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8,206
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작성
22.08.23 22:41
조회
23
추천
0
글자
9쪽

대리국을 향한 여정 (1)

DUMMY

"장군, 이대로 저들을 보내줘도 되는 겁니까?"


천막을 나서는 반웅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리 단양에게 조심스레 묻는 젊은 병사의 표정은 그와 함께 서 있는 병졸들의 표정처럼 어둡기 그지없다. 일주일 전 실수로 늪지대에서 방황하던 어린 물소를 사냥하여 반강제적으로 부대 단위로 성난 물소 무리와 겨루어야만 하였던 때처럼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그래. 어차피 저들을 무력으로 막아서려 해도 많은 사상자를 낼 뿐이다."


덤덤히 병사의 물음에 답하는 리 단양의 얼굴은 오히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편안해 보이지만 말이다. 허나 병사들이 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옆에서 이들이 멀어지는 광경을 조용히 함께 지켜보던 또 다른 병사가 입을 열어 동료의 주장을 거든다.


"그저 중년 스님 한 명과 노인 한 명 아닙니까? 어차피 어린 아해도 있으니 인질로 사로잡아 그들을 제압한다면..."


"아서라. 같은 대리국 출신의 승려가 함께하니 그리 경계할 필요 없다. 정체를 감추고 있으나 말씨와 품행으로 보아 아리 불교의 수행자가 분명하다. 게다가 함께 있던 노인은 남만의 십괴 이지노괴 가천일이다. 그의 제자를 인질로 잡는다면 물소 무리 보다 더욱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 자명하다. 큰 전투를 앞두고 굳이 잠룡의 수염을 건드릴 필요는 없다."


대리국의 수행승과 십괴라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병사들. 입을 어찌나 크게 벌렸는지 그 안에 든 목젖이 보일 지경이다. 얼핏 보면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조합도 놀랍지만, 이들이 이처럼 평범한 촌부의 몰골로 대리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제법 놀라운 모양이다.


"차라리 우리에게는 잘 된 일이다. 대리국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였으니 우리 부대의 정확한 위치는 물론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이 새어나갈 일은 없지 않느냐. 전서구를 날린다고 하여도 이미 국경 지대를 넘어선 이후일 터. 게다가 이 늪지대를 지나면 험난한 대협곡의 골짜기를 지나야만 한다. 이곳은 대리국으로 향할 수 있는 유일한 길목이니 만약 돌아온다면 결국 우리와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때 대응하여도 늦지 않는다."


"역시 현명하십니다, 장군! 그들의 정체를 간파하는 것은 물론, 행선지를 진즉 파악하여 앞으로의 동선을 유추하셨군요! 불필요한 피해 또한 줄였으니 이번 원정은 온전히 남만 정벌에 힘쓸수 있겠습니다!"


남만으로 삼 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벌써 한 달째 남하하고 있는 리 단양. 적은 군량으로 이토록 빠르게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육악늪에 서식하고 있는 온갖 동식물에 해박한 그의 지식 덕분이다. 닭고기 맛이 나는 악어 고기는 물론, 물소 고기와 지약저 고기로 만든 육포가 없었다면 늪지대 안에서 주린 배만 부여잡고 있었으리라. 이토록 빠르고 정확한 경로로 여기까지 도달한 전례가 없으니, 문무를 모두 갖춘 지장(智將) 리 단양의 판단에 토를 달만한 병사는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대협곡은 운남의 일부이자 점창파의 지역이다. 무림맹 고수들에게 젊은 시절 치욕을 안겨주었던 이지노괴를 얌전히 보내줄 리가 없지. 관무불가침이라 하나 이들을 활용하여 이이제이(以夷制夷)하는 것이 상책. 쉽지 않을 겁니다, 사부.'


속으로 비릿한 웃음을 흘리는 리 단양은 앞서 날린 전서구를 받은 점창파의 고수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모양이다.


=========================


"할아버지, 아까 분명 사부라고 칭하였는데 어찌 그리 격렬히 부정하셨습니까? 무사히 풀려나서 다행이지, 군부대 한복판에서 적장과 척을 지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였습니다. 그냥 처음부터 당당히 정체를 밝히고..."


"喝! 어찌 사제의 예를 그리 가볍게 여기느냐! 그놈은 단 한 번도 내게 정식으로 무공을 전수 받은 적도 없거니와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부라 칭할 놈도 아니다! 왕족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타인을 업신겨기고 알량한 재주를 믿고 역모를 꾀하는 대역죄인일 뿐이다! 노부가 정식으로 받은 제자는 지난 40년 동안 네놈이 유일하거늘!"


삼 천 병력이 모여있는 진지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것이 감격스러워 여전히 손발이 떨려오는 반웅. 그의 말처럼 만약 리 단양이 이들을 막아서려 했다면 분명 어찌할 도리 없이 붙잡히고 말았을 것이다. 지금쯤 옥살이를 하고 있거나 목이 베어 바닥에 나뒹굴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되레 엄포를 늘어놓으며 큰 소리로 본인과 리 단양의 관계를 부정하던 가천일을 어찌 이해할 수 있으랴.


"아미타불. 풍문으로 들려오던 소식이 사실이었나 보구려. 리 단양이 가천일이 평생을 연마한 탄지공의 정수를 담은 비급을 우연히 갈취하여 익혔다고 하더니, 사실인가 봅니다."


저잣거리에서 들은 소문을 무표정한 얼굴로 털어놓는 아망. 대리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이 일화를 당사자 앞에서 이토록 당당하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이 눈치없는 스님 밖에 없을 것이다.


내공을 한 없이 끌어올린 뒤 핏발 선 눈으로 아망을 죽일 듯 노려보는 가천일. 덕분에 무려 반 시진이나 이어진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세 사람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묵묵히 앞만 보며 나아갔다. 악명이 자자한 대협곡의 입구가 나타날 때까지 말이다.


지금껏 고생한 물소에서 천천히 내린 뒤 양 볼기짝을 검지 손가락으로 눌러 다시 늪지대로 보내는 가천일이 조금은 화가 가라앉았는지 불현듯 입을 열었다.


"후...여기서부터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남만 영토를 벗어난 것은 물론, 내가 젊었을 적에 척을 졌던 점창파 놈들이..."


쉬이익.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발치로 쇄도하는 무수히 많은 암기들. 정확히 가천일의 엄지 발가락 앞에서 멈춰선 것으로 보아 위협만 가할 생각으로 보인다. 자신을 직접 노렸다면 얌전히 바라보고만 있을 이지노괴가 아니지만 말이다.


"여기가 어디라고 모습을 드러내는게냐! 불과 40년 전에 네놈에게 비통하게 죽은 나의 사형을 잊었느냐! 남만으로 썩 물러가지 못할까!"


마치 옆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또렷하게 들려오는 중후한 음성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주변을 연신 둘러보던 반웅. 암기가 날아든 방향을 향해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가천일의 시선을 따라 가파른 협곡 윗편으로 시선을 옮기자 콩알 보다 조그맣게 보이는 사람의 윤곽이 마침내 눈에 들어온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절대 눈치채지 못하였으리라.


"네놈의 사형과 정당한 비무를 나누었을 뿐이다! 이미 지난 세월이 무려 40년이거늘! 대체 언제까지 원망할 생각이냐!"


"정당한 비무였다면 더욱이 목숨을 취하면 안되는 것이 아니더냐! 네놈은 40년 동안 참회는 커녕 낯짝만 두꺼워졌구나! 염치라는게 있다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뉘우쳐야 하거늘. 여전히 뻔뻔한 네놈의 낯짝으로 보아 오늘은 기필코 사형의 원수를 갚아야 되겠다!"


심후한 내공을 담아 식후 운동이라도 하듯 사자후를 펼치며 대화를 나누는 가천일과 협곡 위의 기인. 결국 자신의 화를 견디지 못한 기인이 협곡 윗편에서 뛰어내린다.


'저 높이에서 뛰어내린다고? 아무리 고수여도 저건...'


갑작스레 뛰어내리는 모습에 당황하여 두 손으로 양쪽 눈을 살포시 가리고 눈을 질끈 감는 반웅. 허나 아무리 기다려도 바닥에서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자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감았던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벌어진 손틈 사이로 조심스레 시선을 옮긴다.


'허..허억! 저게 대체 무슨...'


무릇 사물이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을. 반웅은 깃털처럼 너울대며 천천히 바닥으로 걸어내려오는 모습에 숨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기까지한 그 움직임은 조금씩 비대해져 마침내 지면에 이르렀을 즈음에야 백발 노인의 형상을 띤다.


"오늘에서야 네놈을 만나 사형의 원혼을 달래줄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어찌 경사스러운 날이 아니겠는가! 점창파는 원한을 잊지 않는다!"


"빌어먹을! 네놈들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를 않는구나! 오냐, 오늘 네 사형 곁으로 보내주마!"


흙바닥을 박차고 이리저리 꺽이는 기다란 철제 무기를 다짜고짜 가천일에게 휘두르는 백발 노인.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마디마다 살아있는 뱀처럼 방향을 바꾸고 물결치는 것이 살아있는 한 마리의 뱀처럼 보일 지경이다.


"저, 저건 대체 무슨 무기입니까?"


"아미타불. 일 장이나 되는 길이의 구절편(九節鞭)을 저리 자유롭게 다루다니. 점창파의 장문인 같구려."


눈으로 쫓기도 힘든 거대한 구절편을 두 손가락 만으로 쳐내고 있는 가천일.


그 기묘한 광경에 반웅은 넋을 잃고 빠져들고 말았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남만야수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금일 연재 안내 22.08.16 6 0 -
공지 연재 주기 안내 22.06.28 15 0 -
공지 수정 안내 22.06.19 32 0 -
공지 한자 용어에 관한 질문입니다. 22.06.16 78 0 -
62 봉소 마을로 모여드는 이들 (1) 22.08.31 44 0 10쪽
61 대리국을 향한 여정 (3) 22.08.28 29 0 9쪽
60 대리국을 향한 여정 (2) 22.08.26 33 0 9쪽
» 대리국을 향한 여정 (1) 22.08.23 24 0 9쪽
58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3) 22.08.21 26 0 10쪽
57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2) 22.08.18 29 0 9쪽
56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1) 22.08.17 32 0 9쪽
55 전쟁의 서막 (3) 22.08.15 35 0 9쪽
54 전쟁의 서막 (2) 22.08.09 33 0 9쪽
53 전쟁의 서막 (1) 22.08.07 35 1 9쪽
52 불협화음 (3) 22.08.04 40 1 10쪽
51 불협화음 (2) 22.08.02 33 1 9쪽
50 불협화음 (1) 22.07.31 38 1 10쪽
49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3) 22.07.28 50 1 9쪽
48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2) 22.07.26 39 1 9쪽
47 북룡폭포에서 벌어진 접전 (1) 22.07.24 40 1 9쪽
46 적야 노인의 친정댁 (2) 22.07.21 43 1 10쪽
45 적야 노인의 친정댁 (1) 22.07.19 43 1 9쪽
44 망각행승 (2) 22.07.17 45 1 10쪽
43 망각행승 (1) 22.07.14 55 1 10쪽
42 북란성을 떠난 이들 22.07.12 53 1 10쪽
41 진실을 찾아서 (3) 22.07.10 51 1 10쪽
40 진실을 찾아서 (2) 22.07.07 54 1 10쪽
39 진실을 찾아서 (1) 22.07.06 67 1 9쪽
38 거검문의 진짜 소문주 (2) 22.07.05 75 1 10쪽
37 거검문의 진짜 소문주 (1) +2 22.07.04 74 1 10쪽
36 여인을 설득하는 방법 (2) 22.06.29 86 1 9쪽
35 여인을 설득하는 방법 (1) 22.06.28 87 3 10쪽
34 야수신궁의 5대 단체 22.06.28 98 2 10쪽
33 세 번째 시험 - 뜻밖의 기연과 새로운 약조 22.06.27 108 1 10쪽
32 세 번째 시험 - 호랑이 가죽에 남겨진 실마리 22.06.23 90 1 10쪽
31 세 번째 시험 - 다시 도채밀림으로 22.06.22 86 1 10쪽
30 하니 마을의 준예(哈尼儁乂) (2) 22.06.19 100 3 9쪽
29 하니 마을의 준예(哈尼儁乂) (1) 22.06.19 90 1 9쪽
28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3) 22.06.19 90 1 10쪽
27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2) 22.06.19 90 1 9쪽
26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1) 22.06.19 96 1 10쪽
25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3) +1 22.06.19 99 1 9쪽
24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2) +3 22.06.19 104 1 10쪽
23 운귀고원(云贵高原)을 오르는 사내 (1) 22.06.19 94 1 9쪽
22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3) 22.06.19 99 1 9쪽
21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2) 22.06.19 93 1 10쪽
20 두 번째 시련 - 혼원야수공의 정수 (1) 22.06.19 105 1 10쪽
19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4) 22.06.11 130 1 10쪽
18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3) 22.06.09 146 1 9쪽
17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2) 22.06.08 141 1 10쪽
16 운귀고원(云贵高原)으로 보내진 아이 (1) 22.06.07 159 1 10쪽
15 무진이라는 사내 (5) +3 22.06.05 156 2 11쪽
14 무진이라는 사내 (4) +2 22.06.03 156 3 11쪽
13 무진이라는 사내 (3) 22.06.01 164 3 10쪽
12 무진이라는 사내 (2) 22.06.01 175 2 10쪽
11 무진이라는 사내 (1) 22.05.31 198 3 9쪽
10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3) +1 22.05.28 206 2 10쪽
9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 +1 22.05.27 233 2 9쪽
8 첫 번째 시험 - 도채밀림 (刀寨密林) 22.05.25 260 3 9쪽
7 비동의 회의 - 억취소악 (憶吹簫樂) +1 22.05.23 300 3 9쪽
6 첫 비무 - 선발제인(先發制人) +2 22.05.20 315 6 11쪽
5 영웅협객(英雄俠客) +4 22.05.18 325 7 10쪽
4 수련과 생사기로(生死岐路) 22.05.16 400 11 9쪽
3 야수신궁의 역사 22.05.13 465 13 9쪽
2 여정의 시작 +2 22.05.11 687 18 11쪽
1 프롤로그 +4 22.05.11 666 18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