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망고바닐라의 서재입니다.

조선도깨비실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망고바닐라
작품등록일 :
2022.09.10 16:20
최근연재일 :
2023.01.26 16:39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3,227
추천수 :
48
글자수 :
125,500

작성
22.10.31 17:15
조회
84
추천
2
글자
9쪽

18.

DUMMY

“50점이라니, 우리들 중 최고 점수잖아?”


살짝 부러운 듯, 석오는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하긴, 대단하긴 했어. 2장을 그렇게 깔끔하게 시연하다니.”

“이제현 사부님이 직접 점수를 준 것도 꽤나 놀랐고.”

“하하하...”


다른 조원들 역시 한 마디씩 거들었고, 쏠리는 관심에 부끄러웠던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쓴웃음만을 지었다. 물론 고득점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동안 나 혼자서 척사부의 특훈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몰래 부정행위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다음달부터는 방학이네.”

“방학? 그게 뭔데?”


처음 듣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석오. 이런 그가 한심하다는 듯, 랑이는 한숨을 푹 쉬며 답했다.


“놓을 방, 배울 학. 말 그대로 교육에 지친 생도들을 위한 휴식 기간!”

“그런 것도 있어?”

“그러면, 그 방학이라는 기간 동안에는...”

“물론, 본가로 돌아가는 거지.”

“와!”


한량의 질문에 즉답하는 랑이. 석오는 본가에 돌아간다는 사실이 무척 기쁜지 팔을 들어 올리곤 흔들며 기뻐했다.


“그래서, 넌 방학 때 뭐할 거야?”

“방학 때? 음...”


갑작스러운 랑이의 질문. 사실 그동안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딱히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영멸원에 입학하기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 하나 있었다.


“아가씨한테 글을 좀 가르쳐 달라고 하려고.”

“... 아가씨?”


아가씨가 누구를 칭하는지 궁금해 하는 랑이. 그러자 불쑥 석오가 튀어나와 비아냥거리며 답했다.


“있어, 이 자식이 좋아하는 부잣집 색시.”

“아니야, 좋아하다니! 단지 아가씨한테는 감사한 마음뿐이라니까.”

“...”


왠지 모르게 살짝 어두워진 랑이의 표정, 나는 서둘러 화제를 전환하고자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는 방학 때 뭐 할 건데?”

“뭐, 나도 부잣집 도령님이나 찾아보려고.”

“응...?”


툴툴거리는 랑이. 갑작스러운 그녀의 태도변화에 당황한 나는,


‘왜 그러지? 부상이 아직 다 낫지 않은 건가?’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총상을 입은지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 왠지 나 때문에 그녀가 부상을 입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뭐, 나는 이참에 특훈이나 해야 겠구만. 너는 어쩔 생각이야, 한량?”


어색해진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대뜸 한량에게 질문을 던지는 석오. 한량은 턱을 매만지며 잠시 고민하더니,


“뭐, 본가나 가야지.”


라는 무미건조한 답변만을 내놓았다.


그렇게 '방학때 뭘 하지?' 라든가, '앞으로 영멸원에서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라는 변변찮은 고민들로 일주일을 지낸 우리.


시험 결과는, 아쉽게도 3등. 1등은 박 귀가 속한 진 조, 2등은 해 조가 차지하게 된 모양이다.


생각보다 낮은 등수에 조원들은 잔뜩 풀이 죽었었지만, 결국 점수를 얻긴 했다는 사실에 위안삼아 지나간 결과에 후회하지 않도록 하기로 했다.


이번 3개월 동안 우리 축 조가 얻은 점수는 총 10점. 40점을 달성하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지만, 한 발짝 영멸청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점수를 얻을 기회는 더 많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척사부가 안심시켜주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간 사부로부터 배웠던 것들을, 물론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조금씩 정리해나가면서 입학 후 첫 방학이 시작되는 7월 1일을 맞이하게 됐다.




***




“아가씨, 저입니다, 연이.”


탁, 탁, 탁-


끼익-


“오, 왔느냐.”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저 같은 것에 소중한 시간을 쓰셔도...”

“됐으니 들어 오거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대문 밖에서 우뚝 서 있는 나를, 아가씨는 답답하다는 듯 옷깃을 잡곤 안으로 끌어당겼다.


“와...”


대문을 지나 아가씨가 지내는 집 안으로 들어오자, 나는 무심코 탄식을 내뱉고야 말았다.


엄청난 크기의 마당, 볼록 튀어나온 기둥이 받치고 있는 화려한 처마가 인상적인 수 많은 한옥들... 영멸원의 시설과 비견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아가씨의 가옥에 나는 그만 넋을 놓고야 말았다.


“어서 들어오래도.”

“... 아, 네!”


아가씨의 재촉에, 나는 서둘러 정신을 차리곤 별채로 보이는 한 한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별채임에도 크기는 상당했는데, 단층이었지만 가로로 5칸, 세로로 3칸 정도의 크기였다.


신발을 단정히 벗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 내부는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화려했다. 옛 것으로 보이는 청자부터 최근에 갖다 놓은 듯 한 백자들이 옆쪽에 진열 돼 있었으며, 방 뒤편에는 한자들과 그림이 그려져 있는 병풍이 세워져 있었다. 병풍 옆으로는 세련된 검들이 진열돼 있기도 했다.


아가씨는 병풍 바로 앞에 앉더니, 그 앞에 놓여 있는 탁상에 미리 준비해둔 문구류들을 꺼내며 말했다.


“이 앞에 앉거라.”

“네, 넵.”


내가 쭈뼛쭈뼛 거리며 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자, 아가씨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손으로 입을 가리며


“ㅋㅋㅋㅋㅋ,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라는 말과 함께 미소를 지으셨다.


“아, 네!”

‘의식하지 말자, 의식하지 말자...’


나는 최대한 내 신분을 의식하지 말기로 마음먹곤, 속으로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다음 아가씨로부터 글자를 배울 준비를 했다.


“그럼,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알려주겠다.”

“네, 아가씨!”

아가씨는 웃으며 천천히 붓을 들었다.




***




영멸원의 방학 기간은 한 달이었는데, 그 동안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가씨의 집에서 글자공부를 했다.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웬만한 한자들의 뜻 정도는 알게 됐다. 물론 한문에 대한 것은 아직 거의 백지상태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가씨한테는 한자 이외에도 언문이라는 것을 배웠는데, 자음과 모음이라고 하는 것들로 이루어진 글자라 배우기 훨씬 편해 이는 완벽히 숙달했다.


“언문은 비록 정계에서는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평민들 사이에서는 유행하는 모양이니 알아두면 필히 도움이 될 것이다.”

“아하... 감사합니다, 아가씨.”

“그나저나, 어찌하여 글자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느냐?”

“실은...”


집에서 농사일을 도왔을 때에는, 글자를 몰라도 딱히 불편한 점이 없었다. 단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하는 일련의 일들에 글자가 필요할 일이 있겠는가? 다만,


“영멸원에서 생도로 있어보니 알게 됐습니다. 글자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두었을 때 얼마나 편리한지를.”


영멸원에는 서각이라는 곳이 문영당 3층에 존재하는데, 이 곳은 영멸원 생도들이라면 누구든지 안으로 들어가 책을 빌리거나 읽는 것이 가능토록 돼 있다. 척사부의 말에 의하면, 다양한 무술들이 적혀있는 고서 역시 이 서각에 존재한다고 귀띔 해줬지만, 글을 읽지 못하는 나로선 그림의 떡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염치를 불구하고 아가씨에게 글자를 배우고자 한 것입니다.”

“오호... 기특하구나.”


아가씨는 내 포부에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그래서, 이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 글자를 가르쳐 준 것에 대해 말이냐?”

“네, 아가씨한테는 항상 받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흐음... 그럼,”


아가씨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내 턱을 잡아당기며


“나중에 내가 도깨비한테 잡아먹히려고 할 때, 네가 구해주면 되겠구나.”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




8월 1일, 드디어 방학 기간이 끝나고 다시금 영멸원으로 수많은 생도들이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그 중 하나였던 나는, 석오와 저잣거리에서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영멸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글자는 많이 배웠고?”

“응, 아가씨께서 잘 가르쳐 주셨어.”

“... 역시 둘이 뭔가 있어.”

“하아...”


나는 괜히 추궁하는 석오가 귀찮아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참, 그나저나 넌 특훈을 한다고 했나?”

“나? 그럼!”

“어떤 특훈을 했는데?”

“근력!”


석오는 비대해진 근육을 보여주고 싶은지 두 팔을 잔뜩 구부리며 자랑질에 나섰다.


“어때, 많이 커졌지?”

“... 확실히, 넌 괴물인거 같긴 해.”

“후후...”


나는 점점 몸집이 커지는 석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방학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열심히 이야기하다보니 어느새 영멸원 정문에 도착한 우리는


“어, 랑이야! 한량도!”


영멸원 정문에 서있는 조원들을 보곤 손을 흔들며 환하게 인사했다.


“잘 지냈어?”

“오랜만이네.”


그들 역시 우리를 발견하곤 미소를 지으며 안부를 전했다.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조선도깨비실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관련 공지(수정) 22.09.30 99 0 -
33 9. 전투(3) 23.01.26 21 1 6쪽
32 8. 전투(2) 23.01.23 20 1 7쪽
31 7. 전투(1) 23.01.19 20 1 7쪽
30 6. 조우(3) 23.01.17 22 0 7쪽
29 5. 조우(2) 23.01.15 27 1 6쪽
28 4. 조우(1) 23.01.13 28 1 6쪽
27 3. 환지혼(2) 23.01.11 29 1 6쪽
26 2. 환지혼(1) 23.01.09 30 1 7쪽
25 2장 1. 중중등 도깨비 23.01.07 41 1 7쪽
24 1장 마지막화. 22.11.18 93 1 7쪽
23 23. 22.11.09 72 1 10쪽
22 22. 22.11.08 78 1 10쪽
21 21. 22.11.07 78 2 9쪽
20 20. +2 22.11.03 85 2 10쪽
19 19. 22.11.01 83 2 10쪽
» 18. 22.10.31 85 2 9쪽
17 17. 22.10.28 85 2 9쪽
16 16. 22.10.27 90 2 10쪽
15 15. 22.10.26 88 2 9쪽
14 14. 22.10.24 102 1 9쪽
13 13. 22.10.19 98 2 9쪽
12 12. 22.10.17 99 2 9쪽
11 11. 22.10.15 101 2 9쪽
10 10. 22.10.10 106 2 9쪽
9 9. 22.10.08 111 2 9쪽
8 8. 22.10.03 107 1 9쪽
7 7. 22.10.01 122 2 9쪽
6 6. 22.09.25 134 2 9쪽
5 5. 22.09.24 155 1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