인 원한과 스러져간 전사들에 대하여 설명하여도 가슴에 진실로 와닿지는 못할 것이다.


마니교인들의 죽음을 어찌 받아들일지는 결국 개개인이 선택하여야 하는 것이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麻) - 삼/대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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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대리국을 향한 여정 (2) 22.08.26 33 0 9쪽
59 대리국을 향한 여정 (1) 22.08.23 2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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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2) 22.08.18 29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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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전쟁의 서막 (3) 22.08.15 35 0 9쪽
54 전쟁의 서막 (2) 22.08.09 33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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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불협화음 (2) 22.08.02 33 1 9쪽
50 불협화음 (1) 22.07.31 3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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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39 1 9쪽
47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1) 22.07.24 41 1 9쪽
46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3 1 10쪽
45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22.07.19 43 1 9쪽
44 망각행승 (2) 22.07.17 45 1 10쪽
43 망각행승 (1) 22.07.14 55 1 10쪽
42 북란성을 떠난 이들 22.07.12 53 1 10쪽
41 진실을 찾아서 (3) 22.07.10 51 1 10쪽
» 진실을 찾아서 (2) 22.07.07 5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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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거검문의 진짜 소문주 (2) 22.07.05 7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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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세 번째 시험 - 뜻밖의 기연과 새로운 약조 22.06.27 108 1 10쪽
32 세 번째 시험 - 호랑이 가죽에 남겨진 실마리 22.06.23 90 1 10쪽
31 세 번째 시험 - 다시 도채밀림으로 22.06.22 87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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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1) 22.06.19 95 1 9쪽
22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3) 22.06.19 99 1 9쪽
21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2) 22.06.19 93 1 10쪽
20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1) 22.06.19 105 1 10쪽
19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4) 22.06.11 130 1 10쪽
18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3) 22.06.09 147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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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1) 22.06.07 159 1 10쪽
15 무진이라는 사내 (5) +3 22.06.05 157 2 11쪽
14 무진이라는 사내 (4) +2 22.06.03 156 3 11쪽
13 무진이라는 사내 (3) 22.06.01 164 3 10쪽
12 무진이라는 사내 (2) 22.06.01 175 2 10쪽
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199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6 2 10쪽
9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 +1 22.05.27 233 2 9쪽
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0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0 3 9쪽
6 첫 비무 - 선발제인(先發制人) +2 22.05.20 315 6 11쪽
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5 7 10쪽
4 수련과 생사기로(生死岐路) 22.05.16 400 11 9쪽
3 야수신궁의 역사 22.05.13 465 13 9쪽
2 여정의 시작 +2 22.05.11 687 18 11쪽
1 프롤로그 +4 22.05.11 666 1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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