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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바닐라의 서재입니다.

조선도깨비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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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바닐라
작품등록일 :
2022.09.10 16:20
최근연재일 :
2023.01.26 16:39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3,352
추천수 :
48
글자수 :
125,500

작성
22.09.1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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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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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1.

DUMMY

끄아악!-


언제부터였을까, 소리를 내지르며 숲을 달리기 시작한지는. 나는 필사적으로 앞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단순한 술래잡기냐고? 아니면, 고리대금업자의 눈을 피해 도망 다니고 있는 거냐고? 전자라고 하자니 나의 얼굴에는 공포심이 가득했고, 후자라고 하기엔 나의 나이는 방년 16세에 불과했다.


그러면 나는 무엇 때문에 이리 겁에 질린 표정을 한 채 달리고 있는가. 그 곡절을 파헤치기 위해선 잠시 시간을 되돌려보자.




8시간 전 ***




“야!”


멀리서 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단아한 색의 한복을 차려입은 한 여자아이가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그 여자아이가 이조판서 김제상의 딸임을 한 순간에 알아본 나는, 서둘러 아가씨가 부르는 곳으로 달려가 한 다리를 굽힌 채 예를 표했다.


“아가씨, 무슨 일이십니까?”

“얘는, 됐다니까.”


아가씨는 그만 일어나라는 듯 내 어깨를 톡톡 치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일로 나온 것이냐? 또 그 무식한 녀석을 만나러 온 게냐?”


아가씨가 말하는 무식한 녀석이라 함은, 어릴 때부터 죽마고우처럼 지내왔던 내 벗인 김석오를 칭하는 말일 테지. 아버지의 친구의 아들이자 옆집에 사는 그 녀석은, 왕래가 잦은 두 집안 덕분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버렸다. 딱히 모난 구석이 없는 성격이지만 무식하게 쎈 힘 때문인지 아가씨는 그 녀석을 ‘무식한 녀석’이라고 기억하고 있나 보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오늘 마침 석오랑 저기 저 보이는 산에 가볼 생각인데, 아가씨도 함께 가시렵니까?”

“저 산 말이냐?”


내 손가락 끝이 향하고 있는 산을 같이 바라보며, 아가씨는 활짝 웃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아가씨께서도 가보고 싶으셨지 않으셨습니까?”

“응!”


하지만, 이내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진 아가씨는 문득 무엇이 떠올랐는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 하지만, 안 되겠구나. 성균관에서 배울 것들을 미리 공부하는 시간을 빼먹을 순 없으니 말이다. 마침 가는 길에 네가 보이기에 말을 걸었을 뿐이다.”

“아...”


그렇다, 양반집 가문의 딸인 아가씨는 근래 들어 성균관에 입학하는 데 성공하셨다. 아가씨가 말하기로는 4부학당에서 치르는 시험인 승보시에 합격하여 기회가 생겼다고 하셨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너도 한 번 다녀보는 것이 어떠냐? 너만 좋다면 내 아버지께 귀띔이라도 해 주마.”

“... 말씀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느냐?”


마음이 상했는지 다소 격양된 아가씨의 말투에, 나는 최대한 정중한 태도로 이유를 들어가며 내 주장을 변호했다.


“아씨도 아시겠지만 저는 평민집 아들이지 않습니까. 또한 귀천을 막론하더라도 성균관에 입학할 정도의 학문적 소양을 저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성균관은 전부 양반집 자제분들을 위한 곳. 저는 그냥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배울 생각입니다.”

“흠, 그러느냐.”


다소 실망스러운 듯 아가씨는 굳은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일 뿐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나는 갑작스레 얼어붙은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괜스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아가씨를 위해 제가 저 산에서 몽유초(夢誘草)를 꺾어 오겠습니다.”

“몽유초 말이냐?”


금세 화색이 돈 아가씨는, 커다래진 눈망울을 한 채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평소 갖고 싶어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유시 쯤에 아가씨 집 앞에 갈 테니 나와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물론이지! 그럼, 기대하고 있으마.”


그렇게 나는 아가씨와 한 가지 약속을 한 채 손을 흔들며 다음에 있을 만남을 기약했다.


그 뒤로 나는 석오를 만났고, 별 다른 걱정거리 없이 곧바로 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그래서, 그런 터무니없는 약속을 해 버렸다 이거냐?”

“...”


나는 석오의 말에 면목이 없어 고개를 푹 숙인 채 끄덕일 뿐이었다.


“몽유초를 꺾어 오겠다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소리를 한 거야? 저잣거리에서도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상상속의 꽃을 말이야. 이조판서의 딸인 그 계집애가 일러바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양반집 자제의 딸에게 거짓말 했다는 사실을 말이야.”

“야, 말조심해.”


아가씨를 속되게 부르는 그 녀석의 언행에 순간 욱한 나를 의식하듯, 석오는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뭐 어때 듣는 사람도 없는데. 하여튼, 너도 문제다 문제.”

“어쩔 수 없었단 말이야. 아가씨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걸.”

“어휴.”


석오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몽유초,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꿈에서 등장한다는 상상속의 꽃. 세간의 소문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보는 순간 그 황홀함에 넋이 나간다는 꽃이다. 물론 소문은 소문을 뿐 실제로 그 모습을 봤다는 이는 적어도 한양 내에서는 본 적이 없다. 그저 어느 깊은 산 속에 홀로 피어있다고만 전해져 내려올 뿐.


그런 꽃을 꺾어오겠다고 단언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실언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찾아볼 수 있는 데까진 찾아보자고. 딱히 목적을 정하고 온 것도 아니니까.”

“고마워.”


불평불만은 많았지만, 같이 꽃을 찾아준다는 석오의 말에 내심 감명 받은 나는 고개를 좌, 우로 둘러보며 산길을 걸어가면서도 열심히 몽유초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꽃 찾기에 몰두해버린 우리는 무심코 산 속 깊은 곳까지 와버리고야 말았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석오였다.


“잠깐만, 우리 너무 깊이 들어와 버렸는데?”

“... 그러게. 슬슬 돌아갈까?”

“신시가 지나면 숲에서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서두르자, 곧 날이 저물겠어.”

“응.”


아무리 한양이라도 땅거미가 지면 미아가 돼 버릴 수 있는 곳이 숲 속이다. 점점 땅 밑으로 들어가는 태양과 처음 보는 주변 풍경에 불안감을 느낀 우리는,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곧장 걸어온 길 반대편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우리였지만, 걸어온 거리가 상당한지 마을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고 날은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족히 5리는 걸은 것 같은데, 얼마나 깊게 들어온 거야?”

“네가 쓸데없이 몽유초를 구해온다는 소리만 하지 않았어도.”

“뭐? 나 때문이란 거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니지, 솔직하게 맞잖아? 굳이 이렇게 산 속 깊은 곳까지 걸어온 것도, 다 그 몽유초 때문이잖아.”

“...”


으슥한 숲 속 안에서 공포심을 느낀 우리는 서로에게 탓을 떠넘기기 일쑤였다. 하지만 석오의 말이 일리가 없는 말이라곤 생각이 들지 않았던 나는, 결국 입을 꾹 다문 채 묵묵히 앞을 걸어 나가고만 있었다.


그 때였다.


“... 야, 잠깐만.”


정신없이 걸어가는 내 옷깃을 부여잡은 석오는, 무슨 일이라도 생긴 듯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버렸다.


“응?”

“저, 저기... 저기 봐봐.”


내가 고개를 돌리자 석오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킨 채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마치 보면 안 되는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왜 그러는데?”


갑작스러운 석오의 태도에 당황한 나는, 천천히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뭐야, 아무것도 없는...”


금세 어두워진 주위 탓에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점차 석오를 공포에 떨게 한 이유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족히 1장은 넘어 보이는 키와 우람한 장골, 실루엣으로 봤을 땐 거대한 곰이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저게 뭐야...?”


덩치에 맞지 않게 내 뒤에서 벌벌 떨며 숨어있는 석오를 뒤로한 채,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상대방이 서 있는 방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물론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무서웠지만, 잔뜩 겁을 먹은 석오 탓인지 왠지 모를 책임감이 불쑥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곰처럼 보이는 상대방은 그 자리에 서서 몇 초간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는 듯 보였다.


‘상대방도 우리에게 겁을 먹은 건가?’


라는 찰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갈 즘에,


구어어어어!-


상대방은 엄청난 비명소리와 함께 우리 쪽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깜짝 놀란 나와 석오는 죽을힘을 다해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야!!”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정체불명의 생명체. 슬쩍 뒤를 돌아보자 엄청나게 좁혀진 상대방과의 거리와 함께 그 정체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곰,


곰이긴 했지만 일반적인 곰과는 달랐다. 얼굴은 보통의 곰과 별 다를 바가 없었지만, 갈기갈기 찢겨져 있는 뱃가죽은 곰의 갈비뼈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내세운 채 침을 질질 흘리며 우리에게 전력질주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곰의 모습을 한 도깨비인 것처럼 보였다.



“도, 도깨비 아니야?”


거친 숨을 내쉬며 가까스로 대답한 내 답변에, 석오는 더욱 비명을 지르며 내달렸다,


“도깨비? 끄아아아아악!”

“자, 잠깐!”


인사불성의 상태가 된 석오는 발군인 신체능력으로 더 빠른 속도로 앞질러 나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10보 이상의 거리가 차이나버린 석오는 점점 더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달려갔고, 나와 도깨비의 거리는 점차 좁혀져 잡히기 일보직전인 상태였다.


끄아악!-


엄청난 공포심에 소리를 지르며 빠르게 다리를 굴려봤지만, 너무 급했던 탓인지 나도 모르게 곧게 뻗어져 있는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져 버리고야 말았다.


“사, 살려주세요...”


발이 걸려 넘어져버린 나는, 더 이상 도망가기를 포기한 채 울먹거리며 그 자리에 얼어붙고야 말았다.


구어어어-


그런 나를 의식하는 도깨비는 가까이서 내 얼굴을 바라본 채 입을 벌리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입맛을 다시듯 나를 빤히 응시한 채 주둥이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도깨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크게 벌리기 시작했다.


구어어어어-


곧 잡아먹힌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아버린 나.


타닥, 타닥-


그렇게 생각할 때, 어디선가 재빠르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이 밟히며 내는 소리들. 확실히 누군가가 다가온다.


그 소리를 의식했는지 도깨비는 입을 잔뜩 벌린 채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고, 나 역시 그 순간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실눈을 뜨며 고개를 틀었다.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제 5장-


월하정인(月下情人)-


촤아악-


엄청난 속도로 베어버렸다. 도깨비가 반응하지 못할 정도의 찰나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의 검술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로 아름다웠다. 어느새 차오른 달빛 아래 내지른 그의 검술은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잎사귀들과 함께 운치를 더했다.


넋 놓고 바라본 내 두 눈의 끝은, 피가 묻어있는 검을 한 손으로 든 채 기품있게 서 있는 한 여인에게 다달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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