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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칰의 이야기

남만야수왕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와사비칰
작품등록일 :
2022.05.11 22:17
최근연재일 :
2022.08.31 08:38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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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2
추천수 :
139
글자수 :
263,461

작성
22.05.31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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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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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9쪽

무진이라는 사내 (1)

DUMMY

봉소(鳳巣)는 북녘에 위치한 운남 지역과 남만의 경계에 위치한 요충지다. 서쪽의 운귀 고원, 동쪽의 송금림, 남쪽의 도채밀림과 맞닿아 있는 이 산골 마을에서 첫 정사대전 때 개전의 봉화를 올린 수많은 영웅이 탄생했다. 비록 지금은 쇠락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봉황만두 한 접시 더."


무진은 객점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있다. 밤마다 봉소를 습격해오는 흑철웅(黑鐵熊) 무리를 사냥하기 위해 어둠이 깔리기 전 배를 채우는 것이다.


'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된거지.'


징계를 받고 벌써 한 달째 이 곳에서 곰 사냥을 하고 있는 무진. 염원하던 묵호단(嘿虎团)과 멀어져 버린 자신의 처지가 탐탁지 않다.


수련동에서 꺼져 가던 수련생의 목숨을 살린 것에 대해선 후회가 없지만, 간소소의 계략에 당한 것은 지금도 아쉽기만 하다. 티엔이 긴급 회의를 소집할 것을 예상하지 못한 탓이다.


'간만에 키워보고 싶은 녀석이었다.'


깊은 인상을 남긴 맹웅과 반웅의 비무.


그 속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반웅의 혼신의 힘을 다한 적응비권(赤鷹飛拳).


회상에 빠진 무진은 입안에 밀어넣던 만두가 진즉 사라진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계산을 마치고 운남 지역으로 뻗어있는 북룡산맥(운남 지역에서는 남룡산맥) 중턱에 오르자 기감을 타고 북동쪽에 위치한 북룡폭포에 모여있는 오늘의 사냥감들이 느껴진다.


'5마리인가.'


매일 서너 마리의 곰을 도륙내고 있지만 그 수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고 있다. 북쪽에서 이들을 밀어낼 정도로 강한 무언가가 나타난 것이다. 허나 근방에서 이 네 발 짐승들보다 강한 생물은 없다. 무공을 익힌 자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중원 놈들은 아닐텐데.'


정사대전이 끝나고 아직 세력을 복구하지 못한 마교와 무림맹은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 민심 회복에 힘쓰고 있다. 남만 산골짜기로 세력을 확장할 여유도 없거니와 굳이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거라.'


무진은 목욕을 즐기고 있는 다섯 마리의 짐승에게 다가올 불행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어릴적 흑철웅의 기운으로 자신의 심법을 완성하였기에 친밀감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짐승은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


"하압!"


등에 멘 거대한 도끼를 꺼내든 그가 혼원칠영보(混元七靈歨)를 펼친다.


'한 마리.'


모습을 드러낸 불청객을 가장 먼저 발견한 천 관이 넘는 검은 짐승이 그를 위협하기 위해서 두 다리로 일어섰지만 이내 주저앉고 말았다. 다리가 잘린 것이다.


'두 마리. 세 마리.'


몸을 낮추고 접근하는 무진. 그의 도끼가 한 번 빛날 때마다 사지를 잃은 곰이 늘어간다.


'이걸로 끝인가.'


새끼 곰을 안고 있는 어미곰을 바라보는 전사의 눈에 자비란 없다.


쩌저적.


무진의 도끼질 한 방에 반으로 갈라진 새끼 곰과 어미 곰의 몸에서 붉은 액체가 흘러나와 바닥을 적신다. 적에게는 한없이 잔인한 무진다운 모습이다.


'오늘은 하루가 길겠군.'


태연히 도끼날에 묻은 피를 닦아낸 무진. 그가 돌연 폭포수 안쪽으로 손도끼를 날린다.


풍덩.


서늘한 쇠의 감촉을 그대로 폐에 전달한 손도끼에 신음하는 복면의 사내. 다행히 물 속에 떨어져 아직 목숨이 붙어있다.


"어디 소속이냐."


퍼드덕.


새까만 도끼를 들고 다가서는 무진이 살기를 방출하자 십 장 안팎의 짐승들이 허겁지겁 도망친다. 그는 출혈을 막기 위해 능숙한 솜씨로 복면인을 점혈한 뒤 아혈만 풀어주었다.


"미, 미..."


말을 마치지도 못한 채 복면인은 숨을 거두었다. 뒤이어 날아든 비수에 의해.


"누구냐!"


무진은 황급히 기감을 끌어올렸지만 결국 정수리에 깊숙하게 박힌 비수의 주인을 찾지 못하였다. 이미 멀리 떠났을 것이다.


'티엔만큼 대단한 은형술(隱形術)의 고수였다. 잠깐, 이건 뭐지?'


무진은 익숙한 냄새를 풍기는 복면인의 사체를 샅샅이 뒤지고 나서야 마을로 향했다.




"이 사람을 본 적 있소?"


다짜고짜 촌장에게 복면인의 수급을 던지는 무진. 그는 마을에 당도하자마자 촌장댁을 찾았다.


"우리 마을 사람은 아니구려. 내 비록 환갑이 넘었지만 확실하오."


"노인장. 그건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지 않소?"


야밤중에 찾아온 불청객의 비상식적인 행동에도 태연하게 대답하는 촌장. 그런 그의 말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곧바로 질문을 이어나가는 무진.


시체의 품에서 봉황만두를 발견한 그는 촌장이 남자의 정체를 알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마을에서 가장 기억력이 좋기로 소문난 인물이 아니던가.


"말해주더라도 우리 마을에는 피해가 없도록 해주시오."


"최대한 노력해보겠소."


피해가 없도록 해 달라니.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진 무진을 조용히 노려보던 촌장이 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몇 달 전에 운남(云南)에서 행상인 무리가 우리 마을에 온 적이 있소. 그 무리 중 한 명 같구려. 문제가 커지지 않도록 부디 조용히 처리해주시오."


"...알겠소."


무진은 자신의 눈을 계속 피하던 촌장을 뒤로한 채 벌써 파리가 꼬이고 있는 남자의 머리를 챙겨 길을 나선다. 석연치 않은 기분이다.


마을 초가삼간을 지나 이윽고 자신이 머물고 있는 허름한 객잔에 당도한 무진. 그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 불을 끄고 누운 채 한 시진이 지나자 조심스레 창문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왔다.


자신의 기감을 속일 수 있는 일전의 고수가 그를 쫓아왔을까 두려워 실시한 궁여지책(窮餘一策)이었다. 촌장의 부자연스러운 모습에 어쩌면 자신이 돌아오기 훨씬 이전에 그의 집에 숨어서 일거수일투족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쾅쾅쾅.


"한밤 중에 대체 어떤 미...아 무진님이셨군요. 안으로 드시지요."


"이 사람이 누군지 아나?"


촌장댁에서 한 행동을 그대로 반복하는 무진.


"아이고 세상에...이 분은 귀인께서 나가신 뒤 저희 집에 만두를 사러 오신 분입니다!"


'역시 촌장은 무언가 숨기고 있다.'


무진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소피를 지린 객점주의 반응을 보고 확신을 얻었다.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이라도 잘린 머리를 보고 그토록 태연할 수는 없다. 뒤이어 행상인 무리일 것이라는 뻔한 거짓말로 얼버무리고 자신의 눈치를 보던 그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은 걸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이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 달 전에 온 행상인 무리 중 한 명은 아니고?"


"그건 절대 아닙니다요. 산 중턱에 자리를 잡은 화전민인데 이따금 내려와서 저희 집에서 만두를 사갔습니다."


화전민이라는 말에 반응하는 무진. 산에 불을 지르고 터전을 파괴하여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하루살이들이 아니던가. 먹고 살기도 힘든 화전민이 자신이 겨우 알아차릴 정도의 은형술을 펼칠 수 있을 리가 없다.


갑자기 남하한 흑철웅 무리. 무언가 숨기고 있는 촌장. 자신을 감시하던 복면인들. 화전민.


'대체 왜 나만 이런 골치 아픈 일이 생기는 거지?'


무진은 객점주에게 은자 한 냥을 쥐어주고 밖으로 나왔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어렵게 키운 신예(新銳)가 당했다니!"


넓은 석실 중앙에 놓인 옥좌에 앉아서 고함을 지르는 창백한 사내. 그의 안색과 대비되는 붉은 안광이 더욱 섬뜩해 보인다.


"일격에 당했습니다. 도끼를 다루는 절정 고수였습니다."


여인의 보고에 장내가 술렁인다.


사내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그녀는 물론 모여든 모든 이가 낯선 의상을 걸치고 있다. 어쩌면 먼 이국 땅의 후예일지도 모르리라.


"절정 고수가 갑자기 나타나다니! 그게 무슨..."


"이러다 우리 계획이 틀어지면..."


"喝!"


단 한 마디로 장내를 제압한 옥좌의 주인.


그는 불안해 보이는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절정 고수라는 말에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인다.


"내공이 부족했던 막내보다는 차라리 절정 고수를 이용하는게 낫다. 이건 우리의 비원을 이루라는 하늘의 계시가 분명하구나!"


창 밖에 비치는 하현달을 바라보면서 사내는 자신들의 오랜 바람을 이뤄줄지도 모르는 신진고수의 출현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갈수록 광기가 심해지고 있다.'


이 모습을 관망하던 이국적인 여인은 시시각각 변하는 사내의 모습에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외부인을 끌어들이면서까지 비술을 완성하고 싶어했던 급진파의 바람대로 흘러가고 있었지만 그 결과는 분명 누구도 바라지 않는 모습으로 현현하고 있다.


'정녕 이런 모습을 바라셨던 겁니까.'


자신의 주인이자 세상의 주인이 되어야만 하는 눈 앞의 사내가 본래의 목적을 잊고 타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녀에게는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비술이 완성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주인과 정반대의 계획을 품었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봉소(鳳巣) - 봉황의 둥지. 마을 이름.


궁여지책(窮餘一策) -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짜낸 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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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대리국을 향한 여정 (2) 22.08.26 33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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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3) 22.08.21 26 0 10쪽
57 봉소, 대월, 그리고 주술 (2) 22.08.18 29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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